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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륵' 홍성흔…롯데도 두산도 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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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륵' 홍성흔…롯데도 두산도 패자

[배지헌의 그린라이트] FA 승자와 패자 ②·끝

도합 241억 원이 오고 가는 '쩐의 전쟁'이 막을 내렸다. 어떤 팀은 큰돈을 쓰지 않고도 알짜배기 쇼핑에 성공해 웃지만, 플래티넘 카드를 손에 들고도 아무것도 사지 못해 울상인 팀도 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치열하게 펼쳐진 스토브리그 FA 영입전의 결과를 갖고, 승자와 패자를 가려봤다. 이번엔 패자 4개 팀이다. (☞1편 바로가기)

패자

한화 이글스

[+] 마일영 3년 8억 원 잔류


류현진의 메이저리그 포스팅으로 281억 원의 사이버 머니를 손에 쥐었다. 이에 이번 스토브리그 최고의 '큰 손'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막상 시장 문이 열린 뒤에는 아무것도 손에 남은 게 없었다. 일단 움직이는 속도가 너무 느렸다. 원 소속 팀과의 우선협상이 결렬되자마자 새벽부터 재빠르게 움직여서 정현욱을 손에 넣은 LG, 이호준을 영입한 NC와는 비교되는 모습이었다. 아무리 손에 돈다발을 잔뜩 쥐었어도 이미 품절된 상품을 사는 건 불가능하다. 게다가 이번 FA 시장 최대어인 김주찬은 한화와 큰 차이 없는 조건을 제시한 KIA와 사인했다. 졸지에 '선수들이 기피하는 팀'으로 강제인증을 당했다. 자체 FA 마일영과 재계약에 성공했지만, 이는 마치 10만 원 권 수표를 주면서 '먹고 싶은 거 전부 사먹어라'고 했는데 달랑 츄파춥스 하나만 사갖고 돌아온 격이다.

이번 FA 시장에서 한화가 보여준 소극적인 모습을 보면, 정말로 전력보강을 하려는 의지가 있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시장에 거품이 끼었다'느니 '반드시 잡아야 할 선수가 없다'는 말은 핑계가 되지 않는다. 배춧값이 폭등해도 다들 김장은 담근다. 한화는 올해 최하위를 기록했다. 그 전력에 에이스 류현진이 빠져나가고, 양훈도 군입대한데다, 박찬호도 돌아온다는 보장이 없다. 김태완이 복귀하긴 하지만 정상적인 경기력을 보여줄지는 미지수다. 가뜩이나 없는 살림에 집안 곳곳 빨간 딱지가 붙었다. 무너지는 집안 기둥을 지탱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무슨 수라도 썼어야 했다. 아직 수중에 들어온 돈은 아니지만, 경쟁자들에 비해 자금력이 부족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한화는 다른 팀들이 판매대에 몰려들어 극성을 피우는 동안, 멀찍이 뒤에 서서 품위를 지키는 쪽을 택했다. 그런데, 꼴찌에게도 지켜야할 품위가 남아있단 말인가? 한화의 내년 순위가 몇 위가 될지는 모르지만, 지금 이대로라면 내년에도 대어급 선수들은 한화를 피해 다른 팀의 유니폼을 입는 쪽을 택할 것 같다.

롯데 자이언츠

[-] 김주찬 4년 50억 원 KIA행, 홍성흔 4년 31억 원 두산행


김주찬에게 최대 49억 원까지 제시했지만 붙잡는 데 실패했다. 홍성흔에게 3년 계약을 제시했지만 4년을 요구하며 떠나갔다. 두 선수 다 반드시 롯데에 남고 싶은 마음은 없는 것처럼 보였는데, 어쩌면 내년 이후의 롯데가 그다지 비전이 없다고 판단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결국 지난해 겨울 이대호와 장원준을 떠나보낸 롯데는, 이번 겨울 톱타자와 4번 타자 겸 클럽하우스 리더를 다른 팀에 빼앗기게 됐다. 선수의 활약도를 승리 기여도로 환산하는 방식을 동원하면, 지난해 10승가량이 빠져나간데 이어 올해도 7~8승 정도가 떨어져 나간 셈이다. 실제 롯데는 2011년 72승 팀에서 올 시즌 65승 팀으로 주저앉았는데, 이는 이대호-장원준과 함께 빠져나간 10승에서 정대현과 김성배 등의 가세로 3승 정도를 만회한 결과다. 김주찬과 홍성흔 정도 성적을 내는 선수들의 대체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는 7~8승 정도다. 이를 통해 내년도 롯데의 성적을 예측해볼 수 있다.

물론 김주찬 같은 타입의 선수에게 50억 원을 주는 것은 명백한 과다지출이다. 김주찬이 온전히 성적으로만 몸값을 해내려면, 매년 팀에 10승 정도를 더해주는 활약을 펼쳐야 한다. 이는 김주찬에게 이대호 급의 생산력을 요구하는 셈인데, 이건 절대로 불가능한 얘기다. 또 35세 홍성흔에게 3년이 아닌 4년을 보장하는 게 무리수인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홍성흔은 수비수로서의 가치가 전혀 없기에, 매년 2009~2010년 수준의 타격 성적을 내지 않는 이상 몸값 대비 효율성이 떨어진다. 아마도 롯데는 이런 논리를 내세워서 두 선수를 떠나보낸 것을 정당화하고 싶을지 모른다.

문제는 이것이다: 과연 지금 롯데에 김주찬과 홍성흔을 대체할 만한 선수가 있을까? 김주찬을 대신할 만한 외야수들은 이승화, 김문호, 황성용 등 이미 익숙한 이름들이며, 아마도 이들은 박종윤이 이대호의 빈자리를 메우는 것보다 약간 나은 수준의 기록으로 외야 한 자리를 나눠가질 수 있을 것이다. 홍성흔의 포지션인 지명타자의 경우, 롯데는 조성환과 강민호의 체력을 관리해주거나 2군에 있는 김대우에게 기회를 주는 쪽으로 활용하게 될 것 같다. 결국 현재로서는 롯데 팀 내에 김주찬-홍성흔을 대체할 만한 자원은 눈을 씻고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이대호와 장원준이 떠난 작년 겨울, 롯데는 대체재를 전혀 다른 쪽에서 찾아냈었다. 4번 타자와 에이스가 빠진 자리를 똑같은 타자와 선발투수로 메우는 대신에, 특급 불펜 투수 2명(정대현, 이승호)을 보강하는 기발한 방식으로 해결한 것이다. 하지만 올해는 그런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다. 정 김주찬-홍성흔과의 계약이 비합리적으로 여겨졌다면, 다른 FA 선수를 '합리적'으로 영입하는 방법을 시도할 수는 없었을까. 김주찬에게 제시한 49억 원이나 홍성흔에게 제시한 25억 원은 그저 사이버 머니였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한국시리즈 우승에 실패했다'는 이유로 감독을 자른 팀에서 취할 법한 자세는 아니다. 더구나 신임 김시진 감독은 단 한 번도 위닝 시즌을 기록해본 적이 없는 사령탑이다. 취임 첫날부터 '20년 동안 우승 못한 건 부끄러운 일' 드립을 치면서 부담을 팍팍 줬으면, 제대로 된 전력보강을 해주는 게 당연한 일이다.

그러고 보면 이번 FA 시장의 '빈손' 한화와 롯데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우선 두 팀 다 감독이 경질됐다. 또 두 팀 모두 지난해 거액을 주고 모셔온 FA 선수를 불과 1년 만에 다른 팀에 넘겼다. 한화는 송신영을, 롯데는 이승호를 각각 20인 보호선수 명단에서 제외하면서 NC에 내줬다. 3~4년짜리 계약을 맺은 선수를 불과 1년도 기다려주지 못하고 포기한 것이다. 연봉협상이나 처우 문제로 종종 선수들을 서운하게 만드는 것도 두 팀의 공통점이다. FA 자격을 얻은 선수들은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과연 어떤 인상을 받을까?

SK 와이번스

[-] 이호준 3년 20억 원 NC행


보통 한국시리즈가 끝나면 우승팀보다는 준우승팀이 더 바쁘게 움직인다. 어떻게든 전력을 더 업그레이드해서 다음 시즌에는 우승에 도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2년 연속 준우승팀' SK는 이렇다 할 보강의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갓 군복무를 마친 전천후 내야수(모창민)를 특별지명으로 내줬고, 붙박이 4번타자(이호준)도 계약기간 1년 차이를 좁히지 못해 FA 시장에 내보냈다. 여기에 내년에는 불펜의 기둥 정우람이 상근예비역으로 입대한다. 20일 발표된 상무 합격자 17명 중에 6명이 SK 선수라는 얘기는, 그만큼 SK의 젊은 유망주들이 성장이 더디다는 뜻이다. 4번 타자와 마무리가 빠져나간 SK가, 내년 시즌 다시 한번 우승에 도전할 수 있을까? 내년이면 김성근 전 감독이 물러난 지 3년째다. 속담에 의하면, 몰락한 부자의 유통기한은 3년이다.

▲롯데는 클럽하우스 리더를 놓쳤고, 두산은 꼭 필요하진 않은 선수를 지나치게 비싸게 샀다. ⓒ뉴시스

두산 베어스

[+] 홍성흔 4년 31억 원 영입


롯데의 3년 제안을 사양하고 시장에 나온 홍성흔을 4년 계약으로 영입했다. 지난해 김동주의 계약조건이 2년+옵션 1년에 32억이었다는 점을 떠올린다면, 이는 매우 놀라운 일이다. 두산이 김동주와 장기계약을 맺지 않은 이유는 연로한 나이(1976년생) 때문이었다. 홍성흔은 1977년생으로, 계약 시점에서의 나이는 작년 김동주가 계약할 때와 같다. 김동주와 달리 노쇠화를 겪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는 것일까. 2010년 타율 .350에 26홈런으로 정점을 찍은 뒤, 홍성흔의 성적은 계속해서 하락세다. 지난해는 홈런수가 6개로 뚝 떨어지면서 장타 실종 현상을 경험했고, 올해는 15홈런을 쳐냈지만 5년 만에 3할 타율 달성에 실패했다. 김동주와 다를 거라고 믿을 만한 근거가 별로 없다.

물론 홍성흔은 언제나 좋은 타자였으며, 지난 4년 동안 롯데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선보였다. 어쩌면 남은 4년 동안도 3할 타율과 두자릿수 홈런을 때려내며 계속해서 좋은 성적을 낼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홍성흔이 수비수로서 전혀 가치가 없는 선수라는 데 있다. 이번 FA 시장에서 홍성흔에게 적극적인 관심을 보인 팀이 드물었던 것도, 실은 이 때문이다. 수비가 불가능한 선수에게 4년 31억 원은 너무 후한 몸값이다. 홍성흔이 .371를 기록한 2009년이나 26홈런을 쳐낸 2010년 수준의 성적을 낸다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게다가 이미 두산에는 지명타자감이 차고 넘친다. 최준석이 군에 입대하더라도 김동주, 윤석민, 오재일 등이 버티고 있다. 윤석민이 3루를 보고 김동주가 지명타자로 나서는 시나리오가 이상적이지만, 홍성흔이 들어오면 김동주가 글러브를 끼고 나서는 수밖에 없다. 김동주가 3루, 윤석민이 1루를 보면 자연히 오재일과 이원석의 자리는 사라진다. 오재원이 붙박이 2루로 나선다고 치면 최주환의 기회가 줄어든다. 조금이라도 더 경기출전 기회를 얻어야 할 풍부한 내야 자원들을 고스란히 썩히게 되는 셈이다. 게다가 김동주가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에는, 지명타자로 나오면서 컨디션을 조절하는 대신 꼼짝없이 벤치를 지켜야 한다. 영입 선수 하나 때문에 감독의 선수 기용폭이 엄청나게 좁아지는 결과를 낳는다. 사실 롯데 양승호 전 감독이 홍성흔을 무리해가면서까지 좌익수로 쓰려고 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요즘에는 미국 프로야구에서도 '전업 지명타자'는 점차 사라지는 추세다.

김진욱 감독의 '김동주 4번-홍성흔 5번' 계획도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는다. 올 시즌 두산의 4번 타자로 주로 나선 선수는 신예 윤석민이었다. 김동주의 우투수 상대 타율이 윤석민보다 5푼 가량 높았음에도, 김동주의 모습을 1군 경기에서 보기는 힘들었다. 포스트시즌에서도 4번 타자는 김동주가 아닌 윤석민이었다. 이 모든 게 다 차세대 4번 타자로 키우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홍성흔 영입과 함께 상황이 돌변했다. 올 시즌 주로 2군에서 머물렀던 노장과 FA로 영입한 노장이 4-5번을 치는 구상이 새롭게 등장했다. 윤석민을 그렇게도 열심히 중심타선에 내보냈던 건, 과연 무엇 때문이었던가.

두산에서는 홍성흔의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홍성흔이 떠난 2009년과 2010년에 두산의 팀 분위기가 특별히 나빠졌다는 근거는 찾아볼 수 없다. 두산은 그때도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으며, 특히 홍성흔이 뛴 롯데를 상대로 2년 연속 승리를 장식했다. 비록 지난해 야구 외적인 문제가 터져 나오면서 팀 성적과 분위기가 얼어붙기는 했지만, 이걸 온전히 선수들만의 책임이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진정한 리더가 필요하다는 언급도 마찬가지다. 리더십에는 홍성흔 같은 치어리더형 리더십만 있는 게 아니다. 롯데에서 홍성흔과 함께 팀 분위기를 이끌어간 또 하나의 선수는 매사에 진중하고 차분한 조성환이었다. 두산에도 김동주, 김선우, 손시헌, 임재철 등 다양한 스타일의 선참급 선수들이 존재한다. 이런 구성원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뭉쳐서 팀 분위기를 만들어가게 이끄는 것도 코칭스태프의 역할이다. 외부 FA 영입으로 간편하게 해결할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사실 천하의 홍성흔조차도 코칭스태프와의 의견충돌로 방황하던 시기(2007년 전후)에는 지금처럼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하지 못했다. 성적이 좋으면, 온갖 문제들은 자연스레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다.

정리해보자. 두산의 홍성흔 영입은 나이에 비해서는 지나치게 기간이 길고, 수비 기여가 전혀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너무 값비싸다. 원래 롯데가 제시한 수준의 기간과 금액이 적절했던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두산은 내야에 젊고 유망한 선수들이 넘쳐나는 팀이다. 지명타자만 가능한 노장의 영입은 기존 선수들의 설 자리를 뺏고, 엔트리의 야수 한 자리를 낭비하게 만든다. 두산으로서는 차라리 그 자리에 젊은 포지션 플레이어를 기용하면서 31억 원을 아끼는 편이 좀 더 짜임새 있는 라인업을 구성하는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더그아웃 응원단장의 복귀에 마냥 기뻐 만 하기에는, 두산이 잃게 되는 것이 너무나 많아 보인다. 김동주와 SK 박경완의 모습이 묘하게 겹쳐 보이는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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