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 전부 개정안이 올해 2월 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였고, 내년 2월 2일부터 시행에 들어간다. 이번 법률에서 가장 큰 변화는 공공보건의료의 개념을 소유주체의 측면이 아니라 기능적 측면에서 새롭게 규정했다는 것이다. 기존의 법률에서는 공공보건의료를 국가, 지방자치단체, 기타 대통령령이 정하는 공공단체가 설립ㆍ운영하는 공공보건의료기관이 국민의 건강을 보호ㆍ증진하기 위하여 행하는 모든 활동이라고 규정했었다.
그러나 이러한 기존 정의의 맹점은 민간의료기관의 활동이 공익적 측면에서 그 목표와 사업 내용이 공공보건의료기관들과 차별성이 없더라도 적어도 법의 테두리 내에서는 공공보건의료로 규정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의 전부 개정안에서는 이를 국가, 지방자치단체 및 보건의료기관이 지역, 계층, 분야에 관계없이 국민의 보편적 의료이용을 보장하고 건강을 보호ㆍ증진하는 모든 활동으로 규정함으로써 공공보건의료는 공공보건의료기관 만이 수행하는 특수한 활동이 아닌 것으로 변화되었다.
앞으로는 민간의료기관들도 법이 정한 테두리 내에서 공공보건의료와 관련된 기능을 수행하면 공공보건의료 수행기관으로 지정되어 공공보건의료기관들과 동일한 위상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공공보건의료기관에 대한 정의도 변하였는데, 기존에는 설립 및 운영 주체가 공공부문이었다면 공공보건의료기관으로 정의하였으나, 개정 법률안에서는 공공보건의료기관을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공공단체가 공공보건의료의 제공을 주요한 목적으로 하여 설립ㆍ운영하는 보건의료기관으로 정의함으로써 그 기능을 강조하였다.
결론적으로 공공보건의료의 전달체계가 공공보건의료라는 기능을 중심으로 양적으로 확대되고 질적으로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지금까지 정부의 공공의료와 관련된 정책은 주로 공공보건의료기관들에 초점을 맞추어 수립되고 집행되어 왔다. 그러나 설립 및 운영의 주체가 누구인지를 불문하고 보건의료기관 전체가 공공보건의료 활동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은 공공의료와 관련된 정책의 대상이 우리나라의 의료시스템 전체로 확대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한 국가의 의료시스템을 구성하는 주축 분야가 의료자원의 개발 및 조직화, 이를 통한 의료서비스의 제공이라고 했을 때, 공공보건의료정책은 기존의 공공보건의료기관들을 정책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에 더하여 민간의료기관들을 공공보건의료 수행기관으로 지정함으로써 공공보건의료자원을 조달하고 조직화할 수 있게 되었고, 이들에게 공공보건의료 기능을 수행하게 하고, 이를 관리할 수 있는 여지를 갖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가능성은 법률이 바뀌었다고 저절로 현실화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활용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이 많아졌다는 것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역할이 더욱 커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 우리의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공공보건의료와 관련된 중장기 비전을 가지고 체계적인 정책을 수립한 적이 거의 없었다. 물론, 노무현 시절 공공보건의료 확충 종합대책에 근거하여 다양한 정책들이 수립되고, 이 중의 일부가 현실화된 것도 있지만, 법률에 의하여 뒷받침된 것은 아니었다. 정부의 공공보건의료와 관련된 중장기 비전이 없으니 체계적인 정책 수립과 집행은 애초에 가능하지 않았으며, 평가를 하더라도 전체 보건의료체계에 큰 영향력이 없었다.
그러나 이번 전부 개정안에서는 보건복지부 장관은 5년마다 공공보건의료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기초로 매년 주요 시책 추진계획을 수립ㆍ시행하게 되어 있으며, 시도지사는 보건복지부의 공공보건의료 기본계획을 기본으로 하여 매년 공공보건의료 시행계획을 수립ㆍ시행하게 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공공보건의료기관들도 보건복지부의 공공보건의료 기본계획의 시행을 위한 공공보건의료계획을 매년 수립하게 되어 있다. 그야말로 중앙정부, 지방정부, 공공보건의료기관들이 중장기 계획에 근거하여 체계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법적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문제는 공공보건의료와 관련하여 민간의료기관들을 어떻게 공공보건의료 기능을 수행하는 주체로 서게 할 것인가이다. 2008년 현재, 우리나라 전체 보건의료기관의 94%, 전체 병상의 89%가 민간부문에 속해 있다. 이와 같이 기형적으로 민간부문이 큰 의료시스템은 다양한 문제점을 낳는다. 실제로, 보건복지부도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의 전면 개정안을 제출하게 된 이유를 "민간의료기관 중심의 의료서비스 공급체계가 보건의료체계의 영리적 속성을 심화시키고, 진료비 상승 및 수도권 지역으로의 의료집중화 문제를 지속적으로 발생시키며, 지역별, 계층별, 분야별 미 충족 의료를 심화시키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민간의료기관들이 야기한 여러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민간의료기관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전략이 필요할 것이다. 이는 기존의 공공보건의료기관들에 대한 접근 방법과는 차원이 달라야 한다. 보건의료부문에서 공익적 가치를 부여해야 하는 부문을 발굴하고, 이에 대한 명확한 정책 목표를 수립하여야 한다. 또한, 이러한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적절한 민간부문의 대응 수단을 찾고, 이를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평가하고 관리하기 위한 체계를 구축하여야 한다.
민간의료기관들의 공공보건의료 수행기관으로의 전환, 이 영역에서 실패한다면 앞으로 우리나라 공공보건의료의 강화는 사실 불가능해질 가능성이 높다. 그 이유는 전면 개정안의 이면에는 공공보건의료의 강화를 위하여 공공보건의료기관을 양적으로 확충하는 대신 민간의료기관을 공공보건의료의 정책수단으로 활용하라는 암묵적인 동의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법 시행 전까지 6개월이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사실 우려스러운 점이 적지 않다. 이와 관련된 중앙정부의 정책적 경험이 부족한 것도 문제이지만, 우려스러운 것은 지방정부들이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더욱 걱정되는 것은 보건복지부의 공공보건의료에 대한 이중적 태도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방의료원과 적십자병원들을 지역거점 공공병원으로 지정하여 2006년부터 매년 지역거점 공공병원 운영평가를 실시해 왔으며, 이는 지역거점 공공병원들의 공공병원으로서의 정체성 확립에 어느 정도 기여를 했다고 평가되고 있었다. 그러나 올해부터는 이 평가가 모 회계 법인에 위탁됨으로써 지역거점 공공병원들의 공공성 제고 영역을 비롯한 전반적 운영평가가 아니라 이들 병원들의 수익성 평가에 그치고 말았다. 이에 대하여 지역거점 공공병원들과 관련 전문가들은 허탈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고, 해당 병원의 노동조합들은 벌써부터 이를 이슈로 부각시키기 위한 노력을 진행하고 있다.
역동적 복지국가를 향한 국민적 기대가 크고,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통과된 것 등으로 공공보건의료 확충을 위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야 하는 이때에 불거져 나온 정부의 이러한 조치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참으로 난감하다. 민간의료기관이 공공보건의료 수행기관으로 거듭나게 하려면, 공공병원들이 지금보다 더 공공병원다워야 하지 않겠는가? 다가오는 대선이 OECD 국가들 중에서 공공의료가 가장 취약한 대한민국에서 공공보건의료의 중요성이 정치사회적으로 부각되는 좋은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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