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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피아 공화국'… 왜 이헌재를 두려워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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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모피아 공화국'… 왜 이헌재를 두려워하나

[인터뷰] 추효현 금융감독원 노조위원장 "금감원 독립, 가능하겠나"

안철수 대통령 후보자가 떠오르면서 다시금 회자되는 인물과 조직이 있다. 이헌재와 '모피아'다. 적잖은 인물들이 안철수 후보자가 책에서 보인 생각과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는 맞지 않는다는 우려를 보낸다. 개혁적 정부로 불리던 노무현 정부 경제정책 실패의 결정적 이유가 모피아 때문이었다는 비판은 옛 정부 출신 인사들 사이에서 정설처럼 거론된 게 현실이다.

모피아는 과거 재무부(MOF)와 마피아(Mafia)를 합성한 말이다. 재무부 출신 경제관료들이 정계, 금융기관 등 다방면으로 뻗어나가면서 그들의 이익, 곧 사익을 위해 국가경제 정책을 뒤흔든다는 비판이 담긴 의미다.

모피아에 의한 대표적 폐해로 꼽히는 게 관치금융이다. 정부가 민간 금융기관, 금융시장에 직접 개입해 시장을 교란하고, 이 때문에 '정금유착'이 일어나 국가경제에 위기가 온다는 논리다. 그런데 관치금융은 사실 어느 나라에서나 일어난다. 시장에 모든 금융기능을 맡겨버리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문제는 관치금융이 아니라 '관치의 실패', 곧 정부 경제정책의 실패를 제 때 막을 기구가 없다는 데 있다.

기구로만 보면 금융감독원이 있다. 금감원은 민간뿐만 아니라 정부 경제정책에 대해서도 경고의 목소리를 내고, 이를 감독할 권한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금감원 직원들은 공무원도 아니다. 그러나 현 체제를 보면, 금융위원회가 사실상 금감원을 장악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직원들이 모피아를 비판하는 데 목소리를 키우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지난 7월 19일 금감원 공채직원 600명은 <경향신문> 5면에 권혁세 금감원장을 비롯한 모피아들을 정면 비판하는 광고를 실었다. 다음 날에는 6개 매체에 광고가 실렸다. 올해 한국을 뒤흔든 저축은행 사태 책임을 모피아가 져야하고, 나아가 이들을 수사해야 한다는 강경한 목소리였다. 금감원은 2000년부터 공채를 시작했다.

▲모피아들의 모임. 지난 24일 오후 서울 JW메리어트호텔에서 '전직 부총리·장관 초청 만찬 간담회'가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 가운데) 주최로 열렸다. 이 자리에는 홍재형·나웅배·강경식·임창렬 전 재정경제원 장관과 이규성·강봉균·진념·전윤철·권오규 전 재정경제부 장관, 박봉흠·변양균 전 기획예산처 장관, 강만수·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 등이 참석했다. ⓒ뉴시스

대통령도 모피아를 못 이긴다

추효현 금감원 노조위원장(공채 2기)은 24일 오후 2시, 금감원 노조사무실에서 <프레시안>과 만나 모피아 청산이 필요한 이유를 한 마디로 정리했다. "모피아를 정리하지 않으면, 어떤 정부가 와도 경제정책은 이들이 원하는 대로 휘둘린다."

대표적 모피아 출신 인물이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다. 황영기 전 KB지주 회장, 강정원 전 국민은행장, 이강원 전 외환은행장, 박종수 금융투자협회장 등은 모두 이헌재 라인으로 꼽힌다. 이들을 비롯해 정치권, 금융권에 진출한 모피아 출신은 손으로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당장 지난 총선 때 모피아 출신인 김진표 민주통합당 의원을 배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범야권에서 상당한 힘을 받기도 했었다.

추 위원장은 "'정권은 유한하지만 모피아는 영원하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라며 "경제관료들이 대통령, 정치인들의 의사결정구조를 왜곡하면, 좌우 막론하고 어떤 정부가 들어오든 모피아의 의도대로 국가 경제정책이 흘러간다"고 강조했다.

새 정부의 인수위가 꾸려지면, 이들은 당장 국가경제 현안에 대한 실무정보 보고를 받아야 한다. 이 보고서는 모두 경제관료들이 작성한다. 모피아에 의한 경제보고가 이뤄지고, 대통령은 이 정보를 토대로 국정운영 계획을 세운다. 이 의사결정구조를 대체할 기관은 없다.

'친시장적'으로 여겨진 이명박 정부가 모피아에 의해 포섭된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 초기부터 공무원들에 대한 불신을 강하게 드러낸 바 있다. 이 대통령은 취임 초기 모피아를 강하게 질책하기도 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달랐다.

과거 김영삼 정부 당시 재경원 차관을 지냈고 1997년 외환위기 책임을 지고 사퇴했던 강만수 산은금융그룹 회장(전 재정부 장관)이 이 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강 전 장관의 직계 후배들은 바로 윤증현 전 재정부 장관, 김석동 금융위원회장 등이다.

강 전 장관은 기존 금융감독위-금융감독원 체제를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으로 변형시켰다. 금융위는 금감위 기능에 옛 재정경제부의 금융정책 기능까지 갖게 됐다. 금융정책과는 옛 재무부의 핵심부서였다. 그리고 재정경제부는 기존의 경제계획에 예산집행기능까지 강화한 기획재정부로 확대됐다.

누가 정부 실패 막을 수 있나

딴 곳도 아닌 금감원에서 모피아를 비판하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는, 금감원과 경제담당 정부부처의 태생적 갈등 때문이다. 금감원은 1997년 12월 국회가 통과시킨 '금융감독기구설치법'에 의해 탄생했다. 금감원의 탄생 자체가 외환위기에 대한 반성, 곧 정부 주도 경제정책 실패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했다. 정부가 갖고 있던 금융감독 권한을 '공적' 민간기구로 떼어내자는 목표였다.

김영삼 정부는 일본 대장성 모델을 따라 1994년 재무부와 경제기획원을 통합한 재정경제원을 만들었다. 그러나 통합에 의한 효율성 강화는 나타나지 않았다. 서로 견제관계에 있던 재무부 관료와 경제기획원 관료들이 한 몸이 되기 시작했다. 모피아가 탄생한 계기다.

특히 감독과 정책기능 통합은 심각한 부작용을 나타냈다. 정부가 주도한 금융정책을 정부가 감독하다보니, 제대로 된 감독이 이뤄지지 않았다. 추 위원장은 "정부 경제부처는 난방 기구다. 불을 피워 방을 따듯하게 하려 한다. 반면 금감원은 냉방을 해야 하는 감독기구다. 그런데 모피아가 금감원을 장악하고 있으니, 계속 불만 떼다 방이 다 타버렸다"고 비유했다.

대표적 실패 사례가 바로 2003년 카드사태와 외환은행 매각 논란, 그리고 최근 불거진 저축은행 사태다.

신용카드 활성화에 의한 내수부양정책은 1999년 당시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정부가 추진했다. 길거리에서, 신용수준이 낮은 대학생에게도 카드가 무차별 발급됐다. 카드 활성화 정책이 절정에 달했을 당시인 2000년 재정경제부 장관이 바로 이헌재다.

금감원은 2001년 5월경, 보고서를 내 카드발급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당시 이윤호 규제개혁위원은 "금융정책 자율성을 살려야 한다"며 금감원 의견을 반박했다. 이 전 위원은 이명박 정부 들어서도 산업자원부(현 지식경제부) 장관을 지냈다.

추 위원장은 "2001년 5월에만 카드 규제를 시작했어도 지금처럼 정부 공식집계 380만 명의 신용불량자가 생기진 않았을 것"이라며 "모피아가 금감원 상층부를 장악하면서, 모피아가 스스로를 심판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지적했다.

외환은행 매각 사태도 마찬가지다. 감독당국이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합병 승인 과정에서 불투명한 논의 끝에 이를 승낙했다는 의혹은 그간 수차례 제기됐다. 당시 이 과정에 참여한 핵심 멤버가 김석동, 변양호 등 모피아의 핵심 인물이다.

저축은행 사태 역시 본질은 카드사태와 마찬가지다. 정부가 저축은행 규제를 대폭 풀어 이들을 키우고, 금감원의 경고를 무시했다. 그 결과 저축은행이 폭발하고 숱한 희생자가 나왔다.

2001년 정부가 상호저축은행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하면서 저축은행은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등 고위험 상품에 대량 투자가 가능해졌다. PF 대출이 위험수위에 이르렀단 경고는 이미 2006년부터 금감원에서 나왔다. 그러나 그 대책은 이명박 정부 들어 활성화된 부실저축은행 인수였다. 규제는 강화하지 않고 저축은행들을 무리하게 살리려던 과정에서 2008년 금융위기가 터졌다. 그 이후 문제가 폭발했다.

▲추효현 금융감독원 노조위원장. 통합공채 2기인 추 위원장은 공채 기수들의 모피아 비판 신문광고를 기획하기도 했다. ⓒ프레시안(최형락)

모피아부터 쳐내라

이 때문에 금감원 직원들은 차기 정부가 금융감독의 독립성을 강화해, 경제정책도 3권 분립을 확실하게 이뤄야 한다고 강조한다.

현재도 경제정책은 기획재정부(경제정책)-한국은행(통화정책, 거시건전성 관리)-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금융감독)으로 나뉘어있다. 그러나 형식적일 뿐이다. 김중수 총재가 들어온 한은은 다시금 정부와 보조를 맞추고 있다. 금감원은 애초에 정부의 통제 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특히 금융감독 업무는 현 금융위 체제 이후 갈수록 정부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다. 금융위 산하 단순 업무를 보던 사무처가 갈수록 비대해져, 현재는 금감원과 거의 동일한 비중으로 감독업무를 수행하기 때문이다.

추 위원장은 "차기 정부는 금융위 사무처와 금감원으로 이원화된 감독업무부터 통합하고, 금감원에 대한 모피아의 지배력을 차단해야 한다"며 "한국의 역대 어떤 정부에서도, 관료로부터 독립한 금융감독이 행해진 적이 없다. 한은이 '남대문 출장소'였다면 금감원은 모피아의 '여의도 출장소'"라고 강조했다.

결국 단순한 조직 분리로는 모피아의 뿌리 깊은 영향력을 차단할 수 없다는 의미다. 금융조직 개편과 함께, 청와대 내에서도 모피아의 목소리를 차단할 조직을 구축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대표적인 대체 방안이 미국의 예산관리국(OMB) 모델이다. OMB는 대통령 직속 정부기구로, 정부의 어느 부서에도 속해있지 않다. 이 때문에 대통령은 각종 경제정책을 결정할 때 경제부처와 OMB에서 올라온 두 가지 내용의 보고서를 보고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대규모 정부 조직 개편이 필요하고, 장기간에 걸친 인적 물갈이가 필요하다.

청와대 내에 복수의 경제정책팀을 운영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당장은 청와대 조직부터 개편해 대통령이 모피아의 일방적 의견에만 노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논리다. 즉, 모피아 출신이 들어오기 마련인 경제팀과 별도로, 한국은행, 민간, 금융감독원 등에서 들어온 '제2의 경제팀'을 구성해 상호 견제가 가능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추 위원장은 "어떤 식으로든 각 경제부처 간 상호 견제가 필요한 것 아니냐"며 "경제정책도 '3권 분립'처럼 상호 견제가 이뤄져야만 모피아로 대표되는 경제관료의 일방독주를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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