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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럼 무급휴직자가 노조원이 아니었단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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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아니, 그럼 무급휴직자가 노조원이 아니었단 말입니까?"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쌍용차 문제, 처음부터 다시 따져봐야 한다

6월 13일, 그러니까 대한문에서 '쌍용차 연대와 희망의 날'이 열리기 꼭 사흘 전, 쌍용차 노사가 무급휴직자에 대한 지원 방안을 합의했다는 뉴스가 각종 언론사 지면을 장식했다. 물론 여기서 노사합의 주체는 금속노조 쌍용차지부가 아니라 2009년에 민주노총을 탈퇴한 기업노조, 쌍용자동차노동조합을 말한다. 아직까지 회사는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와 어떠한 형태의 교섭 요구도 거절하고 있다.

조합원이라면 당연히 보장받아야 할 권리들

쌍용자동차 사측이 발표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노사 간 합의한 무급휴직자 지원방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자녀 학자금 지원과 명절 선물 지급 △회사 주식 150주 지급 △협력업체 취업 적극 알선.

이 글을 읽는 사람이 만일 어떤 노동조합의 조합원이라면, 내용을 보는 순간 상식적인 의문을 갖게 될 것이다. "아니, 조합원이라면 당연히 단체협약에 따라 학자금 지원과 명절 선물 지급이 이뤄져야 하는 것 아닌가?" 주식 150주 지급 역시 마찬가지이다. 지난 4월 26일, 쌍용차 노사는 조합원들에게 주식 150주를 지급하기로 합의한 바 있기 때문이다.

▲ 2009년 8월 6일 쌍용자동차와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는 무급휴직자를 1년 뒤 복직시키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지금껏 단 한명도 복직되지 못했다. ⓒ프레시안(최형락)

이게 지원책이야? 눈 가리고 아웅이지!

회사가 발표한 보도자료에는 이번 노사합의 이전에도 쌍용자동차가 무급휴직자를 위해 시행한 지원방안에 대해서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4대 보험료 및 조사 지원 △현재까지 희망자 95명을 대상으로 퇴직금 중간정산 △장기휴업자 71명 중 1차 인원 24명에 대해 한 달 간의 직무교육을 거쳐 지난 7일 부로 현장 복직 조치.

마찬가지로 조합원이라면 당연히 4대 보험료는 물론이고 단체협약에 의해 경조사 지원을 받아야 마땅하다. 퇴직금 중간정산은 심지어 조합원이 아니라 할지라도 노동자가 요구하면 회사가 해줘야 할 의무이다. 그런데 이제까지 고작 95명에 대해 중도정산을 해준 것을 자랑이라고 떠드나? 불법행위로 처벌받아야 마땅한 부분인데!

다만 지난해 법이 개정되어 주택 구입이나 6개월 이상 요양하는 경우 등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퇴직금 중도정산이 제한된다. 하지만 그 법률 조항의 효력 발생시점은 올해 7월 26일이다. 즉, 앞으로 한 달여까지는 기존 법에 따라 '근로자가 요구하면' 당연히 중도정산을 해줘야 한다.

마지막 '장기휴업자 71명 중 24명 복직' 역시 내용을 알고 나면 분노가 치밀어 오를 지점이다. 장기휴업자의 실체가 누구인가? 2009년 파업 직후 이른바 '산 자'들 중 파업에 동참했다는 이유로 회사의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어 정직 처분을 받은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징계기간인 정직 1~3개월이 지난 후에 당연히 현장에 복귀했어야 할 이들이다.

그런데 세상에나! 징계기간이 끝난 뒤로도 무려 2년이 지나도록 현장에 복직 조치를 하지 않고 있다가, 이제야 뒤늦게 복직을 시키겠다는 것이다. 그것도 71명 전원이 아니라 1/3에 해당하는 고작 24명을 복직시킨다는 것인데, 마치 대단한 혜택이라도 주는 것인양 이렇게 생색을 낸단 말인가!

당연한 권리가 지원방안으로 둔갑하기까지

다시말해 무급휴직자 지원방안 중 단체협약에 의해 조합원들에게 주어지는 혜택 이상의 내용은 없다. 그런데 이게 무슨 특별한 '지원방안'이란 말인가? 아니, 그럼 무급휴직자들은 쌍용자동차노조의 조합원이 아니란 말인가? 이들이 집단적으로 노조 탈퇴서를 썼다는 얘기는 아직 들어본 바 없는데 말이다.

의문에 대한 답부터 말하자면, 참으로 어이없게도 그 의문이 사실이다. 무급휴직자는 쌍용자동차노조의 조합원 자격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한 가지 더 얘기하자면, 무급휴직자 300여명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평택지원에 '조합원 지위 보전 가처분신청'을 냈으며 몇 달째 소송이 계류 중이다.

본래 가처분신청은 본안 소송에 들어가기 이전에 긴급하게 권리를 보전받아야 할 필요성 때문에 제기하는 소송이다. 보통 자본가들이 노동조합의 권리를 제한할 목적으로 낸 가처분소송은 속전속결로 1~2개월 이상 끌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노동자들이 제기한 가처분소송은 몇 달째 결론 없이 시간만 지나가고 있다. 도대체 이런 어이없는 일들이 왜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2009년 9월 8일, 금속노조 탈퇴 총회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최근 사건 몇 개만 보고 놀라기에는 이르다. 사실 쌍용차 사태는 첫 출발부터 '상식과의 전쟁'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다시 쟁점화되고 있는 회계 부정 문제는 수많은 '상식 파괴' 사건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77일간의 처절한 점거파업이 끝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갑자기 한 조합원이 금속노조 탈퇴 총회 소집을 위한 조합원 서명을 시작한다. 삽시간에 2000명가량의 조합원 서명을 받아 2009년 9월 8일, 민주노총 금속노조 탈퇴 총회가 강행되기에 이른다.

이 조합원 총회는 시작부터 절차와 법도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것이었다. 여전히 파업 지도부였던 한상균 집행부가 '법통'을 갖고 있는 상황이었고, 비록 임원을 비롯한 70여 명의 간부들이 전원 구속된 상태였으나 정당한 절차를 거쳐 직무대행을 선임해 금속노조 쌍용차지부를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탈퇴 총회가 적법하기 위해서는 현재 지도부인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에 총회 소집 요청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그런 과정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민주노총과 금속노조가 절차상 하자를 폭로하는 기자회견도 수차례 진행했지만 무시되었다. 노동부는 신속하게 이 총회가 적법하다는 유권해석을 내려주었고, 금속노조가 법원에 총회 개최 금지 가처분신청을 구했지만 이 역시 신속하게 기각되었다.

하지만 최근 법원의 판례 태도를 보았을 때 가처분신청 기각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발레오만도를 비롯해 금속노조 탈퇴 총회를 강행한 몇몇 사업장의 총회에 대해, 법원은 금속노조가 규약으로 지부·지회 자체가 탈퇴를 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무효라고 판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판결 때문에 이후 유성기업이나 KEC 투쟁에서 형성된 사측 주도 복수노조는, 금속노조 개별 탈퇴를 통해 결성되었다. 즉, 금속노조를 탈퇴하려면 개별적으로 탈퇴한 후 복수노조를 결성하는 것이 옳다는 판결이다. 절차도 부당한데다 규약도 위반한 총회의 개최를 금지해 달라고 요청한 것인데!

왜 총회 투표율이 75.3% 밖에 안 되나

결국 강행된 금속노조 탈퇴 총회 결과, 재적 조합원 3508명 가운데 2642명이 투표에 참여해 1931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재적 대비 투표율 75.3%, 투표자 대비 찬성율 73.08%이다. 보통 상급단체 탈퇴를 위해서는 재적 대비 과반수 투표에 투표자 대비 2/3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당시 상황을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여기서도 상식적인 의문을 제기하게 될 것이다. 회사가 앞장서서 총회 투표할 것을 종용했는데 왜 투표율이 75.3% 밖에 되지 않는가? 위 수치대로라면 무려 900명에 가까운 노동자들이 회사의 압력에도 굴복하지 않고 투표를 거부했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 회사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은 쪽은 투표를 하지 않은 집단이 아니라, 투표자들 중 찬성표를 찍지 않은 711명이다. 투표를 하지 않은 대다수의 노동자들은, 회사의 압력조차 받지 않았다. 그냥 투표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봉쇄되었다. 누구냐고? 점거파업 참가자들, 즉 52:48의 비율로 정리해고와 무급휴직이 결정된 노동자들이다.

당시 공장 내부의 분위기는 '살벌함' 그 자체였다. 회사가 고용한 무시무시한 용역경비대들이 여전히 현장에 배치되어 으름장을 놓고 있었다. 이들은 현장 안만 통제한 것이 아니었다. 점거파업 참가자들의 공장 출입 자체를 봉쇄하는 것도 이들의 역할이었다. 당연히 조합원 총회에 참석할 권리도 봉쇄되었다.

만일 이들의 총회 참여가 보장되었다면 쌍용차 사태의 역사는 완전히 다시 쓰였을 것이다. 점거파업 참가자들이 금속노조 탈퇴에 동의할 리 만무하기 때문에, 금속노조 탈퇴에 필요한 의결정족수 2/3를 채울 수 없어 부결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총회 참여가 가로막혔음에도 불구하고 이 총회가 적법하다며 회사·노동부·법원 모두가 동맹을 맺은 것이다.

금속노조 탈퇴를 강행하고 새롭게 집행부를 구성한 쌍용자동차노조는, 기존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의 단체협약과 노조 사무실, 집기 등을 모두 승계했다. 그러나 무급휴직자의 조합원 자격은 승계하지 않았단 말인가! 해고된 것도 아닌데!

엄밀히 말하면 2010년 시점까지는 무급휴직자만이 아니라 정리해고자의 조합원 자격도 인정됨이 마땅하다. 현행 노동조합법에 의거해 중앙노동위원회에서 해고가 정당하다는 판정이 나오기 전까지는 당연히 조합원 자격이 인정된다.

이러한 '상식 파괴'가 아주 오래 전부터 진행되었기 때문에, 조합원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 그것도 수많은 권리들 중 아주 일부만 보장하겠다는 것이 '지원 방안'으로 둔갑하게 된 것이다.

ⓒ프레시안(김윤나영)

"민주노총 탈퇴 추진하겠다"고 공언한 법정 관리인

어디 그 뿐인가. 점거파업이 끝난 직후인 8월 18일, 쌍용차 박영태 법정관리인은 당시 지식경제부 이윤호 장관과 만난 자리에서 "민주노총 탈퇴를 추진해 보겠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그 직후 한 조합원이 금속노조 탈퇴 총회 소집 조합원 서명이 벌어졌고, 박영태 법정관리인의 발언이 있었던 8월 18일로부터 꼭 3주 만에 탈퇴 총회가 강행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발언은 명백하게 현행 노동조합법 상 부당노동행위(지배·개입)에 해당한다. 사용자가 어찌 노동조합의 자주적 운영을 두고 왈가왈부 한다는 말인가? 게다가 그의 말대로 일이 실제 추진된 것이 확실시 되는데도, 주무부서인 노동부는 침묵했다. 아니, 침묵한 것만이 아니라 그 시나리오대로 추진된 총회가 적법하다는 유권해석까지 내려주었다.

이와 유사한 사례가 지난해 창원의 센트랄이라는 공장에서 벌어진 적이 있다. 센트랄에 새로 부임한 부회장이 노조가 민주노총이 아니라 한국노총으로 소속을 변경하면 '창원공장 살리기'를 하겠다는 얘기를 공언한 것이다. 금속노조 센트랄지회는 곧바로 노동부에 이 사실을 신고했고, 사건 접수 직후 3주도 되지 않아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검찰에 기소 의견 송치를 하게 된다.

센트랄 사례와 쌍용자동차 사례는 본질적으로 동일한데도 노동부의 대응은 180도 달랐다. 증거가 부족했을까? 박영태 법정관리인이 이윤호 당시 지식경제부 장관과 만나서 위의 말을 언급했다는 사실은, 당시 수많은 일간지·경제지에 대서특필 되었다. 자본의 입장에 충실한 경제지들조차 박영태 법정관리인의 이러한 발언이 '물의'를 일으킬 만한 얘기라고 보도했지만, 노동부는 눈과 귀를 막았던 것이다.

▲ 상급단체를 민주노총에서 한국노총으로 바꾸면 구조조정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센트랄 부회장. ⓒ오민규

죽음의 행렬을 막기 위해 '상식 파괴'를 막아야

22명이 죽어나가는 현실에도 2009년에 약속했던 무급휴직자 복귀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생산물량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인데, 위의 쌍용차 연간 판매량 추이만 봐도 거짓임이 드러난다. 지난해 11만3001대를 팔아서 이미 2006년의 생산량·판매량 수준을 회복했다. 2006년이면 공장에 지금보다 2배 이상의 노동자가 일하던 시절이다. 그런데도 복직은 안 된다?

▲ 쌍용차 연간 판매량 추이. (2012년 판매량은 추정치임.)

제발 이제 그만해야 한다. '상식 파괴'가 중단되어야 한다. 멀리서 지켜보는 나 같은 입장에서도 '상식 파괴' 목록을 몇 페이지라도 만들어낼 수 있다.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박영태 법정관리인이 처벌받지 않은 것만 문제인가? 당시 수많은 언론과 TV에 직접 용역 경비대들이 경찰의 옆에서 버젓이 새총을 쏘는 장면이 보도되었는데, 경찰도 전혀 제지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용역 경비대들 중 누구 하나 폭력 혐의로 구속되었다는 얘기도 들어본 바 없다.

지난해 고용노동부가 완성차업체 불법 연장근로 실태를 발표했을 때, 쌍용차도 이 혐의를 비켜갈 수는 없었다. 이를테면 조립 3팀과 창원 엔진공장에서 하루 3시간씩 5일간 잔업을 실시하는 사례가 적발된 것인데, 현행 근로기준법상 주 12시간 한도를 초과할 수 없는데도 주 15시간 연장근로를 시킨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실태는 비단 작년만의 일이 아니다. 2009년 파업이 끝난 후 공장 생산이 제대로 돌아간 직후부터 벌어진 일들이다. 그런데 마힌드라가 인수하기 직전까지 쌍용차는 엄연히 법정관리 상태였다. 즉 파산 재판부가 경영 전반을 관리하는 최고 책임자였다. 비록 대부분의 경영은 법정관리인에게 맡겨져 있었지만, 어쨌건 연필 한 자루 책상 하나 구입하는 문제까지 일일이 재판부의 허가를 얻어야만 할 수 있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이런 불법 연장근로가 벌어지는 사실을 재판부가 과연 모르고 있었을까? 하기사 이런 것들을 말해 무엇하리! 새총을 쏘아대던 용역 경비대의 채용을 허가한 것, 채용 기간을 연장하고 채용 규모를 늘려달라는 요청을 허가한 것도 모두 재판부였으니 말이다.

'희망'은 어디에?

댐에 구멍이 나자 손가락으로 물줄기를 막아보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곳곳에 구멍이 생긴다. 손가락 발가락으로 안 되니 온몸으로 막아본다. 이것으로도 안 되니 동네 사람들을 동원해서 막으려 한다. 하지만 과연 흐르는 물줄기를 막아낼 수 있을까?

쌍용차 '상식 파괴'의 문제가 그러하다. 회계 부정과 기술 유출이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눈 감았다. 본보기로 쌍용차 구조조정을 실시해 민주노조를 싹쓸이 하려는 것이 목표였으니, 회계 부정과 기술 유출 쯤 눈 감아서 문제되겠나? 예상대로 노조가 파업에 들어갔다. 며칠 하다가 고꾸라지겠지…. 그런데 예상이 빗나갔다. 공권력 투입해서 정리해야지 뭐! 그런데 얼마 전 벌어진 용산 사태가 마음에 걸린다…. 최루액 대포를 쏘아대고 음식과 물 반입을 일절 금지하고 전기도 끊어버리고 테이저건도 써보지 뭐! 어쭈~ 이것들이 2달을 넘게 버텨? 여론도 자꾸 정리해고에 동정적으로 흐르는데…. 경찰특공대 투입해!

그렇다. 결정적으로 쌍용차 노동자들이 무려 77일간 굳건하게 공장이라는 요새를 방어할 것이라고 상상도 하지 못한 데에서 계산 실수가 있었다. 파업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불법행위들이 있었다. 하지만 최초의 불법을 덮기 위해서는 이 불법행위도 모조리 덮어야 한다. 부당노동행위? 규정과 절차 무시한 금속노조 탈퇴 강행? 가처분신청 기각? 이런 것쯤이야 앞에서 했던 '상식 파괴'에 비하면 포크레인 앞에 삽질 정도인데 뭐 ….

하지만 물줄기는 흐른다. 물론 너무나도 안타깝게도 거대한 동맹을 뚫고 물줄기가 전진하기까지 무려 3년의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봄여름이 가면 가을겨울이 오는 것처럼, 하늘에 떠있는 물체는 반드시 땅으로 떨어지는 것처럼, 물줄기는 지금 이 순간에도 동맹을 뚫기 위해 전진하고 있다.

무급휴직자 지원방안에 대한 쌍용차 노사합의가 이를 말해준다. 민주노총에 그토록 적대적이고, 점거파업 참가자들에 그토록 무심했던 쌍용차 기업노조가 왜? 자신들이 조합원으로 인정하지도 않는 무급휴직자 처우개선에 나섰을까? 그리고 회사는 왜 이런 합의를 앞장서서 추진했을까?

쌍용차 노동자 죽음의 행렬에 대한 사회적 압력 때문에? 국회 원 구성이 끝나면 국정조사나 청문회가 열릴까봐서? 물론 그것도 상당한 역할을 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한진중공업의 현실을 보면, 사회적 압력과 국정조사·청문회가 특정 시점에서는 역할을 하지만 그 효과가 길게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은 쉽게 알 수 있다.

현재의 상황을 해석할 수 있는 유일한 키워드는 '현장의 변화'이다.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고 있다는 것, 바깥의 정리해고·무급휴직자들에게 정말 회사가 해도 해도 너무 한다는 인식이 자라나고 있다는 것, 그래서 현장 정서를 이대로 놓아두고서는 노무관리가 쉽지 않으리라는 점… 다시말해 기나긴 동맹 뚫기의 노정 끝에 현장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조합원으로 인정도 하지 않는 무급휴직자 처우개선에 노사가 나설 다른 이유가 있을까?

희망은 바로 이곳에 있을 것이다. 쌍용차에서 '상식 파괴'를 거듭하는 이유는, 전체 민주노조를 싹쓸이하기 위한 본보기용으로 써먹기 위해서였다. 그 뒤로 한진중공업·금호타이어·KEC·발레오만도·상신브레이크·유성기업 등에서 벌어진 사건들을 기억한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쌍용차 사태 이후 밀리기만 했던 '현장'이 아주 조금씩 바뀌고 있음이 보이고 있다. 최근 KEC지회는 사측 주도 복수노조 설립과 조합원 과반수 지위 상실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장기항전을 거듭한 끝에, 결국 회사가 정리해고를 철회하도록 하는데 성공했다.

물론 임금삭감 등 노동조건 후퇴를 KEC지회 조합원에게도 적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 적용하기는 했지만, 지금까지 자본가들은 아무리 그런 조건이 있다 하더라도 대법원 판결까지 가보자고 버티는 게 보통이었지 정리해고 철회를 한 적은 없었다. 최근에는 복수노조에 있던 조합원들 일부가 KEC지회로 복귀하는 사례도 생기고 있다.

이 기세를 몰아 KEC지회는 "결국 우리가 승리했다"고 내외에 선포하고, 사측 주도 복수노조 조합원들에게 6월 27일까지 기회를 줄 테니 KEC지회로 복귀할 것을 호소했다. 밀리고 빼앗기기만 했던 현장에서 다시 반격이 조직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 아니겠는가. 희망은 바로 여기에 있다. 물줄기의 도도한 흐름을 한시도 의심하지 않고 끝없이 낙관하며 정의로운 의지를 밀어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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