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살인, 강도, 성폭행, 방화 등의 강력 범죄 발생건수는 2000년 1만3,806건에서 2010년 2만5,771건으로 크게 늘어났다. 10년 사이에 86.6%나 늘어난 것이다. 지난 5월 이후 100일 동안에 서울 강북지역의 한 영구임대아파트에서는 6명의 주민이 잇달아 자살했다. 그리고 정리해고와 노동유연화 문제로 우리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쌍용자동차의 해고노동자들 중 22명이 이미 연쇄적으로 자살을 선택했다. 2000년도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13.6명이었는데, 2010년도에는 이게 31.2명으로 10년 사이에 2.3배나 늘었다. 2000년 OECD 평균 자살률은 12.9%였고, 우리나라는 13.6%로 엇비슷하였는데, 이게 10년 만에 전자는 11.3%로 줄었고, 후자는 31.2%로 2.3배나 늘었다.
'안철수 현상'이란 무엇인가?
진보와 보수, 여와 야를 막론하고 우리나라에서 지난 15년에 걸쳐 신자유주의 양극화가 구조화되었다는 데 대해 이견을 다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리고 2008년은 신자유주의의 핵심인 금융자본주의가 위기를 맞았고, 이로 인해 초래된 세계적 경제위기와 재정위기는 지금까지 전 세계적 수준의 불황으로 이어지고 있다. 2008년의 금융위기 이후, 주요 국가들에서 신자유주의의 실패와 극복이 논의되는 가운데서도, 이명박 정부만은 신자유주의의 교조적 정책인 '감세와 규제완화'를 다수 국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행하였다. 이후 우리사회의 양극화와 민생불안은 더욱 심해졌다. 행복한 삶은커녕,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삶을 더 이상 이어가기도 힘들어진 사람들의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이에 대해, 도올 김용옥 교수는 '안철수 현상'을 두고 "고난에 빠진 민중이 어찌해볼 도리가 없어 내는 처절한 소리"라고 말했다. 정확한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승자독식의 신자유주의 양극화 사회가 초래한 민생불안을 온몸으로 돌파하며 살아내기가 너무 어려운 나머지, 우리 민중들이 어찌해볼 도리가 없어 내고 있는 처절한 비명소리가 바로 '안철수 현상'인 것이다. 안철수 교수 스스로는 그의 저서 <안철수의 생각>에서 '안철수 현상'을 "사람들 눈에 '구체제'라고 느껴지는 것들, 즉 국민의 생각을 반영하지 못하는 정당과 계층이동이 차단된 사회구조, 빈부격차가 심화되는 경제시스템 등을 극복하고 희망을 줄 수 있는 '미래가치'를 갈구하는 민심"이라고 정의했다. 결국, 김용옥 교수의 그것과 같은 말이다.
'안철수 현상'의 구조적 원인과 정치사회적 배경
1936년 케인스 경제학이 탄생하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복지국가의 건설이 본격화되면서 유럽의 주요 국가들에서는 중산층의 위대한 새 시대가 열렸다. 미국의 사례를 살펴보면, 중산층의 시대였던 1970년대 초반까지 약 30년에 걸쳐 미국 국민의 실질소득은 두 배로 늘어났고, 소득의 분배가 크게 개선되어 평등과 정의의 가치가 정치사회적으로 높게 구현되고 있었다. 그러나 1980년 이후 지난 30년 동안에는 미국 국민의 실질소득은 겨우 10% 증가하는 데 그쳤고, 분배는 크게 악화되어 1929년 대공황 직전의 전형적인 양극화 사회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1980년 레이건 집권 당시의 최고 소득세율 70%는 계속 낮아져서 지금은 반 토막이 나 있고, 규제완화도 계속되었다. 그럼에도 지금 미국의 중산층은 세금을 더 줄이자고 아우성이고, 시장의 실패는 더욱 뚜렷해졌다. 2008년 이후에는 신자유주의가 구조적으로 위기를 맞았다.
우리나라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성립된 국가들 중에서 1960년대 중반부터 추진된 '산업화'가 성공한 몇 안 되는 나라에 속한다. 그리고 1980년대 후반부터 제도화된 민주화가 1990년대를 지나면서 뿌리를 내렸다. 우리나라는 지난 40년에 걸쳐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문 자랑스러운 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자 김영삼 정부가 추진하였던 1994년의 금융자유화 조치 이후 지속적으로 진행된 개방과 대책 없는 규제완화가 시발점이 된 '1997년의 IMF 경제위기' 대응체제가 우리 경제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을 요구하였다. 이후 우리나라 경제체제는 승자독식의 시장만능주의 구조를 확립하게 되었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결과, 우리나라 경제사회구조는 양극화 체제를 확립하게 되는데, 대기업 중심의 산업구조와 설 자리를 잃어가는 중소기업, 단기적·투기적 금융자본(금융시장) 구조와 산업자본과의 관계를 설명하는 주주자본주의(과잉금융자본주의), 노동시장의 양극 고착화 구조와 낮은 이동성, 비정규직의 과잉과 차별, 지식노동자와 단순노동자 간의 격차, 수출경제와 내수경제의 분리, 서울과 지방간의 격차, 감세 지향성과 약한 누진성을 특징으로 하는 양극화 방치형의 신자유주의 조세제도 등이 이를 잘 설명해준다. 이러한 양극화 체제는 일자리의 약 87%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을 구직자들이 가기 싫어하는 일자리로 만들어 버리고, 고용 없는 성장과 함께 산업자본의 투자부진으로 인한 일자리 축소를 초래하고, 결과적인 소득불평등의 심화와 민생의 전반적 불안을 초래하게 된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과거 박정희의 발전국가 시기부터 계속 되어온 우리나라 복지체제의 문제다. 우리나라 복지체제는 미국식의 잔여주의 선별적 복지시스템인데, 노동능력이 없는 극빈계층을 소득 및 자산조사를 통해 선별하여 이들에게만 최저생계를 보장해주는 방식을 중심으로 한다. 그나마 1989년 전체 국민을 대상으로 의료보험제도를 실시하였는데, 이는 당시까지 초등학교 의무교육을 제외하면 외형상으로나마 유일한 보편적 복지제도였다. 1997년 경제위기 이후 들어선 김대중 정부는 IMF와 미국이 제시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라도 복지체제를 강화하지 않을 수 없었으므로 위기 상황에서 대통령에게 주어진 전제적 권력과 국민적 지지를 바탕으로 통합 의료보험제도인 현행 국민건강보험을 달성하였고, 국민연금과 고용보험을 포함한 소위 4대 사회보험체계를 확립하였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우리나라의 사회보험은 빈약한 보장성과 광범위한 사각지대라는 결정적인 결함을 갖고 있어 '제대로 된 보편주의 복지제도'를 구현하지 못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보육, 교육, 의료, 요양 등의 사회서비스도 복지국가의 기준에서 보면 많이 부족하거나 부실하여 실질적인 보편주의에는 크게 못 미치고 있다. 즉, 지난 15년에 걸쳐 우리나라 경제체제는 구조적으로 양극화되었고, 복지체제는 과거의 잔여주의 선별적 복지를 고수하고 실질적 보편주의를 추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경제민주화를 통한 '공정한 경제'와 정부의 적극적 재정투입을 통한 '보편적 복지'가 가져다 줄 차별과 격차가 적고 평균적으로 좋은 일자리 구조, 기회의 균등과 패자부활의 보장, 사회경제적 안정, 인적 자본과 사회적 자본의 더 나은 축적 등의 기회를 지속적으로 놓쳐 왔다.
이는 결국 성장잠재력의 약화와 함께 혁신동력의 지속적 창출이 어려운 경제구조의 형성으로 이어졌고, 국민 개개인의 삶을 전반적으로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이것이 우리네 민생을 불안하게 만든 것이다. 이러한 신자유주의 양극화의 결과 노동자와 서민의 생활이 갈수록 어렵게 되고, 중산층까지도 불안에 만성적으로 노출되는 소위 '범 불안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2007년 이후 이것을 <5대 불안>으로 정식화하여 사용하고 있는데, 일자리 불안, 보육과 교육 불안, 주거 불안, 노후 불안, 의료 불안이 그것이다. 특히, 2008년의 세계적 금융 및 경제 위기 이후에도 '토건+신자유주의'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였던 이명박 정부의 총체적 실패로 인해 우리사회의 양극화와 민생불안은 더욱 심화되었다.
'안철수 현상'의 올바른 해법 : 삼위일체의 접근법
나는 앞서 '안철수 현상'을 현재의 신자유주의 양극화와 민생불안이라는 '구체제'를 넘어 '복지국가'의 새 시대로 나아가자는 국민적 기대와 열망이라고 했다. 우리가 이를 올바르게 실현하기 위해서는 '삼위일체'의 각별한 노력이 요구된다. 첫째는 복지국가의 담론과 정책의 실천이고, 둘째는 복지국가 건설과정에서 국민의 적극적인 참여이고, 셋째는 정당의 혁신과 복지국가 정당정치의 실현이다. 이 중에서 어느 하나라도 해 내지 못하거나 부실해지면 올바른 해법이라고 할 수 없게 된다. 이들 제도적 과제의 달성에서 다소의 시차가 있을 수는 있겠으나 반드시 동시에 추진되어야 한다.
첫째, 복지국가의 담론 및 정책과 관련해서 나는 '역동적 복지국가의 논리와 전략(밈 출판사, 2010)'이나 '복지국가의 길을 열다(밈 출판사, 2011)'에서 자세하게 소개한 바 있고, 각종 기고 글에서도 충분히 설명하였으므로 이를 참조하시길 권한다. 다만, 여기에서는 '역동적 복지국가'를 위한 10대 정책을 소개하는 것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1) 0세에서 5세까지의 모든 아동들에게 월 10만원의 아동수당을 지급한다.
(2) 모든 아이들을 육아지원시설에 안심하고 맡길 수 있도록 하고, 여성의 '일-가정 양립'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한다.
(3) 초, 중, 고등학교의 교사 수를 늘려 모든 학교를 혁신학교 수준으로 만들며, 학교 폭력과 왕따를 해결하고 사교육비 부담이 없도록 한다.
(4) 생활비를 포함하여 대학등록금 '무이자 완전 후불제'를 실시하여 대학생들이 마음 놓고 공부할 수 있도록 교육 기회의 실질적 평등을 보장한다.
(5) 모든 병원비를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해결하도록 한다.
(6) 주거의 제공을 국가의 기본 의무로 규정하여, 공공임대주택 확대와 월세 지원 등으로 국민들의 주거비 부담을 해소한다.
(7) 모든 어르신들에게 기초노령연금을 지금의 두 배로 지급하고, 노인 일자리를 확충한다.
(8) 비정규직 비율을 절반으로 감축하고,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철폐한다.
(9) 최저임금을 전체 노동자 임금의 절반 수준으로 인상하고, 실업부조를 도입하며, 고용보험의 사회안전망 기능을 대폭 강화함으로써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한다.
(10) 복지국가의 '공정한 경제' 실현을 위한 실질적 경제민주화 조치를 추진한다.
지난 8월 새누리당의 공식 대선 후보가 된 박근혜 의원이나 9월 16일 민주당의 공식 대선 후보가 된 문재인 의원이나 모두 우리 복지국가소사이어티가 지난 5년 동안 일관되게 주장해온 '역동적 복지국가'의 기본원리, 즉 일자리를 매개로 한 '경제-복지의 유기적 통합체 논리'를 채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야 정치권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복지국가의 담론과 정책 부분에서 여야 정당들이 엇비슷하게 수렴되고 있는 최근의 현상은 여야 정당들이 시대정신으로 자리 잡은 '복지국가'라는 과제를 올바르게 인식하고 있다는 강력한 증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는 이후의 '복지국가 정치과정'에서 지속적으로 복지국가 건설을 놓고 벌이는 정책경쟁과 상호협력, 즉 '복지국가 정당정치'를 위한 하나의 여건이 형성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이들 여야 정당과 주요 경선후보들이 내세우는 정책들의 진정성을 의심하고 있다. '진정성' 없이 득표를 위해 내세운 정책공약은 사실상 국민을 속이는 '구체제'적 정치행위이다. 이러한 행위들이 그동안 국민으로 하여금 기성 정당들을 불신하게끔 만든 중요한 원인임을 명심해야 한다. 정책의 진정성 문제는 그 정책들을 구현할 수단과 방법을 잘 제시하는 데 달려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재원조달 문제다. 가령, 지금의 국민건강보험 보장성 60% 수준을 그대로 둔 채 늘어나는 의료비 지출을 적절하게 통제하겠다는 '의료재정체계의 매우 제약된 공공성'에다, 실손 민간의료보험의 활성화를 통해 '공공-민간'의 이중적 재원조달체계를 가져가겠다면, 이 정책 공약에서 '진정성'의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건강보험 하나로> 병원 입원 의료비의 90% 이상을 보장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면, 필요재원의 규모와 재원조달의 방법을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
지금의 시장만능국가를 복지국가 대한민국으로 바꾸는 큰 개혁을 단행하려면 더 많은 정부재정이 필요하다. 정부의 크기가 지금보다 훨씬 더 커져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는 국민부담률이 GDP 대비 25% 정도인데, 이는 OECD 국가들 평균인 35%에 비해 10% 포인트나 낮은 것이다. 조세부담률도 우리나라는 GDP 대비 19.3%에 불과한데, 이는 OECD 평균 25.6%에 비해 6%포인트 낮다. 대한민국은 지금 주요 국가들 중에서 세금을 가장 적게 내는 나라다. 우리나라가 장차 OECD 평균 수준의 복지국가를 달성하려면, 국민의 부담도 그에 따라가는 게 정석이다. 복지국가는 좋은데, 국민부담은 싫다는 건 집단적인 기만행위에 다름 아니다. 말로는 공공성을 외치면서 국민의 조세와 사회보장 기여금 부담에 대해서는 입을 다무는 것 또한 자신과 국민을 속이는 행위이다.
그런데 이러한 정직하지 못한 '구체제'의 정당정치가 지금도 판치고 있다. 화려한 미사여구의 국가비전과 정책공약들만 있을 뿐, 책임성 있는 재원조달 방안이 없다. 여기에 대해서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여야가 마찬가지이다. 그동안 내가 '복지국가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방법으로서의 보편적 증세'를 주장할 때, 정동영 전 의원 등 극소수의 정치인들을 제외한, 여야 정치인들 대부분은 신자유주의 정치의 과잉에 사로잡혀 '표' 떨어질까 두려운 나머지 증세를 반대하거나 소극적으로 일관했었다. 그런데 안철수 교수는 달랐다. 안철수 교수는 <안철수의 생각>에서 복지국가를 위한 '보편적 증세'가 옳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그런데 사실, 이건 상식이다. 몰상식의 세계에서 상식이야말로 "국민을 설득하는 큰 울림"으로 작용한다. 나는 상식이야말로 신자유주의에 물든 낡은 정치의 오랜 관성, 즉 '구체제'를 극복하는 강력하고 진보적인 무기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둘째, 국민의 적극적인 참여이다. 복지국가 건설과정에서 다수 국민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이게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말한 "깨어 있는 시민"의 힘이다. 이를 위해서는 시민사회의 소통이 확산되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승자독식의 신자유주의가 지배하고 있는 우리사회에서는 공동체가 죽어가고 있고, 시민사회 내부에서도 제대로 된 소통의 구조가 막혀 있다. 정당정치와 보통사람들 사이의 소통도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이 '안철수 현상'을 초래한 중요한 요인의 하나이다. 나는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의 상임운영위원장으로서 지난 2년 동안 '모든 병원비를 건강보험 하나로' 해결하자는 시민운동을 해왔다. '건강보험 하나로' 강연과 회의를 위해 전국을 다녔다. 언론에 많은 칼럼을 기고했고, 좌담 등을 기획하며 '건강보험 하나로' 정책을 알렸다. 이런 게 소통을 통한 '더 내기 운동'이자, 결국 복지국가 건설과정에 국민의 적극적인 참여를 견인하는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실, 이건 우리사회가 장차 감당해야 할 소통의 큰 과제에 비해 보면, 빙산의 일각처럼 작은 것일 수도 있다. 앞으로의 복지국가 건설과정에서 시민사회 내부에서 '더 넓고 깊은 소통'이 이루어져야 하며, 이는 국민과 복지국가 정부 사이의 소통, 그리고 국민과 복지국가 정당정치 사이의 소통과 함께 가야 한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소통과 참여의 원조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참여정부'이다. 출발점에서는 명백하게도 그랬다. 하지만, 차츰 그 빛이 바랬고, 이후에는 이전 정부들과 별 다름이 없이 임기를 마쳤다. 그리고 지난 5년 동안 이어진 불통과 일방주의는 우리의 소중한 공동체를 숨 막히게 몰아갔다. 그래서 우리 국민은 소통과 참여를 갈망한다. 그런데 소통과 참여의 구조 자체가 지금은 막혀있고 파괴되어 있다. 이것 없이 역동적 복지국가의 건설은 불가능하다. 이를 복구하고, 정상화하려는 치열한 노력이 요구된다. 이런 과제에 대해 <안철수의 생각>은 매우 진취적이고 적극적이다. 나는 이후 범야권 대선 후보들 간의 치열한 경쟁 과정에서 복지국가 건설을 위한 국민적 소통과 참여가 확산되길 기대한다.
셋째, 기성 정당의 혁신과 복지국가 정당정치의 확립이다. 얼마 전에 함세웅 신부는 한 방송에서 "안철수 현상은 기존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표출된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 부분에 대한 미래비전이 없으면 대한민국은 절대로 복지국가로 나아가지 못하며, 언제까지나 신자유주의 시장만능국가의 주변을 빙빙 돌뿐이다. 대한민국이 복지국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기성 정당의 본질적 혁신과 함께 정치제도 자체의 개편을 추진해야 한다. 지역구에 기반을 둔 현재의 '소선거구 다수대표제' 국회의원 선출제도는 보편주의 복지국가에 부합하도록 정책을 장기적으로 기획하고 운영할 만한 인재들이 정치권에 안정적으로 참여하고 '합의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데 있어 뚜렷한 한계를 가진다. 다양한 이해를 대변할 수 있는 다수의 정당들이 원내에 진출하여 상시적으로 복지국가 정책 연합을 추진할 수 있도록 해야 정권의 향배와 상관없이 복지국가 건설을 위한 안정적 정책 추진이 가능해진다.
이를 위해, 우선 이번 대선을 계기로 여야 정당과 주요 대선 후보들이 모두 비례대표 의석을 기존의 54석에서 최소 50석 이상 더 늘리고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데 합의해야 한다. 민주당과 진보정당들과 시민사회의 제 세력들 간에 이러한 복지국가 정당정치 개혁에 대한 합의가 도출되면, 대선 승리의 기운은 한층 더 높아질 것이다. 이와는 별도로 민주당 등 기존의 정당을 본질적으로 개혁하고 국민의 참여를 넓히는 작업은 계속되어야 한다. 하지만, '합의제 민주주의'를 달성할 수 있는 큰 틀의 정치제도 개혁 없는 정당개혁은 상당한 한계를 노정할 것이 분명하다. 여기에 대해서는 민주당도 논리적으로는 지난 총선을 앞두고 찬성한 바 있으나, 진정성이 없었기에 지금은 사문화되어 있다.
이에 대해 안철수 교수는 '합의제 민주주의'와 소통과 합의의 정치에 대한 견해의 일단을 <안철수의 생각>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소통과 합의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미래사회, 복지사회를 이룬 나라들을 봅시다. 스웨덴은 진보정권인 사민당이 정권을 잡았을 때 야당과 대화를 통해서 사회적 대타협을 이뤄 복지국가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또 독일은 보수당인 기민당이 집권한 후 야당과 힘을 합쳐 복지국가를 만들었죠. 선진국들의 경험을 보면 복지국가는 정치사회세력 간에 대립이 아니라 소통과 합의가 이뤄져야만 가능하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90쪽)." 나는 이후 야권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이 문제는 반드시 심도 깊게 논의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오늘날 민생이 이렇게 불안해진 핵심적인 이유는 당연히 신자유주의 양극화다. 특히 2008년 이후의 '신자유주의 자체의 위기'가 세계적 금융 및 경제 위기로 뚜렷하게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의 낡은 교조를 고집한 현 정부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민주정부 10년도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나는 여기에서 민주당의 책임을 강조하고 싶다. 말로만 복지국가를 외쳤을 뿐이며, 이러한 수사적 구호로 정치적 이득만 챙기며, 국민적 열망과 동떨어진 기득권 정치집단으로 전락한 것은 누가 시켜서 한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가 그렇게 한 것이었다. 이건 "고난에 빠진 민중이 내는 처절한 소리"에 대한 배신이었다. 그래서 지난 4.11총선에서 패배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민주당의 패권적 기득권 행보는 멈추지 않았다. 민주당의 이러한 낡은 정치가 바로 <안철수의 생각>에서 언급된 '구체제'에 다름 아니란 게 나의 생각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 국민은 안철수 교수를 '새누리당'의 대안이 아니라 혁신에 실패한 '민주당'의 대안으로 간주하고 있다. 결국, '안철수 현상'은 대선 이후 민주당 등 범야권의 발본적인 혁신과 새로운 복지국가 정당정치의 질서를 창출하는 데까지로 이어질 수밖에 없음을 예고하고 있다. 나의 이러한 주장이 옳다면, 민주당의 공식 대선후보로 확정된 문재인 후보는 이미 구체제의 한 축으로 간주되고 있는 '민주당'을 어떻게 근본적으로 혁신할 것인지, 그리고 장차 복지국가 정당정치의 제도적 조건을 어떻게 갖춰나갈 것인지에 대한 방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그럴 경우에라야 어떤 식으로든 안철수 교수와 함께 대선을 치룰 조건을 갖추게 되는 것인 바, 이게 바로 우리 국민이 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대정신을 읽고 실현방안을 찾아내는 것도 쉽지 않지만, 그것을 달성하는 것은 온 몸을 던지는 희생과 헌신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 또한 확실해 보인다. 나는 다가오는 대선에서 우리 국민이 '역동적 복지국가'를 힘차게 열어갈 이런 대통령을 선택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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