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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째 삼성 대 SK 한국시리즈, 왜 이런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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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째 삼성 대 SK 한국시리즈, 왜 이런 일이?

[배지헌의 그린라이트] 포스트시즌 제도, 수정이 필요하다

영화 <맨인블랙 3>에는 '그리핀'이라는 저주받은 캐릭터가 등장한다. 이 작달막하고 귀여운 외계인은 먼 미래의 일도 바로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처럼 미리 볼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만년 꼴찌팀 뉴욕 메츠가 1969년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하는 거짓말 같은 미래도 그리핀의 눈앞에는 생생한 라이브 중계처럼 펼쳐진다.

도박사들은 부러워할지 몰라도, 스포츠팬 입장에서 그리핀은 정말이지 불쌍한 캐릭터다. 스포츠가 주는 모든 기쁨과 흥분과 쾌감은 어디까지나 '예측불가능성'에서 나오는 법. 결과를 미리 알고 야구를 보는 그리핀은 우리처럼 돌고래 소리를 내며 방방 뛰는 즐거움을 누릴 수 없다. 그에게는 모든 경기가 프로야구 우천 취소된 날 TV에서 틀어주는 2008 베이징 올림픽 하이라이트처럼 느껴질 거다. 맞다. 그날 그 경기에서 강민호가 어쩌다 퇴장을 당하게 되는지, 정대현의 싱커가 어느 코스로 휘어지고 고영민이 얼마나 괴상한 폼으로 병살타를 완성하는지, 하도 많이 봐서 이제는 거의 외울 지경이 다 된 우리가 느끼는 바로 그 기분이다.

혹시라도 그리핀을 동정할 생각이라면, 그 마음 잠시 접어두시길. 우승팀이 어디일지 미리 알고 본다는 점에서, 사실 그리핀과 한국 프로야구 팬들의 처지는 크게 다를 게 없다. 굳이 외계에서 온 종족이 아니라도, 프로야구 팬이라면 누구나 올 시즌의 4강팀을 어렵잖게 알아맞힐 수 있다. 삼성과 SK를 1, 2위 자리에 놓고 그 뒤에 두산과 롯데, 또는 기분 내키는 대로 KIA 정도를 집어넣으면 적중률 99%의 4강팀 예상이 된다. SK가 처음 우승을 차지한 지난 2007년 이래로 6년째 비슷비슷한 순위의 반복이다. 같은 이름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아래의 표를 보면서, 요즘 유행하는 00팡 게임을 떠올리는 일이 없길 바란다.

2007년 이후 프로야구 4강팀

2007년: SK-두산-한화-삼성
2008년: SK-두산-롯데-삼성
2009년: KIA-SK-두산-롯데
2010년: SK-삼성-두산-롯데
2011년: 삼성-SK-롯데-KIA
2012년: 삼성-SK-롯데-두산

올해는 좀 다를 줄 알았지만, 결국에 가서는 마찬가지였다. 시즌 초 삼성의 예상 밖 부진과 넥센-LG의 질주로 순위가 요동치나 했더니 후반기가 되면서 모든 게 원래 있던 제자리로 돌아갔다. 4강팀이 굳어진 후반기의 프로야구는 매일 엎치락뒤치락하며 순위가 뒤바뀌던 시즌 초반만큼의 흥미를 가져다주지 못했고, 이는 8월 이후의 불길한 관중 감소로 이어졌다. 워싱턴, 볼티모어 등 만년 꼴찌 팀들의 반란으로 시즌 마지막까지 후끈 달아오른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와는 정반대였다. 리그가 생명력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전력평준화를 외면한 채, 구단들이 가진 전력 지키기에만 급급한 결과다.

그뿐만이 아니다. 시야를 넓혀 역대 한국시리즈를 살펴보면, 한국에서 그리핀 같은 종족이 설 땅은 더욱 협소해진다. 예지능력이나 외계인 같은 것과는 전혀 무관하지만, 우리는 한국시리즈에 대해 다음의 두 가지 사실을 확언할 수 있다:

첫째, 한국시리즈에서 한쪽 덕아웃은 항상 SK 와이번스의 차지다. 올해도 SK는 플레이오프에서 롯데를 물리치고 6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에 성공했다. 이는 과거 해태 왕조나 현대 유니콘스도 달성하지 못한 기록이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두 번째는, 정규시즌 1위 팀이 거의 언제나 한국시리즈에서도 우승한다는 사실이다. 현재와 같은 계단식 포스트시즌 제도가 생긴 1989년부터 지난해까지 23년이 지날 동안 예외는 딱 3번밖에 나오지 않았다. 1989년의 해태, 1992년의 롯데, 그리고 2001년의 두산이다.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는 무려 10년 연속으로 한국시리즈 진출 팀이 정규시즌 1위 팀의 들러리였다. 양대 리그가 시행된 1999~2000년과 두산이 우승한 2001년을 제외하면, 1990년 이후로는 22년간 18시즌이 정규리그 1위 팀의 패권으로 돌아갔다.

역대 페넌트레이스 승률 1위 팀 우승시즌 - 1990, 1991, 1993, 1994, 1995, 1996, 1997, 1998, 2002~2011
2위 팀 우승 - 1989
3위 팀 우승 - 1992, 2001

어째서 한국시리즈가 으리으리한 이름과 요란한 주목도에 어울리지 않게, 늘 똑같은 결과만 나오는 시시한 통과의례가 되어버린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세계 어디에도 없는 한국프로야구만의 독특한 포스트시즌 제도 때문이다. 프로야구에선 8개 팀 중에 절반이나 되는 4개 팀이 포스트시즌 출전권을 얻는다. 그리고 시즌 3위 팀과 4위 팀의 준플레이오프를 시작으로, 여기서 이긴 팀이 2위 팀과 플레이오프를 치러 그 승자가 한국시리즈에서 1위 팀에 도전한다. 스포츠 리그보다는 전자오락 격투기 게임에 더 어울리는 방식이 20년 넘게 계속 유지되고 있다.

▲정규시즌 1위 팀은 포스트시즌 우승에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이 예상대로라면, 한국시리즈에서도 삼성의 우세가 점쳐진다. 지난 1일 삼성 라이온즈가 잠실운동장에서 LG 트윈스를 꺾고 정규리그 우승 확정을 자축하고 있다. ⓒ뉴시스

물론 정규시즌 1위는 매우 가치 있는 업적이며, 1위 팀에 포스트시즌에서 어드밴티지를 부여하는 것은 어느 정도 당연한 일이다. 정규시즌 133경기에서 1위를 한 팀이 포스트시즌 단 7경기 때문에 패자의 지위로 떨어지는 것도 부당한 면이 있는 게 사실이다. 문제는 유독 1위에게 지나치게 막대한 어드밴티지가 주어지는 까닭에, 정작 최고의 잔치여야 할 한국시리즈에서는 이미 만신창이가 된 언더독(underdog)을 기운 넘치는 1위 팀이 마음껏 유린하는 광경만을 보게 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엉뚱하게도 포스트시즌에서 정말로 치열하게 물고 물리는 승부가 펼쳐지는 것은 비슷한 전력의 팀끼리 동등한 조건에서 붙는 준플레이오프다. 또 한껏 기세가 오른 3위(혹은 4위) 팀과 2위가 붙는 플레이오프도 꽤 재미있는 경기가 나온다. 그러다 한국시리즈에 가면 모든 면에서 만반의 준비를 끝낸 최강자와 남은 건 정신력 하나뿐인 도전자가 벌이는, 어느 모로 봐도 균형이 맞지 않는 대결이 벌어진다. 이래서야 뻔한 결과밖에 나올 게 없다.

많은 경우, 정규시즌 1위 팀과 2위 팀은 아주 근소한 차이로 갈린다. 단 1승 차이로 1, 2위가 결정된 2009년 페넌트레이스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그 1승 차이 때문에, 2위가 된 SK는 두산과 7일 동안 5차전에 걸친 혈투를 벌이는 핸디캡을 받아야 했다. 결국 한국시리즈에 올라가 7차전까지 가는 명승부를 벌이기는 했지만, 체력적인 한계로 KIA에 우승을 내줬다. 만일 양대 리그 같은 제도였다면 KIA와 SK는 둘 다 동일한 조건에서 포스트시즌에 올라와서 최상의 상태로 겨루었을 것이고, 결과도 달라졌을지 모른다. 2009 SK 외에도 2003년의 KIA와 2004년 삼성이 불과 승률 2리 차이로 플레이오프 '형벌'을 받아야 했던 팀이다. KIA는 플레이오프에서, 삼성은 한국시리즈에서 각각 고배를 마셨다. 정규시즌 1승 차이나 13승 차이나(2008년 두산), 한국시리즈에서 절대적으로 불리하기는 마찬가지였다. "1등 아니면 전부 꼴찌"라는 어느 감독의 말이 진리의 울림을 갖는 이유다.

이처럼 해마다 포스트시즌에서 똑같은 결과만 되풀이되는데도, 프로야구가 제도 개편을 거의 시도하지 않았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8개 구단 체제의 한계 때문이든, 1위 팀 어드밴티지 때문이든 상황이 이 정도면 뭔가 변화를 시도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그 긴 세월 동안 포스트시즌에 생긴 변화는 (1999년 양대 리그 실험을 제외하면) 준플레이오프 경기수를 3경기에서 5경기로 더 늘리는(2008년) 조처에 불과했다. 3전2선승제를 치르고 올라가도 버거운 판에 아예 3, 4위 팀의 배터리를 더욱 방전시키는 길을 택한 것이다. 이런 조처는 포스트시즌 관중수입을 늘리는데 도움이 되었는지 몰라도, 다른 한편으로는 포스트시즌이 뒤로 갈수록 밋밋해지는 경향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을 뿐이다.

포스트시즌 역사에서 등장한 유일하게 근본적인 변혁은 1999년 양대 리그 시도였다. 그해 프로야구는 8개 팀을 4개씩 두 개 리그로 나눠(매직, 드림리그) 각각의 리그에서 두 팀씩이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당시 프로야구는 축구와 메이저리그에 밀려 인기 추락을 경험하는 중이었다. 1993년부터 6년 연속 시즌 1위 팀이 우승을 가져가면서 팬들의 흥미도도 떨어진 상태였다. 뭔가 대대적인 변화가 필요했고, 그 결과 양대 리그라는 "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획기적인 변화(동아일보)"가 등장했다.

결과는 꽤 흥미로웠다. 시행 첫해인 1999년, 플레이오프에서 시즌 72승의 한화는 76승의 두산을 꺾고 한국시리즈에 올랐다. 그리고 한국시리즈에서는 시즌 75승의 롯데를 물리치고 창단 첫 우승까지 이뤄냈다. 4개 출전 팀 중 최저승률 팀이 우승의 이변을 연출한 것. 2000년에는 시즌 76승 팀 두산이 '91승'의 1위 팀 현대에 맞서 한국시리즈 7차전까지 가는 접전을 펼쳤다. 적어도 1위 팀만 우승하는 기존의 포스트시즌 방식보다는 훨씬 예측하기 힘든, 흥미진진한 승부가 펼쳐졌다.

하지만 양대 리그 실험은 불과 2년밖에 유지되지 못했다. 2000년 드림리그 3위 삼성이 매직리그 1위보다 높은 승률을 기록하는 기현상, 시즌 91승 팀 현대가 76승 팀 두산과 동등한 조건에서 한국시리즈를 치르는 문제점 등이 지적됐다. 또 플레이오프가 두 군데서 동시에 열리면서 팬들의 주목도가 떨어진다는 점도 문제로 거론됐다. 결국 문제 있는 양대 리그 제도는 폐지되고, 프로야구는 2001년부터 다시 원래의 문제 많은 포스트시즌 제도로 회귀했다. 그 결과는 보는 바와 같다: 시즌 1위 팀의 10년 연속 한국시리즈 독식. 5차전 승부로 방전된 SK와 삼성이 3년 연속 맞붙는 올해도 크게 다른 결과가 나올 것 같지는 않다. 외계인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예측할 수 있는 결과다.

6년 연속 똑같은 팀들의 4강 진출, 10년 연속 정규시즌 1위 팀의 한국시리즈 우승. '각본 없는 드라마'라는 스포츠와는 영 동떨어진 결과들이다. 요새는 일일연속극도 이렇게 결말을 뻔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프로야구에 뭔가 획기적인 변화가, 리그 전력 균형을 이루고 포스트시즌의 흥미를 돋우기 위한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 다시 한 번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이런 변화를 이루기에는 프로야구엔 너무도 크고 결정적인 걸림돌이 존재한다. 바로 구단들의 이기심이다. NC의 창단 이후 벌어진 온갖 '쪼잔한' 일들을 살펴보면, 구단들이 전력평준화를 위해 자발적으로 뭔가를 시도하리라고는 기대하기 어렵다. 그들은 NC에 원래 약속했던 우선지명 신인을 5명에서 3명으로 축소했고, 선수 지원도 어떻게든 내주지 않으려고 갖은 수를 동원했다. 전력균형을 위해 만들어진 드래프트 제도도 구시대적인 '1차 지명'으로 되돌렸다. 신생팀과 돈 없는 팀은 만년 하위권에 머무르라는 의미다. 어떻게든 선수 이동을 활발하게 해서 리그 전체의 균형을 이루기보다는, 각자 가진 전력을 지키면서 현상유지를 하기에 급급하다.

포스트시즌 제도 역시 마찬가지. 현재의 제도에선 8팀 중에 4위에만 들면 어떻게든 체면치레는 된다.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지만, 1위부터 꼴찌까지 모두가 '4위 정도는 충분히 해볼 수 있다'는 동상이몽을 품고 새로운 시즌을 맞이한다. 구단들 입장에서 보면 이렇게 속편하고 공평한 제도도 없다. 굳이 여기에 손을 대서 '우리 팀'의 4강 진출 가능성이 줄어들게 할 이유는 전혀 없다. KBO가 이기적인 구단들 사이에서 중재하고 이끌어 가는 역할을 하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주도권을 쥐고 있는 건 KBO가 아닌 각 구단 이사들이다. 문제점과 위기가 바로 눈앞에 보이는데, 답답한 교착상태를 뚫을 방법은 보이질 않는다.

그리핀 종족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은 분명한 사실이 있다. 그리핀들은 야구장을 돈 내고 찾지 않는다. 야구중계를 보지도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리핀들은 야구장을 가득 메우고 함성을 지르거나 응원을 하지도 않는다.

www.futuresba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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