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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사망하자 국민연금 직원이 찾아와 하는 말이…

[복지국가SOCIETY] 황혼이혼 장려하는 국민연금?

며칠 전, 이웃에 사는 한 여자 분과 국민연금에 관한 대화를 할 기회가 있었다. 국민연금 때문에 무척 속상한 일이 있었노라 했는데, 들어 보니 정말 그럴 만했다. 이 여성은 남편이 2010년 9월에 세상을 떠난 후부터 유족연금을 50만원씩 받고 있었다. 그런데 유족연금을 받게 되면 앞으로 본인 명의의 국민연금은 못 받게 된다는 것을 모르고 억울하게(?) 일 년 반 동안 매월 15만원씩 국민연금을 납부했다고 한다. 간암 판정을 받은 지 3개 월 만에 세상을 떠나 버린 남편의 사망 신고를 하자, 국민연금공단의 직원이 집으로 찾아 와서 유족 연금에 대한 안내를 해준 것이었다. 안내에 따라 유족연금 신청을 할 때에도 국민연금 공단의 직원에게서는 별다른 설명은 듣지 못하였다고 했다.

이 여성은 직장에 다니는 동안 국민연금에 가입하여 12년 동안 국민연금을 납부하였고, 직장을 그만 둔 후부터는 임의가입으로 전환하여 국민연금을 납부하고 있었다. 유족연금을 지급 받기 시작한 후에도 임의가입자의 자격으로 계속 국민연금 납부액이 통장에서 자동이체 상태로 빠져 나갔다. 별도의 직장이나 소득이 없어 한 푼이 아쉬운 유족의 입장임에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돌려받지 못할 돈이 지출되고 있었던 셈이었다.

현재 국민연금법에 따르면, 유족연금을 받는 임의가입자는 유족연금을 계속 받으려면 자신의 국민연금은 포기해야 한다. 만일 유족연금이 아닌 자신의 국민연금을 선택하면 남편의 기여로부터 나온 유족연금액의 20%를 보탠 금액만 국민연금으로 받을 수 있다. 그런데 현재 노인이 된 대부분의 여성의 경우 자신의 직장이 없었던 경우가 더 많고, 직장이 있어 국민연금에 가입하고 있었다고 해도 통상 남편의 급여가 자신보다 더 높기에 연금 수령액이 더 많은 유족연금을 선택하게 된다.

유족연금을 받게 되면 자신의 이름으로 국민연금을 몇 십 년 납부하였던지 상관없이 자신의 과거 납부기록은 무용지물이 되고, 그 동안 납입하였던 돈은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된다. 따라서 유족연금을 받을 수 있는 여성은 자신의 이름으로 국민연금에 가입하는 것이 그다지 실익이 없기에 젊어서도 국민연금에 잘 가입하지 않아 여성의 국민연금 가입률이 낮은 중요한 이유가 되기도 한다.

나와 국민연금에 관해 대화를 나누었던 그 여자 분은 나중에 이 사실을 알고 공단 직원에게 왜 그런 사실을 미리 알려 주지 않았느냐고 항의를 하였다. 그러자 담당 직원은 미안하다는 말 대신에 "재혼하면 받지 못하는 유족연금과 달리 국민연금은 앞으로 10년 간 자격을 유지하고 있으면 재혼해도 받을 수 있다"라고 설명하면서 임의가입을 유지하고 매달 국민연금 보험료를 꼬박꼬박 납부하도록 한 자신을 합리화했다고 한다. 지금도 남편의 건강을 잘 돌보지 못해 세상을 일찍 떠난 것만 같아 남편에게 죄책감이 든다고 하는 미망인에게 국민연금 공단 직원이 마치 재혼할 것을 권유하는 것 같아 당시에는 불쾌한 마음마저 들었다고 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지난 30년간 절친하게 지내오던 남편의 친구는 물론이고 아내들 간의 만남도 없어져 버리는 등 고독과 상실감이 큰데, 국민연금이 따듯하게 자신을 위로해 줄 것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 한다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남편을 통해 세상과 만나오던 우리나라의 여성들에게 남편의 사망은 옆에 있던 한 사람이 사라진다는 단순한 의미가 아니다. 그 동안 남편을 통해 교류해 온 이들이 일시에 사라지고, 기존의 인간관계가 다 끊어지는 등 세상에서 고립된다는 것을 뜻한다. 아직 시집보내지 못한 두 자녀를 홀로 결혼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떠나간 남편의 빈자리가 더 크게만 느껴진다고 했다.

국민연금은 개인이 연금을 중복하여 받을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어떤 사람이 노령연금을 받는 기간에 장애가 생겨서 장애연금도 받게 되었다면, 두 연금 중의 하나를 선택하도록 하는 것에는 이의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여성처럼, 납부자가 다르고 납부 사유도 다름에도 불구하고, 부부라는 사실 때문에 하나를 선택해서 받도록 조정하는 것은 일반인의 상식으로도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이웃의 여성이 국민연금에 대해 속상해 했던 것은 남편 사망으로 유족연금을 받게 되자, 13년이 넘게 낸 자신의 국민연금 가입이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되어 그 동안 납부한 돈이 아까워서 만이 아니다.

남편의 사망신고에 따라 유족연금을 신청하도록 집에까지 찾아온 직원이 왜 임의가입을 한 연금은 포기해야 한다는 말을 해주지 않아 1년 반이나 자신이 쓸데없이 국민연금 보험료를 납부하도록 하였냐는 것이다. 물론 당시 찾아온 국민연금공단 직원이 설명을 잘 하였으나 남편을 잃고 경황이 없던 그 여자 분이 잘 못 알아들었을 수도 있다. 그러면 나중에라도 연금 보험금이 계속 납입되고 있으면 그러한 사실을 알려주어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나는 이 글에서 국민연금공단 직원의 불친절을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웃 여인의 사례를 통해 국민연금의 목적과 존재 이유를 다시 한 번 살펴보자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무엇 때문에 만들어진 제도인가? 국민연금법 첫 조항에서는 "국민의 노령, 장애, 사망에 대응하여 생활 안정과 국민의 복지를 증진하기 위해"서라고 그 목적을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노인이 되거나, 살다가 장애를 입거나, 사망하였을 때 과연 국민연금은 그러한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현실에서의 국민연금은 앞의 사례처럼, 슬픔에 잠긴 사람을 더욱 속상하게 만드는 제도인 경우가 많다.

국민연금의 유족연금이나 장애연금의 명칭을 연금1, 연금2처럼 개정하여, 타인에게 알리지 않은 정보들, 예를 들어 수급자가 현재 배우자가 없다는 것이 연금 고지서나 각종 안내서에 드러나지 않도록 하는 세심한 배려가 유족에게는 큰 위안이 될 것이다. 또한 재혼을 하지 않고 남편이 남긴 유족연금을 받을 때는 그 동안 본인이 납부한 금액이 무용하게 되는 것은 현행 법 때문에 어쩔 수 없다 해도, 그러한 상황을 제대로 설명하는 것만이라도 의무화해야 한다. 또한 적어도 유족연금 수급 후에 모르고 더 납부하는 일은 없도록 하고, 이미 납부한 금액은 환급해 주어야 한다.

현재의 제도에서는 결혼한 부부 중 한 명이 사망할 경우에 임의가입과 유족연금 중의 하나를 선택하여 급여를 받도록 하고 있어 부부 모두가 연금에 가입하는 것을 근본적으로 가로막고 있다. 반면, 이혼을 할 경우에는 이러한 조항이 적용되지 않는다. 이혼을 하면 남편이 가입한 연금에 대해 분할 청구권, 즉 분할연금이 생기며, 분할연금에는 임의가입자들에게 적용하는 <중복 급여의 조정> 조항이 적용되지 않는다. 분할연금 수급권자는 남편이 납부한 연금에 대한 자신의 지분, 즉 분할연금액과 자신이 임의 가입한 노령연금액은 둘 다 합산하여 지급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제도만 보면, 마치 국가가 황혼 이혼을 장려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느낌마저 준다. 국가의 정책 방향이 이혼을 장려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혼한 여성들에게만 적용하는 <분할연금의 중복 급여 예외>를 결혼 생활을 하는 부부들에게도 적용하지 못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이제 여러 개의 국민연금 급여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제하는 국민연금 조항은 재고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600여 만 명에 이르는 국민연금 사각지대에 있는 여성들이 이제부터 자기의 이름으로 연금에 가입하려고 할 것이다.

진정한 양성평등은 성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 여성의 독립적인 삶과 노후의 경제력을 보장하는 제도를 통해 물적 토대를 분명히 하는 것이다. 여성의 사회활동이 가능하도록 하고, 경제활동 참여율을 높이며, 국민연금에도 자신의 이름으로 당당하게 가입하고, 노후에 자신의 이름으로 이를 수령할 수 있도록 하는 경제적 자립을 보장하여야 한다.

정부는 이미 '전 국민 연금시대'를 열었다고 내세우고 있지만, 비정규직이나 미가입자, 그리고 납부예외자 등 670만 명이 넘는 소외된 분들은 지금도 국민연금 제도 밖에서 서성이고 있다. 해마다 50만 명의 베이비 붐 세대들이 아무런 소득보장도 없이 노인으로 편입되고 있다. 다행히 이번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시민사회단체와 노동계가 연대하여 '국민연금 바로세우기 국민행동'이라는 이름으로, 국민연금 개혁운동을 시작했다.

국민연금 국민행동에서는 정부의 일방적인 국민연금 재정 재계산에 대응하여 시민사회단체의 입장에서 대응 보고서를 발간하고 국민연금에 대한 국가의 지급 보장을 법제화하여 가입자들의 불안을 없도록 하는 문제에서부터, 국민연금 기금운영위원회의 전문성을 강화하고 운영을 투명화하며, 국민연금이 가진 정당한 주주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하고, 국민연금 기금을 활용하여 우리나라의 공공복지의 인프라를 구축하는 등의 11가지 정책들을 제안하고 있다. 우리 복지국가소사이어티도 여기에 주요 단체의 하나로 참여하고 있다.

나아가 우리는 우리나라도 이제 국민연금을 적립식에서 부과식으로 바꾸기 위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연금기금의 재정적 안정만을 목적으로 하여 덜 주고 더 받는 것만 주력하는 입장이 아니라, 국민연금의 본래 목적인 노후 소득보장을 제대로 하기 위한 논의로 국민연금에 대한 논의의 방향 전환을 시작해야 한다. 국민연금제도의 밖에 있다고 해서 노후를 향한 시계가 멈추지는 않는다. 사적 연금에 가입할 능력조차 없는 이들은 아무런 준비 없이 노인이 될 것이다.

▲ 국민연금 홈페이지.
국민연금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노후 소득보장제도이다. 앞으로 우리의 노후 불안을 방지해 주고, 그것을 피부로 느끼도록 해 주는 고마운 제도가 되어야 한다. 흔히 미망인으로 불리는 유족 여성은 배우자 없이 고독하게 인생의 짐을 홀로 지고 살아가야 하는 존재이다. 그 슬픔을 덜어 주기보다는 아픔을 더해 주는 제도로 전락한다면 국민연금의 존재 의미가 무엇인지 돌아보아야 한다. 국민연금이 떠난 자의 뒤에 홀로 남은 이들의 외로움과 슬픔까지 헤아리는 '따뜻한 가슴'과 같은 제도로 발전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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