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미국 플로리다주에서는 공화당 전당대회가 열렸다. 11월 대선을 향한 후보지명과 정책 제시, 그리고 지원 연설과 수락 연설로 이어졌다. 치열한 당내경쟁 끝에 승리한 밋 롬니가 대통령 후보로, 그리고 러닝메이트로 폴 라이언 부통령 후보가 공식적으로 출범했다.
롬니 진영은 전당대회 내내 자신이 얼마나 공화당적이고 보수적인지, 이른바 선명성을 드러내기 위해 온 힘을 기울였다. 당내 경선 과정에서도 조직과 자금, 대선 경쟁력의 우위는 부각됐지만, 이념적 성향에 대한 내부비판이 발목을 잡았었다. 사실 경쟁력 있는 후보가 부재한 상황에서도 승리가 쉽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당 안팎에서 롬니의 중도성향에 대한 의심 때문이었다. 그는 2002년 메사추세츠주 주지사선거에서 자신을 중도적이며 진보적이라고 주장했었다. 민주당 우세지역에서 승리하기 위한 전략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주지사 재임 시절에도 공화당이 정권을 차지할 경우 반드시 폐기하겠다고 공언한 오바마의 의료보험 개혁과 매우 유사한 개혁을 시행했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1994년 상원의원 선거전에서 낙태를 찬성했던 전력도 있다.
이를 의식하고 있는 롬니의 전략은 명확한데, 중도 성향의 자신을 감추고, 보수의 깃발을 높이 드는 것이다. 국내적으로는 친기업적 감세정책을 통한 경기부양과, 연방정부 예산 감축을 통한 재정적자 해결이다. CEO 출신이라는 이력에다, 러닝메이트로 선택한 폴 라이언은 가장 공화당적인 경제전문가이며, 오바마의 경제정책을 강력하게 비판해 온 인물이다. 대외정책에서는 더욱 더 보수·강경노선을 시사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민주당 출신으로는 드물게 외교 분야에서의 성공을 거둔 반면, 자신과 러닝메이트가 공히 외교 무경험자라는 약점을 극복하기 위한 전략이다. 오바마의 '저자세 유화외교'로 인해 미국이 '글로벌 호구'로 전락시켰다고 질타하면서 미국의 힘을 되찾아오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 밋 롬니 미 공화당 대선후보. ⓒAP=연합뉴스 |
롬니 안에 레이건 있다!
현재 미국의 보수층이 가장 존경하는 리더십은 레이건 대통령이다. 당내 경선 중에도 모든 주자들이 레이건과의 공통점 만들기에 골몰했고 롬니도 예외가 아니었다. 대통령 후보로 지명된 지금 더욱 노골화하고 있는데, 상황도 정책도 그리고 결과도 모두 재현하기를 염원한다. 카터 대통령은 이상주의 및 도덕외교를 내세우며 미국이 냉전 프레임에 갇혀서 저질렀던 비도덕적 대외정책을 반성했었다. 오바마가 부시 대통령 재임기간의 일방주의와 군사주의에 대해 중동과 세계에 대해 사과하면서 국제적 신임을 회복하려 했던 것과 유사하다. 그러나 공화당은 카터의 외교가 미국을 국제사회의 조롱거리로 만들었던 행태를 오바마가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고 맹공을 퍼붓는다. 1970년대 말 경제 불황도 극복하지 못하고, 소련에 대한 긴장완화정책이 아프가니스탄 침략으로 되돌아오게 만듦으로써 재선에 실패했다고 주장한다.
이라크 철군,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알카에다 세력의 무력화, 미러 핵무기 감축 협정 등 현 정부가 달성한 굵직한 외교실적이 국민들에게 폭넓은 인정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롬니의 이러한 공세는 효과가 크지 않으리라는 분석도 많지만, 롬니는 레이건 닮기를 멈출 생각은 없어 보인다. 얼마 전 롬니가 지난 수년 동안 미국의 가장 큰 위협은 러시아라고 주장했다가 국제상황을 제대로 읽지 못한다는 비판을 자초했는데, 어찌 보면 레이건 닮기에 집중하다가 생긴 실수가 아닌가 한다. 마지막까지 경쟁을 벌이던 깅그리치와 지난 대선의 공화당 후보 매케인, 그리고 부시 행정부의 외교수장이었던 라이스까지 한 목소리로 롬니를 레이건 시절의 미국으로 데려가줄 사람으로 추켜세웠다. 이런 가운데 롬니가 가장 원하는 바는 아마도 레이건의 대선결과일 것이다. 레이건은 공화당전당대회 이전까지 9퍼센트 가까이 카터에게 뒤지고 있다가 역전극을 이뤘다.
롬니 안에 한반도 평화 없다!
롬니가 닮으려는 레이건은 알다시피 1970년대 데탕트 기간을 종식시키고 신냉전을 불러오면서 국제정치에 긴장을 조성했던 인물이었다. 물론 소련이 1979년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함으로써 빌미를 주었으나, 기다렸다는 듯이 소련과의 대결구조를 만들며 대내외적 입지를 구축한 사람이다. 소련을 악의 제국으로 부르며 위기국면을 조장함으로써 군수산업을 부흥시켰으며, 이를 통해 미국의 패권을 부활시켰다. 그의 전략은 동북아에서도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일본 군국주의의 부활의 길을 열어주었으며, 한국의 전두환 독재정권을 지원했다. 미국의 필요를 위해 동북아에 긴장이 조성되었으며, 한·미·일 삼각동맹의 의도를 내비친 것도 바로 이때였다.
롬니는 이를 벤치마킹하듯이 '중국 때리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공화당 대선캠프의 홈페이지는 대중무역관련 공약에서 중국에 대한 적대감을 공공연하게 표현하고 있으며, 중국이 이웃나라를 지배하려는 시도를 적극적으로 막겠다는 뜻을 강력하게 밝혔다. 중국이 민감하게 여기는 인권문제에도 가차 없이 비판한다. 중국도 이에 질세라 롬니를 향해 시대에 뒤떨어진 냉전정신이며, 자신의 문제를 중국 탓으로 돌리는 행위라고 즉각 대응했다.
공화당 정부가 들어서면 대북봉쇄노선 역시 한층 강화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미국 행정부의 이념성향이 대북정책을 결정하고, 그 결정된 대북정책이 한반도의 미래를 좌우할 것인데, 롬니 측은 북한을 악의 축이나 깡패국가로 인식하며, 금융제재를 포함해서 압박수위를 높일 것을 여러 차례 예고해왔다. 연초 오바마가 대북문제의 새로운 돌파구로 삼고 시도했던 식량지원을 대화를 구걸하는 뇌물제공행위로 규정했었다. 또한 6자회담의 필요성에 의문을 갖고 있으며, 북한의 필연적 붕괴를 믿고 있다는 점도 그의 당선이 동북아 및 한반도 평화와는 다른 양상을 띠게 만들 것임을 예고한다. 재선을 위해 오바마 역시 최근 우클릭하며 애국심마케팅에 나선 것도 사실이지만, 롬니가 집권할 경우 동북아 신냉전의 가능성은 한층 가시권에 들어올 것이다.
박근혜 안에 롬니 있기? 없기?
지난 15년간 한미양국 정부는 이념적으로 엇갈리는 조합을 가져왔으며, 이로 인해 북핵 및 한반도문제를 놓고 많은 혼란을 겪어야했다. 진보정권 10년은 부시 정권 8년과, 이명박 정권은 진보적인 오바마 정권과 대비되었다. 한반도의 평화적 미래를 위해서는 미국은 정권유지를, 한국은 정권교체를 이루는 것이 그 반대의 경우보다는 훨씬 바람직하다. 물론 오바마 1기가 북한문제해결에 대한 우리의 기대를 상당부분 저버린 것은 사실이지만,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롬니의 등장은 문제 해결은커녕 훨씬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현재 롬니 후보는 우클릭을, 박근혜 후보는 좌클릭으로 원래의 이념성향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표를 더 얻기 위한 전임 정권에 대한 반발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지만, 롬니는 정권 탈환을 위해 보수색채를, 박근혜씨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전임정권과 차별화하며 진보색채를 덧입히고 있는 것이다. 판세에 있어서는 박근혜 후보는 훨씬 앞서 있다가 격차가 좁혀지는 상황인 반면, 롬니는 지금까지 거의 이기지 못하다가 최근에는 박빙이다.
이러한 선거 전략이 만약에 당선이 된다면 어떻게 정책으로 구현될까? 롬니는 일시적인 선거전략이어서 당선이후에는 원래의 성향이 되살아나기를 바라고, 박근혜의 경우에는 현재의 변화가 그대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그런데 그럴 가능성이 크지 않다. 롬니는 재선을 위해 더욱 강경드라이브를 할 것이고, 박근혜 역시 그를 둘러싼 우파의 거센 압력을 이겨낼만한 동기를 찾기 힘들다. 특히 그가 보여준 5.16군사쿠데타에 대한 역사의식, 그리고 측근의 유신 옹호발언 등은 현재의 모습이 선거를 위한 표피적 변화일 뿐, 진정한 변화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몸을 덮으면 다리가 드러나고, 다리를 덮으면 다시 상체가 드러나는 천 조각과 같다. 가리지 못하는 천 조각인 것은 독재자의 자녀라는 연좌제적 시각 탓이 아니다. 퍼스트레이디로 적극적으로 독재정권에 참여했었고,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이 참여한 역사의 오점에 대한 반성이 없다는 점 때문이다. 그럼에도 국민들은 박근혜에게 한국의 향후 5년을 맡길 수 있다. 그것이 정치이니까…. 하지만 역사관의 본질이 변함이 없고, 그 주위에 포진한 인사들의 역사의식이 거기에 머문다면 우리 민족의 평화적 미래가 또 다시 미뤄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 진정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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