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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 프로야구의 위기를 경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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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 프로야구의 위기를 경고하다

[배지헌의 그린라이트] 박찬호의 전성기를 되짚어보라

지난 10일과 11일. 불과 하루를 사이에 두고 두 가지 경사스런 소식이 한국야구계에 전해졌다. 10일에는 류현진의 미국 프로야구 LA 다저스 입단이 확정됐다. 6년간 3600만 달러의 대형 계약이다. 이로써 류현진은 사상 최초로 한국프로야구에서 메이저리그로 직행한 선수로 남게 됐다.

이튿날인 11일에는 프로야구 10구단 창단이 이사회에서 의결됐다. 사실상 승인이 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에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이하 선수협)는 골든글러브 시상식 보이콧을 전격 철회했다. 기형적인 9개 구단 체제는 2년 시한부로 종지부를 찍는다. 1982년 6개 구단 체제로 출범한 프로야구가 31년 만에 '10구단 시대'를 맞이하게 됐다.

류현진의 메이저리그행과 10구단 창단은 분명 한국야구가 두 손을 들어 환영할 만한 소식이다. 한국야구가 맞이한 황금기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들이기도 하다. 이제 31년밖에 되지 않은 프로야구가 '메이저리그 투수'를 배출해냈다. 게다가 6개 팀으로 출발한 프로야구가 이제는 10개 팀을 거느리게 됐다. 류현진의 활약을 보며 많은 꼬마가 야구소년으로 꿈을 키울 것이며, 구단 확장으로 100여 명의 선수와 야구인이 새로운 일자리를 얻게 됐다. 경기력 측면에서나 산업적인 면에서나 한국야구는 새로운 요순시대를 맞이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위기 뒤에 찬스, 찬스 뒤에 위기'라는 야구계의 오랜 속담은 여기서도 유효하다. 한국야구 최고의 기회처럼 보이는 두 사건이, 실은 역설적이게도 한국야구가 처한 위기를 경고하는 것일 수도 있다.

▲당장 내년부터 야구 팬들은 류현진의 활약상을 지켜볼 것이다. LA다저스는 다시금 '국민구단'이 될 지도 모른다. 한국 프로야구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LA다저스에 입단 계약을 마친 류현진이 다저스의 99번 유니폼을 입고 지난 11일(현지시각) LA 윌셔가 라디오코리아 앞 광장에서 팬들을 위한 사인회 행사를 갖고 있다. ⓒ뉴시스

우선 류현진의 LA 입성부터 시작해 보자. 분명 류현진은 미국에서도 성공적인 경력을 쌓아나갈 것이다. 내년부터 5일에 한 번씩, 오전 11시면 전 국민이 TV와 스마트폰과 태블릿 PC를 보며 류현진의 활약을 응원하는 모습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박찬호 전성기의 재현이자, <응답하라 1997>의 야구 버전이다. 여기에 추신수도 중부지구 강팀 신시내티 레즈로 이적하면서,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까지는 '한국인 메이저리거'들의 활약이 모든 TV 패널 위를 수놓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현상은 프로야구에 어떤 영향을 가져올까? 과거 박찬호와 이승엽이 국외에서 활약하던 시기는, 공교롭게도 프로야구 최악의 침체기와 겹쳐졌다. 온 매스컴과 사람들의 관심이 국외파 메이저리그에 집중되면서 프로야구는 찬밥 신세로 전락했다. 처음 접하는 메이저리그는 야구 애호가들에게 신천지였다. 가볍게 밀어 친 타구가 담장을 넘기고, 시속 160킬로미터(km/h) 강속구를 뿌려대는 메이저리거의 활약을 보다가 한국 프로야구를 보는 경험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심형래 영화를 연달아 보는 듯한 느낌을 선사했다. 여기에 화려하고 웅장한 메이저리그의 시설과 멋진 디자인의 유니폼 등은 한국야구를 더욱 초라해 보이게 만들었다.

당장 내년부터 비슷한 상황이 재현될 수 있다. 프로야구가 다시 한 번 메이저리그와 인기 경쟁을 펼쳐야 하는 상황이다. 어차피 정상적인 생활인이라면 모든 야구 경기를 속속들이 다 볼 수는 없다. 매일같이 오전 9시에는 추신수를, 11시에는 류현진을 보고 저녁에는 또 프로야구와 하이라이트까지 챙겨보는 일과는 야구 관계자들의 생활 방식이지, 일반인의 생활이 아니다. 사람들의 관심이 메이저리그로 옮겨가는 것을 막기 어렵다. 내년 심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경제위기도 프로야구에는 악재다. 프로야구 소비자들이 입장료와 구단 상품 등에 지갑 열기를 망설이게 될 수 있다. 반면 류현진 선발경기를 즐기는 데는 그다지 큰돈이 들지 않는다. 박찬호의 전성기인 2000년 전후는, IMF 시대이기도 했다.

류현진의 미국행은 스타급 선수들의 국외진출 붐으로 이어진다. 류현진이 좋은 활약을 보이면,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국내 스타 선수들에게 적극 달려들 것이다. 좋은 선수를 찾아낼 수만 있다면 설사 그곳이 달이나 화성이라도 찾아가는 게 미국 구단들이다. 일본 프로야구에서는 매년 리그 정상급 선수들이 줄줄이 포스팅과 FA로 미국에 진출한다. 스타들이 전부 외국으로 떠나면서 일본프로야구 인기가 예전 같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한국도 다르지 않다. 이미 이승엽, 김태균, 이대호 등 A급 스타들은 전부 외국진출을 시도했다. 일본구단들과의 돈 싸움도 상대가 안 되는 마당에, 수천만 달러를 만지는 메이저리그팀을 제치고 선수를 붙잡는 건 불가능하다. 선수들 처지에서도 국내 잔류를 선택할 이유가 전혀 없다. 외국 진출이 실패해도 국내로 돌아오면 몸값이 그전보다 몇 배로 뛴다. 구단들 스스로 선수들의 국외 진출을 부추기는 격이다.

"새로운 스타를 만들어내면 되지 않느냐"고 할지 모른다. 일리 있는 지적이지만, 스타 하나를 만들어 내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스타는 야구만 잘한다고 해서 누구나 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안타 하나 쳤을 뿐인데 기삿거리를 쏟아내는 선수가 있는가 하면, 3안타를 치고도 검색하면 동명이인 연예인 기사만 뜨는 선수도 있다. 스타는 하루아침에 인위적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선수의 개성과 여러 이야깃거리가 화학작용을 일으켜 팬들의 마음을 움직여야 비로소 스타가 탄생한다.

프로야구에는 지금도 리그를 지배하고 이끌어가는 인기선수가 부족한 실정이다. 세대교체 속도도 더디다. 당장 내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마운드에 누구를 올려야 할지가 막막하다. 10구단 창단과도 통하는 문제다. 구단 수가 늘어나면 한동안 리그 전체적인 경기력 저하는 피하기 어렵다. 1.5군 내지는 2군에서 뛰던 선수들이 대거 1군으로 올라오기 때문이다. 치열한 강훈련으로 기량을 끌어올릴 수야 있지만, 하루아침에 가능한 일은 아니다. 8개 구단으로 치른 올 시즌만 해도 끊임없이 하향 평준화 지적이 나왔다. 내년부터는 '악의 제국' LA 다저스가 펼치는 플레이가 프로야구와 비교 대상이 될 것이다. 좀 더 수준 높은 야구를 선보이지 못하면 외면당하는 건 시간문제다.

과연 한국야구는 스타 선수들이 줄줄이 떠나간 뒤에도, 한껏 높아진 팬들의 눈높이를 만족시킬 만한 경기력을 보여줄 수 있을까? 팬들이 야구장을 꽉꽉 채우고 응원할 만큼 매력적인 스타를 새롭게 발굴할 수 있을까? 메이저리그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한국야구만의 독특한 색깔과 재미를 팬들에게 전해줄 수 있을까?

최근 김성근 고양 원더스 감독은 "프로야구가 700만 관중에 너무 도취했다. 우리나라 야구 자체가 위기 속에 있다"고 일침을 가했다. 김 감독의 지적대로 지금은 한국 프로야구는 샴페인을 터뜨리며 들떠 있을 때가 아니다. 오히려 이전 어느 때보다 긴박한 위기의식을 느껴야 할 때다. 지금처럼 구단들은 승패에만 집착해서 근시안적인 행태를 거듭하고, 선수들은 거품 인기와 높은 연봉에 자족하는 모습을 보여서는 승산이 없다.

아마추어 야구를 대하는 자세도 달라져야 한다. 말로는 누구나 '아마야구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정작 평상시에는 찬밥 신세다. 심지어 전국대회 결승전조차도 매스컴으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받기 일쑤다. 그러다 지도자 비리가 터지거나, 국제대회에서 부진한 성적을 거두면 그때야 평소 아마야구에 엄청나게 애정이 있었던 것처럼 이런저런 질타와 훈수를 쏟아낸다. 어쩌면 최근 아마추어 야구에 벌어진 불미스런 사건들은, 무관심과 냉대 속에서 자라난 독버섯인지도 모른다.

한국야구가 700만 관중을 넘어 황금기를 계속 이어나갈 수 있을까. 그 답은 '류현진·10구단' 이후를 어떻게 준비하고 만들어갈지에 달려 있다. 그 결과에 따라 류현진 미국행과 10구단 시대는 한국야구에 환상적인 축복이 될 수도, 반대로 어두컴컴한 암흑기를 알리는 서막이 될 수도 있다.

www.futuresba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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