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 씨는 지식경제부 산하기관인 우정사업본부(우체국) 소속 비정규직이다. 400~500㎏에 달하는 소포를 얹은 화물수레를 끌어 나르는 일을 한다. 한 번에 두 개씩 1톤 무게의 수레를 하루 100여 차례 나르다보니 몸 성할 날이 없다. 명절 때는 12~14시간까지 일하지만 그는 정규직이 받는 명절 상여금도 받지 못한다.
공공기관 비정규직이라고 해서 근무조건이 사기업보다 나은 편은 아니다. 이들은 정규직과 같은 일을 하거나 그보다 더 힘든 업무를 떠맡고도 정규직의 절반도 안 되는 임금을 받는다. 우편집중국에서 일하는 노동자 대부분이 40~50대로 생애주기에서 가장 돈이 많이 필요한 연령층이지만, 비정규직이 받는 월급은 주간조의 경우 80~90여만 원, 야간조는 1.5배인 120~130여만 원으로 최저임금 수준이다. (☞관련 기사 : "500kg 우편물 하루 150번 실어나른 대가가 130만 원")
▲ 추석을 앞둔 동서울우편집중국. 우편집중국에서는 택배와 우편물을 분류한 뒤 전국 각지로 배송하는 작업이 이뤄진다. 전날 밤부터 다음날 오전까지 밤샘노동을 한 송찬수 씨는 "그나마 어제 밤새 일해서 물량이 많이 빠진 상태"라고 설명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프레시안 |
"공공부문이 노비 양산했다"
'질 낮은 일자리'를 만드는 데는 공공부문도 예외가 아니었다. IMF 사태 이후 우정사업본부는 정년퇴직과 정리해고 등으로 감소하거나 새로 필요한 일자리 수요를 비정규직이나 특수고용직 등으로 채웠다. 그 결과 동서울우편집중국에서 관리직(행정공무원)을 제외한 노동자 570여 명 가운데 비정규직은 420여 명으로 74%에 달한다. 이들은 임금, 휴게시간, 복리후생 등에서 정규직보다 차별받는다.
동서울우편집중국에서 13년째 최저임금 남짓한 금액을 받고 비정규직으로 일한 김진숙 씨는 "예전에는 밑바닥에서 시작해서 정규직이 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지만, IMF 이후로 한 번 비정규직은 영원한 비정규직"이라고 체념했다.
"우리끼리 농담으로 이런 말을 해요. 여기에는 세 계급이 있다. 양반(행정공무원), 중인(정규직), 노비(비정규직)."
"우체국 무기계약직, 20년차여도 알바와 임금 비슷"
김 씨를 비롯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처음부터 체념만 했던 것은 아니다. 2007년부터 2년 이상 일한 계약직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한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됐다. 2007년부터 우정사업본부가 법을 이행하며 2년 이상 일한 비정규직 6177명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했을 때 이들은 처우 향상에 대한 일말의 기대감을 가졌다. 현재 동서울우편집중국에는 전체 비정규직 가운데 무기계약직이 65%에 달한다.
지난 1월에는 고용노동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고 이들의 처우를 개선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당시 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은 안양우편집중국을 방문한 뒤 "공공부문이 먼저 나서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시정하겠다"며 "공공부문에서 분위기를 조성하면 민간기업 비정규직의 처우도 개선될 것"이라고 밝혔다.
기간제법 그러나 무기계약직 전환 5년, 노동부 발표 후 7개월이 지난 현재 달라진 것은 거의 없다. 무기계약직 6년차인 김 씨는 "무기계약직은 무늬만 정규직이지 2년차이든 15년차이든 여전히 아르바이트생 수준의 기본급을 받고 있다"며 "차이라고는 6개월, 1년마다 계약 갱신을 하지 않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무기계약직은 '무기한 비정규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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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인지 우편집중국에는 '단기 아르바이트생'은 있어도 젊은 직원은 드물다. 김 씨는 "여기서 일하는 절반 이상이 50대로 물러날 데가 없는 사람들"이라며 "젊은 아르바이트생이 오면 젊었을 때 다른 좋은 직장에 취직하라고 권한다"고 씁쓸해했다.
그는 "여긴 2년차나 20년차나 근속수당이 없어서 희망이 없다"며 "우리가 왜 최저임금만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프레시안(김윤나영) |
"처우 낮출 땐 '공무원 규정' 적용, 처우 개선은 '비정규직이라 안 돼'"
정치권에서도 '공공부문 비정규직 철폐' 공약을 앞다퉈 내놓았지만 막상 당사자들은 냉소적이다. 앞서 새누리당은 2015년까지 공공부문의 상시업무에서 비정규직을 전부 정규직(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는 안을 19대 총선공약으로 내걸었다. 민주통합당은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뿐만 아니라 '기간제법 사용사유 제한'을 통해 2017년까지 비정규직 비율을 지금의 절반 수준으로 줄이겠다는 공약을 내놓은 바 있다.
이미 65%가 현행법에 따라 무기계약직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은 어떨까. 2년차 비정규직인 이기범(가명) 씨는 "우리는 공무원이 아닌데도 우정사업본부는 임금을 깎는 등 처우를 낮출 때는 '공무원 규정에 의거'한다면서 처우 개선은 비정규직이라서 안 된다는 식"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예전에는 연장근로를 10분이라도 하면 1시간 시급을 줬는데, 최근에는 30분 시급인 3450여 원(야근수당 1.5배 포함)만 준다"며 "우편집중국에 이유를 물었더니 '공무원 보수 규정에 의거해서'라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설명했다.
지난 2월 고용노동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의 일환으로 우정사업본부가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도 30만 원짜리 복지포인트를 지급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우정사업본부는 비정규직을 '우체국 실손형보험'에 강제로 가입시키고 민간 실손보험에 가입한 비정규직은 6만5000원짜리, 가입하지 않은 비정규직은 13만5000원의 보험료를 차감한 금액을 복지포인트로 지급했다. 비정규직은 "우체국 영업실적을 올리기 위해 벼룩의 간을 빼먹는다"고 반발했지만, 당시 우정사업본부는 "정규직인 공무원의 기준에 준해서"라고 해명했다.
지난해 8월 비정규직노조인 '공공운수노조 전국우편지부'를 만든 이들은 "정규직과 달리 비정규직 가운데는 식사시간이 정해지지 않은 경우도, 물 한 모금 마실 시간이 없는 경우도 있다"며 비정규직의 인권문제를 알리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어릴 때 학교에서 편지를 배달하면 '우체부 아저씨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라고 배우잖아요. 전국의 우편 비정규직 노동자 1만 명이 얼마나 참담한 노동과정을 거치는지 알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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