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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에 맞선 노동자의 국제연대, 닻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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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에 맞선 노동자의 국제연대, 닻이 올랐다

[윤효원의 '노동과 세계'] 조합원 5000만 국제노조, 인더스트리올 출범

지난 6월 19일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서 국제노동운동사에 기록될 사건이 있었다. 제조업 중심의 국제산별노조들인 국제금속노동조합연맹(이하 IMF), 국제화학·에너지·광산·일반노동조합연맹(이하 ICEM), 국제섬유·봉제·피혁노동조합연맹(이하 ITGLWF)이 통합하여 새로운 국제노조 조직을 출범시킨 것이다. 세 조직 조합원을 모두 합하면 140개 나라 5000만 명으로 세계 최대 규모다. 제조업 노동자(industrial workers) 모두를 보호하고 조직하는 노동조합이라는 뜻에서 새 이름은 인더스트리올(IndustriALL)로 정해졌다.

▲ 지난 6월 코펜하겐에서 열린 인더스트리올 출범 총회에 참가한 세계 각국의 노동운동가들. ⓒIndustriALL

국제노조운동의 지각변동

중국·북한·쿠바 같은 공산권 나라의 노동조합을 뺀다면, 국제노조운동은 크게 두 축으로 나눌 수 있다. 각국 노총들의 연합체인 국제노동조합총연맹(ITUC, 이하 국제노총)이 한 축이고, 각국 산별노조들의 연합체인 국제산별노조연맹들이 다른 한 축이다. 국제노총은 2006년 11월 국제자유노동조합총연맹(ICFTU)과 세계노동총연맹(WCL)이 합쳐져 출범한 각국 노총들의 연합체로 우리나라에서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참여하고 있다.

국제노조운동의 다른 한 축인 국제산별노조연맹들(Global Union Federations)에는 각국의 산별노조들이 참여하고 있다. 인더스트리올 출범 전에는 이번에 통합한 3개 조직과 더불어 BWI(건설목공), EI(교육), IFJ(언론), ITF(운수), IUF(식품·숙박·요식), PSI(공공서비스), UNI(사무·전문직), IAEA(예술·엔터테인먼트) 등 11개의 국제산별노조연맹이 있었지만, 제조업에 기반한 금속·화학·섬유 세 조직의 통합으로 국제산별노조연맹의 수는 8개로 줄어들었다.

한국에서는 한국노총 산하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 전국화학노동조합연맹, 전국전력노동조합, 전국섬유유통노동조합연맹, 민주노총 산하 전국금속노동조합, 민주화학섬유노동조합연맹 등 모두 6개 조직이 인더스트리올에 참여하게 된다.

비정규직 확산과 다국적기업의 횡포에 맞서려

인더스트리올로 통합된 세 조직에서 통합 논의가 진행된 지는 몇 년 됐다. ICEM의 경우 2007년 방콕에서 열린 세계총회에서 조직 통합을 공식 결의하고, 지난 5년 동안 꾸준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IMF와 ITGLWF도 비슷한 경로를 밟았다. 3개 조직은 올해 2월 말 스위스 제네바에서 공동집행위원회를 개최하고 통합 방침에 대한 정치적 합의에 성공했고, 지난 6월 하순 코펜하겐에서 열린 인더스트리올 출범 총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함으로써 조직적 절차를 마무리했다.

금속·화학·섬유 3개 국제노조 조직이 통합에 이른 배경에는 세계적인 노조 조직률 하락과 산업구조 재편, 그리고 이에 따른 노조 조직들의 통합 흐름이 자리하고 있다. 서구 노조들의 경우 지난 10년 동안 조합원 감소세가 뚜렷했다. 조합원 감소에 대응하고 급격한 산업 재편에 발맞추기 위해 서구 노조들은 조직간 통합을 적극 추진했고, 그 결과 금속·화학·섬유 노조들을 하나로 합쳐 제조업노조로 재편하는 경우가 많아졌고, 스웨덴금속노조(IFMetall)처럼 제조업 중심으로 통합한 산별노조들이 IMF, ICEM, ITGLWF 등 3개 국제노조에 동시에 가입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국제노동운동을 주도해온 서구 노동조합들의 국내 통합 흐름이 제조업에 기반한 국제노조들인 IMF-ICEM-ITGLWF 등 국제노조들의 통합을 자극한 주요 요인이라 볼 수 있다.

다른 배경으로는 3개 국제노조들의 공통된 사업과 활동을 꼽을 수 있다.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하에서 3개의 국제노조 조직은 비정규직 문제 해결과 다국적기업의 착취와 횡포 근절, 다국적기업과 국제노조 사이의 국제기본협약 체결 등 여러 분야의 사업에서 공통된 행보를 해왔다. 제조업 국제노조로서 공통의 도전에 맞서 싸웠고, 당면한 과제와 전략도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서로가 공유할 수 있는 활동 영역이 컸던 점도 조직 통합을 이뤄낸 중요한 동인으로 작용했다.

▲ 세계 140개국 5000만 조합원을 둔 인더스트리올의 로고

자본의 권력과 다국적기업의 착취에 맞선 투쟁 조직

창립선언문에서 인더스트리올은 △세계적으로 보다 나은 노동조건과 노동조합권리를 위해 싸우고, △세계적 수준에서 다국적기업의 권력에 도전하고 다국적기업과 교섭하며, △민주주의와 사회정의의 기반 위에서 민중(people)을 앞세우는 경제사회 모델과 새로운 세계화 모델을 위해 투쟁하는 국제연대의 새로운 세력이라고 조직 위상을 설정했다.

그리고 향후 활동방향으로 △더욱 강력한 노조의 건설, △미조직 노동자의 조직화와 조합원 확대, △노동조합권리 쟁취 투쟁, △비정규노동(precarious work)을 끝장내는 투쟁, △지구적 자본에 대항하는 노동조합 권력의 강화, △산업정책의 개발과 지속가능성의 증진, △사회정의에 기반한 새로운 세계화 모델의 모색, △모든 형태의 차별에 반대하는 투쟁과 여성노동자의 참여 촉진, △안전한 일터의 확보, △조직 민주주의의 실천과 조직의 통합과 단결을 제시했다.

인더스트리올의 초대 사무총장으로 당선된 지르키 라이나(Jyrki Raina)는 "자본 통합이 세계적 규모로 진행되면서 자본 권력이 커지고 자본의 대응 양식이 더욱 전투적이 되는 상황에서 노동조합의 단결과 연대도 세계적 규모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전세계 산업 노동자들의 새로운 통합 조직으로 노동자 국제운동의 새 시대를 연다"는 점에서 출범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면서, 인더스트리올은 "세계 경제의 권력을 다국적기업의 수중에서 국민·지역사회·민중에게 분산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며, 이윤 앞에 사람과 일자리를 내세우는 새로운 경제 모델을 위해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동자 국제주의의 새로운 모범을 만들어낼 것인가

맹위를 떨치던 신자유주의는 2007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기세가 꺾였다. 세계 자본주의 위기의 불은 유럽으로 옮겨 붙었다. 빈익빈부익부의 세계화로 인해 노동자와 서민의 불만이 급증하는 가운데 노동운동의 분발과 적극적인 역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세계 곳곳에서 커지고 있다. 세계적으로 실업이 확산되고 노동권이 침해되는 상황에서 노동조합의 역할과 과제에 대한 기대와 불만이 커지고 있으며, 나라 안팎에서 노동운동의 위상도 변화를 보이고 있다. 세계적 규모에서 이뤄지는 자본 권력의 전횡에 맞서 노동운동은 국제주의의 새로운 모범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가. 인더스트리올의 출범을 보면서 던지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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