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자유주의를 좋아하는 큰 이유 중 하나는 자유주의가 인간에 대한 올바른 인식 위에 서 있다는 것이다. 사회문제를 정확하게 인식하기 위해서 인간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필수적이다. 모든 사회현상은 결국 인간의 개인적ㆍ집단적 행위이기 때문이다. 인간에 대한 올바른 인식은 올바른 사회분석에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사회주의사회에 관하여 밀(J. S. Mill)과 마르크스(Karl Marx)가 서로 상반되게 예측한 것에서 볼 수 있다.
마르크스는 인간은 원래 선하고, 사유재산제도가 모든 사회악의 근원이므로 사유재산제도가 철폐된 공산주의사회에서는 이기심도 계급투쟁도 착취도 사라진 지상천국이 건설될 것이라고 기대하였다. 반면에 밀은, 사람들은 원래 불완전하기 때문에 사유재산이 없는 사회주의 국가가 건설되면 사람들이 재산을 놓고 싸우지는 않겠지만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서로 싸울 것이며, 권력을 기준으로 하여 차별과 계급이 발생하고, 일한 것과 상관없이 분배 몫이 결정되기 때문에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지 않게 되고, 무엇보다도 노동력을 국가가 관리하게 됨에 따라서 개인의 자유가 사라지게 되어 사회주의국가는 건설되더라도 무너질 것이라고 정확하게 내다 보았다.
쏘련이 붕괴한 것은 1990년이고 밀이 사회주의에 관한 이런 예상을 한 것은 1870년경에 집필한 『사회주의론』(On Socialism)에서이므로, 밀은 120년 앞을 정확하게 내다 본 것이다. 밀이 이렇게 정확하게 먼 앞 날을 내다 볼 수 있었던 것은 지적으로 도덕적으로 불완전하다는 인간의 본성을 정확하게 인식하였기 때문이다. 반면에 철학, 사회학, 정치학, 경제학 등 사회과학 전반에 걸처 장대한 이론체계를 구축하였던 마르크스가 사회주의에 관하여 잘못된 기대를 하였던 것은 인간 본성을 잘못 파악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비단 밀만이 아니고 모든 자유주의자들은 인간이 기본적으로 불완전하여 과오를 저지르기 쉽다고 본다.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은 이성이란 위대한 힘을 갖고 있다. 이 힘을 이용하여 오늘 날의 눈부신 과학문명을 달성하였다. 그러나 인간은 누구나 개인적으로 혹은 집단적으로 매일 많은 과오를 저지르면서 살아간다. 우리가 과오를 범하는 원인을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사실을 잘못 파악하는 사실판단에서의 오류이고 또 하나는 인간의 욕심으로 인한 도덕적 오류이다.
사실판단의 오류가 발생하는 것을 인간의 인식에서의 불완전성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를 강조한 자유주의자는 하이에크(Friedrich Friedrich Hayek)이다. 그는 인식에서의 불완전성을 인간의 사고능력에서의 불완전성과 지식에서의 불완전성의 둘로 나누고 이 둘 모두에서 인간은 매우 불완전하다고 보았다. 사고능력이란 컴퓨터로 치면 정보처리능력에 해당하는 인간의 지적 능력이다. 하이에크는 인간의 이 능력이 매우 제한되어있음을 지적하였다. 그 다음 하이에크는 지식을 추상적인 이론에 관한 지식과 구체적인 사실에 관한 정보의 둘로 나누었다. 하이에크는 일반적 이론에 관한 인간의 지식이 아직 부정확하거나 불완전한 것들이 많다고 보았다. 그는 또 구체적인 사실에 관한 정보가 심히 부족함을 지적하였다. 어떤 현상을 분석하는 데에 필요한 정보는 무수히 많은데 이 정보들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분산되어 있어서(정보의 분산) 어떤 개인이나 집단이 필요한 정보(사실)를 모두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고 이를 구조적 무지라고 불렀다.
우리가 과오를 범하는 두 번째 원인은 우리의 탐욕이다. 욕심에 눈이 멀어서 잘못인 줄 알면서도 잘못을 범하기도 하고, 욕심 때문에 사실을 왜곡하여 자신을 속이면서 잘못을 저지르기도 한다. 이를 인간의 윤리적(도덕적) 불완전성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잘 지적한 사람이 애덤 스미스이다. 스미스는 모든 사람은 사실을 공정하게 판단할 수 있는 양심을 갖고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자신의 이해관계가 걸리지 않는 경우에 한하며, 자신의 이해관계가 걸리는 문제에 관해서는 "우리의 내부의 재판관(양심)조차 우리의 이기적인 감정의 폭력과 불의에 의해 부패될 위험에 자주 처하며, 진정한 상황과 다른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종종 유혹당한다"고 지적하고 "인간에게 가장 치명적인 약점인 자기기만은 인간생활의 무질서 중 절반의 근원이다"라고 보았다.
인식에서의 불완전성과 윤리적 불완전성을 합하여 인간의 이중적(양면적) 불완전성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사람은 예외 없이 이중적으로 불완전하여 늘상 과오를 저지르면서 살아간다. 인간의 이중적 불완전성은 자유주의의 모든 주요한 주장의 토대이다.
자유주의가 사회주의를 반대하는 것은 인간의 인식에서의 불완전성 특히 정보의 불완전성 때문이다. 지적, 도덕적 양 면에서의 인간의 불완전성을 인정하면 사회주의가 무리라는 것은 당연하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하이에크는 어떤 개인이나 집단도 필요한 정보의 일부 밖에는 알 수 없다는 구조적 무지를 지적하였다. 이에 입각하여 하이에크는 사회주의 운영이 성공적일 수 없다고 보았다. 정부가 경제 전체를 계획에 입각하여 중앙집중적으로 운영하려면 소비, 생산 및 유통 등 모든 경제 문제에 관하여 정확한 구체적 정보가 필요한데 정부가 이를 모두 아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
특히 오위켄(Walter Eucken)이 지적한 것처럼 생산물에 대한 수요들은 끊임없이 변하는데 이를 정부가 즉시 정확히 알 방법이 없다. 이 때문에 정부는 주먹구구식으로 적당하게 예측하여 경제를 운영하기 때문에 품목별로 심각한 과다 생산이나 과소생산이 발생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반면에 시장경제에서는 시장에서 가격과 판매량이 수시로 변하는 것을 기업들이 즉시 파악하여 생산에 반영할 수 있다. 자본주의경제에서도 과다생산과 과소생산이 발생하고 이로 인해 불황과 실업이 항상 존재한다. 그러나 사회주의에 비하면 자본주의경제가 훨씬 양반인 것은 분명하다.
비단 사회주의 건설만이 아니라 사회의 전면적 개혁도 마찬가지로 성공하기 힘들다. 사회의 모든 부문을 한꺼번에 갑자기 바꾸면 어떤 부작용들이 발생할지를 미리 예측하기에는 인간의 지적 능력도 관련정보도 매우 부족하다.
사상(생각)과 비판(언론)의 자유와 관용이 필요한 것도 인간의 양면적 불완전성 때문이다. 밀이 지적한 것처럼, 인간의 불완전성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볼 때 인류 사이에 합리적인 의견과 행위가 우세를 보이고 있는 이유는 자유로운 비판과 토론을 통하여 인간의 과오가 시정될 수 있었던 덕분이다. 자유로운 토론과 비판을 위해서는 나의 생각이 틀릴 수 있고 나와 다른 생각이 옳을 수 있음을 인정하는 관용이 필수적이다. 우리 모두 불완전한 인간이므로 자신만이 옳다는 독선에 빠져서는 안된다.
자유주의가 독재를 반대하고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것도 인간의 불완전성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모든 개인은 잘못을 저지를 수 있는 불완전한 인간이므로 한 개인에게 권력을 독점케 하여서는 안된다. 밀이 지적한 바와 같이 과거에 개인의 자유를 억압한 주된 적은 정치권력자인 왕과 그 부하들이었고 이를 시정하기 위하여 등장한 것이 민주주의이다. 요즘 우리나라에는 박정희 시대에 대한 향수가 많고 심지어 전두환 시대가 좋았다는 사람도 있다. 이는 혼란한 민주주의보다 선의의 유능한 독재가 더 효율적이라는 생각이며, 남이야 어떤 비극을 당하든지 나만 편하고 잘 살면 된다는 이기적 생각이다. 그러나 박정희와 전두환이 분명히 보여준 것처럼 독재는 반드시 많은 인권유린을 낳는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유능한 독재가 아니라 억울한 사람이 없는 민주주의이다.
자유주의가 법치주의를 주장하는 것도 인간의 윤리적 불완전성으로 인한 범죄를 막기 위해서이다. 스미스는 인간의 양심은 탐욕 앞에서 무력하므로 개인의 자유와 재산을 보호하는 법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법이란 국가에 의하여 강제로 시행되는 최소한의 정의이다.
지금까지 본 것처럼 자유주의는 지적ㆍ윤리적 양면에서 인간의 불완전성을 중시한다. 그러나 자유주의가 이성의 힘을 부정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인간의 지적 이성과 윤리적 이성은 지금까지 인간이 이 정도 나마 발전을 지속하여 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으며, 전쟁, 빈곤, 환경파괴, 범죄와 윤리타락, 인간소외 등 오늘 날의 여러 심각한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근거이다. 자유주의가 지적하는 것은 단지 이러한 인간의 이성이 심히 불완전하여 인간은 과오를 저지르기 쉬우므로 항상 교만하지 말고 조심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성을 사용하긴 하되 그 불완전성을 인식하고 경험을 통하여 반성하여 가면서, 자신의 이해관계나 편견이나 독선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면서 겸손하게 사용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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