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와 이명박 정부의 완벽 공조
1990년대 초부터 양국은 대북정책을 두고 엇박자를 보인 경우가 많았다. 클린턴 행정부와 김영삼 정부가 정책적 차이를 보였고, 햇볕정책을 추구한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미국에서도 예외적으로 강성이었던 부시 정부와 엇박자를 냈다. 협상과 교류를 중심으로 하는 연성정책과 제재와 군사력을 앞세우는 강성정책을 두고 한미 양국이 서로 다른 선호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그 결과 연성정책과 강성정책 그 어느 것도 지속적으로 강력하게 추진되지 못했다. 이를 두고 강경론자는 햇볕정책론자들이 '퍼주기'를 해서 실패했다고 비난하고, 연성론자들은 강경정책이 오히려 북의 강경대응만을 초래했다고 비판해왔다.
지난 4년은 이러한 엇박자를 불식하는데 성공했다. 이면적으로는 차이가 있었더라도, 선언적인 면이나 정책에 있어서 한미 양국은 '찰떡공조'를 과시했다. 한미 동맹관계가 '역대 최고'라는 자화자찬까지 하며 대북정책에 보조를 맞춰왔다.
'역대 최고'라는 표현에 대한 평가와는 별도로 여기서 중요한 점은 한미양국이 거의 완벽하게 공조를 이루며 강성정책을 4년간 흔들림 없이 시행했다는 점이다. 강경론자로서는 '원이 없을' 정도로 강성정책을 실시했다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완벽공조에는 오바마 정부의 동맹국 중시정책이 주요한 기여를 했다. 미국은 억제와 봉쇄만으로는 '북핵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보았고, 북이 비핵화 및 관계정상화에 의지가 있다면 관여정책을 취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또 북의 의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직접적인 대화를 해야 한다고 믿었고, 실제로 여러 차례 대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오바마 정부가 북미대화를 재개하려던 2010년 초반 이명박 정부는 천안함 사건을 이유로 이를 저지시켰고, '영양지원'이라는 명목으로 북미접촉을 재개하려는 시도도 무산됐다. 미세하면서도 중요한 차이가 있었지만 오바마 정부는 동맹국 존중이라는 큰 기조를 지켜나갔던 것이다. 물론 '아시아 회귀' (최근 '아시아 세력 재균형')으로 표현되는 아시아 태평양 중시 구상도 영향이 있었겠지만, 그 구상이 대북 강성정책으로 나타난 것은 한국 정부를 빼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한미의 완벽한 공조는 완벽한 실패를 낳아
그러나 완벽공조를 통한 강성정책은 완벽하게 실패했다. 그 실패를 보여주는 증거들은 많다. 북의 핵능력은 날로 증가하고 있고, 한반도 군사적 긴장은 심화되고, 북의 정치경제는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강성정책이 목표로 했던 것들과는 정 반대의 결과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한 이후에도 북은 일사불란하게 권력이양을 마치고 국내정치를 안정시켰다. 노동당이 안정화되고 내각의 기능이 강화되고 있다. 경제적으로도 이전보다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휴대전화와 아파트, 소비재 등 눈에 띄는 부문의 발전도 중요하지만, 발전소와 중·화학·전자산업을 비롯한 주요 기간산업의 신축 및 개비가 완료되고 있다는 점이 더 근본적일 것이다.
국내 정치, 경제의 안정과 더불어 외교도 활발해지고 있다. 북중 정치교류 및 경제협력의 수준이 높아지고 범위가 확대됐다. 북은 러시아와의 관계도 개선하고, 동남아시아와 유럽과의 외교도 활발히 벌이고 있다. 최근에는 이란과 과학기술 협력을 위한 협정을 맺었고, 쿠바 군사대표단의 방문을 받는 등 공세적 외교로 넘어가는 모습이다. 미국과 한국이 봉쇄와 압박을 내세운 '강성정책'으로 북의 굴복이나 내부 불안정을 유도하려고 했다면, 완전히 실패한 것이다.
미국의 입장에서 가장 아픈 부분은 북의 핵 프로그램일 것이다. 유엔 안보리 결의안을 통한 강한 제재에도 불구하고 북은 플루토늄의 무기화에 돌입했고, 이전에 없던 우라늄 농축을 시작하여 가동하고, 경수로 발전소 건설에 매진하고 있다. 북은 우라늄 농축시설을 가동해 매해 경수로용 저농축 우라늄 2톤 또는 핵무기용 고농축 우라늄 30~40kg을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현재 저농축 우라늄을 생산하는지 고농축 우라늄을 생산하고 있는지조차 파악할 길이 없다.
완공을 앞두고 있는 경수로 발전소는 발전에만 쓰일 것인지, 핵무기용 생산에 용이하게 설계된 것인지도 알지 못하고 있다. 단지 최악의 경우 매해 핵무기 10개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게 될 것이라는 분석만이 있다. 현상유지는커녕 북은 핵능력을 키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북의 핵활동에 전혀 손을 쓰지 못하고 있을 뿐더러 북의 핵활동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접근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거기에다가 한반도의 군사적 상태는 유례없는 초긴장 상태로 치달아 미국마저 우려하는 지경이 되고 있다. 김정은 제1비서는 2012년 8월 최첨단 서해 무도에까지 찾아가 "령토에 단 한 점의 불꽃이라도 떨군다면 그것을 서남전선의 국부전쟁으로 그치지 말고 조국통일을 위한 성전으로 이어가라"고 발언한 데 이어 8월 25일에는 "이를 위한 작전계획을 검토하고 최종수표"까지 했다고 공언했다. 그 며칠 후에는 동부전선에까지 찾아가 "최고사령관의 최후공격명령을 기다리라"고 지시했다.
이미 한국은 서북해역·합동군사령부를 신설했고, 접적지역 부대 지휘관들에게 공세적 작전지휘권을 부여하여 '능동적 억제' 전략을 채택한 바 있다. 북의 조치는 이에 대한 대응 성격이 크며, 남북은 상호행동으로 군사적 긴장을 격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한미연합사는 서해 군사작전계획을 구체적으로 개발하기로 했으나 작년 연말에 서명될 것으로 알려졌던 공동 국지도발 대비계획은 이번 44차 한미안보협의회에서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한국군이 부대 지휘관들에게 공세적인 작전지휘권을 부여하여, 공세적인 한국군의 작전에 미군까지 가담해 전면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감을 미국 측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오바마 1기의 강성정책은 총체적으로 실패했다. 이명박 정부와의 "최상의 공조관계"가 낳은 결과이므로 이명박 정부의 실패이기도 하고, 한미공조의 실패이기도 하다.
물론 중국이 충분히 보조를 맞춰주지 않았다는 불평이 있다. 하지만 그런 불평은 국제정치의 기본을 무시한 것이다. 한미 양국이 중국의 코앞에까지 군사력을 강화하여 북에 압박을 가하는데 중국이 여기 동참하리라고 판단을 했다면 국제정치에서의 세력균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역으로 한미 양국이 북에 대한 군사적 압박을 강화하며, 중국에게 제재동참을 강요하고 북에 압력을 가하라고 주문한 결과 북중관계는 오히려 강화됐다. 또 이러한 강경정책이 한중관계 및 미·중관계까지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중국에 대한 불평은 강경론자들이 냉정한 국제정치를 너무 희망적으로 해석했거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반증한다.
▲ 지난 6월 맥시코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1차세션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과 오바마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 |
매파도 등 돌리는 강성정책
따라서 지난 4년의 경험은 한·미양국이 철저히 보조를 맞춰서 대북 강성정책을 취했어도 북 비핵화나 한반도의 평화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었음을 입증한다. 오히려 반대로 북의 핵능력은 신장되었고 한반도는 군사적 긴장이 격화됐다. 지난 4년은 대북 강성정책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완벽공조를 통한 강성정책에 대한 피로감은 이미 미국 내 매파들에게서조차 나타나고 있다. 빅터 차 교수는 2011년 하원 외교위원회에서 행한 증언에서 북핵 프로그램에 대해 아무 조치도 하지 않고 손을 놓고 있는 현 정책은 "걷잡을 수 없는 핵확산 가능성을 보유한 고삐 풀린 핵프로그램" 만을 남겨줄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그는 1984년부터 2011년까지 북한의 도발과 협상의 상관관계를 연구한 결과 "지난 27년간 북한이 미국을 포함한 협상 도중에 도발을 벌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증언도 덧붙였다. 현재 미국은 심지어 전직 공화당 정부 관리조차 의회에서 이런 발언을 할 지경이다. 오바마 2기의 정책 방향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의 엇박자 대북정책도 실패했고 지난 4년간 완벽공조 강성정책도 실패했으므로, 이제 남은 유일한 선택은 한미 공조로 연성정책을 시행하는 것뿐이다. 길게는 지난 20여 년, 짧게는 지난 4년의 경험이 남겨 준 최대의 유산이다. 이 유산을 현실화해야 할 과제가 이제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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