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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후보들의 보건의료공약을 따져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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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대선후보들의 보건의료공약을 따져 묻는다

[복지국가SOCIETY] 왜 역대 정부는 선거 때와 집권 이후 말이 달라졌을까?

18대 대통령을 뽑는 선거일이 두 달이 채 남지 않았다. 이제 머지않아 이명박 정부는 역사 속으로 퇴장하고, 새롭게 국정을 이끌어갈 새 정부가 들어서게 될 것이다. 현재 각축을 벌이고 있는 대통령 후보 진영 모두에서 새 정부의 비전과 각 분야별 정책들을 공약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조만간 향후 5년간의 우리나라 보건의료분야 세부 공약도 발표될 것이다.

앞으로 발표될 각 후보의 보건의료공약이 담고 있는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짚어볼 사안이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각 후보 진영 모두 나름의 보건의료 현안과 정책에 대한 이해와 평가를 전제로 공약을 제시하는 것이겠지만, 지난 두 번의 대통령 선거와 집권 시기를 겪으면서 경험한 바가 있기 때문이다. 어느 후보 건 간에 보건의료부분에서 선거 시기 앞세워지는 보건의료분야의 공약은 주로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을 줄여주는 정책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그걸 놓고서 한 축에서는 어느 당, 어느 후보가 보다 더 포괄적이고, 보다 더 보편적인 공약을 제시하는가를 중심으로 논란을 벌이고, 다른 한 축에서는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에 소요될 재원의 규모를 놓고 재원조달의 가능성과 국민경제 운용의 측면에서 그만한 규모의 재원 조성이 적절하고 타당한지를 놓고 논란을 벌인다.

개혁과 진보를 표방하는 정당일수록 대폭적인 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를 내세우며 보수정당을 공격하고 있고, 보수정당은 막대한 재원조달의 부적절함을 내세우며 중증질환에 대한 우선적 보장성 확대를 내세우곤 한다. 일견 진보와 보수의 대립 구도로서 손색이 없는 외양이라 할만하다. 하지만 지난 10년의 시간을 돌이켜 볼 때, 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를 중심으로 한 선거 구도는 단지 선거용 대표 공약일 뿐이며, 실제로 집권 후에는 의료공급체계와 의료보장체계의 근간을 개혁하는 데 심혈을 기울여왔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실제로 우리는 지난 10년 동안 청와대의 보건의료정책의 핵심에 후보 시절 내세웠던 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보다는 의료산업의 선진화로 대표되는 '의료 민영화' 흐름이 자리 잡고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WTO 의료시장 개방, 한미 FTA, 의료관광의 활성화를 통한 국부 창출, 의료산업 선진화 등 다양한 명분을 내세우며 집권세력 일각이 주도하는 의료 민영화 정책은 지속적으로 추진되어 왔고, 이러한 의료 민영화의 흐름에 대한 걱정과 반대가 끊이질 않았다. 이 와중에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건강보험의 보장성은 60% 초반에 정체되어 있는 형국이고, 어느새 그 틈을 민간의료보험 상품이 파고들어 거대한 보험 시장을 형성하며 보험회사의 요긴한 수익 창출원이 되어 버렸다.

그렇다면 왜 대통령 후보와 집권세력들은 선거 국면에서는 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를 내세워 놓고는 집권 후에는 약속한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에 실질적인 성과를 내놓지는 못한 채, 보건의료체계의 시장주의 구조 개혁을 둘러싼 주도권 싸움에 주력해온 것일까? 그 이유는 두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전국민의료보장제도의 시행을 목표로 단기간에 민간 중심으로 시장 원리를 중심으로 성장해 온 의료기관들과 건강보험제도 간에 갈등의 골이 점차 깊어지면서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가 어려운 것을 물론이거니와 국민의료비의 총액 관리도 점차 버거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국민의료보장제도를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의료시설, 장비, 인력을 짧은 기간 내에 확보하기 위해 민간에서 자유롭게 의료시설을 짓거나 확충하도록 규제를 풀어 놓았고, 장비도 자유롭게 구입하여 운용할 수 있게 하였으며, 시장에서 필요한 부족 인력을 공급하기 위해서 의대, 치대, 한의대, 간호학과 정원을 늘려왔다. 이러한 정책의 결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전국민의료보험 시대를 열 수 있었으며, 현재의 국민건강보험제도로까지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성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러한 성과의 이면에 일정 규모 이상으로 공급이 확대되면서 구조적인 문제가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의료기관과 인력의 공급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늘어나면서 환자 유치 경쟁이 본격화하였다. 이에 의료기관들은 경쟁우위의 확보를 위해서 시설과 장비의 고급화, 전문화, 대형화 경쟁에 주력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경쟁에는 적지 않은 비용이 소요되는데, 그 비용은 결국 진료 수입으로 충당될 수밖에 없다. 이런 구조이기에 의료기관들은 보다 많은 환자를 확보하고, 보다 많은 건강보험 비급여 진료를 늘리는 방식으로 비용을 충당하고 있다.

결국,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건강보험 비급여 진료 항목을 급여 항목으로 대거 편입시켜야 하는 데, 이 과정에서 의료기관들이 자율적으로 가격을 결정하던 비급여 진료 항목의 의료수가는 건강보험제도에 의해 통제를 받게 되어(이 과정에서 수가 하락이 일반적임), 의료기관들로서는 건강보험 급여화는 수입 감소로 이어지기 때문에 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에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기 때문에 지난 10년 동안 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에 진전이 없었던 것이고, 참여정부 시절에 이루어진 제한적인 급여 확대의 과정에서도 적지 않은 논쟁과 갈등이 불가피했던 것이다. 또한, 비급여 진료 항목이 거의 없는 의원급 의료기관을 운영하는 의사들은 일반 국민들의 대형병원 선호 경향이 높아지고, 원가 부담을 늘어나는 반면에 의료기관이 점차 늘어나게 되면서 위기의식의 고조, 전문직으로서의 사회적 지위의 하락과 함께 실질적인 수입의 하락을 경험하면서 집단적 결속이 높아지고, 단체 행동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국면에서는 어떤 정치인이나 정당이라도 집권 이후 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를 추진하려면 의료계가 요구하는 의료수가 인상을 수용하거나 반발을 정면 돌파하지 않은 이상 일정 수준 이상의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를 실현하기는 난망한 상황이다. 전체 국민의 80%가 가입된 실손형 민간의료보험 시장을 운영하는 민간보험사들이 건강보험 진료비 통제에 적극 나서고자 하는 이유도 실손형 가입자들이 들이미는 진료비 영수증을 지금처럼 받아들이다가는 보험사의 운영이 어렵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하면 더했지 건강보험이라고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집권 이후 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가 어려운 국면에서 의료를 매개로 한 일자리 창출과 내수산업의 육성이라는 명분을 앞세운 의료산업 선진화 논리가 대통령과 일부 청와대 집권세력과 경제 관료들을 사로잡으면서 지난 10여 년 동안 '의료 민영화' 논리와 정책이 청와대 보건의료정책의 핵심 사안으로 부각된 것이 두 번째 이유라 할 수 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초기에는 WTO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무역질서 확립에 따른 의료시장 개방 불가피성이 제기되더니, 경제자유구역과 같은 경제특구의 활성화 정책과 함께 의료관광의 활성화를 통한 국부창출론, 한미 FTA 협정 체결 등의 다양한 계기를 매개로 지속적으로 확대 추진되어 왔다. 집권 초기부터 의료민영화 정책을 대놓고 추진한 이명박 정부와 달리 참여정부는 일정하게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와 공공의료 확충 정책을 병행했다는 점에서 이명박 정부와 차별성을 갖지만 의료산업 선진화 정책 추진이 참여정부 집권 시기 주요 정책이었던 것만큼은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서 지난 10년 동안 대통령 후보가 내건 공약이 아닌 '의료 민영화' 정책을 중심으로 청와대의 보건의료 국정과제가 결정되었고, 그 결과로서 사회적 갈등과 대립이 끊이질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또 한 번의 대통령 선거를 목전에 두고 있다. 물론 이번에도 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 공약을 중심으로 구성될 것이다. 보건의료공급체계를 이렇게, 저렇게 바꾸겠다는 공약은 내용이 어려워 무엇을 의미하는지 관련 분야 종사자들이 아니면 제대로 이해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유권자 눈에 쉽게 들어오질 않기 때문에 뒤로 밀리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의료 민영화 추진 문제를 제대로 짚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의 5년을 지난 10년처럼 보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상의료를 반대하며, 암, 심장병, 뇌졸중 등 중증 질환에 대해서 100%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를 주장하는 박근혜 후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암, 심장병, 뇌졸중 등 중증 질환일수록 비급여 진료 항목이 많기 때문에 이들 질환에 대해서 100% 건강보험 보장성을 확대하려면 비급여 진료 항목에 대해서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계획을 분명하게 밝힐 필요가 있다. 의료기관이 요구하는 수가를 그대로 수용하면서 추진할 것인지, 건강보험 급여 항목으로의 편입과 동시에 일정 수준의 수가 인하를 단행할 것인지, 그 과정에서 비급여 진료 수입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병원과 의료계의 반발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밝혀야 한다. 동시에 지난 10여년의 의료 민영화 정책과 단절할 것인지, 아니면 계승할 것인지도 밝혀주길 바란다.

입원 환자에 대한 무상의료와 본인부담 100만원 상한제를 내걸고 있는 문제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도 분명히 할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와 같이 시장의 논리, 경쟁의 논리에 방임되어 있는 의료공급체계를 그대로 방치하면서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확대할 것인지, 아니면 의료공급체계에 일정한 규제·지원·관리 기능을 확대하면서 의료시장의 질서를 확립하고 공공성을 강화해 나가면서 그 토대 위에서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확대할 것인지, 적어도 구체적인 추진 방향이 무엇인지는 밝혀주어야 집권 이후 변화 방향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환자유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의료기관들은 머지않은 장래에 있어 조직의 존립과 위상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고, 그만큼 경쟁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라는 압박은 안팎으로 커져가고 있으며, 불확실한 미래에 힘들어하는 만큼 당장의 높은 수입을 요구하는 주장은 점차 높아지고 거칠어지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를 중심으로 결집력이 높아지고 주장이 강해지는 배경을 잘 읽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또한, 지난 10여 년 동안 청와대를 중심으로 추진된 의료 민영화 정책에 대한 기본 입장과 집권 이후의 정책 방향을 정확히 제시해서 더 이상 불필요한 갈등과 혼선이 없도록 해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의료 민영화에 대한 찬반을 떠나서 최소한 후보 시절의 공약과 집권 이후 정책의 일관성만이라도 지켜내는 대통령을 보고 싶은 유권자로서의 보편적 바람만이라도 충족해 주기 바란다.

돌이켜보면, 청와대 최고 책임자들에게 '일자리 창출'과 '내수 활성화'가 가능한 정책은 거절하기 어려운 유혹이었을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지난 10여년 그 정책이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이고, 앞으로 들어설 새 정부 5년의 기간도 그 유혹의 달콤함은 덜하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문제는 그 추진 방향에 따라서 지속 가능성과 누구를 대변하는 정책이냐는 점에서 현격한 차이가 있다. 영리병원을 허용하고 민간의료보험을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나간다면 미국식 의료제도로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며, 달러라는 기축통화를 찍어내지 않는 한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려울 것이고, 영리병원과 민간의료보험 운영을 통해 이윤을 얻어 갈 그들만을 위한 정책이 될 것이다.

부족한 의료 현장의 의료 인력을 늘리고, 이들이 환자 진료에 집중할 수 있는 의료 환경을 만들어가는 방식으로도 적지 않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 우리가 서유럽 복지국가에 비해 수십만 명의 일자리가 적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국의 보건의료 시스템이 아니더라도 일자리를 만들 방법은 있다. 물론 여기에는 돈이 든다. 계획의 범위와 내용에 따라서는 적지 않은 돈이 들 수도 있다. 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를 위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서라도 보건의료공급체계에 대한 일정한 규제, 적극적 지원과 관리는 필수적이며, 투입된 돈은 환자 진료를 위한 인력을 늘리고 환자 진료를 최우선으로 하는 진료 환경의 조성에 쓰여야 의료인과 국민들이 수긍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 문제에 정직한 후보를 보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 ⓒ프레시안(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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