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결과는 익히 알려진 바다. 가장 먼저 YTN이 큰 진통을 겪었고, 정연주 KBS 전 사장의 무죄가 법원 판결로 확인됐다. MBC 노조는 이명박 정부 들어서만 다섯 차례 파업을 벌였다.
관계자들은 이 때문에 "방송사 임원 선임 제도에도 문제가 있지만, 정부의 후안무치함이 더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현 정부 들어 언론 관계자들 사이에서 정부의 언론 장악 사례로 꼽힌 사건들을 정리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수많은 언론인들이 펜을 놓고 길거리로 나왔다. ⓒ프레시안(최형락) |
YTN
이명박 정부가 출범 이후 가장 먼저 손을 본 곳은 YTN이었다. YTN은 한전 자회사인 한전KDN이 지분 21.43%를 보유한 대주주이며 KT&G(19.9%), 한국마사회(9.5%), 우리은행(7.4%) 등도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주요 주주다. 모두 정부가 직·간접 소유한 기업이다. KT&G의 경우 민영화됐으나, 1대 주주인 중소기업은행 지분 68.6%를 기획재정부가 갖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 후보 시절 언론특보를 지냈던 구본홍 당시 고려대 석좌교수의 차기 사장 내정설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논란으로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2008년 5월경부터 본격적으로 언론가에 돌았다. 실제 이 해 5월 29일 YTN 이사회는 구 씨를 차기 사장으로 내정했고 7월 17일 임시 주주총회에서 사실상 날치기로 의결했다. 스카이라이프 이몽룡 사장에 이어 '두 번째 낙하산 사장'이 결국 여론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보도채널 사장에 선임된 순간이었다.
YTN 노조는 이튿날인 18일부터 3개월가량 구 사장 출근저지 투쟁에 나섰고, 사원 283명이 릴레이 단식 농성을 이어갔다. 이는 결국 1992년 MBC 방송민주화운동 이후 전례가 없었던 언론인 대량 해고로 이어졌다. 이 해 10월 6일 구 사장은 노종면 당시 YTN 노조위원장, 권석재 사무국장, 현덕수 전 위원장, 우장균 정치부 청와대 출입기자(전 기자협회장), 조승호 정치부 국회반장, 정유신 돌발영상팀 PD 등 6명을 해고하고 정직 6명, 감봉 8명 등 총 33명을 징계했다. 언론인 탄압의 시작이었다.
구 사장이 물러난 후 들어선 배석규 사장도 '낙하산' 논란을 일으킨 건 마찬가지였다. 구 전 사장 재임 당시 신설된 전무이사직을 처음 맡았던 배 사장은 구 전 사장이 전격 사의를 표명한 2009년 8월 3일 직후 열린 긴급 이사회에서 신임 사장으로 올랐다.
배 사장은 취임 이후 곧바로 사원 추천제에 의해 선임된 정영근 당시 보도국장을 경질하고, 임장혁 <돌발영상> PD는 3개월 대기발령 조치했다. 방송사 중 유일하게 보도국장을 선거로 뽑던 회사 인사기준이 사장이 바뀐 후 사라졌다. 이른바 '낙하산' 경영진이 들면서 권력 비판적인 보도가 사라졌다는 성토가 이어졌다.
노종면 전 위원장은 "경영진 말을 듣지 않는 이들이 인사조치 대상에 올랐다. 이전 정권에서는 없던 일이었다"며 "군사정권 시절 일상적으로 이뤄지던 보도통제가 이명박 정부 들어 되살아났다"고 말했다.
▲정연주 전 KBS 사장. 그의 해임이 부당했음이 사법부 판단을 통해 가려졌으나, KBS는 흔들리지 않았다. ⓒ프레시안(최형락) |
KBS
YTN에 이어 KBS가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출발은 노무현 정부 당시 취임한 정연주 사장 솎아내기였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전부터 보수 언론은 'KBS 사장 교체설'을 보도했다. 지난 2008년 2월 12일 보도된 <동아일보>의 "'포스트 정연주' 물밑 경쟁 후끈"기사를 보면, 당시부터 김인규 현 KBS 사장(대선 당시 이명박 캠프 비서실 언론보좌)이 차기 물망에 올랐음을 확인할 수 있다.
뒤이어 KBS 노조가 정 사장 퇴진을 요구했다. 노조는 같은 달 13일자 노보에서 "KBS 사장 자리가 대통령의 의중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한, KBS 사장이 자신을 임명한 대통령과 운명을 같이 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하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며 "KBS는 또 다시 낙하산 사장을 맞이해야 할 처지에 놓여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밝혔다.
이어 부장급 이상 관리직으로 구성된 KBS 공정방송노조가 같은 달 25일 정 사장을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5월 14일에는 KBS의 세금 소송을 담당했던 전직 간부가 정 사장을 배임 혐의로 형사 고발했고, 같은 달 21일에는 감사원이 특별감사를 전격 결정했다. 정부가 가진 사정 권력이 총출동해 정 사장 찍어내기에 나섰다. 정 사장은 수차례 이어진 검찰과 감사원의 출석 요구에 불응하며 버텼다. 그러나 KBS 이사회가 8월 8일 밤 감사원이 낸 해임요청안을 가결한 데 이어 이 대통령이 11일 해임 제청안에 서명해 KBS에서 물러났다.
KBS 새 사장은 이병순 KBS 비즈니스 사장이었다. 일찌감치 낙하산 논란의 한복판에 섰던 김인규 언론보좌를 대신해 들어선 이 사장을 KBS 노조는 "낙하산이 아니"라며 반대하지 않았다. 이 사장은 연임하지 못하고 차기 사장으로 일찌감치 하마평에 오르던 김인규 사장이 취임했다. KBS 노조는 "총파업에 나서겠다"고 했으나, 파업안은 부결됐다. 그리고 KBS는 곧바로 "친정부적 매체로 전락했다"는 비판에 시달려야 했다.
정 사장 퇴진을 놓고 일어난 정치권의 공방은 KBS 내부도 찢었다. 정 사장 퇴진을 요구하던 KBS 노조와 달리 KBS 경영협회, 기술인협회, 기자협회, 아나운서협회, 촬영감독협회, 카메라감독협회, PD협회 등 7개 직능단체는 정권의 KBS 장악 시도를 비판하며 노조와 다른 목소리를 냈다. 직능단체에서 정 사장 해임 결정에 반대하던 이들은 8월 11일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KBS 사원행동'을 출범시켜 본격적으로 정권과의 투쟁을 시작했고, 이들 중 노조를 탈퇴한 50명은 12월 16일 새노조를 설립했다. 일찌감치 전국언론노동조합을 탈퇴한 KBS 노조를 대신해, 새노조는 언론노조에 가입해 양대 노조 체제를 출범시켰다. 새노조는 지난 2010년 7월, 29일간 총파업을 벌였고 올해도 93일간 총파업을 이어왔다.
김현석 KBS 새노조위원장은 "여전히 특정 부서에 새노조 조합원의 발령이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 있지만, 앞으로 KBS가 극복해야 할 부분"이라며 "여당 마음대로 KBS 이사회를 주무르는 현 상황을 시급히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MBC
YTN, KBS에 이어 MBC도 '언론장악' 논란의 한복판에 섰다. 2010년 2월 8일 엄기영 사장이 물러난 후 같은 달 26일 김재철 사장이 취임했다. 이날 온 언론은 김연아 선수의 벤쿠버 동계올림픽 금메달 수상 소식으로 뒤덮였다. 김 사장은 노무현 정부 시절 임명된 방문진 이사들이 남아있던 지난 2008년 1월에도 MBC 사장 후보에 지원한 이력이 있어, 일부 보수언론에서는 "친노 인물"로 비판받기도 했었다.
김 사장은 사장 후보 면접에서 당시 광우병 위험성에 대한 보도로 전국을 뒤집었던 <PD수첩>에 대해 "진상규명위원회를 구성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논란을 일으켰다. 김 사장 취임 후 MBC는 "친정부적 매체로 전락했다"는 비난에 시달렸다. 김우룡 당시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의 이른바 "쪼인트" 발언이 세상을 흔들었다. 연달아 방송인들이 색깔론 공세로 TV에서 사라졌다. 이로써 "청와대의 방송장악이 완결됐다"는 주장이 나왔다.
MBC 노조는 같은 해 4월 5일을 시작으로 총 다섯 번의 파업을 벌였다. 가장 마지막 파업이 올해 초 이어진 170일의 최장기 파업이다. 3년 사이 툭하면 뉴스 시간이 단축되고, 예능 프로그램이 중단됐다. 그러나 김 사장을 이기지 못했다. 그 사이 <PD수첩> 제작진은 모조리 물갈이됐고, 8명이 해고됐으며, 수백 명이 징계당했다. MBC <뉴스데스크>는 일각에서 "상업방송 뉴스만 못하다"는 비판에 시달렸다.
김 사장의 돌출행동도 비판을 받았다. 김 사장이 사장에 취임한 직후 고향 사천에는 그를 축하하는 현수막이 일제히 걸렸다. MBC 내부에서는 "5도2촌(5일은 서울에서 보내고 2일은 고향에서 보낸다)"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일각에선 "선거 출마를 준비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돌았다.
지방선거 이후에도 논란은 계속됐다. 재일동포 무용가 J씨와의 관계가 도마에 올랐고, 법인카드 남용 문제가 거론됐다. 그러나 김 사장은 물러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김 사장을 위시한 경영진은 더욱 강경하게 노조를 압박했다. '시용기자'라는, 기자들도 알기 어려운 계약직 채용이 이어졌다. 19대 총선 보도는 "3사 중에서도 최악"이라는 내외부의 비판에 시달렸다.
정영하 MBC 노조위원장은 "공영방송은 한국 사회에서 갖는 역할이 있다"며 "어느새 공영방송사가 '3류 양아치 기업'으로 전락해버렸다"고 말했다.
▲노종면 전 YTN 노조위원장. 이명박 정부 들어 언론인들은 수난 시대를 맞았다. ⓒ프레시안(최형락) |
"결국 이명박 정부가 문제"
비록 대안 매체가 등장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회자되지만, 한국 사회에서 방송 뉴스가 가진 힘은 여전히 강하다. 지난해 8월, 한국기자협회가 창립 47주년을 맞아 협회원들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KBS와 MBC는 영향력에서 각각 1위(31.6%)와 3위(13.8%)를 차지했다. 신뢰도에서도 두 방송사는 나란히 2위와 4위에 올랐다. 지난 5일 방송통신위원회가 발표한 지난해 방송사업자 시청점유율에서도 KBS는 36.0%를 기록해 방송사 중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고, MBC가 18.4%로 뒤를 이었다.
정부가 이들 방송사를 장악하려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영묵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이 발생한 이유에 방송이 있다는 판단을 새누리당이 내린 것"이라며 "이 때문에 수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방송 장악 노력이 일방적으로 이뤄졌다"고 평가했다.
최 교수는 "국가권력이 작정하고 방송을 장악하려 하면 어디까지 갈 수 있느냐를 이명박 정부가 보여줬다"며 "보수 언론이 종합편성채널로 방송을 시작하고, 공중파가 취약해지면서 공론의 장 자체가 취약해졌다. 이명박 정부는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공중파가 자기 편이 안 돼도 상관없다 생각한 듯하다"고 설명했다. 즉, 노조의 극심한 반발로 인해 정상 방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도, 그 영향력만 줄어든다면 상관없다는 판단을 내렸으리란 얘기다.
이남표 성균관대 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는 이명박 정부 들어 지속된 방송 장악 사태로 인해, 한국 사회의 후진성이 다시금 입증됐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결국 우리나라처럼 사장 자리에서 물러나긴 했지만, 2차 이라크 전쟁 당시 BBC 사장이었던 그렉 다이크는 (전쟁에 참전하는) 노동당 정부와 각을 세웠다"며 "정치권력과 언론은 코드를 맞춰선 안 된다는, 언론의 독립성을 중시하는 문화가 한국에 있는지 반문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세계 최고의 공영방송사로 칭송받는 영국의 BBC도 사실상 문화미디어체육부가 지배한다.
이 교수는 "KBS 이사진, 방문진 이사진이 이번 정부처럼 여야로 첨예하게 나뉜 사례가 없었다"며 "한국 정치문화의 후진성을 이명박 정부가 강하게 자극한 것"이라고 평했다.
이 정부 들어 처음으로 해직된 언론인인 노종면 전 YTN 노조위원장은 "군사정권 시절 일상적으로 이뤄지던 보도통제가 이명박 정부 들어 되살아났다"며 "이른바 '민주정권' 이후 들어선 현 정권은 군사정권의 디엔에이(DNA)를 가졌다"고 비판했다.
노 전 위원장은 현재 정치권과 학계에서 거론되는 공영언론사 이사진 개편 논의에 대해서도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드러냈다. 당장은 현 정부의 언론장악에 동조한 이들부터 언론계에서 몰아내고, 정치환경을 개선하는 노력이 더 시급하다는 이유다.
그는 "이 시점에서 제도개선 논의만 이뤄져선 안 된다. 현재의 언론인 대량 해직 사태, 언론 장악 사태는 제도를 시행하는 이들의 악의로 인해 발생했다"며 "우선 장악 주체들을 교체한 뒤 제도개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섣불리 정치권의 타협에 기대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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