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명 높은 명사의 반열에 오른 문화방송(MBC) 김재철 사장이 이제 임명권자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회도 마음대로 해임하지 못하는 실력자 행세를 하고 있다. 지난 8일 방문진 이사회에서 김재철 사장 해임안을 의결하기로 내부적으로 합의가 이루어졌으나, 청와대와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 선대위 총괄본부의 압력으로 무산됐다. 이 사건이 계기가 돼 1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에서 MBC 사태에 관한 청문회가 열렸다. 김재철 사장이 증인으로 채택됐으나 그는 불참했다. 그가 국회의 증인 소환을 거부한 것이 이번으로 네 번째다. 더욱 가관인 것은 김 사장이 환노위 위원장에게 보낸 사유서에서 밝힌 불참 이유다.
"문화방송 노조는 본인의 국회 상임위원회 출석을 자신들의 부당한 목적을 위해 이용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으로 알고…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공영방송사의 사장으로 귀 위원회에 출석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것이다. 덧붙여 그는 방문진의 해임안 부결로 자신이 재신임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환노위의 청문회 개최 이유가 사라졌다는 투다.
심상정 진보정의당 대선 후보의 말대로 "김 사장이 정치적 중립을 운운하는 것은 소가 웃을 일이다." 심 의원은 "국민의 대의기관을 능멸하는 태도에 조처를 해야 한다"고 흥분했다. 신계륜 환노위 위원장도 "국회모욕죄까지 같이 해서 고발하겠다"고 합세했다. 그러나 청와대와 박근혜 후보의 지지를 믿고 있는 김 사장에게 이런 경고가 먹혀 들어갔을지 의문이다. 사내 반발과 언론계, 시민사회의 질타에도 아랑곳없는 김재철 사장의 뻔뻔한 행태는 한 주간지의 표현대로 '배째라 식'이다. 한 마디로 부끄러움을 모르는 김재철 사장의 태도는 이명박 정권과 새누리당 언론정책의 거울이다. 조중동이 김재철의 반언론적 행동을 꾸짖기는커녕 오불관언의 태도를 방조하고 있으니 더욱 안하무인으로 나오는 것 같다.
김재철 사장은 사치품을 구입하는데 MBC의 법인카드를 남용하고 재일동포 여성 무용수에게 과도한 출연료를 지불해서 MBC에 손해를 끼치는 등 부도덕한 행위로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그는 정권에 불리한 시사 프로그램을 폐지하거나 방영을 저지해서 기자, PD들과 자주 충돌했다. 마침내 기자와 PD들이 "낙하산 사장 퇴진"을 요구하며 무려 170일의 장기파업을 벌이게 만든, 한국 방송 사상 유례없는 사건의 장본인이다.
보통 사람 같았으면 자리를 몇 번 내놓았어야 할 사건들이다. 그런데도 그는 이명박 정권과 새누리당의 엄호로 끄떡없이 사장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난 6월에는 제19대 국회를 여는데 야당이 합의하는 조건으로 김재철 사장의 추문과 MBC 사태를 따지는 청문회가 예정돼 이제 김재철 사장이 자리를 뜨나보다 기대하는 MBC 기자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김 사장의 신변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환노위 청문회. 김재철 MBC 사장을 비롯한 사측 증인들은 단 한 명도 청문회를 찾지 않았다. ⓒ뉴시스 |
왜 김재철은 두려워하지 않나
이런 상황에서 8일 김재철 사장의 해임 결의안을 처리할 방문진 이사회가 열리게 됐다. 여당 추천 6명, 야당 추천 3명으로 구성된 9인 이사회에서 여당 추천 이사 2명이 야 3에 합류, 이사회에서 5대 4로 김 사장의 해임 결의안을 채택하기로 양해가 성립됐었다. 그런데 이것을 눈치 챈 청와대 하금열 비서실장과 박근혜 후보 캠프의 김무성 선대위 총괄본부장이 압력을 넣어 해임안 결의를 부결시켰다. 여당 내에서도 자격 부족의 비판을 받고 있다는 김 사장의 해임을 청와대와 박근혜 후보 쪽이 막은 이유가 무엇인가?
한 때 MBC는 뉴스 분야에서 KBS의 경쟁 상대였다. 그러나 김 사장 취임 이후 2년 사이 MBC <뉴스데스크> 시청률은 SBS의 절반 밖에 안 되는 방송사 3위로 밀려났다. 그럼에도 여권은 대선에서 박 후보가 당선되려면 MBC의 도움이 절대로 필요하고 김재철 말고는 MBC를 맡길 사람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지 않았나 생각된다. 새누리당이나 박근혜 후보 쪽에서 다른 선택이 없다는 것이다. 청와대와 박근혜 캠프 양쪽에서 방문진에 김재철 해임 반대의 압력을 넣었다는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언론을 선거의 도구로 이용하는 이명박 정권의 언론관을 박근혜 후보도 공유하고 있다는 증거다.
우리가 박근혜의 집권을 우려하는 중요한 이유다. 유신 언론관의 부활은 용납할 수 없다. 박근혜가 2009년 조중동에 종편을 허용하는 미디어법 개정에 찬성한 것, 지금까지 박 후보가 많은 집권 공약을 쏟아내면서도 언론정책에 관해서 입을 다물고 있는 것도 언론자유를 증진할 정책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9일 KBS 이사회가 "편파방송 종결자"로 알려진 길환영 부사장을 새 사장 후보로 선정한 것도 김재철 사장을 고수하는 것과 같은 정책 노선이다. 미디어를 통제하는 자가 사람의 마음을 통제한다는 짐 모리슨의 말을 믿고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 방송을 정권 재창 도구로 이용해줄 사람에게 공영방송을 맡기겠다는 정권차원의 의지의 표현이다.
한림대학 언론정보학부 최영재 교수팀이 지난달 25일부터 31일까지 KBS MBC SBS YTN 4사의 저녁시간대 뉴스 프로그램의 대선 관련 보도를 모니터한 보고서와 대선공정보도실천위원회가 충남대학 언론정보학과 이승선 교수팀에 의뢰해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지면을 통해 모니터한 결과를 보면, 지상파 텔레비전과 조중동이 얼마나 박근혜 후보에게 유리하도록 편향 보도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언론에 관심 없는 한국 언론
지난 봄 프랑스 대선에서 프랑스 방송기자협회는 대통령 후보 10명 전원에게 공영방송 사장의 임명방법, 공영방송 예산, 광고, 프랑스의 해외방송, 언론의 다원주의를 실현하는 방법으로 제2의 적국방송채널을 창설하는 문제 등 6개의 현안을 질문하고, 그들의 답변을 상세히 보도했다. 언론개혁 포럼인 '미디어비평행동(Acrimed)'도 대통령 후보 10명 전원에게 공영방송 사장 선출방법, 민영화한 방송을 다시 공영으로 환원하는 문제, 방송광고, 수신료, 비영리 공익방송의 신설 및 지원방법 등 6개의 언론 현안을 질의하고 이에 대한 후보들의 답변 내용을 상세히 보도해서 미래 대통령의 언론정책이 어떤 것인지를 유권자들에게 알렸다.
그런데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한국 방송과 신문이 여태껏 대선 후보들에게 언론정책에 관해서 구체적인 정책질의를 했다는 보도를 보지 못했다. 지금 한국 언론은 유신체제 이후 최악의 상황이다. 유엔(UN)에서 조차 한국의 언론자유 위축을 우려하는 보고서를 내놓는 상황인데 한국 언론은 왜 무사태평인가?
문재인 안철수는 벌써 몇 차례, 글이나 발언으로 언론정책에 관해서 그들의 정책 방향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박근혜는 언론정책에 관한 언급이 거의 없다. 자격지심 탓인가? 이명박 대통령의 경우가 잘 보여주고 있듯이 대통령의 언론관은 우리의 민주주의 운명과 직결돼 있다. 지금부터라도 신문과 방송은 대통령 후보들의 언론정책을 묻고 분명한 답을 얻어 국민들에게 알려줘야 한다. 우리의 민주주의와 직결된 문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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