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핵심에는 미국의 대중봉쇄동맹 구축이 있다. 작년 후반기부터 소위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Pivot to Asia)' 전략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데, 호주로부터 일본, 한국을 거쳐 베트남과 필리핀까지 중국에 대한 포위전략이 구체화되는 모양새다. 여기에 이명박정부가 임기말 친미반북정책을 결산하는 차원에서 심상치 않은 행보를 보인다. 이와 관련된 여러 가지 게임체인지 논의들이 나오고 있다.
게임체인지론 I: 북핵문제, 그 30년의 판을 뒤엎자?
2.29 북미합의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위성발사를 강행하자 한미양국 정부 일각에서는 북한이 주도권을 행사해온 핵과 미사일 의제에서 벗어나 판을 엎어야한다는 목소리가 불거져 나왔다. 사실 직접적인 '게임체인지'(game change)라는 용어는 미국 주재 한국 외교관의 입을 통해서 나왔다. 4월 16일 주한미국대사관 기자간담회에서 "지금까지 한미 양국은 모두 북한이 작성한 각본대로 행동하고 반응해왔지만, 지금부터는 이를 바꾸려한다"라며 게임체인지를 언급했다. 그리고 한국 언론에 알려지면서, 미국의 대북정책에 근본적 변화가 오는 것이 아닌가하는 추측이 대두되었던 것이다.
미사일발사 강행이 북한의 새로운 리더십에 대해 워싱턴이 가졌던 일말의 기대를 무산시킴으로써 미국 정부 내에서 대북정책 전면 변화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던 것은 사실로 보인다. '전략적 인내' 정책의 효용성을 재검토하고 '도발-협상-보상-도발'이라는 악순환의 질적 전환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덧붙여 북한체제의 민주화, 인권, 민생 등에 대해 적극적으로 문제제기를 하고 개입의지를 표명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미사일발사를 비난하면서 북한의 민생문제를 연계한 발언이나, 중동민주화 언급이 이어졌고,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 역시 북한의 내부문제를 거론했다. 최근에는 리처드 루가, 존 케리 상원의원이 대북식량원조금지를 명시한 새로운 농업법을 발의해 상원에서 통과됐다.
그러나 이런 일련의 사건들이 미국 대북정책의 진정한 게임체인지라고 보기에는 좀 무리가 있다. 미국 역대정권의 30년 북핵문제 해결노력이 실패한데 대한 좌절감과 북한정권에 대한 염증이 표출된 차원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타당해 보인다. 미국 측의 공식 의사표시도 없고, 오히려 한국 측의 자가발전과 양국 보수파의 동조가 게임체인지론 확산의 주요 동력인 것으로 판단된다. 더욱이 게임체인지론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 대북강경책 및 북한붕괴론의 연장이다.
▲ 지난 3월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12 서울 핵안보정상회의장에서 기념촬영을 위해 이동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 |
게임체인지론 II: 아시아에 반중동맹을 구축하자?
두 번째 게임체인지론은 오바마의 대중봉쇄체제 구축 움직임과 관련이 있다. 정권 출범 전후로 부시 행정부의 대중견제정책을 지양하고, 협력관계를 지향하겠다며 'G2'를 내세웠지만, 최근 중국에 대해 공세적 노선으로 전환하고 있다. 2011년 후반기부터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을 선언한 것이 출범 초에 밝혔던 아시아중시정책의 연장이라고 볼 수도 있으나, 초기의 대중협력보다는 견제와 봉쇄에 초점이 옮겨갔다. 2010년 이후 한반도와 남중국해의 긴장상황을 계기로 소위 '오바마 공세(Obama Offensive)'가 본격화되었다고 중국은 해석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은 호주로부터 한반도, 베트남, 필리핀, 인도에 이르는 아시아 동맹벨트를 강화해왔다. 호주 북부 다윈항에 새 미군기지 건설을 발표했고, 필리핀과의 새로운 안보보장조약인 마닐라선언을 공표했다. 남중국해 제해권 강화를 위해 필리핀은 물론이고 베트남, 인도네시아, 태국과도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등 전방위적 행보를 보여 왔다. 미국정부는 항해의 자유라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중국에 대한 포위 성격이 짙다. 특히 중국에 대한 포위의 역할과 함께 더 나아가 중국을 대체할 수 있는 여러 조건을 갖춘 인도와의 협력을 꾸준히 강화하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대중포위 전략은 한반도에서도 적극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대북억지만을 담당해오던 한미동맹이 미국의 동북아전략을 위해 동원되는 체제로 변화하고, 미국의 묵인 또는 협조아래 일본의 군사적 역할이 커지고 있다. 특히 중국봉쇄체제의 완성을 위한 가장 중요한 퍼즐로 한미일 군사협력체제 구축을 시도하고 있다. 지난 6월14일 발표된 한미외교국방장관회의(2+2)의 공동선언은 중국을 겨냥한 한미일 3각동맹을 노골적으로 표면화시켰다. 그 첫 번째 후속조치가 한일 군사비밀보호협정의 체결인데, 미국이 한국정부를 강하게 압박했다고 전해진다. 북한위협증가를 이유로 내세우고 있지만 속내는 전혀 그렇지 않다. 미국의 대중봉쇄 프레임에 철저하게 갇히고 있는 한미동맹의 실상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한미 미사일 공동운영이나 한국형 미사일방어(KAMD) 계획도 모두 같은 맥락이다.
게임체인지론 III: 한반도평화체제구축으로 제로섬게임을 벗어나자
세 번째 게임체인지론은 동북아의 신냉전적 제로섬게임을 탈피하고 상호의존적 평화체제로 방향을 트는 것을 말한다. 다른 식으로 표현하자면, 첫 번째 게임체인지의 대북강경노선을 협상국면으로 바꾸고, 두 번째 게임체인지인 신냉전질서의 도래를 막는 것이다. 앞에서 제기한 두 게임체인지론보다는 현재로서는 상대적으로 약한 움직임이지만, 한국은 물론이고 동북아 역내국들에게 가장 바람직한 대안이다. 실현가능성에 있어 많은 장애물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기대감을 갖게 하는 몇 가지 요건들이 있다.
먼저 동북아 정권교체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정권교체기에 두드러지는 민족주의에 대한 호소는 강경한 대외정책으로 이어진다. 동북아 6개국이 공통적으로 이런 경향을 보이고 있으며, 앞의 두 게임체인지를 주도하고 있는 변수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를 다른 측면에서 보면, 정권교체가 끝나고 나면 안정기를 회복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게임체인지의 키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오바마 정부가 가장 확실한 예가 될 수 있다. 취임 초의 예상과 달리 북한과의 협상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고, 중국과도 경쟁구도로 가는 가장 큰 이유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이 11월 대선변수를 제기한다. 중국의 협력을 얻어내려는 G2전략이 중국의 달라진 위상만 확인한 채 별 소득이 없자 게임의 주도권을 다시 가져오겠다는 의도가 강하다. 또한 대러 정책과 함께 유화정책으로 인해 미국을 세계의 조롱거리가 되게 만들었다는 공화당의 공세에 대해서 오바마는 재선을 위해 의도적으로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는 해석이다.
물론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봉쇄엔 구조적 변수가 작동한다는 점에서 오바마가 재선 이후 정책을 변화하는 것만으로 되돌릴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중국의 부상을 구조적 위협으로만 간주하는 것도 신현실주의자들의 무리한 주장일 수 있다. 사실 중국이 아직 미국을 위협할 상대라고 보기는 힘들다는 사실을 양국 모두 인지하고 있다. 오히려 동북아에 있어 미국의 영향력은 지금이 역사상 최고조라는 평가다. 미국은 동북아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희생하지 않고도 중국이 가진 일정부분의 영향력을 존중해줄 여력이 충분하다. 국내정치적 이익을 위해 긴장을 고조시키는 '과잉'봉쇄는 중국의 공격적 대응을 초래한다. 작년 12월 6일 후진타오가 중국해군의 전투력증가를 가속화하겠다는 선언이 바로 그런 경우이다. 이런 식의 상승작용은 미국에게도 장기적으로 이익이 되지 않는다.
미국과의 대결구도는 중국에게도 이득이 되지 않는다. 중국은 동북아의 안정이 자신의 발전에 필수적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기에 미국이 저의를 가지고 벌이는 신냉전 전략에 말려들지 않는 실용주의적 접근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중국이 동북공정이나 남중국해 영토분쟁 등 주변국들과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패권적 행보들이 미국의 신냉전 전략에 어느 정도 정당성을 제공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중국은 자신들의 부상이 위협이 될 것이라는 미국의 공세가 왜 주변국들에게 어필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선택은?
세 개의 게임체인지론 중에 우리의 선택지는 분명하다. 세 번째 게임체인지가 절실한 입장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앞의 두 게임체인지론을 강화시키는 위험한 행보를 계속해왔다. 선핵폐기론에 입각한 대북강경론으로 남북관계를 파탄으로 몰고 갔으며, 안보위기까지 초래했다. 맹목적 친미노선과 북한위협 부풀리기로 '미국의, 미국에 의한, 미국을 위한 한미동맹'으로 만들어버렸다. 게다가 이제 일본의 군사대국화의 빗장을 우리가 앞장서서 열어주려 하고 있다. 일본이 과거사에 대해 철저한 반성이 있다고 해도 우려스러운 일인데, 한일합방을 여전히 합법적이라고 주장하며, 위안부에 대한 사과와 보상은 전혀 없이 독도영유권까지 주장하는 일본의 행태를 겪으면서도 이런 반민족적 행태를 보이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국민의 힘으로 체결직전에 막을 수 있었던 것은 천만다행한 일이다. 우리가 일본에게 군사정보를 제공하는 자체가 평화헌법이 금지한 일본의 재무장을 승인하는 행위가 될 수 있으므로 보류가 아니라 즉시 폐기해야 한다.
이러한 현실에서 한국의 균형외교가 절실하게 요구된다. 참여정부의 외교전략 기조로 등장하였으나, '반미'와 '과대망상'으로 치부되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었지만, 한미동맹을 중시하되 한중협력을 잃지 않는 균형외교가 역사적 과제로 재등장해야할 시점이다. 물론 미국이 대중공세를 지속하고, 중국이 맞대응하면 한국이 할 수 있는 부분은 제한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능한 범위 내에서 신냉전의 도래가 누구에게도 이득이 되지 않는다는 공감대와 신뢰확보에 나서야 한다. 무엇보다 모든 대결상황이 빌미로 삼고 있는 북한위협을 해결하기위해 한반도 평화체제를 시급히 구축해야 한다. 평화체제구축과 비핵화를 병행하면서 선순환구조를 이루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에게 이런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이번 한일 군사협정 체결시도처럼 다음 정부에게 무거운 부담을 지우는 것보다는 조용히 남은 임기를 끝내는 편이 훨씬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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