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는 이러한 합의를 최대 지적 가운데 하나로 이를 내세우고 있다. 대다수 언론도 찬양 일색이다. 그러나 한국의 탄도미사일 사거리 연장이 과연 국익에 부합하는지 냉정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또한 '외교에는 공짜가 없다'는 말이 있다. 미사일 사거리 연장의 대가로 미국에게 제공하고 있는 선물의 구체적인 내역도 확인해야 한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미사일방어체제(MD)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고, 우선 탄도미사일 사거리 연장의 문제점을 따져보자.
한반도 군비경쟁 격화 불가피
우선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에 미칠 부정적 영향이 우려된다. 북한이 선군정치의 핵심으로 내세우고 있는 '핵 억제력'은 그 대상이 되는 한미일 3자의 군사적 대응 수준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다. 핵 억제력의 핵심은 상대방의 공격 및 MD로부터 생존율을 높여 2차, 3차 공격 능력을 확보하는데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한미동맹이 한국의 탄도미사일 능력 배가에 합의하고 MD 협력을 강화할수록 북한 역시 핵과 미사일 전력을 강화하려고 할 것이다. 북한이 취할 수 있는 방법들로는 소형 핵탄두 개발 가속화,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UEP)의 핵무기 개발용 전환, 추가적인 핵실험 또는 미사일(로켓) 시험 발사, 이동식 미사일 개발·배치, 미사일 생산량 증대, 추가적인 로켓 발사 기지 건설 등이 있다.
미사일 사거리 연장과 MD를 고리로 한 한미동맹의 움직임이 한반도 군비경쟁을 새로운 국면에 올려놓을 공산이 크다는 우려는 이러한 맥락에서 제기된다. 북한의 추가적인 핵과 미사일 전력 증강은 MD를 비롯한 한미동맹의 군비증강의 빌미가 되고 이는 또 다시 북한의 군비증강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낳게 될 것이 불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이는 남북한의 새로운 정권 모두에게 엄청난 부담을 야기하게 될 것이다. 북한의 김정은 체제는 선군(先軍)정치에서 선경(先經)정치로의 전환을 타진하고 있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새로운 군비경쟁의 격화는 북한 내 강경파의 입지를 강화시켜 이러한 전환에 근본적인 장애를 조성하게 될 것이다.
내년에 등장할 남한의 새로운 정부의 대북정책도 큰 난관이 예상된다. 북한이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전력 증강, 일본의 군사대국화 움직임, 한국의 미사일 사거리 연장 등 한미일의 군비증강에 군사적 맞대응을 선택할 경우 대북정책은 커다란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미사일 사거리 연장이 차기 한국 정부에게 '전략적 자산'이 아니라 '전략적 부담'이 될 공산이 큰 이유다.
대한민국의 안보를 튼튼하게 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의 외교적이고 평화적인 해결에 있다. 물론 이는 그 당위성에 비해 현실성에 의문이 제기될 수 있고, 또 많은 인내와 시간을 요한다. 이에 따라 대북 억제는 필요하다. 실제로 한국은 세계 최강 미국과 함께 강력한 대북 억제 태세를 유지해왔다. 그런데 여기에 MD 강화와 한국의 탄도미사일 사거리 연장이 더해질 경우 북핵 문제 해결은 더욱 요원해지고, 그만큼 한국의 안보도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필자가 한국의 탄도미사일 사거리 연장을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보는 까닭이다.
▲ 율곡이이함이 6월 중순경 하와이 인근 해역에서 실시된 이지스함 전력화 평가에서 SM-2 대공유도탄 및 램(RAM) 미사일 실사격 훈련하는 모습. ⓒ연합뉴스 |
한중 관계 악화도 불가피
중국과 일본 등 주변국과의 전략적 불신 악화 및 군비경쟁 격화의 우려도 빼놓을 수 없다. 탄도미사일 사거리를 800km로 늘리면 중국과 일본 일부에도 다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심상치 않은 우경화와 군사대국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일본 내에서는 평화헌법의 족쇄에서 벗어나 로켓 기술을 탄도미사일로 전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특히 중국과의 관계 악화가 우려된다. 이명박 정부는 탄도미사일 사거리 연장이 중국과 무관하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중국의 시각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노무현-부시 때 착수되어 이명박-오바마 시기에 본격화된 한미 전략동맹이 겨냥하고 있는 대상은 북한뿐만 아니라 중국도 포함된다.
이에 따라 중국은 '한국'의 탄도미사일 사거리 연장을 '한미동맹' 차원의 전력 증강으로 바라볼 것이다. 더구나 중국이 한중관계의 마지노선으로 간주해온 한국의 MD 편입도 가속화되고 있어 중국의 한국에 대한 전략적 불신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한중관계의 악화가 외교안보는 물론이고 경제에 미칠 부정적 영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중국이 북한에게 핵과 미사일 문제에 있어서 긍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이 탄도미사일 전력 증강에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이 북한을 상대로 목소리를 높이기란 어려울 수밖에 없다. 결국 미국이 의도한 것은 '북한위협론'을 근거로 MD를 고리로 한 한미일 3각동맹 구축이라는 중국의 의구심도 더욱 강해질 것이다.
비확산 모범국 이미지에 먹칠
또 한 가지 반드시 따져봐야 할 문제는 한국의 미사일 사거리 연장이 국제협약에 저촉되는지 여부다. 현재 한국이 가입한 탄도미사일 관련 국제 규범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이고, 다른 하나는 탄도미사일확산방지 헤이그 행동협약(Hague Code of Conduct against Ballistic Missile Proliferation, HCOC)이다.
MTCR는 탑재중량 500kg, 사거리 300km가 넘는 미사일과 위성발사체, 무인항공기(UAV) 등의 수출 및 기술이전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는 자발적 국제규범이다. 자국 기술로 개발하는 것을 제약하지 않지만, 타국에서 이전 받은 기술로 탄도미사일을 개발하는 것은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의 미사일은 미국의 지대지 미사일인 나이키-허큘러스에 기반을 두고 있다.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은 이 미사일을 개량해 사거리를 350km로 늘리는 '백곰'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그러나 이를 포착한 미국은 박정희 정권에 압력을 가해 사거리를 180km로 낮췄다. 그리고 2001년에는 한국의 MTCR 가입을 조건으로 사거리를 300km로 늘렸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나온 것이 바로 현무-1, 현무-2다. 이에 따라 한국의 탄도미사일 사거리는 800km까지 늘리기로 한 협정은 MTCR에 저촉된다는 주장이 제기될 수 있다. 실제로 국제사회의 많은 전문가들은 이러한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또한 한국의 사거리 연장은 헤이그 협약과도 저촉된다. 한국과 미국은 물론이고 나로호에 참여하고 있는 러시아도 가입한 이 협약에서는 우주의 평화적 이용을 보장하면서도 "대량살상무기 운반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는 탄도미사일을 확산시켜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우주발사체 프로그램이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은폐하도록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라고도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의 군 관계자와 전문가들은 나로호 2단 추진체 개발로 축적된 로켓 기술을 탄도미사일 개발로 활용하면 수 년 안에 1000km급 미사일 개발이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이는 우주발사체 기술을 탄도미사일로 전용하는 것을 금지한 헤이그 협약과 저촉된다.
주목할 점은 한국이 2012~2013년 헤이그 협약의 의장국을 맡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탄도미사일 비확산 모범국으로서의 이미지를 제고하는데 기여할 것이라는 평가를 낳았었다. 그런데 탄도미사일 사거리를 2배 이상 늘림으로써 비확산 모범국이라는 이미지의 손상은 불가피해졌다.
미사일 강대국들로 둘러싸여 있고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북한도 핵과 미사일 능력을 증강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도 탄도미사일 사거리 연장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이해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한국의 현실은 이러한 1차원적인 사고를 넘어설 것을 요구한다. 우리의 안보를 증대시키기 위한 조치가 상대방의 반작용을 야기해 오히려 우리의 안보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안보딜레마'에 가장 민감한 지역이 바로 한반도이기 때문이다.
다음에 이어질 글: MD 이면합의 없다고? 이미 참여해왔다!
* 필자 정욱식 블로그 '뚜벅뚜벅' 바로가기
* 필자가 <프레시안>에 연재한 글을 엮어 만든 책 <핵의 세계사>가 발간되었습니다. ☞ 책 소개 바로가기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