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발표한 가계부채 대책에 대해 내가 <프레시안>에 비판 칼럼("세금을 세금이라 부르지 못하는 박근혜 후보")을 썼다. 이에 중앙대 신인석 교수가 반론 글("320만 채무불이행자는 진영논리 대상이 아니다")을 실었다. 짧게나마 답 글을 드리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한다.
신 교수의 글을 읽고 내 글을 다시 읽어보았는데,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을 더 많이 찾을 수 있었다. 세 가지다.
첫째, 박근혜 후보가 제안한 국민행복기금의 종자돈 중 하나인 '부실채권정리기금 잉여금'은 사실상 국민세금이라고 내가 주장했다. 외환위기 당시에 한국자산관리공사(이하 캠코)가 관리하는 부실채권정리기금이 채권을 발행하여 공적자금을 조성했는데, 이를 국채로 전환하여 정부 일반회계에서 세금으로 상환하기로 하였으니, 기금의 잉여금은 곧 세금이라는 요지다. 이에 대해서는 신 교수 글에서 특별한 언급이 없으니 동의한 것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둘째, 종자돈의 나머지 부분인 '캠코 고유계정 차입금'을 제대로 상환하지 못하면 결국 정부가 캠코에 증자를 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미래의 국민세금으로 전가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가 주장했고, 2008년 말 캠코 고유계정으로 부실 저축은행들을 지원했던 사례를 지적했다. 이에 대해 신 교수는 "만약 기금에 손실이 발생한다면, 또 만약에 그 손실을 정부재정으로 메꿔준다면"이라는 두 가지 가정 하에 세금으로 전가될 수 있는 가능성은 인정하면서도, 2008년 캠코의 배드뱅크 프로그램의 성공 사례를 지적하면서, 세금전가 가능성을 나보다는 낮게 판단한 듯하다. 그런데 이런 정도의 판단 차이는 경제 문제에서 으레 있는 것으로, 토론을 넘어 논쟁으로까지 이어질 성질의 것은 아니라고 본다. 신 교수가 제안한 대로 "금융 전문가들이 운영방안을 심도 있게 논의"하면 합의점에 도달할 수 있는 문제다.
셋째, 신 교수는 가계부채 1,000조 원, 채무불이행자 320만 명이라는 숫자가 "소득양극화, 부족한 일자리, 과잉경쟁의 자영업자와 비정규직이 만연한 경제에서, 상당수의 경제주체는 빚을 내게 되고 다시 그 중 상당수는 채무불이행으로 귀결되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적으로 동의하며, 그래서 나도 경제민주화를 주장하고 있다. 또한 신 교수는 '설사 확률 10%로 2조 원의 재정 부담이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320만 채무불이행자의 문제를 덮어두어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이 역시 동의하며, 그래서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 운운하면서 가계부채 문제의 해결을 미루는 금융업계의 주장에 나도 비판적 입장을 견지해 왔다.
이렇게 공통점이 많은데, 왜 신 교수와 내가 글을 주고받게 된 것일까? 대선을 코앞에 둔 민감한 시점 때문이리라. 내 칼럼의 제목이 그런 민감도를 높인 탓도 있다. 고백하건대, "세금을 세금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박근혜 후보"라는 제목은 내가 쓴 것이지만, "감시 없이 세금 쓰겠다는 '꼼수'"라는 부제는 <프레시안> 편집자가 붙인 것이다. 신 교수 글의 제목 "320만 채무불이행자는 진영논리 대상이 아니다"와 부제 ""박근혜 국민행복기금은 세금" 비판, 적절치 않아"도, 신 교수가 직접 쓴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민감한 시점에 그 민감도를 높이는 표현인 듯하다. 우리 사회의 현실이 그렇고, 언론 환경이 그렇다. 글을 쓰는 전문가도, 글을 싣는 언론사도, 글을 읽는 독자도 각성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본다.
그런데, 신 교수도 잘 알고 있으리라 기대하지만, 내가 그렇게 진영논리에 매몰된 사람은 아니다. 요즘 나는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경제민주화 각론에 대해서도 '충분히' 비판적이다. 또한 새누리당이 나의 의견을 청할 때도 주저함이 없었으며, 그중 일부는 새누리당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의 입법안에도 반영되었다.
관련하여 한 가지 더 고백하자면, 15일 아침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 프로그램에 내가 출연하여 박근혜 후보의 가계부채 대책에 대해 언급했는데, 이런 취지로 마무리했다. "결론적으로, 내가 오늘 가계부채 대책에 국민세금을 써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경제 문제인 만큼 국민세금을 투입할 수도 있다. 그건 정치적 선택이다. 문제는, 사실상 국민세금으로 귀착될 수밖에 없는 일을 하면서도, 국가재정을 투입하지 않겠다고 '눈 가리고 아웅'하는 주장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러면 투명성과 책임성을 확보할 수 없다. 이건 꼭 박근혜 후보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고, 다른 후보들도 마찬가지다. 서민대책이든 복지대책이든 세금을 사용하는 공약을 하게 되면, 그 사실을 유권자들에게 분명하게 알려주고 선택을 받아야 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이 점은 신인석 교수도 이의가 없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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