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 자격이 논란이 되면서 역대 노벨평화상 수상자들에 대한 논란도 다시 제기된다. 미국 역사학자 마이클 파렌티는 18일(현지시간) 진보 성향의 사이트 '커먼드림스'에 올린 칼럼(☞바로 가기)에서 '평화'의 관점에서 보면 수상자격이 없는 유명인사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파렌티는 알프레드 노벨의 유지와 달리 노벨평화상이 서방 지배층의 선전을 위해 사용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그 결과 서방이 주도한 전쟁에 반대하지 않는 사람이 평화를 수호하는 인물로 선정되는 역설을 빚고 있다고 꼬집었다. 미국과 함께 전 세계 전쟁에서 자유롭지 않은 EU의 노벨평화상 소식이 어색한 이유가 단순히 사람이 아닌 국가 연합이 받았다는 점 때문만은 아닌 셈이다. 그가 쓴 칼럼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노벨평화상인가, 노벨전쟁상인가
국가의 부를 소유한 이들은 자신들이 주도하는 사회경제적 질서의 좋은 면처럼 보이는 부분을 강조하면서 자신들의 막대한 부를 숨기는데 신경 쓴다. 국회의원 및 여론형성자들과 연대를 맺고 지배자들은 1%와 99% 사이에 존재하는 착취 시스템을 숨기고 정당화하는 상징과 이미지, 이야기들을 끊임없이 만들어낸다.
노벨평화상은 이러한 노력에서 조연 역할을 할 것 같다. 시스템을 유지하는 계급의 선전과 이데올로기적 시나리오에서는 노벨평화상이 단지 상이다. 하지만 이미 이름을 떨친 인사의 머리에 성유를 발라 (다시) 저명한 지위에 올리는 것을 즐기는 가장 권위 있는 상이다.
2012년 10월 노르웨이 (국회에서 지명한 인사들로 구성된) 노벨위원회는 엄숙하게 유럽연합(EU)에 노벨평화상을 수여했다. 다시 한 번 말한다. 5억 명이 사는 28개 회원국으로 구성된 EU가 "유럽의 평화와 화합, 민주주의, 그리고 인권의 증진을 위해 기여한 바가 크다"며 상을 받았다.(노르웨이 자체는 EU 회원국이 아니다. 노르웨이 국민들은 EU 가입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에서 반대표를 던질 만큼 분별력이 있다.)
ⓒAP=연합뉴스 |
(1895년)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장은 노벨평화상이 "국가들 간의 우애, 상비군 폐지 혹은 감축, 평화회의의 개최 및 촉진을 위해 가장 많이, 혹은 가장 훌륭한 일을 한 이(person)"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명쾌하게 설명한다. EU는 사람이 아니고 상비군을 폐지하거나 감축하지도 않았으며 평화와 관련된 어떤 의제도 촉진한 적이 없다. EU의 수상이 조금 어색했는지 <BBC>와 다른 주류 매체들은 "60년 동안의 평화"와 "전쟁 없는 60년"을 EU가 성취했다고 언급하면서 구하기에 나섰다. 다음날 <BBC>의 누군가가 숫자를 세보고 EU가 "유럽 대륙에서 70년 동안 평화"를 유지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 현명한 전문가들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가? 원래 유럽경제공동체(ECC)라 불리며 1958년 출범한 EU가 현재 이름을 갖게 된 건 1993년으로 약 20년 전이다.
노벨위원회와 수상자 EU, 그리고 서방의 언론 모두 다양한 슬라브 민족들에게 (이들 민족 중 많은 이들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증언하듯이) 대체적으로 풍족한 삶을 제공했던 사회민주주의 국가 유고슬라비아에 대항해 (나토군이) 1999년 유럽 대륙에서 벌인 대규모 공중전을 못 본체 하고 있다.
EU는 그 공격에 반대하지 않았다. 사실, 독일과 프랑스를 포함한 일부 회원국은 1999년 유럽 땅에서 미국이 대체로 주도했던 전쟁에 참가했다. 78일 동안 미군과 나토군은 유고슬라비아의 공장, 공공시설, 발전소, 철도, 다리, 호텔, 아파트, 학교, 병원을 폭격했고 수천 명의 시민을 죽였다. 이 모든 공격은 인도주의적 구출활동이라는 명목으로 전개됐고, 세르비아의 '인종청소'라는 입증이 안 된 이야기에 의해 촉발됐다. 이 모든 전쟁은 유럽 땅에서 벌어졌다.
유고슬라비아는 초토화됐고, 자신들 특유의 방식으로 구축한 참여 민주주의와 자주성, 분배 시스템을 함께 잃었다. 그곳에서는 (이후) 우익 성향의 작은 공화국들이 세워졌고 모든 것이 민영화되고 규제가 해제됐으며, 빈곤이 심화됐다. 동시에 부유한 서방 기업들이 한 때 유고슬라비아라 불렸던 곳에서 힘을 뻗어나갔다.
유럽 한편에서는 EU 회원국들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리비아를 비롯해 중동과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등에 병사들을 보냈고, 대개 미군의 교습을 받았다.
하지만 내가 무엇을 기대했나? 수년 동안 나는 역설적으로 노벨평화상을 받는 가장 좋은 방법은 평화 대신 전쟁을 일으키거나 전쟁을 일으키는 이를 지지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과장화법이겠지만, 한 번 살펴보자.
희한한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나왔던 1931년에서 출발하자. 수상자는 니콜라스 머레이 버틀러 컬럼비아대 총장이다. 1차 세계대전 동안 버틀러는 교수들이 동맹국에 맞서 싸우는 연합군을 비판하는 것을 분명히 금지했다. 그는 반전 정서를 반역 행위나 선동과 동일시했다. 그는 또 "교육을 받은 프롤레타리아는 소란을 일으키는 지속적인 원천이며 어느 국가에도 위험하다"라고 주장했다. 1920년대 버틀러는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의 노골적인 지지자가 됐다. 몇 년 뒤 그는 군사화가 심화된 나치 독일의 숭배자가 됐다. 노벨평화상을 받고 2년 뒤인 1933년 버틀러는 독일 대사를 미국으로 초대해 컬럼비아대에서 히틀러를 옹호하는 강연을 하게 했다. 그는 대사 초청을 취소하라는 학생들의 요청을 학문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묵살했다.
1973년으로 넘어가보자. 이 해에는 가장 악명 높은 전범 중 하나인 헨리 키신저가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그는 1970년대 대부분을 미국 국가안전보장회(NSA) 대통령 보좌관과 국무장관으로 보내면서 인도차이나에서의 끝없는 유혈극과 미국의 중앙아메리카 등에 대한 무자비한 개입을 주도했다. 융단폭격부터 암살까지 키신저는 미국에 감히 저항하는 이들을 때려눕히던 곳에 있었다. 그의 저술과 성명에서 키신저는 계속해서 전 세계에서 미국의 군사력과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는 것에 대해 얘기했다. 노벨평화상에 대한 알프레드 노벨의 설명에 들어맞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헨리 키신저일 것이다.
1975년 우리는 안드레이 사하로프라는 노벨평화상 수상자를 만나게 된다. 그는 미국 언론이 사랑하는 인물로 정기적으로 기업 자본주의를 칭송하던 소련 망명자다. 사하로프는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미국의 평화 운동을 맹비난했다. 그는 소련이 군비경쟁의 단독범이라고 비난했고 미국의 모든 해외 군사개입이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것이라고 했다. 서방에서 '인권 옹호자'로 불렸지만 사하로프는 피노체트의 칠레나 수하르토의 인도네시아를 포함해 미국의 충직한 의존국의 파시스트 정권이 자행했던 끔직한 인권 침해 사례에 불편한 말 한 마디를 해본 적이 없다. 또 그는 평화주의자들을 헐뜯었으며 미국의 탄압적인 해외 군사개입에 반대하는 서방 인사들을 정기적으로 공격했다.
테레사 수녀를 간과하지 말자. 모든 서방 언론들은 이 괴팍한 여사를 자기 희생하는 성인으로 묘사했다. 사실 그는 해방 이데올로기와 다른 진보적 발전의 파괴를 기꺼이 환영하는 비열한 반동자다. 그의 '병원'과 '클리닉'은 죽어가는 환자나, 나을 수 있는 병이지만 치료받지 못해 고통 받다 죽는 이들을 위한 창고 이상을 넘지 않았다. 그는 산아제한, 이론, 낙태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전개했다. 그는 부자와 반동자들과 기꺼이 어울렸지만 오슬로 사람들이 1979년 커다란 메달을 주어야만 하는 천상의 여걸로 선전됐다.
그리고 1989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달라이 라마가 있다. 수 년 동안 달라이 라마는 전 세계 국가에서 저항하는 노동자와 농민, 학생 등을 대상으로 한 살인을 자행한 기관인 미 중앙정보국(CIA)의 급여 대상자 목록에 올라가 있었다. 그의 형은 CIA 위장 조직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했다. 다른 형제도 CIA와 일했는데, 티베트에 잠입해 반란을 조장하는 목적으로 CIA에서 훈련받은 게릴라 조직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달라이 라마는 평화주의자가 아니다. 그는 미국-나토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뿐 아니라 유고슬라비아의 78일간의 폭격 및 그 나라의 파괴를 지지했다. 이라크에서 미군이 일으킨 학살과 파괴의 시절에 대해 달라이 라마는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그는 2005년 "옳다 그르다를 말하기엔 너무 이르다"라고 말했다. 달라이 라마의 종파가 라이벌 종파에 자행한 폭력에 대해 그는 "만약 목표가 선하다면 수단이 폭력적이라 할지라도 허용된다"라고 결론지었다. 진정한 노벨평화상 수상자다운 발언이다.
2009년 갑자기 패러디물이 등장했는데, 역대 최대의 국방예산을 편성하고 3~4개의 전쟁과 몇 개의 공격 작전을 주도하던, 그리고 이후 몇 년간 예멘과 서파키스탄, 리비아, 그리고 시리아(그리고 이란이 기다리고 있다)에서 추가적인 전쟁을 벌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오슬로 사람들이 노벨평화상을 준 것이다. 오바마 수상자는 위풍당당하게 오사마 빈 라덴을 추적해 사살했으며 증거도 없이 그를 세계무역센터와 국방부를 겨냥한 9.11 테러를 지휘했다고 비난했다.
오바마가 수상 소식에 뭔가 놀란(그리고 아마 부끄럽기조차 했을 것이다) 것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젊은 무인폭격기 사령관은 성조기가 덮인 관에 경례를 하고, 신세계 질서의 지지 속에 다른 장소와 사람들을 공격하면서 터프가이 전사로서의 면모를 보이려고 시도했다. 확실히 어느 모로 보나 노벨 평화 메달을 받을 자격이 있다.
아마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다른 주전론자나 반동들도 있을 것이다. 나는 모든 수상자들에 대해 정통한 척 하지 않겠다. 그리고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라이너스 폴링, 넬슨 만델라, 다그 함마르셸드와 같은 소수의 진정한 수상자들도 있다.
처음 제기한 문제로 돌아가자. EU가 실제로 상을 수상할 자격이 있는가? 밴쿠버의 예술가 제니퍼 브로스는 내게 결정적인(그리고 최고의) 말을 전했다. "EU가 노벨상을 탔다고? 극악무도한 현재의 긴축조치를 더 간편하고 완전하게 지원하는 방법처럼 보이는데. 먼저, 기업이 사람이고 돈이 언론의 자유인데, 이제는 국가의 자주권을 방해하도록 설계된 국가들의 단체가 지배계급의 이익을 대표해 평화상을 받았어. 한편으로는 만약 EU가 사람이라면, 평화 시위를 폭력적으로 탄압하고, 이로 고통 받는 시민들의 비극과 죽음을 이끄는 정책을 취한 것에 대해 고발당해야겠다."
결론을 내리면 노벨평화상은 종종 평화와는 관련이 없고 전쟁과는 너무 관련이 많다. 이 상은 '평화'를 서방식 금권정치의 눈으로 본다.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박수행렬에 동참해서는 안 된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