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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후보에게 지금 필요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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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후보에게 지금 필요한 것

[창비주간논평] 그의 말이 '언필칭'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8월 22일 이희호 여사를 예방했다. 이 자리에서 이여사가 이렇게 말했다. "(여성 대통령이 된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이 아니냐. 여성의 지위가 법적으로 많이 향상됐지만 아직도 부족한 게 많다. 여성으로서 만약 당선이 되면 세세한 데까지 신경을 써주면 좋겠다." 덕담이다. 그런데 언중유골이라, 이 덕담에는 뼈도 들어 있다. 박후보가 생물학적으로는 여성이지만 사회적 약자로서 여성의 지위 향상에 매진하거나 배려·포용을 특징으로 하는 여성 리더십을 보여준 것은 아니다. 이런 점에서 이여사의 말에는 말로만 여성 대통령 운운할 게 아니라 여성성을 제대로 구현하라는 뜻이 담겨 있다.

<여성, 리더 그리고 여성 리더십>(김양희, 2006)이란 책을 보면 통합적 사고, 심미적 관심, 감정이입을 위한 능력, 민주적인 사고방식 등이 여성성의 특징이라고 한다. 이 특징 때문에 조직 성원의 창의적이고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내는 조화로운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고 한다. 박후보가 말하는 국민 대통합도 결국 여성성에 기초한 리더십에 의해 온전하게 구현될 수 있다. 따라서 핵심은 박후보가 그간의 권위적 리더십을 불식하고 이견과 차이를 인정하면서 함께 가는 민주적 리더십을 실행하는 것이다.

광폭 행보와 과거 회귀의 괴리

박후보는 대선후보로 선출된 다음날부터 이른바 광폭 행보에 나섰다. 대통령 자리에 오르겠다는 사람이 전직 대통령을 찾아뵙거나 참배하는 것이 뭐 그리 통 큰 결단인지 모르겠다. 물론 찾아뵙는 것 자체가 일부 '사죄'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라면 매우 잘한 일이지만 지나치게 자화자찬하거나 부풀리면 역효과가 날 것이다. 과유불급이라 하지 않나. 어쨌든 진정 광폭이란 단어를 붙이기에 손색이 없으려면 지금까지 박후보가 견지했던 현안 대응과 정책에서 벗어나는 것이 필수적이다.

물론 박근혜 후보는 보수의 후보다. 때문에 진보의 정책 대안을 모두 수용하라고 할 수는 없다. 정치적으로 보더라도 자신의 핵심 지지기반의 뜻에 반하는 행보는 득보다 실이 많다. 박후보에게 광폭 행보의 진정성을 보이라는 것이 보수 후보에게 진보정책을 강요하는 것으로 이해되는 건 곤란하다. 주문은 사회의 기본을 바로 세우라는 것이고, 때문에 이는 진보 대 보수의 틀에서 이해하기 이전의 문제다. 즉 수구냐 개혁이냐 하는 차원이지 보수냐 진보냐 하는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2009년 박후보가 미국 스탠포드대학에서 행한 연설에서 '원칙이 바로 선 자본주의'를 말했는데, 그에 빗댄다면 '기본을 지키는 보수', 합리적 보수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지지층도 확장될 것이다.

총선에서 승리한 그날부터 후보 선출 순간까지 박후보는 자신감 때문인지 과거로 달려갔다. 5.16 쿠데타를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미화했고, 철지난 1인 보스정치로 새누리당을 철저하게 사유화했다. 헌정질서 수호를 첫째 사명으로 하는 대통령이 되고자 한다면 군사력으로 행한 불법 쿠데타를 용인해선 안된다. 경찰이 아버지라고 해서 그 강도행위를 묵인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의 의사결정 시스템을 보면 철저하게 단색이다. 이견이나 차이가 드러날 틈이 없다. 간간이 다른 의견이 표출돼도 일언지하에 묵살된다. 비박(非朴) 주자들이 경선 룰 문제를 논의할 기구만이라도 만들어달라고 애원해도 박후보의 눈치를 보느라 뭉개져버렸다. 과거 이회창 총재 시절 사당화(私黨化)를 이유로 탈당했던 박후보가 역설적이게도 역사의 시곗바늘을 거꾸로 되돌리고 있는 셈이다.

▲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28일 오전 서울 종로 전태일 다리를 방문, 헌화를 하려다 김정우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장으로부터 항의를 받고 있다. ⓒ뉴시스

여권 후보로서 책임감을 보여라

박후보가 유력한 정치인으로 성장한 것은 '차떼기 정당'의 대안으로 등장하고부터다. 금권정치와 1인 보스정치에 반하는 안티테제로서의 정체성은 박후보가 지닌 강점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그런데 이번에 터진 공천비리 사건은 그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당 대표로서 잘못된 과거와 절연하겠다고 했는데 정작 자신이 비상대권을 갖고 당을 이끌면서는 이미 사라졌다고 여겼던 구태를 재현했다. 더구나 문제가 불거졌는데도 이를 단호하게 바로잡는 게 아니라 그가 극복대상으로 여겼던 그 시절의 정치인들처럼 미적미적하며 제 식구 감싸기에 나선 것이다. 이처럼 스스로 과거로 회귀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박후보가 그때까지 가졌던 미래 이미지는 퇴색했다. 후보 선출을 계기로 이런저런 잘못을 훌훌 털어내고 다시 미래로 나아갈 것을 기대해본다.

'박근혜가 바꾸네'에서 '박근혜가 바뀌네'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과감하게 변화하겠다고 한다. 변화의 주체가 어느새 변화의 대상으로 바뀐 것이야말로 박후보가 미래가 아닌 과거를 선택함으로써 위기를 자초한 사실을 잘 말해준다. 그러니 무엇을 바꾸고자 하기 전에 먼저 자기혁신에 나서는 건 당연하다. 박후보부터 바뀌어야 한다. 더 정확하게는 박후보의 입장이 바뀌어야 한다. 그동안 침묵했던 4대강사업, 언론개혁에 대해 이제 발 벗고 나서야 한다. 무릇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말할 수 있으려면 노동 현안에 대해서도 침묵하지 말아야 한다. MBC사태 해결에도 나서야 한다.

'언필칭 요순'이란 말이 있다. 말을 할 때마다 반드시 요와 순 임금을 들먹인다는 뜻으로, 현실적인 대안은 제시하지 못하고 늘 뻔한 원칙만 되뇌는 것을 가리킨다. 총선 전후에 박후보는 민생을 입에 달고 다녔고, 요즘엔 통합을 '중 염불하듯' 왼다. 사회적 약자가 손해 보지 않도록 하는 것이 민생이고 통합이다. 약자라고 해서 절박한 사정에 내몰려도 속수무책 당한다면 그건 민생을 짓밟는 것이고 통합을 막는 것이다. 따라서 박후보의 민생이나 통합이 '언필칭 민생'이나 '언필칭 통합'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삶의 현장에서, 김기원 교수가 말하는 고단함과 억울함, 그리고 불안함으로 허덕이는 사람들을 구제하는 데 지금 당장 나서야 한다. 박후보는 의회 다수당의 대선후보로서 명실상부한 리더이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해낼 힘이 있지 않나. 지금 할 수 있는데 나중에 하겠다는 것은 결국 잘못을 용인하는 것에 다름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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