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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력서 한 장의 가격과 청년들의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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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력서 한 장의 가격과 청년들의 소망

[복지국가SOCIETY] '정부의 역할' 되찾아야

이력서 한 장의 가격

언제나 그렇듯이, 요즘 대학 도서관은 각종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과 졸업생들로 붐빈다. 이력서에 한 줄 넣을 스펙을 쌓기 위해 토익시험 준비나 해외 어학연수, 그리고 기업 인턴 등을 하느라 늘 바쁘다. 우리나라의 대학생들은 전공과 교양 과목에 대한 공부나 연구와 기획 등의 창의적인 일 보다는 각종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도서관과 고시원에서 안간 힘을 쓰고 있다. 안타깝다. 이렇게 기나긴 인고(忍苦)의 대학생활을 보낸다 해도 대부분의 경우에서 그 열매는 그리 달콤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의 조사에 따르면, 대학 졸업자 35명의 이력서 비용, 즉 이력서에 기술하는 스펙을 만드는 데 소요되는 비용은 평균 4,269만 원이나 된다(한국노동연구원 등, 2011). 이 비용들 중에서 학비는 2,802만 원이었고, 나머지 1,400만 원은 전체 대상자의 89%가 응시한 평균 9회의 토익시험을 위한 비용, 43%가 참여한 해외연수 비용, 그리고 쌍꺼풀 수술과 치아교정 비용 등의 면접을 대비한 수술비였다. 취업 경쟁이 그렇게까지 심하지 않았다면, 굳이 지출하지 않아도 될 금액을 학부모들이 부담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비용을 지출하고 나면 과연 그만큼의 효과가 있을까? 조사 결과는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대상자들이 지출한 비용은 취업에 성공한 25명이 32개월 동안 받는 월급을 단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마련할 수 있는 큰돈이다. 하지만 이들 35명 가운데 정규직으로 취업한 학생은 10명에 불과했다. 만일 그들이 비정규직에 고용되었다면, 이 비용을 버는 데는 무려 36.53개월이 소요된다. 한 푼도 사용하지 않고 모아도 취직을 위해 자신이 들인 투자비용을 회수하는 데만 3년 이상이 걸리는 것이다.

실제로 청년실업과 관련된 통계를 보면, 많은 시간과 돈을 써가며 청춘을 도서관에서 보내지만 그나마 괜찮은 일자리을 구하는 대졸자는 전체의 30%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번 조사에서도 다수의 대학 졸업생들은 아예 취직을 하지 못한 상태에서 취업 재수를 몇 년 동안 해야 하거나, 요행히 취업을 한다고 하더라도 비정규직이나 저임금의 불안하고 저급한 일자리를 전전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자유주의 체제로 전환한 후 고용은 감소했다

무엇이 우리나라 청년들의 미래를 이렇게까지 암울하게 만들었을까? 결국 근본적인 문제는 대졸자들이 선호하는 대기업의 일자리는 적은데, 취업을 희망하는 대졸자의 수는 계속 늘어나기 때문이다. 자세히 살펴보자.

첫째, 구직자들이 선호하는 대기업의 일자리는 증가하지 않고 있다. IMF 이전과 이후를 비교하면, 전체 300인 이상을 고용하는 대규모 사업장에 고용된 사람은 전체의 22.6%에서 13.7%로 대기업의 고용 비중 자체가 8.9%나 줄어들었다(2009년, 한국노동연구원). 이것은 단순히 대기업의 신규 고용이 줄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대기업의 고용 자체가 전체적으로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이들 기업에 10년 이상 장기 근속하는 근로자의 비율도 16.9%에 불과(남성은 22.5%, 여성은 9.2%)하여 우리나라는 OECD 국가들 중에서 고용의 안정성이 가장 낮은 나라에 속한다.

둘째, 중소기업의 다수는 일자리의 질이 낮기 때문에 고용률 제고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1997년 외환위기 이전의 약 10년간에 비해 그 이후에 대기업의 매출 증가율은 3.4%가 낮아진데 비해, 중소기업은 4.9%로 더 크게 낮아졌다. 즉, 경제위기 이후 중소기업의 위축이 더 심화된 것이다. 실재로 대기업에 비해 중소기업의 매출 감소가 더 심하고, 부가가치 증가율의 감소가 더 크다. 따라서 이들 중소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의 임금 증가율도 상대적으로 더 낮아지고 있다. 청년들은 심각한 실업을 겪고 있지만, 중소기업은 심각한 구인난을 겪고 있다. 청년들이 중소기업 취업을 기피하는 것은 이러한 경제적인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고용의 86%는 중소기업에서 이루어짐에도 성장의 과실은 대기업에 집중되고 중소기업에까지 미치지 않으니, 성장이 고용의 증가로 이어지지 않는 것이다.

중소기업의 1인당 급여를 1로 하여 대기업의 급여수준과 비교하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1997년 외환위기 이전에는 그 비율이 1.5 수준이었던 데 비해, 2009년에는 1.89배로 격차가 더 커졌다. 청년 구직자들의 입장에서는 몇 년을 재수하더라도 급여수준이 1.89배나 높은 대기업을 선호하고, 부모님의 보철이나 자녀들의 대학교 등록금 지원과 건강검진 비용 지급 등의 회사 복지가 제공되는 대기업이나 공기업을 선호하는 것은 당연하다. 퇴직 후에도 산하기관이나 하청기업들에 재취업하는 것이 보장되는 공무원이나 대기업을 선호하는 것은 합리적인 선택인 것이다.

첫 일자리를 정규직으로 시작하는 경우에 비해 비정규직으로 시작하면 임금의 감소효과는 연간 –3.2%, 중소기업이나 비 공공 부문으로 시작하는 경우는 –8.4%, 임시직이나 일용직으로 시작하는 경우는 정규직으로 시작하는 것에 비해 무려 –14.1%의 임금 감소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은수미, 2012). 이러한 상황이라면, 더 이상 대졸자들의 눈높이 탓을 하기는 어렵다. 즉, 대기업이나 공무원, 공기업만 선호하고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 취업을 기피한다고 비난할 수 없는 것이다.

1997년의 외환위기 이후, 대한민국은 신자유주의적 경제시스템이 구조화되기 시작하여 지난 15년 동안 확실하게 자리를 잡아버렸다. 지금의 경제시스템에서 경영자의 합리적인 선택이란 투자를 늘리고 고용을 창출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투자를 줄이고 구조조정을 하더라도 주가를 높이고 배당률을 늘리는 것이 되었다. 좋은 경영자에 대한 평가를 보면, 외환위기 이전에는 성장을 중심으로 평가를 하였다면, 이제는 수익을 중심으로 평가하는 것으로 변화되었다. 기업 경영의 목표도 미래사회의 동력에 대한 투자나 고용창출 보다는 배당률의 증가나 주식 가치의 상승에 주로 맞춰져 있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젊은 청춘들이 도서관에서 날 밤을 새우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이제는 성장지상주의에 의한 경제성장이라는 말이 우리 젊은이들에게 더 이상 반가운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국가의 발전이나 경제의 성장이 개인의 발전이나 소득수준의 향상과 연결되지 않는 이런 나라에서 우리 국민들은 어떤 희망을 찾을 것이며, 청년들은 어떠한 미래를 기대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우리 대한민국은 이제 경제와 사회의 운영시스템을 총체적으로 바꾸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복지국가를 통한 정부 기능의 정상화가 바람직한 경제민주화

그렇다면 경제성장도 하면서 일자리를 동시에 창출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은 무엇일까? 지난 2010년 6.2 지방선거 때부터 보편적 복지국가가 정치권의 관심거리로 등장했다. 최근에는 경제민주화가 새로운 화두로 떠올랐다. 이제 단순히 절차적·정치적 민주주의를 넘어서 실질적·경제적 민주주의로 논의가 진전되고 있다. 청년실업과 양극화에 따른 사회불안, 투자부진 등이 경제민주화의 이름으로 논의된다는 점에서 이러한 변화는 긍정적일 수 있다.

얼마 전에 민주당은 경제민주화를 위한 9대 법안을 당론으로 제출하였다. 새누리당도 이미 경제민주화의 방향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였고, 경제민주화를 연구하는 의원모임이 만들어져 운영되는 등 상전벽해(桑田碧海)와 같은 변화들이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경제민주화가 단순히 재벌과 대기업의 지배구조 개선 만을 논의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도 외환위기 이후 나타난 신자유주의의 폐해에 대한 반성 위에서 국가의 역할을 복원하고, 토목건설 중심의 국가를 사람 중심의 복지국가 시스템으로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87년 민주화 이후 국가권력을 필요악으로 규정하고 각종 규제를 풀게 되면서 꼭 필요한 정부의 기본적인 경제관리 능력마저도 상실하는 결과를 낳았다. 목욕물을 버리면서 아이를 같이 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했던 것이다.

이제는 정부가 직접 나서 시장의 불안정성을 교정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하여야 한다. 보육, 교육, 의료, 주거, 일자리, 노후 등 그 동안 방기되어온 국가의 기본적인 역할도 다시 회복하고 강화해야 한다. 이들 사회서비스 분야에서 창출될 수 있는 수 백 만개의 일자리에 우리 젊은이들이 취업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최저임금의 인상과 노동시간의 단축에 필요한 각종 고용보험이나 재교육 정책 등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에 수조 원의 비용이 소요되더라도 이제는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을 점차 정상화하면서, 일자리 나누기가 사회의 전 분야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역동적 복지국가로의 방향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대학생들이 취업과 스펙을 쌓기 위해 들이는 비용, 실효성 없는 이력서 한 장에 수천만 원을 들이지 않도록 하는 것만으로도 우리 국민들은 갑갑한 숨통을 조금이나마 틀 수 있게 될 것이다. 대선을 앞둔 지금이 이러한 일을 할 적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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