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에 뒤떨어졌을 뿐 아니라 실효성도 없는, '사전검열'의 부활이라는 비판이 음악계 안팎에서 거세게 일고 있다.
"청소년 보호 위해 사전심의"
오는 18일부터 시범기간이 시작되는 이번 제도의 내용은 간단하다. 모든 뮤직비디오는 등급을 분류한 후 인터넷에 공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영상물등급위원회가 영화처럼 뮤직비디오 관람 등급을 결정한 후에야 대중에게 노출할 수 있다.
이 제도는 국회에서 통과됐다. 지난 18대 국회에서 김성동 전 한나라당 의원이 예고편 영화와 뮤직비디오 등의 비디오물 등급을 분류하도록 하자는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을 발의했고, 이 법안은 지난 2월 17일 국회를 통과했다.
법 개정 전만 하더라도 뮤직비디오는 (직접적인) 대가를 바라지 않는 영상물이었기 때문에 등급 분류 대상이 아니었다.
이런 규제 법안이 나온 이유는 청소년 보호다. "인터넷을 통해 유통되는 음악영상파일(뮤직비디오)이 선정·폭력적인 내용과 장면을 담고 있음에도 청소년들에게 여과 없이 노출"되기 때문에, 이에 규제를 가해 청소년을 보호하자는 취지다.
영등위가 보도자료와 설명회를 통해 밝힌 내용을 종합하면 세부안은 다음과 같다. 우선 뮤직비디오 제작자나 배급업자는 뮤직비디오 공개 이전 영등위에 등급 분류를 신청해야 한다. 신청을 접수한 영등위는 7인으로 구성된 비디오물 등급 분류 소위원회를 열어 최대 14일의 법정 처리 기한 내에 등급을 결정한다.
이처럼 심사를 거친 뮤직비디오는 '전체관람가'나 '12세 이상 관람가', '15세 이상 관람가',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게 된다. 등급을 받은 뮤직비디오는 뮤직비디오 시작 이후 일정 시간 동안 등급을 표시해야 한다.
▲뮤직비디오 촬영 현장. 뮤직비디오 사전심의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음악인들의 반발이 강하다. ⓒ연합 |
"현실 전혀 몰라" 반발 잇따라
이 소식이 알려진 후 음악계는 크게 들끓었다. 은지원, 윤종신, 양현석 등 음악계 슈퍼스타들이 일제히 분노를 토해냈다. 현실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처사란 이유다.
음악업계 관계자들이 불만을 토한 표면적 이유로는 우선 심사기간이 꼽힌다. 2주나 걸리는 심사기간으로 인해 새 음악을 홍보할 시기를 놓치게 된다는 것. 실제 지난 2010년 3월 이후 매달 신곡을 '월간 윤종신'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하는 가수 윤종신은 이 소식을 들은 후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을 통해 "월간 윤종신 8월호 뮤직비디오를 9월에 봐야 하는 일이 생긴다"며 관련 규제가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는 국외 뮤직비디오 관계자들에게서도 터져나오는 불만이다. 국외 뮤지션의 신보 라이선스에 상당 기간이 소요되는 현실을 감안할 때, 라이선스 이후에도 등급 심사 때문에 적절한 홍보 타이밍을 놓치게 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한 외국계 음반사의 관계자는 "직배사의 경우 뮤직비디오 제공 시점이 통상 불규칙적인데, 영등위 심사까지 걸린다면 홍보 시기를 놓칠 수 있다"며 "한국 지사만 제대로 된 홍보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그는 나아가 "과연 누가 이런 제도를 제대로 지킬 수 있겠느냐"며 "어떻게든 우회 방법을 찾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국외 뮤지션의 음반이 국내에 라이선스되는 순간은 이미 자국에서 제작한 관련 뮤직비디오가 팬들에게 충분히 알려진 후다. 심사가 전혀 실효성을 지니지 못한다는 얘기다. 만일 국외 음반업계에서 링크 첨부 등의 방법으로 우회로를 찾을 경우, 국내 음악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역차별 논란까지 일어날 수 있는 대목이다.
정부가 지정한 제도를 따르기 위해 왜 업계가 심사비까지 내야 하느냐는 반발도 만만찮다. 영등위는 국내 뮤직비디오의 경우 10분당 1만 원, 국외 뮤직비디오는 1만7000원의 심사 수수료를 받기로 했다. 업계 관계자는 "왜 국내와 국외 제작물의 가격이 다른지도, 피규제 대상이 왜 돈까지 쥐어줘야 하는지도 이해하기 어렵다"며 "정부는 콘텐츠 활성화를 장려하겠다고 해놓고, 이제 와서 이런 정책을 취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비판했다.
표현의 자유 위축시키는 규제
무엇보다 이 제도가 근본적으로 군사독재 시절의 사전검열을 떠올리게 하는, 시대에 맞지 않는 제도라는 지적이 많다. 독재군부가 상당수 대중음악을 금지곡으로 묶거나, 가요그룹의 이름을 억지로 한글로 바꾸게 한 처사를 떠올리게 한다는 얘기다.
대중음악의견가 서정민갑 씨는 "뮤직비디오를 만드는 음악인이 자연히 원하는 표현을 과감하게 하기 어려워진다"며 "대중예술의 표현에 대한 검열은 매우 신중하고 조심스러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같은 인터넷 규제 흐름이 이명박 정부 들어 심각한 수준으로 떨어진 표현의 자유 위축과 무관하지 않다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의 일간지 <뉴욕타임스>는 12일(현지시간) "한국은 인터넷 검열 중. 어딘지 혼동되는가? 바로 남한이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SNS가 (정부의 검열에 대한) 새로운 저항의 분출구가 됐다고 적시하며 "세계적으로 민주주의가 번성한 나라인 한국에서 강한 인터넷 검열이 이뤄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실제 국경없는 기자회(RSF)는 올해 한국을 인터넷 감시국으로 지정했다.
서정 씨는 "확장되어야 할 표현의 자유가 오히려 더 축소되고, 국가의 개입이 늘어나는 건 과거로의 퇴행"이라며 "'사회적 통념'이라는 잣대로 표현의 자유를 쉽게 재단해서는 안 된다. 표현의 자유가 바로 민주사회의 척도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반발이 예상 수준 이상으로 거세자, 영등위도 일단 한 발 물러서는 모양새다. 영등위는 당장 업계 관계자들과의 미팅을 늘리면서 음악업계의 의견을 일부 수용하고 있으며, 이르면 오는 16일 경 새로운 수정사항을 재공지할 예정이다.
수정되는 내용에는 우선 등급 표시기간을 30초에서 3초로 단축하는 방안이 담길 것으로 예상된다. 등급 표기 방법 또한 뮤직비디오 본 상영분의 영상 침해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담는 방법이 거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논란이 된 심사기간은 5일에서 7일로 크게 단축시킬 예정이다.
영등위 관계자는 그러나 "등급 분류는 뮤직비디오 공개 여부를 결정하는 사전검열제가 아니라, 공개를 전제로 연령별 구분을 하는 절차"라며 "군사독재 시절 사전검열과는 다르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워낙 반발과 문의사항이 많아 영등위도 좀 더 현실적인 운영이 가능하도록 노력하고 있다"며 다만 "어떤 정책이든 시행과정에서 문제는 발생할 수 있다. 계속 업계와 협의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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