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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이들 비명 위로 폭격, 33만명의 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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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이들 비명 위로 폭격, 33만명의 지옥

[아시아생각] 모두가 침묵했던 학살, 스리랑카의 킬링필드

"비디오 찍지 말고 어서 벙커로 들어오라고! 그걸 찍어 (대체) 뭘 하려는 거야? (어차피) 저들은 우릴 전부 죽이고 있는데…"

화면 속 한 여인이 카메라맨을 향해 흐느낀다. "아빠~"를 부르며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의 소리를 타고 "신이여, 제발 아이들을 구하소서…"라는 여인의 처절한 기도가 흐른다. 그러나 기도는 폭격 소음에 놀라 "엄마~"를 지르는 아이의 비명에 묻히고 만다. 깊이 1m나 될까? 허공 뚫린 벙커 안으로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몸을 구겨 넣고 있다. 벙커는 지금 생존 구덩이가 되고 있다.

▲ 대량 총살 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시체들과 정부군. 일부 정부군은 휴대폰 촬영 중이다. 이렇게 촬영된 학살 가담자들의 영상 및 사진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숨기고자 했던 '스리랑카 킬링필드' 진실 한 토막이 세상에 알려지는 데 기여했다. <스리랑카의 킬링필드> 화면캡처.

'엄마', '아빠' 비명소리와 폭격음이 범벅된 이 화면의 정체가 궁금할 테다. 바로 2009년 초 스리랑카 내전 막바지 이 섬나라 북부에서 벌어진 학살의 한 순간이자, 지난해 6월 영국 <채널4> 방송이 방영한 다큐 <스리랑카의 킬링필드>의 한 장면이기도 하다. 그 킬링필드에서 비명횡사한 타밀족들. 그들은 엄마를 '엄마', 아빠를 '아빠'라 부른다.(*타밀족 언어와 한국어 사이에는 유사성이 많다. 편집자)

"우린 누가 이 장면을 찍었는지 모른다. 아마 (반군) 카메라맨일 수도 있고, 그냥 민간인일 수도 있다. 그게 누구건 당시 카메라를 든 이는 이 장면을 기록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아주 잘 인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다큐 내레이션을 맡은 <채널 4> 메인 앵커 존 스노우의 말이다.

목격자 없는 전쟁

수많은 분쟁지역 뉴스가 국제면을 들고 난다. 최근엔 시리아가 그렇듯 이런 뉴스들은 거의 늘 외신의 '톱'(top)으로 대우받는다. 아프리카 분쟁이 아니라면 대체로 그렇다. 그러나 스리랑카 내전은 예외가 아니었나 싶다. 전쟁 폭력의 규모와 정도로 보건대 전쟁 막바지 뿜어나오던 반인류 범죄는 그만한 뉴스가치를 인정받지도, '인도주의적' 국제사회의 공분을 사지도 못했다. 아니, 국제사회의 침묵과 '테러리스트' 반군 전멸이라는 암묵적 동의가 있었기에 가능한 학살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침묵의 카르텔 틈새를 파고들어 학살의 진실을 쏟아낸 게 다큐 <스리랑카의 킬링필드>다. 그 진실을 이해하기 위해 잠시 내전의 과거로 돌아가 보자.

스리랑카 정부가 유엔과 구호단체들에게 '북부를 떠나라'고 명한 게 2008년 9월이다. 도로를 막아선 주민들의 시위를 뒤로한 채 정부의 소개령에 응하던 유엔(UN) 차량들은 줄줄이 떠나버렸다.

"당신들을 보낼 수 없다. 제발 여기 머물러 우리의 고통을 목격해 주기를 간절히 호소한다. 먹을 것, 거처에 대해 신경써달라 말하지 않겠다. 여기서 다만 목격해 달라고…."

유엔빌딩 밖에서 '목격해 달라' 호소하던 힌두 사제의 시위도 떠나는 차량을 막지 못했다.

▲ 26년간의 전쟁이 인종학살로 끝난 스리랑카 내전. 말레이시아에 거주하는 타밀족들이 그 학살로 전멸한 타밀반군(LTTE) 전사자들과 타밀 민간인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내전 막바지 반군은 전장에 갇힌 민간인 탈출을 막아 이들을 '인간방패'로 이용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국제인권단체들은 반군의 범죄 또한 국제적 규모의 독립조사위원회가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유경

독립적 관찰자가 모조리 철수한 채 가속도를 밟아가던 전쟁. 특히 반군영토의 수도였던 킬리노치가 함락된 2009년 1월 2일부터 종전이 선언된 2009년 5월 19일까지, 약 4개월간 벌어진 전쟁 막바지는 흔히 '목격자 없는 전쟁'(War Without Witness)이라 불린다. 하여, 전쟁터에 갇힌 수십만 타밀족 스스로가 목격자였고, 희생자였으며 기록자 노릇까지 했다. 이와 관련, 다큐를 연출한 칼럼 막크레는 다큐에 쓰인 타밀쪽 영상의 경우 현장 의사와 민간인이 찍은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반군 카메라대원들이 찍은 것이라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다큐의 밑천이 된 반군 영상도 5월 12일을 마지막으로 끊겼다. 이후 종전일까지 최고조에 이르렀을 학살, 암흑속으로 빠질 뻔한 그 며칠간의 참상은 아이러니하게도 학살 가담자들의 손을 타고 나왔다. 정부군은 반군 포로와 민간인들을 고문, 총살했고, 나체 여성 시체를 트럭에 실으며 '기념' 촬영하는 광기를 보였다. 이들은 자신들이 저지르는 전쟁범죄 현장에서 휴대폰 카메라를 열심히 돌려댔다. '스리랑카의 킬링필드'는 그렇게 완성되었다.

도대체 몇 명쯤 죽었을까?

필자가 취재한 한 생존자는 "5월 17일 오전 9시께 전장 탈출길 1km를 지나가면서 주검 5000구쯤 본 것 같다"고 말했다. "맨발이 주검 속으로 빠져들었다"는 게 그녀의 현장 묘사다. 유엔이 그해(2009년) 발표한 사망자 수치는 1월부터 4월 셋째 주까지 약 7000명이고, 한 달 더 보탠 전쟁 끝무렵까지는 2만 명이다. 유엔의 최근 보고서와 국제위기그룹등은 4만 명을 거론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수치가 훨씬 더 높을 수도 있는 건 다음과 같은 간단한 산수 때문이다.

유니세프(UNICEF)가 정부와 반군의 도움을 받아 조사한 인구조사에 따르면 마지막 전쟁터였던 북부의 물라이 티브와 킬리노치에는 2008년 10월 현재 42만9059명이 거주하고 있었다. 이 중 전쟁이 끝난 후 피난민 수용소에 갇힌 인구가 28만2380명, 나머지 14만6000명 이상이 사망 혹은 실종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이 오싹한 수치에 대한 스리랑카 정부의 말장난도 오싹하긴 마찬가지다. 예컨대, 종전 선언 선포 기자회견에서 재해대책 및 인권(!)부 장관 마힌다 사마라싱헤는 "(반군에 인질로 잡혀) 폭격 금지 구역(No Fire Zone)에 갇혔던 민간인들이 정부군에 의해 모두 구출됐다" 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학살전쟁의 최고실세로 거론되는 국방부 장관 고타바야 라자팍세는 아예 "(민간인은) 아무도 죽지 않았다"며 인터뷰 때마다 목청을 높이고 있다.

▲ '스리랑카의 킬링필드'는 헤아릴 수 없는 트라우마를 남겼다. 어린이들은 단연 최대 희생자다. 2010년 촬영 당시 세 살이던 산지브 루바가나따는 몸 구석구석에 파편의 상처를 안고 산다. 그가 도화지에 그리는 건 시체나 폭격 장면 등이다. ⓒ이유경

따지고 보면, 전쟁 기간 '폭격 금지 구역'을 선포한 것도 이들이고, 그곳에 몰려든 민간인들에게 폭격을 멈추지 않은 것도 이들이다. 전후 3년간 차곡차곡 쌓인 진실은 정부가 선포한 폭격금지구역이 더도 덜도 아닌 '킬링필드'였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 킬링필드에서 '인질구출작전'이라는 이름하에 스리랑카 정부는 다음과 같은 전쟁 범죄를 저질렀다.

첫째, 적십자 마크가 선명한 병원을 반복해서 폭격했다. 사실 병원이라 하기에도 민망하다. 이미 부상당한 환자들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의료처'에서 그들은 정부의 의약품 봉쇄로 이중, 삼중의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전 유엔 대변인 골든 와인슨은 "2010년 5월 전쟁이 끝날 때까지 어림잡아 65개의 의료처가 공격당했다"고 추정했다.

이 중 2월 1일, 7일 푸티크루루프(PTK) 병원에는 집속탄도 떨어졌다. 4월 물라이티브 병원 폭격 후에는 현장 의료팀들이 국제적십자사(ICRC)에 "더 이상 정부에 GPS 정보 등을 제공하지 말라"고 당부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도 벌어졌다. 병원, 민간인 시설물 등이 공격받지 않도록 ICRC가 전투 당사자들에게 제공해온 보호구역정보가 오히려 학살에 이용된 것이다. 그리고 5월 12일 또 한 번의 병원공격이 일어났고, 급기야 의료팀은 현장을 포기하기에 이른다. '적십자 표기된 건물에 대한 보호'를 적시한 전시 규율인 제네바 협정은 보기좋게 폭격 맞았다.

둘째, 전쟁 포로와 비무장 민간인에 대한 총살이다. 이 또한 '포로와 민간인에 대한 학대가 전쟁 범죄를 구성한다'고 적시한 제네바 협정 위반이다. 5월 15일 반군 포로 3인이 총살당한 것을 비롯, 스리랑카의 킬링필드에선 총살이 빈번했다. 특히, 여성포로들의 경우 강간 후 처형의 수순을 밟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훗날 수용소에 갇힌 여성 생존자들 역시 정부군에게 강간당한 사실을 폭로하고 있다.

세계 곳곳의 분쟁 지역에서 전쟁의 도구로 이용되는 강간, 성폭행은 엄연히 전쟁범죄다. 2008년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강간과 다른 여러 형태의 성폭력은 전쟁 범죄, 반인류범죄 혹은 제노사이드에 관한 구성행위다"라고 적시한 결의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셋째, 구호물자, 의약품의 의도적 봉쇄다. 의료팀으로 활동했던 생존자 와니쿠마르는 이 다큐에서 마취제 없이 예닐곱 살 아이의 다리 절단 수술에 참여했던 순간을 고통스럽게 증언하고 있다. 이런 물자 봉쇄는 스리랑카 정부가 전장에 갇힌 민간인 수치를 의도적으로 축소한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실제 이 숫자놀이는 늘 논쟁거리였다. 일례로, 2009년 2월 당시 정부는 7만~8만 명이 갇혀 있다고 발표했고 타밀 정부는 33만 명이라 주장했다. '균형'을 좋아하는 유엔은 그 중간치를 발표했고, 필자도 그 중간치를 잡아 대략 "8㎡당 1명꼴"이라고 기사에 쓴 적이 있다. 그러나 모범답은 타밀족 측 수치였다. 하지만 이에 아랑곳없이 스리랑카 정부의 숫자놀이는 계속되었다. 라자팍세 대통령은 그해 4월 28일 <CNN>과의 인터뷰에서 전장에 갇힌 인구를 "5000~1만 명"이라 언급하고 "우리는 구호물자를 계속 보내고 있다"고 거짓말했다. 더더욱 공분할 일은 이런 봉쇄정책도 모자라 전장에서 제한된 식량을 배급하던 배급줄까지 폭격했다는 점이다.

▲ 학살이 끝간데 없이 치닫던 2009년 2월, 스리랑카 전역에는 사진에서 보듯 라자팍세 대통령과 전쟁 영웅들을 칭송하는 프로파간다 포스터가 곳곳에 걸려 있었다. 종전 후 스리랑카는 라자팍세 대통령 형제들의 왕국이 되어가고 있다. ⓒ이유경

넷째, 백기 들고 항복하는 비무장 적군에 대한 사살 역시 전쟁 범죄다. 제네바 협정은 "휴전을 의미하는 평화적 깃발을 보이는 이를 공격하거나, 공격을 위해 그런 류의 깃발을 전쟁의 책략으로 이용하는 행위"를 전쟁 범죄로 보고 있다. 이 범죄가 스리랑카의 킬링필드에서 벌어진 '반군 지도자 백기투항' 사례와 딱 맞아떨어진다.

5월 17일 반군 정치지도자였던 발라싱함 나데샨과 시바라트남 풀리데반은 과거 그들을 취재하면서 알게 된 기자 마리 콜빈(2012년 2월 22일 시리아 취재 중 사망)을 통해 '투항 의사'를 알렸고 마리 콜빈은 바로 콜롬보 주재 유엔특사를 통해 스리랑카 정부에 이 사실을 알려 투항을 중재해 나갔다. 두 반군지도자의 요청은 타밀 국회의원 로한 찬드라 네루를 통해서도 이루어졌다.

그러나 "백기 흔들면서 나오면" 안전을 보장하겠다던 마힌다 라자팍세 대통령과 그의 동생 바실 라자팍세의 호언장담 역시 말장난으로 끝났다. 5월 18일 백기 든 두 지도자와, 그들 가족 그리고 동행자 300여 명은 모조리 사살되었다. 이후 네루 의원은 '라자팍세 브라더스'의 협박을 받고 스리랑카를 도망쳐 나왔다는 후문이다.

이 '백기투항' 사건은 스리랑카 내부에서 대단히 민감한 이슈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전시 군 최고사령관이었던 사라 폰세카 대령이 언론 인터뷰에서 "최고위층의 명령에 따라" 투항자들을 사살했다고 암시한 게 화근이 됐다. 그는 전범재판이 열리면 '증언하겠노라'는 말까지 했다. 그의 폭로는 라자팍세 형제 권력의 노여움을 샀고, 전쟁 영웅 폰세카 대령은 정치범이 되어 2년간 옥살이까지 했다.

▲ 백기 들고 투항하는 반군 지도자와 그 동행인 300명 가량을 집단 사살한 소위 '백기 투항 사살'은 스리랑카 정부가 저지른 전쟁 범죄 사례 중 하나다. 당시 백기 들고 나오다 사살당한 발라싱항 나데샨 반군 정치국장 (사진 오른쪽 열 창가끝)과 시바라뜨남 평화서기 (사진 오른쪽 열 첫번째)가 2005년 킬리노치 본부에서 휴전을 중재했던 노르웨이 대표단을 만나고 있다. ⓒ이유경

한편, 필자는 생존자 취재 과정에서 이 '백기투항자 사살'이 고립된 사례가 아님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 생존자의 증언이다.

"(2009년) 5월 17일 늦은 오후였다. 총성은 멈춘 듯했고, 반군도 모두 사라진 것 같았다. 나는 어린이, 연장자들과 한 벙커 안에 있었다. 인근 벙커에 있던 신부님이 '정부군이 보인다' 소리치며, 모두 백기 들고 투항하라 했다. 우린 백기를 보이며 벙커 밖으로 나가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군은 총을 쐈다. 잠시 조용해진 듯해서 우린 다시 백기가 잘 보이도록 랜턴도 들고 군인들 쪽으로 서서히 움직였는데 군은 "가까이 오지 말라"고 소리쳤다. 우리가 등을 돌려 다시 벙커 방향으로 걸어가자 그들은 (등 뒤에서) 총을 쐈다. 모두 재빠르게 엎드려 벙커로 기어들어 왔다. 다음날 아침 군은 우리에게 '보이는 대로 사살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말했다. 우리가 살아 있는 건 그야말로 기적이다."

▲ 스리랑카 킬링필드에서 '생존 구덩이'였던 벙커. 한 타밀 가족이 종전에도 불구하고 벙커 파는 데 쓰던 도구를 보관하고 있다. 그들은 여러해 수많은 피난민 생활에도 이 도구들만은 절대 버리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유경

'보이는 대로 사살하라'는 명령

<스리랑카의 킬링필드> 방영으로 충격과 공분에 휩싸인 국제사회라지만 전범조사의 수순은 밟지 않고 있다. 움직이지 않는 국제사회를 향해 <채널4>는 올해 3월 스리랑카 킬링필드 2탄을 던졌다. <전쟁 범죄, 처벌받지 않았다>는 제목으로.

3월 22일 유엔인권위(UNHRC)가 스리랑카 결의안을 통과시킨 건 이런 맥락에서였다. 결의안은 전범조사에 대한 국제 여론이 고조되는 가운데 채택된 시의성을 토대로, 정부군을 은밀 지원해 온 것으로 알려진 인도까지 찬성표를 던짐에 따라 '획기적'이라 평가받았다. 그러나 내용적 한계는 분명했다. 스리랑카 내부의 진상조사위, '교훈과 화해 위원회'(LLRC)의 권고를 따르라는 게 고작이었다.

LLRC는 종전 직후부터 '전쟁범죄' 유령에 시달려온 라자팍세 대통령이 국제여론을 무마하고자 2010년 5월 출범시킨 진상조사위다. 하지만 전쟁 범죄의 수장이 임명한 위원회가 진상 조사를 제대로 할 리 만무하다. 지난해 12월 발표한 이들 보고서는 민간인 사망을 인정했지만, 포로 총살을 포함하여 전쟁범죄와 직결된 이슈에 대해서는 "더 조사해야" 정도로 피해갔다.

반면, 반기문 사무총장이 임명한 진상조사위(일명 '반기문 위원회')가 지난해 4월 발표한 보고서는 제법 진전을 보인 경우다. "전쟁 범죄 가능성"을 인정한 이들 보고서는 국제적 규모의 독립적 전범조사를 권고했다. 문제는 반기문 총장 스스로가 자신이 임명한 위원회의 권고를 실행에 옮길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내게는 권한이 없다'는 게 그의 궁색한 변명이다.

그렇다면 유엔안전보장이사회(UNSC)가 움직일 수 있을까? 전범재판으로 잘 알려진 전 유고슬라비아 전쟁법정(ICTY)과 르완다 전쟁법정(ICTR)은 각각 1993년, 1994년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주도로 추진된 경우다. 이런 선례에도 불구하고 스리랑카의 경우는 녹록지 않아 보인다. 스리랑카의 최대 투자국이자 전쟁 기간 중무기 제공에 일등 공신을 해온 중국, 그리고 러시아가 스리랑카에 불리한 어떠한 결의안도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상임이사국들도 그닥 적극적이지 않다. 이는 지난해 2월 리비아 카다피 정권의 전쟁 범죄 조사촉구 결의안을 발빠르게 통과시킨 것과 매우 대조적이다.

▲ 전쟁 마지막까지 전투를 벌였다는 블랙타이거(반군 자살 특공대) 대원. 우여곡절 끝에 스리랑카를 탈출한 그는 '언젠가 다시..'를 다짐하고 있다. 자살공격, 미성년 병사징집으로 세계 30여개국에서 '테러리스트'로 등극한 타밀 타이거 반군은 전쟁 막바지 기존의 '한 가족 한 타이거' 정책을 깨고 막무가내 징집을 자행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들은 또한 전장에 갇힌 민간인 탈출을 막아 이들을 '인간방패'로 이용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국제인권단체들은 반군의 범죄 또한 국제적 규모의 독립조사위원회가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유경

스리랑카의 전쟁 범죄가 유죄선고를 받은 법정이 하나 있긴 하다. 2010년 1월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치뤄진 민간법정이다. '스리랑카 평화를 위한 아일랜드 포럼'이 주관한 법정은 법정 구속력은 없되 대단히 면밀한 절차와 조사 진행으로 이루어졌다. 2006년 7월부터 2009년 4월까지 하루 평균 116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밝혀낸 이 법정은 상징적 판결을 실질적 재판으로 이어갈 과제를 남겼다.

이런 가운데 흥미로운 사례 하나가 보도되었다. 지난 7월 캐나다에서 스리랑카 해군 출신의 한 난민 신청자가 '거부' 판정을 받은 것. 캐나다 당국은 그가 전쟁 기간 '전쟁 범죄'에 연루되었을 가능성이 있음을 거부 이유로 언급했다. 즉, '전쟁범죄'가 저질러졌음을 전제로 판결을 내린 셈이다.

처벌 없는 전쟁 범죄, 전후 범죄로 이어져

전후 3년. 스리랑카 북부에는 킬링필드의 기억이 가시기는커녕 가해자 집단들이 득실대고 있다. 스리랑카 망명 언론 '스리랑카 민주화를 위한 기자들' (JDS)이 인용한 인도 좌파 주간지 <정치경제위클리>(Economic and Political Weekly) 7월 14일자는 스리랑카 북부의 군 밀집도가 인구 1000명 기준 198.4명이라 밝히고 있다. 민간인 5.04명당 군인 한 명꼴이며 스리랑카 군 규모의 4분의 3이다. 군부의 허가 없이는 4명 이상의 모임이 불가능한 것도 여전하다.

▲ 스리랑카 종전 후 북부 타밀 지역은 군사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골목 곳곳에 선 싱할라족 군인들은 타밀어를 모르고 타밀 주민들은 싱할라어를 모른다. 대부분의 주민들이 아는 유일한 싱할라어는 "이리 와", "저리 가", "가방 열어" 따위의 검문소용이다. ⓒ이유경

1956년 통과되어 내전의 씨앗이 된 싱할라어 유일법안(Sinhala Only Act)도 유령으로 되돌아오는 듯하다. 타밀족 영토에서는 지금 표지판과 행정언어가 싱할라어로 바뀌고 있다(참고로, 소수 타밀족과 다수 싱할라족은 서로 의사소통을 하지 못한다). 승자들을 위한 전쟁 투어리즘도 활기를 띄는 가운데 반군 최고 지도자의 지하벙커 관람에도 '싱할라 온니'가 적용되고 있다. 반군의 순교자 무덤은 불도저에 깔려들어갔고, 그 자리에 싱할라 정부군의 영웅탑이 세워졌다.

지난 6월에는 타밀 정치범(다수 전 반군)들이 당국에 끌려간 후 소식 없는 동료의 행방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다 3분 만에 폭력 진압당했다. 이 진압으로 2명이 사망했다. 납치, 실종도 여전하다. 2010년 10월부터 2012년 3월까지 스리랑카에서는 38건의 납치사례가 보고되었다. 5일에 한 번 꼴이다. 처벌받지 않은 전쟁 범죄는 지금 '전후 범죄'로 이어지고 있다. 전 유고슬라비아 전범재판의 검사였던 칼라 델 폰트의 명언을 상기해 볼 때다.

"정의 없는 평화는 오래가지 못한다."

▲ 스리랑카는 납치와 강제실종으로 악명높다. 특히 소수 타밀족 거주지역인 동북부에서는 군 검문소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된 이들이 적잖다. 사진 속 여인(35세)의 남편 역시 2007년 북부 한 검문소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된 후 소식이 없다. 경찰서를 비롯해 여러 인권단체들에 남편 실종사건을 신고하고 받은 신고서가 그녀의 두 손에 한가득이다. ⓒ이유경

*한국은 아시아에 속해 있습니다. 따라서 한국의 이슈는 곧 아시아의 이슈이고 아시아의 이슈는 곧 한국의 이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에게 아시아는 아직도 멀게 느껴집니다. 매년 수많은 한국 사람들이 아시아를 여행하지만 아시아의 정치, 경제, 문화적 상황에 대한 이해는 아직도 낯설기만 합니다.

아시아를 적극적으로 알고 재인식하는 과정은 우리들의 사고방식의 전환을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또한 아시아를 넘어서 국제 사회에서 아시아에 속해 있는 한 국가로서 한국은 어떤 역할을 해야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나가야 합니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 기반 해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는 2007년부터 <프레시안>과 함께 '아시아생각'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필자들이 각 아시아 국가들의 정치, 문화, 경제뿐만 아니라 유엔과 인권, 개발과 인권, 기업과 인권 등 여러 분야에 대한 국제적 시각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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