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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의 줌머족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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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의 줌머족을 아시나요

[아시아생각] 치타공 산악지대의 인권 침해

2007년 유엔(UN) 총회는 선주민(Indigenous People)들의 권리와 존엄성, 그리고 그들의 문화와 전통을 지키기 위해 "선주민 권리에 관한 선언"을 채택했다. 또한 유엔은 8월 9일을 "세계 선주민의 날"로 지정했다. 유엔의 정의에 따르면 "선주민이란 한 국가나 지역에서 다른 문화나 인종의 사람들이 도착했을 때 이미 살고 있던 사람들을 말한다. 후에 도착한 사람들은 정복, 점유, 정착 혹은 다른 방법으로 그 지역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선주민들은 전세계 거의 모든 지역에 살고 있으며 약 3억7000명에 달한다. 인도,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버마(미얀마) 등 동남아시아와 남아시아 지역에는 이러한 많은 선주민 집단들이 거주하고 있다. 방글라데시 한 나라에만 45개 소수 선주민 집단이 있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단일민족으로 알려져 있고 따라서 한국에서는 선주민이라는 용어가 '낯설게' 들릴 것이다. 그러나 이제 한국에는 정치•사회•문화적 안전을 찾아 다른 나라에서 이주해온 선주민들이 살고 있다. 최근 한국 법무부는 이제까지 방글라데시 치타공 산악지대에 거주해오던 49명의 줌머족 선주민들에게 난민 지위를 부여했다. 한국에 약 100만 명의 이주민이 있다는 것을 고려할 때 약 80명 정도밖에 안되는 줌머족은 소수에 불과하다. 그들의 고향인 방글라데시에서도 전체 인구의 1%에 불과했던 줌머족은 한국에서도 이주민 집단 내 극소수에 속한다.

치타공 산악지대에는 11개의 선주민 부족이 살고 있으며, 약 70만 명에 달하는 이들을 통틀어서 줌머족이라고 부른다. 치타공 산악지대는 인도, 버마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방글라데시 남동쪽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이 곳은 지리학적으로, 그리고 생태학적으로 봤을 때 빽빽한 숲과 산악 지형을 가고 있어 방글라데시의 다른 평야 지역과 차별성을 보인다.

치타공 산악지대는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 지배로부터 독립하는 1947년까지 직접적인 통치를 받지 않는 예외 지역이었다. 이는 이 지역에 사는 선주민들이 벵갈 지역(오늘날의 방글라데시)의 다수민족인 벵갈족과는 인종, 종교, 언어, 문화, 전통 등에 있어서 다른 양상을 보였기 때문이다. 벵갈족들이 무슬림인 반면 이 지역 선주민들은 대부분 불교신자이며 벵골 드라비다족이나 인도 아리안족과는 다르게 몽골인종인 경우가 많다. 심지어 치타공 산악지역은 내부적으로 줌머 선주민의 전통적 지도자(부족장이나 왕)가 다스려왔다. 그러한 인종, 문화, 종교 그리고 다른 문화적 차이가 이 지역에서 영국의 식민지배가 끝난 후 심각한 내부 분쟁과 인권 침해를 야기했다. 영국 식민지 시절에 만들어진 "치타공 산악지대 매뉴얼"이나 "치타공 산악지대 규율"은 소수 인종의 문화적 다양성과 전통, 관습법 등을 보호했다. 그러나 이후 들어선 중앙 정부와 주 정부는 이러한 법들을 무시했다.

영국의 지배가 끝난 후 치타공 산악지대는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그리고 동파키스탄)에 의해 차례로 지배 받았다. 이 과정에서 치타공 산악지대는 점차 자치권을 잃어갔으며 줌머족의 인권은 심각하게 침해됐다. 1960년대 파키스탄이 점령하던 시기에는 치타공 산악지대의 중심에 수력발전 댐이 지어졌는데 이로 인해 가장 비옥한 땅의 40%에 달하는 수천 헥타르의 땅이 수몰됐고 약 10만 명에 달하는 선주민들이 그들의 땅에서 쫓겨났다.

그리고 자유를 위해 파키스탄에 맞서 벵골 자유 해방군인 묵티 바히티(Mukti Bahinee)와 함께 싸웠던 줌머족들은 1971년에 방글라데시가 파키스탄으로부터 분리해 독립 정부를 구성한 후 아이러니하게도 인종 청소와 인종 차별의 표적이 됐다. 결과적으로 치타공 산악지대의 줌머족들은 그들의 자치권을 지키기 위해 방글라데시에 대항하는 강력한 게릴라 전을 펼쳤다.

그러나 줌머족들은 방글라데시 정부가 다른 지역의 사람들을 치타공 산악지대로 이주시키고 그 지역의 군사력을 강화하면서 심각한 결과에 맞닥뜨리게 됐다. 오늘날까지 치타공 산악지대는 전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무장지역 중 하나다. 총 12만 명의 방글라데시 군인들 중 약 3만5000~4만 명이 치타공 산악지대에 배치되어 있다. 군인들 말고도 약 2만 명의 불법 무장단체들이 이 지역에 배치되어 있다. 치타공 산악지대에 사는 줌머인 40명 당 1명의 군인이 배치되어 있는 셈이다. 이 숫자는 치타공 산악지대 협의가 이뤄지기 전에는 훨씬 높았다. 치타공 산악지대 협의는 줌머족 반란군 지도자와 방글라데시 정부가 1997년에 서명한 평화 협정이다.

한편, 줌머족이 아닌 약 40만 명의 벵골 사람들은 정부의 지원을 받아 1979년에서 1983년 사이에 치타공 산악지대로 이주했고 이 정착민들은 치타공 산악지대의 인구 구성에 커다란 위협이 되고 있다. 이들은 줌머족들의 소유였던 땅을 가져갔으며 군부의 직접적, 혹은 간접적 지지를 받아 줌머족들에게 잔혹한 행위들을 가했다.

1980년부터 방글라데시 군대와 벵골 정착민들에 의해 수많은 대학살이 일어났다. 대학살은 평화 협 이전과 이후로 구분할 수 있다. 치타공 산악지대 협의가 만들어진 1997년 이전에 군대와 벵골 정착인들에 의해 13번의 대학살이 있었으며 협의 이후에는 9번의 크고 작은 학살이 이뤄졌다. 비공식 통계에 따르면 "1980년에서 1997년 사이에 약 2만 명의 사람들이 살해당했다"고 한다.

치타공 산악지대 협의 이후 치타공 산악지대에서 일어난 인권침해는 다음과 같다.

▲ 출처: 선주민에 관한 국제 실무그룹 (international working group on indigenous affairs) 보고서

현재 치타공 산악지대의 상황은 나아진 게 없다. 비록 치타공 산악지대 협의가 1997년 12월 2일에 통과되었지만 치타공 산악지대의 선주민들의 바램을 충족시키기에는 한계가 있다. 만약 이 치타공 산악지대 협의가 완전히 이행된다면 몇몇 주된 문제점들은 해결됐을지도 모른다. 방글라데시 군대의 철수, 벵골 정착민들이 강제로 빼앗은 줌머족 소유의 땅을 돌려줌으로써 땅을 둘러싼 분쟁을 해결하는 것, 벵골 정착민들을 치타공 산악지대 이외의 지역으로 다시 돌려보내는 것 등이 줌머 선주민들이 요구하고 있는 주요한 사항들이며 치타공 산악지대의 주요한 이슈다.

▲ 지난해 방글라데시 선주민 차별과 학대에 반대하는 시위 장면. ⓒ프레시안(자료)

방글라데시 정부가 선주민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있지 않은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 게다가 정부는 방글라데시의 선주민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유포하고 있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방글라데시에 선주민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왔다. 그러나 2007년에 유엔 선주민의 권리에 관한 선언이 채택된 후, 방글라데시 정부는 정반대의 입장을 보였다. 이제 방글라데시 정부는 공식적으로 "방글라데시에는 선주민이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최근 방글라데시 정부는 치타공 산악지대에 외국인이 들어가는 것을 제한했으며 만약 들어간다고 해도 선주민과 이야기하려면 반드시 치타공 산악지대 공무원이 배석한 상태에서 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이것이 방글라데시 정부가 선주민의 권리를 부정하고 치타공 산악지대의 평화를 만들어내려는 의지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아닌가?

* 필자는 박해를 피해 2000년에 한국으로 이주해 온 방글라데시 줌머족 출신의 인권활동가입니다.

*매년 8월 9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선주민의 날' 입니다. 선주민이란 특정한 문화나 전통을 보유하고 있으며 원래부터 해당 지역에 살고 있었던 민족을 이야기 합니다. 뉴질랜드 마오리족, 미국 인디언, 일본 아이누족, 방글라데시 줌머족 등이 대표적인 선주민들이지요. 2007년 유엔인권이사회에서는 '선주민 권리 선언'이 채택되기도 했습니다. 올해 세계 선주민의 날 행사는 "선주민의 언론, 선주민의 목소리 강화하기!"라는 주제 아래 전세계 여러 도시에서 펼쳐집니다.

*한국은 아시아에 속해 있습니다. 따라서 한국의 이슈는 곧 아시아의 이슈이고 아시아의 이슈는 곧 한국의 이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에게 아시아는 아직도 멀게 느껴집니다. 매년 수많은 한국 사람들이 아시아를 여행하지만 아시아의 정치, 경제, 문화적 상황에 대한 이해는 아직도 낯설기만 합니다.

아시아를 적극적으로 알고 재인식하는 과정은 우리들의 사고방식의 전환을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또한 아시아를 넘어서 국제 사회에서 아시아에 속해있는 한 국가로서 한국은 어떤 역할을 해야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나가야 합니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 기반 해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는 2007년부터 <프레시안>과 함께 '아시아생각'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필자들이 각 아시아 국가들의 정치, 문화, 경제뿐만 아니라 유엔과 인권, 개발과 인권, 기업과 인권 등 여러 분야에 대한 국제적 시각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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