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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 오르는데도 "똥 밟았다" 한숨 쉰 까닭은…

[사내하청 직고용, 그 이면엔?·上] 불법파견 은폐·정규직 전환 회피 꼼수

지난달 11일 현대자동차는 2년 이하 일한 사내 하청노동자 1564명의 계약을 해지하고, 이들을 7월 중에 단기 계약직(인턴사원)으로 현대차에 직접 채용하거나 해고하기로 했다. 이미 지난 2일에는 현대차 울산공장에 직접 고용한 계약직 노동자 239명이 투입됐다.

집단 계약해지 조치를 두고 현대차 관계자는 "개정 근로자 파견법 시행에 따른 법적 논란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라고 설명했다. 개정 파견법에 따르면, 오는 8월 2일부터는 '불법파견' 판정을 받으면 단 하루만 일해도 원청업체가 하청노동자를 정규직으로 고용할 의무가 생긴다. 현대차로서는 잠재적인 정규직 전환 대상자의 범위가 기존의 2년 이상 일한 하청노동자에서 전체 하청노동자로 넓어진 셈이다. 이번 조치가 "정규직 전환의무를 회피하고 불법파견을 은폐하려는 꼼수"라고 비판받는 이유다.

금속노조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지회는 "현대차가 조합원들을 정리해고하고 강제 전환배치한다면 파업에 돌입할 것"이라고 맞섰다. 오는 5일 파업 찬반투표를 앞두고, 울산 현대자동차 공장을 찾아 직접 고용 전환을 앞둔 하청노동자들의 심경을 들었다. <편집자>

"재수 없게 똥 밟았다."

현대자동차에서 '직접 고용 대상자' 물망에 오른 사내하청 노동자 박기용(가명) 씨의 첫 반응이었다. 뜻밖의 대답이었다. 몇 개월짜리 단기 계약직이라도 현대차에 직접 고용되기를 원할 줄 알았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하청업체 관리자는 "직접 고용 인턴사원이 되면 시급이 5500원으로 오르고, 정규직과 비슷한 복지를 받을 수 있다"고 박 씨를 구슬렸다. 현대차 사내하청에서 7년 동안 일한 박 씨의 시급은 현재 약 5000원. 월급이 오르는데도 박 씨는 "직접 고용도, 전환배치도 싫다"고 거절했다.

"2년 못 채우고 해고될 것…시급 올려줘도 싫다"

이유는 간단했다. 언제라도 잘릴 수 있다는 것. 박 씨는 "산재로 회사를 잠시 쉬거나 휴가 중인 정규직을 대신해 2개월, 3개월짜리 계약을 체결한 사람들이 있다"며 "인턴사원이 되면 2개월, 1개월짜리 계약서만 쓰다가 (정규직이 돌아오면) 2년도 못 채우고 잘릴 것 같다"고 말했다.

2년 뒤 해고돼도 노조의 보호를 받을 수도 없다는 우려도 컸다. 박 씨는 "현대차에 밉보여서 잘리지 않으려면 지금 가입한 비정규직노조를 탈퇴해야할 것"이라며 "그렇다고 해서 현대차 사측이나 정규직노조가 계약직 노동자를 조합원으로 인정할 것 같지도 않다"고 말했다.

"현대차나 정규직노조가 조합원 자격을 인정해주면 너도나도 직고용 계약서를 다 쓰게요? 인턴사원은 정규직, 비정규직 조합원 자격을 둘 다 못 얻는 제3의 노동자예요."

주변에 직접 고용 계약직 지원서를 쓴 사람들을 보더라도 희망적인 말은 들리지 않았다. 현장 소장이 계약기간이 비어있는 지원서를 쓰게 했다는 것. 그는 "현장소장이 날짜가 빈 지원서를 쓴 사람들에게 '(직접 고용 지원에 대해) 아무것도 말하지 말라'고 입단속하더라"고 귀띔했다.

"7년차 노동자가 직고용 대상? 왜냐고 물었더니…"

7년차 노동자인 박 씨는 자신이 '2년 이하'로 분류돼 직접 고용 대상이 된 것이 억울했다. 박 씨는 중간에 업체 폐업으로 한 번 회사를 옮기기는 했지만, 5년째 같은 하청업체에서 일하고 있다. 누가 봐도 2년 이하 근무자는 아니었다.

업체 소장의 말은 달랐다. 박 씨가 지난해부터 새 공정으로 배치됐고, 새 업무를 맡은 지 2년이 안 됐으므로 '2년 이하 고용자'라는 것. 그가 업체 소장에게 이유를 따져 묻자 "정규직과 같이 일하기 때문"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제 자리가 정규직 땜빵 자리거든요. 정규직이랑 같은 공정에서 일해서 불법파견 소지가 높은 자리예요. 저는 월차를 쓸 때도 정규직 관리자 허락을 받았고, 업무 지시도 현대차에서 직접 받았어요. 그래서 반장은 내 자리를 빼고 직접 고용 인턴사원을 넣겠다고 합니다."

"전환배치, 직접고용, 해고의 기로에 선 불법파견 노동자"

박현제 금속노조 현대자동차비정규직지회 지부장은 "이미 몇 년 전부터 현대차에서 광범위하게 정규직/비정규직 간 공정분리(진성 도급화)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며 "8월 개정 파견법 시행을 앞두고 현대차가 공정분리에 속도전을 내고 있다"고 말했다. 불법파견 여지를 없애기 위해 정규직과 섞여 일하는 비정규직을 다른 공정으로 보내고, 그 자리에 직접 고용 계약직이나 다른 정규직을 투입한다는 것이다.

박 씨에게 남은 선택지는 두 가지다. 사직서를 쓰고 현대차 계약직에 지원하거나, 하청노동자의 지위를 유지하면서 전환배치를 받아들여야 한다. 지난달 중순경 이러한 제의를 받은 그는 조만간 해고될까봐 두렵다고 했다. 법적으로 해고 통보기간은 한 달인데, 그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7월 중순이 오면 해고 통보기간 요건을 채우게 된다는 것.

박 씨와 마찬가지로 정규직과 섞여 일하는 김진석(가명) 씨는 "현대차가 불법파견 판정을 받을 확률이 높은 노동자만 골라 전환배치하거나 직접 고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하청업체는 개별노동자에게 접근해 사직서를 쓰고 직고용 인턴에 지원하게 한다"면서 "내게도 그런 일이 생기면 내 손으로 사직서는 절대 쓰지 않겠다"고 했다. 그는 가급적이면 지금의 '불법파견' 상태를 유지하고 싶어했다.

"하청업체가 해고 카드를 내밀면 전환배치를 받아들이겠지만, 직고용을 받아들이라고 하면 차라리 해고를 받을 생각입니다. 부당해고는 소송으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반면에 자기 손으로 사직서를 쓰면 소송에서 이길(불법파견 판정을 받을) 확률이 떨어집니다. 8월까지 버티면 정규직인데 잘린다니 억울하죠."

▲ 작업 중인 현대차 노동자. ⓒ연합뉴스

"현대차, 계약해지→2년간 인턴 채용→불법파견 합법화로 갈 것"

현대차 관계자는 단기 계약직으로 직접 고용될 사내하청 노동자 1564명에 대해 "7월 중반이면 계약이 만료될 한시하청 근로자를 직접 고용해서 2년 동안 고용을 보장하고자 한다"며 "이들의 처우도 정규직 1년차와 비슷해 좋은 편"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조치가 정규직 고용을 회피하기 위한 꼼수라는 비판에 대해서 이 관계자는 "우리는 (사내하청노동자는) 전부 다 불법파견이 아니라고 본다"며 "다만 (2010년 대법원에서 정규직 판결을 받은) 최병승 씨 소송 한 건으로도 이렇게 파장이 큰 데, (개정파견법이 시행되면 2년 이하 하청노동자에 대해서도) 논란의 여지가 생기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현대자동차비정규직지회는 현대차가 △불법파견 하청노동자 계약해지 → 개정 파견법이 시행되는 2년간 직접 고용 계약직(인턴) 채용 → 2013년 사내하도급법 통과에 따른 불법파견 무력화의 시나리오를 밟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관련 기사 : "사내하도급법, 정몽구 회장이 만든 법 아닌가?") 이러한 움직임에 반발해 비정규직지회는 오는 5일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통해 파업으로 맞서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김 씨는 "하청노동자 1941명이 불법파견을 확인해달라며 걸었던 소송 1심 결과가 나오면 현장도 일어날 수 있겠지만, 지금 파업하면 비정규직노조는 동력이 약해서 참여할 사람이 절반도 안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이번에 파업에 참여하면 해고될 것이라는 불안감이 있다"며 "정규직노조에 기대를 걸고 있다"고 말했다.

정규직노조는 각 현장에 △비정규직 전환배치 및 공정분리 원천 봉쇄 △기간제 직고용-정규직 조·반편성 금지를 지침으로 내린 상태다. 하지만 노조 관계자는 "노조는 직접 고용 조치를 중단하라고 사측에 두세 차례 공문을 보냈을 뿐 사측을 압박할 다른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면서도 "정규직노조가 비정규직과 함께 싸우고 있다는 신뢰를 심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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