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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대 통합네트워크'에서 서울대를 빼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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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대 통합네트워크'에서 서울대를 빼버리자

[창비주간논평] 서울대라는 '가시'가 사라지면…

2003년 정진상 교수가 서울대 포함 전국 30여개 국공립대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통합하고 공동학위제를 운영하는 '국립대 통합네트워크' 안(이하 네트워크 안)을 처음 제안했을 때, 그것에 귀를 기울인 것은 민주노동당뿐이었다. 하지만 제안된 지 10년 만에 그것은 18대 대선을 앞두고 통합민주당의 교육개혁방안으로 진지하게 검토되고 있다. 그만큼 이 안이 대안으로 설득력을 넓혀왔고 실현 가능성도 높아졌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그것이 실제 변화를 이끌어내는 정책안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 대학과 사회의 상황에 대해 좀더 '타협적'이 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점을 논하기 전에 잠시 4·11총선에서 있었던 일 한가지를 상기하고 싶다.

4·11 총선 전 여러 유명인들이 트위터를 통해 투표율이 70%를 넘으면 어떤 특정한 퍼포먼스를 약속하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투표 독려의 충정에는 깊이 공감하지만 투표율 70%는 불가능한 수치였다. 이렇게 목표치가 지나치게 높으면 퍼포먼스 약속이 그렇게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게 되고, 그만큼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기는 어렵다. 실제로 4·11총선의 총투표율은 54.2%에 그쳤다.

적절한 목표 설정이 진정으로 급진적인 것

하지만 만일 그들이 목표치를 60%로 하거나 2010년 지방선거보다 3%만 더 끌어올리자고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단정하기 어렵지만, 필자는 그런 적절한 설정이야말로 시민 각자가 자신의 참여를 통해 목표를 실현할 수 있다는 믿음을 불러일으켜 투표율을 높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요컨대 사회적 대안을 조직하는 일에서는 원대한 비전을 갖는 것 못지않게, 대중이 자신의 참여로 원하는 것을 손 안에 넣을 수 있다는 신뢰있는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진정으로 급진적이며 대담하기까지 한 것일 수 있다.

네트워크 안도 투표율과 마찬가지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며, 이 경우 논란이 되는 것은 그 안에 가시처럼 박혀 있는 서울대다. 네트워크 안은 서울대를 전국 국공립대학 네트워크 안의 학생들에게 학부강의는 제공하지만 학부생을 모집하지는 않는 대학원중심 대학으로 개편할 것을 주장한다. 서울대를 포함해 전체 국공립대학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기 위해서는 국공립대학들 가운데 현격하게 다른 규모와 위상을 가진 서울대를 이런 식으로 개혁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바로 이 때문에 네트워크 안은 서울대 폐지안의 일종으로 오인될 소지가 있으며, 일부 언론들은 그 점에 악의적으로 초점을 맞춰 반대 여론을 조직하고 있다. 예컨대 서울대가 폐지되면 연세대ㆍ고려대를 중심으로 학벌 서열화가 재편될 뿐 달라질 것은 별로 없을 것이라든가, 국공립대학의 하향평준화만 이루어질 것이라는 반론이 그런 것이다.

서울대 폐지론으로 오인되는 네트워크 안

아마 네트워크론을 펴온 쪽에서는 이런 주장을 논박할 수 있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 논쟁이 본격화되지 않아 상세히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 네트워크론은 매우 복잡한 개혁안이다. 그리고 네트워크론 쪽의 논박은 그런 복잡한 개혁이 순조롭게 이루어질 때 충족될 수 있다.

예컨대 서울대의 학부교육에 누가 참여할 수 있으며 그들을 어떻게 선발할지, 대학의 물리적 자산 및 정원과 정확히 비례하지 않은 인구 분포를 어떻게 조정할지, 대학원중심 대학인 서울대와 나머지 대학들의 대학원 간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할 지, 의·법학을 비롯한 여러 전문대학원은 어떤 체제로 운영할지 등 쟁점사항은 매우 많다. 그리고 그 하나하나가 정교한 설계 못지않게 여러해 누적된 노하우의 축적 없이 제대로 운영되기 쉽지 않다.

네트워크 안의 이런 복잡성은 그렇지 않아도 이를 거부할 근거를 찾는 기득권 집단, 특히 서울대와 그 동창집단의 도전을 강화할 가능성이 많다. 이들이 가진 엄청난 기득권을 생각하면 서울대 폐지론으로 쉽게 오인되는데다 복잡하고 정교한 정책들의 순항에 의해서만 소기의 효과를 낼 수 있는 개혁안의 관철은 재벌 서너개를 한꺼번에 개혁하는 것보다 더 힘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외에도 서울대 법인화가 실행되어 법적 장애도 생겼다. 네트워크 안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통합민주당 혹은 야권연대가 그것을 공약으로 내걸고 연말 대선에서 승리해야 한다. 하지만 그럴 때조차 지난 국회에서 서울대를 법인화하는 법령을 단독 처리한 한나라당 후신 새누리당이 다수당인 국회에서 네트워크 안이 수용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서울대라는 가시를 빼버리자

그렇기 때문에 네트워크 안이 실현될 수 있는 길은 국공립대 통합네트워크 안에서 서울대라는 가시를 빼버리는 것이다. 서울대를 제외하면 서울대 폐지에 갇힌 논쟁에서 벗어날 수 있고, 서울대와 그 동창집단이 반대를 조직할 일도 없어진다. 더불어 국회 다수당인 새누리당의 반대도 상당정도 명분을 잃게 된다. 그뿐 아니다. 서울대로 인해 엄청나게 복잡해진 네트워크 안도 간결하게 만들 수 있다. 서울대를 제외하면 국공립대들의 조건은 격차가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합의와 조정 작업 또한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식으로 발상을 전환해서 보게 되면 서울대 법인화는 국립대학 체제의 사멸을 고지하는 조종(弔鐘)이라기보다 새로운 국공립 네트워크 체제로 이끄는 카펫이 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장애물인 서울대는 이미 국립대학 체제 안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통합과 개혁을 바란다

어떤 이는 서울대가 빠진 네트워크 안은 학벌체제와 입시지옥을 타파하지 못할 것이라 말할 것이다. 한마디로 해서 서울대 없는 국공립대학 통합네트워크는 '앙꼬 빠진 찐빵'이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그건 배고픈 우리들에게 먹음직스런 찐빵일 수 있다. 정말로 제대로 통합되고 개혁된다면, 그리고 그것을 위해 충분한 재정지원이 이루어진다면, 우리는 서울의 명문 사립대학과 대등한 또는 더 우월한 지방 국립대학 체제를 마련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우리 대학이 한줄의 서열에서 벗어나 중상위권이 두툼해진다면, 그만큼 대학간 경쟁도 더 의미있는 것이 될 것이며, 입시경쟁도 크게 완화될 것이다. 그리고 국립대 네트워크가 발전하고 또 발전한다면 언젠가 서울대조차 그 속으로 들어오고 싶어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서울대 폐지의 논란으로부터 벗어난 네트워크 안은 손에 넣을 수 있는 대안으로서 대중의 기대감을 높일 것이다. 마치 총선 투표율 목표 70%가 아니라 60%가 그렇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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