"이제 더 이상 좁은 방에서 갇혀서 흐느끼고 싶지 않습니다."
지난 22일 오후 5시30분께 울산시 동구 자신의 아파트 19층에서 투신한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의 전 노조간부 출신인 이운남(42)씨는 '동지들에게'라는 제목으로 날짜 없는 메모 형식의 유서를 남긴 것으로 확인됐다.
사건 발생 당시 발견하지 못한 이 유서를 경찰과 이씨의 동료들이 뒤늦게 찾아냈다.
미혼인 이씨는 유서에서 "이렇게밖에 할 수 없는 자신이 원망스럽습니다." "양심이 허물어진 삶은 의미 없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지들 가는 길에 희망만이 가득하길 바랍니다."라고 썼다.
전남 영암이 고향인 이씨는 26살인 1997년 현대중공업 사내 하청업체인 영호산업에 입사했다.
하청노동자인 비정규직의 처우개선을 위해 그는 2001년 하청노동자 모임활동을 시작했다.
2003년 8월 드디어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조를 만들었다. 이씨는 노조창립 발기인으로 참여해 초대 노조 조직부장을 지냈다.
그러나 소속 하청업체는 노조설립 한 달 만에 노조를 설립하고 노조활동을 했다는 이유 등으로 이씨를 해고했다고 함께 노동운동을 한 관계자는 밝혔다.
이씨는 해고 후 살 길이 막막했지만 일단 해고자 신분으로 노조 조직부장 역을 그대로 수행했다.
다시 2004년 2월 14일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업체 인터기업 전 근로자 박일수(50)씨가 '비정규직 차별철폐' 유서를 남기고 분신자살한 사건이 발생했다.
박씨의 뜻을 기리며 동료 노조간부 2명과 함께 이씨는 현대중공업 대형크레인 위에서 농성을 벌였다.
농성은 5시간여 만에 끝났고, 이씨를 포함해 노조간부 3명을 모두 구속됐다.
전 금속노조 울산지부의 한 간부는 "이씨는 크레인 농성을 하다가 현대중공업 경비원들에게 붙잡혀 내려왔다"며 "이 과정에서 폭행을 당했고 이후 심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와 우울증을 앓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두 달여 뒤 법원에서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출소해 사내하청지회 노조간부로 일을 계속했다.
2006년 말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와 우울증으로 더 이상 견디기 힘들자 노조업무를 그만뒀다.
이씨는 생계유지를 위해 택배일을 선택했지만 몇 달 근무했을 뿐 오래 버티지 못했다.
해고자에 전과자 신분 때문에 취업도 힘들었다. 2008년 즈음 다시 시작한 것이 택시운전. 택시회사 3곳을 옮겨다닌 이씨는 한때 대의원으로 노조활동을 했다.
그는 짬짬이 시간을 내 2011년에는 부산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 철회투쟁인 희망버스에 참여했다. 올해는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의 정규직 투쟁인 현대차 울산공장 포위의 날 집회에도 나갔다.
금속노조 전 간부는 24일 "이씨가 투신 하루 전 한진중공업 노조간부가 목매 자살한 것과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에 대한 폭력사태를 보면서 마음 아파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자신이 노동운동을 열심히 했더라면 그런 일이 없었을 것이라고도 했다"고 전했다.
울산지역 비정규직 지원에 앞장서고 있는 이 간부는 "언제까지 노동자가 뛰어내리고 분신하고 해야 하는가"라며 "비정규직의 노동 3권 보장, 인권보장을 위해 정부와 기업이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씨의 장례식은 울산노동자장으로 치러진다. 이날과 26일 현대중공업 정문 인근에서 추모집회와 영결식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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