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할 대목은 김 전 위원이 박근혜 캠프에 합류하기로 한 결심의 배경이다. 한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김 전 위원이 박근혜 캠프에 합류하기로 한 중요한 이유-적어도 표면적으로 드러난 가장 주요한 원인-는 현 시기의 시대정신인 '경제민주화'를 추진할 적임자가 박근혜 의원이라는 판단 때문이라는 것이다. '경제민주화'의 범위와 내용과 이를 실행할 프로세스에 대해서는 관점과 입장이 상이할 것이다. 다만 거칠게 말해 시장경제에 공정과 정의라는 가치를 복권시키고, 경제력 집중을 해소하며, 양극화를 완화시키고, 복지를 대폭 확충하는 것을 김 전 위원이 '경제민주화'라고 이해하고 있고 그런 '경제민주화'를 시대정신으로 승인하는 것이라면 김 전 위원의 안목은 적확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박근혜 의원이 '경제민주화'를 흔들림 없이 추진할 적임이라는 김 전 위원의 판단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김 전 위원이 무얼 보고 '경제민주화'에 대한 박근혜 의원의 생각과 의지가 확고하다고 말하는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두 가지는 지적할 필요가 있겠다.
하나는 박근혜 의원이 생각하는 '경제민주화'의 내용과 범위와 수준이 신뢰할 만한 것인가 하는 점이다. 기실 레토릭이나 미세조정 수준이 아닌 '경제민주화'는 한국사회의 권력지형과 경제지형과 사회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꿀 만한 담론이라 할 것이다. '경제민주화'가 명실상부하게 달성된다면 재벌을 정점으로 해 한국사회를 사실상 지배하는 특권과두동맹의 입지는 결정적으로 흔들리고 이들이 누리던 각종 특권과 특혜는 대부분 사라지게 될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특권과두동맹의 이익을 정치적으로 대표하는 정당이 바로 새누리당이며, 새누리당의 가장 강력한 정치적 기반이 특권과두동맹이다. 과연 박근혜 의원이 자신과 새누리당의 존재근거를 스스로 허무는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매우 회의적이라고 예상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다른 하나는 김종인 전 위원에게 '경제민주화'를 달성하기 위한 경로와 수단에 대한 마련이 있는가 하는 점이다. '경제민주화'라는 과제는 한국사회의 기본틀을 바꾸는 엄청나고 지난한 작업이다. '경제민주화'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당정청의 결연한 의지, '경제민주화'에 대한 올바른 철학과 이론.정교한 정책패키지.치밀한 실행 로드맵이 기본적으로 필요하고, 한국사회를 주름 잡고 있는 특권과두동맹의 강력하기 그지 없는 저항을 제압해야 하며,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기까지 시민들이 전략적으로 인내해야 한다. 어느 것 하나 쉽지 않다.
눈 밝은 사람이라면 금방 간파할 수 있겠지만, 앞에서 '경제민주화'의 필요충분조건으로 열거한 요소들의 공통점은 전부 대다수 시만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지와 참여 없이는 이룰 수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시민들의 적극적인 동참과 지지와 인내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민주주의라는 사실이다. '경제민주화'를 시민들이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경제민주화'의 성취 여부가 자신과 한국사회의 운명을 결정짓는다는 인식과 각성과 참여를 촉박할 수 있는 길은 더 많은 민주주의, 더 성숙한 민주주의 뿐이다. 현재까지 드러난 박근혜 리더십은 민주주의와 전혀 친하지 않으며, 오히려 길항(拮抗)관계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과문한 탓이겠지만 '민주주의' 없는 '경제민주화'가 가능하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김종인 전 위원은 총선 전 박근혜 의원이 한 '산업화 시대에 대한 사과' 발언과 관련해 연좌제 운운하면 박근혜 의원을 적극 옹호한 적이 있다. 김 전 위원은 민주주의와 국가발전모델에 대해 박 의원이 지니고 있는 인식이 무언지를 묻는 질문들을 연좌제로 치부하며 평가절하했다. 5.16군사쿠데타와 유신과 개발독재를 부정한 적이 없으며 오히려 승인하는 듯한 발언을 자주 한 박근혜 의원이 민주주의, 헌정주의, 법치주의, 공정하고 지속가능한 경제발전을 추진할 대통령으로서 부적합하다는 사실을 거듭 증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김종인 전 위원은 무딘 역사인식 때문인지, 낮은 도덕적 감수성 때문인지, 책임윤리의 부재 때문인지 이를 보지 못하고 있다.
▲ 김종인 새누리당 비대위원.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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