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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테우리와 잣성, 제주도의 말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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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테우리와 잣성, 제주도의 말 문화

[김유경의 '문화산책']<13> 제주마(馬)를 찾아서 2

제주마와 그들을 돌보는 사람들(테우리)들이 어울려 오랜 세월에 걸쳐 제주도에 독특한 목축문화를 형성했다. 소를 키우는 사람은 '소테우리'고 말을 돌보는 사람은 '말테우리'라고 한다. 이들에게 대대로 전해진 목축기술이 대단하다. 제주도의 지형과 어디에 마실 물과 좋은 목초가 있으며 조난 시 피난처가 있는지, 바람 따라 말을 모는 방법과 목초의 구별방법 등을 손바닥처럼 파악한다. 그러나 이들의 지식체계는 아직 문화유산으로 정리되지 못한 상태이다.

▲ 김완보 씨가 중산간의 비가 퍼붓는 목장에서 말을 돌보고 있다. 말테우리는 오랜 세월에 걸쳐 체득한 지식체계가 있다. 이재수(1901년 제주민란 주동)도 말테우리였다고 한다. ⓒ 안홍범

또 다른 문화유산으로는 중산간 일대의 잣성을 친다. 잣성은 조선시대 말을 원활히 방목 관리하기 위해 축성한 것으로, 전체 10소장에 걸쳐 화산돌로 폭 1.m, 높이 1.5m 상당이 되게 겹으로 단단히 쌓아 올린 담이다. 총길이가 백 수십km에 달한다고 했다. 제주시 용강동 중산간 일대의 개인목장 제3소장 자리에도 잣성터가 남아있고 깊은 산속 선흘리의 거문오름에서도 어느 지점의 무너져 내린 돌담이 잣성터라고 했다.

"이 잣성들은 엄청난 문화유산임에도 불구하고 무관심 속에 그냥 방치되어 있고, 많이 훼손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개발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에는 원형이 잘 남아 있어요."

이종언 박사가 말했다. 제주대학 석사과정으로 '제주의 목축의례'를 연구한 좌동열 씨는 "잣성은 동네마다 쌓은 방법도 다르고 모양도 다릅니다."고 했다.

▲ 제주시 용강동 제3소장 자리에 남아있는 조선시대 잣성의 흔적. ⓒ 이종언

세월이 흐르며 몽고인 목호들은 자연스럽게 조선의 양민으로 편입되었다. 좌동열 씨는"우리 조상이 원나라에서 제주도에 입도한 말 감독관이자 의사였습니다. 조상 할아버지께서 입항한 곳, '좌씨항구'라는 지명과 흔적이 제주도에 남아있어요."

제주도가 28개 별자리 중 말에 관련된 방성(房星)이 비추는 동남향이라 하여 말의 번식을 기원해 제사지내던 '마조단(馬祖壇)' 터를 알려준 이도 그녀였다. 제주마 취재는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정보가 하나 둘 드러났다.

▲ 제주시 칼 호텔 자리의 마조단 터 표지석. 말 관련 방성 별자리가 비추는 제주도와 서울 살곶이 목장에서 말의 건강과 번성을 위한 제사를 지냈다. ⓒ 안홍범

제주시 칼 호텔 자리(제주 제주시 이도1동), 약간 오르막인 언덕 화단바깥벽 아래 대로변 길가에 <한라일보>가 오래전 사적탐방 기념으로 세운 '마조단 표지석'이 있다. 검은 대리석 조그만 표지석에 간략한 설명이 있었다. '마조단'은 서울 살곶이 다리 부근 목장(서울시 성동구 한양대학교 백남학술정보관)과 이곳 제주시 단 두 곳에만 있었다. 두 군데 다 표지석이 있는데 일대는 마조단의 조형 유적도 전혀 없고 표지석도 빌딩건물에 묻혀 얼른 눈에 띄지 않았다. 바로 옆 가게 주인도 '그런 건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고 했다. 정의현 의귀리(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남원읍)에도 마조단 유물로 추정되는 거대한 돌 축조물이 있다는 짧은 기록이 있음을 알았다.

제주마에 관해 제일 먼저 거론할 인물은 제주시 정의현 의귀리 사람 김만일(1550년(명종5)∼1632년(인조10). 조선 중기 목장주·말사육가로 '오위도총부 부총관'에 제수 됨)이다. 그는 임진왜란에 대처하던 선조와 광해군 때 개인소유 전마용 말을 1000마리나 나라에 헌납했다. 손자 대에도 병자호란을 겪은 효종에게 전마 200여 필을 바쳤다. 김만일의 오위도총부 부총관 벼슬은 그러한 공을 인정해 국가에서 내린 것이다. 후손들은 대대로 고종 때까지 제주도 목장의 감목관으로 임명됐다.

▲ 제주시 난지축산시험장의 말들 ⓒ이종언

의귀리 세거지 주변에도 마조단으로 추정되는 거대한 돌로 쌓은 단이 있다. 제주도의 한 동호인 모임에서 '이만한 건축물을 쌓을만한 재력가는 민간에 김만일 집안 밖에 없었을 것' 이라 믿고 그 집안의 후손을 찾아가 확인하는 탐사기록이 있다. 그러나 후손들은 '자신의 집안에서 쌓은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십수 대에 걸치는 김만일의 집안사에서 국가를 상대로 결재하고 수천의 말을 감독하면서 벌어졌을 일들이 흥미롭다. 후손 중에는 여전히 의귀리에 적을 둔 말 생산자, 축산과 교수 등이 있다.

▲ 이형상의 「탐라순력도」중 1702년 11월2일(음력) 정의현성에서 조련과 제반사항을 점검하는 '정의조점' 부분. (김남길 그림)
실질적으로 말을 사육하며 말과 밀착돼 사는 목축전문가를 '말테우리'라고 한다. 목장주이기도 하고 마주, 말 생산자를 겸한다. 제주교육청의 박재형 실장이 펴낸 어린이용 도서 '마지막 말테우리' 는 올해 82세인 말테우리 고태오 씨의 오로지 말과 함께 한 인생을 다뤘다.

"전에는 말을 집집마다 키우니까 동네에서 순번을 정해 말을 전부 맡아 산속 좋은 풀밭을 찾아 풀 뜯어먹이다가 데려오곤 했어요. 그것만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 '말테우리'고 나머지는 그냥 자기 차례가 되면 말을 돌봐주는 거죠."

고태오 할아버지가 말을 모는 소리는 구음(口音)이랄까, 노래라 할까 말과의 소통인 영적 멜로디였다.

그보다 젊은 세대의 말테우리인 제주시 한경면 저지리의 목장주 고경현(55), 김완보(59) 두 사람을 만났다. 고경현 씨의 목장에는 추운 날씨에도 목초가 새파랗게 우거지고 한옆에는 무너진 잣성터가 야트막하게 남아있었다.

▲ 저지리 목장에서 경주마를 돌보는 고경현씨. 날뛰는 말에 밧줄을 걸어 잡는 것이 특기라고 한다. 제주개 한 마리가 말과 함께 목장에서 뛰어 다니다가 자동차 뒤를 따라 차도에서도 한참이나 쫒아오더니 다시 목장으로 돌아갔다. ⓒ 안홍범

"토종 제주마와 외래종 서러브렛은 키우는 방법부터 달라요. 제주마는 강인해서 눈 쌓인 벌판에 내놓아도 제 먹이를 찾아먹는데 속도는 서러브렛의 절반밖에 못내요. 서러브렛은 빠르지만 무식한지 먹이도 못 찾아 먹어서 하루 세끼를 다 돌봐야 살아요. 발굽도 약하고 체질이 약한 편이라 조심스러운데 경마 수입을 생각해 키우고 있습니다."

고경현 씨는 경마, 승마용 말 모두 전문가의 관리를 받는 것과 아닌 것의 차이는 크다고 한다. 요즘엔 말몰이를 해서 아무 초지에나 방목하는 대신 차를 몰고 말을 먹일 물과 식량을 싣고 산속의 자기 소유 목장까지 오간다. 보호해야할 제주도 자생식물군이 많은 곶자왈(용암위에 형성된 식물생태지역)일대는 방목이 금지되고 초지는 상당부분 골프장이 들어섰다. 고 씨는 목장의 말들이 주인의 차 소리를 듣고 알아보며 머리를 세우고 기다린다.

"할아버지 대엔 중산간에서 방목하던 300마리를 4.3사태(1948년 4월3일부터 1954년 9월21일까지 제주도에서 일어난 민중항쟁) 때 모두 잃었죠. 다시 제주마부터 키우다가 지금은 서러브렛 30마리를 해요. 아무데서나 방목하던 게 금지되니 말 사육수를 줄여버릴 밖에요. 200마리 키우는 목장이 제주도에서 제일 커요.
난 집에서 키우는 말을 보다가 고교졸업하면서 부터는 본격적으로 조상대대로 하던 말 키우는 직업으로 뛰어들었죠. 말이 놀라 도망가면 밧줄을 던져 잡는 기술이 내 장끼에요. 우리 말에는 일만 만(万)자를 낙인 해 두었어요. 여기서 서귀포까지 도망가거든요. 난 휘파람으로 말을 부릅니다. 1km까지 소리가 가요. 뒤에서 말을 몰 때, 숲에서 말을 불러낼 때 소리가 다르죠."

김완보 씨는 조상 대대로 승마용 말만 기른다.

"난 승마가 장끼에요. 내가 기르는 승용마는 재마(才馬)들인데 전력 질주하다가도 브레이크를 건 듯 멈춰서 발을 맞춰 들고 걷게 만든 품종이라 자부심 느낍니다. 오른쪽 앞발, 오른쪽 뒷발, 또는 왼쪽 앞발과 왼쪽 뒷발이 동시에 나가는 '측대보 걸음걸이'로 걸어요. 측대보는 진동이 거의 없어 오랫동안 말을 타고 갈 때 편안하죠.
말이 소보다 더 영리합니다. 천둥 번개가 치면 나무아래서 나와 평지로 가고, 비바람 칠 것 같으면 미리 숲으로 들어가고. 말만 보고도 일기를 미리 알죠. 내가 말을 모는 소리는 '와라라라라-- '하는데 말들이 (내) 목소리를 알아듣고 사람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 줍니다."


▲ 말은 전문가의 관리를 받는 것과 아닌 것의 차이가 매우 크다고 한다. 고삐로 재갈을 물리고 안장 없이 말에 올라 재마의 측대보를 보여주는 말테우리 김완보 씨. ⓒ 안홍범

같은 쪽 앞다리 뒷다리가 동시에 나아가는 보법을 '측대보'라고 한다. 전통적으로 군사들이 오랜 시간 말을 타고 갈 때 피곤함이 덜하도록 말 등에서 흔들리지 않게 훈련시킨 말의 걸음걸이이기도 하다.

측대보를 하는 재마에 대한 김 씨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제주도에 측대보 승용마 재마는 우리 집밖에 없을 걸요. 제주마와 서러브렛의 장단점을 반씩 가진 교잡마인데 우리 재마는 옛날에 문자봉 하르방이 와서 한 달 묵으면서 가르쳐줬지. 문하르방이 보름만 타고 훈련시키면 그 말은 재마 걸음걸이를 갖춰요.
우리 재마는 내가 재갈물리고 안장 지워 타면 기막히게 재마 발걸음을 갖춥니다. 다른 말들은 말굽소리가 '드가닥, 드가닥' 하는데 우리 재마는 '탁, 탁' 하지요. 진동이 없어 편하게 탈수 있으니까 좋지요."

재마는 혈통 상 암수가 모두 재마인 말로부터 태어나기도 하고 훈련을 통해 측대보를 가르치기도 한다. 제주 말테우리 고 문자봉 하르방은 고 강순익 씨와 같이 고 이병돌하르방한테서 재마 훈련법을 배워 김완보 씨 목장의 말을 훈련시켰다고 했다.

빗속에 철벅거리는 목장에서 말들은 느릿느릿 움직이며 비속에 끄떡도 안했다. 두 사람도 천연덕스럽게 말과 함께 비를 맞으며 긁어주기도 하고 말이 다 제자리에 있는지 점검했다. 고경현, 김완보 두 사람 다 이구동성으로 "제주도 전역에 전통 말테우리들은 7,8명 남았죠. 말에 대한 잔정이 있는 테우리들이 우리요. 요새 사람들은 검은 말인 '가라(흑마(黑馬)의 순우리말)', 갈기와 꼬리가 검은 '청총(靑驄)', 붉은 말 '적다(赤多)' 같은 10단계의 말 털 색깔도 정교하게 구별하지 못합니다. 말테우리끼리는 초면에 만나도 의리가 있어요. 1년에 한번 '제주 한라마 생산자협회 모임'에서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합니다."라고 했다.
조선 말 프랑스 신부가 중심이 된 제주도 천주교도들의 횡포에 대항해 난을 일으킨 이재수도 말테우리였다고 한다.

▲ 제주도 중산간의 말. 안개 낀 한라산에선 방목하던 말을 잃어버리기도 하니 말테우리는 이를 찾느라고 고생고생 헤맨다. ⓒ 안홍범

옛날에 말들은 사람대신 일해 주는 게 많아 15-20년씩 두고 길렀다. 수명이 40년 가까이 되었다. 지금은 2,3년 길러 경주마로 내고 거기서 1,2년 뛰다가 승용마로 쓰고 도태되면 도살된다. 승용마들은 좀 더 오래10여년을 두고 기른다. 마주들은 말 엉덩이에 만(万), 백(白), 사(士), 생(生), 왕(王), 칠(七) 등 그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소유권 표시 낙인을 찍는다.

인간과 호흡을 함께하며 움직이는 유일한 동물인 말. 제주도의 예술가들이 특히 말을 더 많이 그리고 조각하고 사진 찍는 것도 말에 대한 정이 더해서임에 틀림없다. 사진가 서재철은 제주도의 서사적 풍경을 여러 권의 사진집으로 담아냈다. 표선면의 폐교 가시초등학교(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가 그의 전시장이다. 화가 이명복의 아크릴화 '제주마'는 길들여지지 않는 사나운 사람의 초상화처럼 보였다. 제주시 한림읍의 노리화랑에서는 지난 5월, 한 달간 말에 관한 그림과 도예가 장근영 씨의 도자공예를 가지고 '말展'을 가졌다. 제주어린이들이 그린 말 그림도 같이 전시됐다.

▲ 이명복의 그림 제주마. 길들여지지 않는 사나운 젊은이의 야성 같은 게 보인다. ⓒ 안홍범

경마장에서는 말이 갈기를 날리며 순식간에 달려 들어가는 스릴이 있다. 한번 이렇게 뛴 말은 보름이상 쉬어야 한다. 제주경마장은 공원처럼 꾸며졌다.

몽고인들은 이즈음 또다시 말을 가지고 제주도에 와있다. 이번에는 50여필의 말을 타고 몽고의 기마술을 보여주는 야외극장에서이다. 말 문화를 보여주는 드라마 속에서 이들은 서서 타고, 옆으로 타고, 땅에서 뛰어올라 타고, 땅에 있는 물건과 사람을 질주 도중에 집어 올렸다. 테무진(칭기스칸)이 무당으로부터 신탁을 받는 장면도 있었다. 입에 문 꽃송이를 쳐서 떨어뜨리는 길고 두꺼운 말채찍 소리가 우레 같았다.

활과 창 같은 무기를 쓰는 시범 등 온갖 승마기술이 나온다. '달리는 말 등에서 고삐도 잡지 않은 채 뒤돌아본 자세로 활 쏘는 고구려 무용총의 수렵도 장면이 안 나오나.' 하고 기다렸는데, 그 장면은 없었다. 전쟁 장면을 하는데 말 안 듣고 뻗대는 말도 있어 별 수 없이 말을 데리고 퇴장하는 기수도 있었다.

▲ 몽고인 남녀기수들이 말 등자만 딛고 서서 질주하고 있다. ⓒ 안홍범

그런데 승마 고수중의 고수인 몽고인 젊은이 수십 명이 여기 제주도에 와서 타는 말은 몽고말이 아니라 제주산 '한라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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