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태릉선수촌이 중국과 마찬가지로 극소수 엘리트 선수를 세상에서 '분리시켜' 강한 훈육으로 국가의 목적에 맞는 선수를 성장시키는 기관으로 발달한 역사는 이를 상징한다.
최동호 스포츠평론가는 "체육단체 구조조정 논의가 시작되기 전까지 한국에서 체육은 정치적 프로파간다로 활용됐다"며 "당연히 체육정책은 엘리트 체육에 드라이브를 거는 방향으로만 집중됐다"고 평했다. 최 평론가를 비롯한 상당수 개혁적 스포츠 전문가들은 한국 체육기관의 통합과 별개로 대한체육회 권력 분산을 강하게 주장한다.
학원체육 정상화, 선수출신 인사들에 대한 지원을 논의하는데 체육단체 구조조정이 무슨 의미를 가질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 한국 체육 관련 대표기구의 역할과 존재부터 확인해야 한다.
▲대한체육회는 국가주의적 정체성을 처음부터 강하게 띄었다. 이는 대한체육회가 '강한 국가'를 상징하는 엘리트 선수 육성에 치중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사진은 지난 1961년 7월 8일, 대한체육회가 주최한 5.16 기념 체육축전의 모습. ⓒ연합뉴스 |
대한체육회=올림픽위원회?
한국의 체육정책, 곧 엘리트 중심 육성정책을 주관하는 기관은 대한체육회다. 대한체육회는 1920년 창립된 조선체육회에서 그 맥을 이어온 기관으로, 현재 58개 가맹 단체를 관리하는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전국체육대회와 전국소년체육대회를 개최하고, 태릉선수촌과 체육과학연구원을 거느리고 있다.
그런데 대한체육회장은 대한올림픽위원회(KOC) 위원장까지 겸임한다. 대한체육회는 대한올림픽위원회까지 통합한 기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한체육회는 정관에 설명된 "체육운동을 범국민화"해 학교체육 및 생활체육의 진흥"을 도모하는 방향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올림픽 성적 향상을 위해 매진하는 기구의 성격을 가지게 됐다.
'한국 체육정책 정상화', 곧 엘리트-생활체육으로 이원화된 현 체육정책을 변화시키자는 일각에서 KOC 분리 요구가 강하게 제기되는 이유다.
분리의 근거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헌장 24조다. IOC는 다음 조문에서 "국가올림픽위원회는 정치적으로 중립된, 완전한 자주독립단체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대한체육회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지도를 받는다. 즉, KOC는 IOC 규정을 어기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 지금의 한국처럼 올림픽위원회(JOC)를 체육협회에 통합해 운영하던 일본은 IOC 규정에 따라 1991년, JOC를 완전 별개조직으로 독립시켰다. 그리고 일본체육협회는 전국체육대회와 학교체육, 스포츠클럽 조직만 전담한다. 최 평론가는 "일본이 JOC 분리 이후 생활체육 위주의 정책을 펴면서 90년대 국제무대에서 엘리트체육 경쟁력을 잠시 잃은 이유"라고 이 정책 변화의 의의를 설명했다. 그러나 알다시피, 최근 들어 일본의 체육 역량은 국제 무대에서 다시금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최 평론가는 "일본과 미국, 독일과 같이 대부분 나라가 국가올림픽위원회를 독립된 조직으로 별개 운영한다"고 평했다.
생활체육과 엘리트체육의 통합
대한체육회를 제외한 다른 기구도 많다. 특히 주목할 기구는 국민생활체육회다. 이 기구는 16개 시도생활체육회와 66개 전국종목별연합회, 6개의 협력단체를 둔 조직으로 생활체육 중심의 비영리사단법인이다. 대한체육회가 엘리트체육에 집중하는 반면, 이 기구는 학생은 물론 성인 일반인을 위한 생활체육에 중점 역량을 두고 있다.
그런데 체육기구로서의 위상은 대한체육회와 비교하면 현저히 차이가 난다. 대한체육회는 법정법인으로 수익사업을 벌일 수 있으나, 국민생활체육회는 불가능하다. 한국 체육정책도 철저히 대한체육회 위주로 쏠려 있다. 이들 두 기구가 운용하는 예산 규모가 약 7대 3이라는 게 체육 관계자들의 평가다. 극소수 엘리트 선수들에게 우리나라 체육 관련 예산의 70퍼센트(%)가 집중된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 문화체육관광부의 올해 체육예산을 살펴보면, 전체 총액 8634억 원 중 생활체육 육성에 약 25%, 전문체육 육성에 약 17%, 스포츠산업 육성 및 국제교류에 약 41%가 배정돼 있다. 얼핏 보면 생활체육에 큰 예산이 지원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세부항목을 보면 사정이 달라진다. 스포츠산업 육성 및 국제교류 관련 예산을 뜯어보면 세부항목이 △육상진흥센터 지원 △광주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지원 △평창 동계올림픽대회 지원 △태권도 세계화 지원 등이다. 모두 엘리트 스포츠 육성과 직결돼 있다.
최 평론가는 "우리나라에서 엘리트체육과 생활체육이 전혀 연계되지 못하는 가장 근본원인은 관련 기구가 이원화됐기 때문"이라며 "주로 중장년층이 건강관리와 몸매 관리를 위해 참여하는 게 전부인 생활체육을 학생 때부터 보편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생활의 하나로 바꿔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체육기구 통합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이병호 잠신고 교사도 "우리의 학교체육, 생활체육, 엘리트체육은 제도상의 문제에 체육 내셔널리즘 정책까지 결합해 왜곡돼 있다"며 "향후 체육 정책의 최대 과제는 체육 분야의 대통합을 위한 정책으로 모아져야 하며, 체육 행정 기구의 제도적 대통합과 학교체육의 교육적 통합으로 나아가는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KOC를 독립시켜라
이 때문에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의 통합이 필요하다는 게 상당수 전문가들의 평가다. 그리고 이에 발맞춰 스포츠클럽제 강화, 주말리그제 강화, 선수인권 강화 등의 대책이 병행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실제 상급 기관에서도 양대기구 통합 논의는 자주 거론된다. 문제는 KOC의 존재다. 대한체육회는 "KOC가 독립할 경우 또 하나의 새로운 거대조직이 만들어진다"며 KOC를 새 통합기구에 고스란히 남겨둬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개혁적 스포츠 인사들은 KOC를 스포츠외교에 치중하는 독립 기구로 분리시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런 입장 차이는 한국에서 올림픽이 가지는 위상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KOC가 떨어지는 순간, 대한체육회의 위상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깔려 있다. 대한체육회의 이와 같은 우려에 대해 반대진영의 목소리는 어떨까.
최 평론가는 "새로운 체육정책의 패러다임은 결국 복지와 행복"이라며 "통합된 체육단체는 생활체육 우선의 체육정책 변화를 전제로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한국 체육 정책의 중심을 엘리트 체육에서 생활체육으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일본처럼 일정 기간 국제 올림픽 무대에서 경쟁력을 상실한다손 치더라도, 이에 따른 부작용을 극복하는 게 더 바람직한 것 아니냐는 얘기다.
최 평론가는 "이제 우리 사회의 시민의식과 개인 욕구는 기존 엘리트체육(으로 대표되는 정책)을 뛰어넘었다"며 "체육 정책은 엘리트 중심이 아니라 생활체육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KOC는 별도 독립조직으로 운영하고,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의 통합된 단체가 생활체육 중심으로 엘리트체육까지 일원화해 시너지 효과를 창출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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