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민주당의 당론 발의 19개 법안
민주당이 먼저 지난 5월 24일 정책의총을 개최하여 19대 국회에서 추진할 8대 민생 의제를 중심으로 반값 등록금 관련 법안, 친환경 무상급식 및 무상보육 법안, 비정규직 해소와 최저임금 상향과 고용안정 등 노동 관련 법안, 서민 주거안정 및 효도 관련 법안 등 19개 법안들을 발의하였다. 이것들은 모두 국민들이 희망을 걸어볼 만한 중요한 법안들이다. 하지만 일부 참신한 조항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법안들의 내용은 전체적으로 실망스럽고 국민들의 기대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예를 들어, 반값 등록금과 관련한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 제정안 및 고등교육법 개정안은 반값 등록금의 재원 마련 방안과 등록금 산정위원회 설치 방안 등은 들어 있으나, 국민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대학 운영의 투명성 강화나 국가의 재정지원이 대학 교육의 질적 개선으로 연결된다는 보장책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러한 장치들이 없이 아직 고등학교 의무교육도 시행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매년 5조 원 규모에 이르는 국민의 세금을 대학 등록금 지원에 투입하는 것이 과연 국민적 공감대를 얻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기초노령연금 2배 인상을 포함하여 이른바 효도 3법으로 일컬어지는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과 '공휴일에 관한 법률안' 또한 그 내용을 살펴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세계에서 최장 시간 동안 노동을 하고 있는 우리나라 근로자들에게 대체 휴일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필요한 정책이지만, 그 목적과 명분이 효도와 관련되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즉, 어버이날을 공휴일로 지정하는 것이 어르신들의 삶의 개선에 그렇게 의미 있게 중요한 일인지, 공휴일이 된다고 노인에 대한 효도가 보장될 것인지도 의문스럽다.
그동안 민주당의 내세운 공약들 중에서 새누리당과 가장 차별화 되는 것이 '모든 병원비를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해결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는데, 이번에 제출하겠다는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에는 노인틀니를 국민건강보험의 급여로 한다는 내용만 들어 있고, 정작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하여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과 민간보험료 부담을 경감하겠다는 중요한 내용은 모두 빠져있다. 결국, 새누리당 보다 나은 게 없는 것이다.
'대부업 등록 및 금융이용자 보호법' 개정안에는 불법 추심 금지와 더불어 대부업의 이자율을 현행 39%에서 30%로 낮추는 방안이 들어 있지만, 247만 명(금융위원회, 2011년 대부업 실태 조사)에 이르는 생활비를 중심으로 하는 제2금융권의 대출로 인한 신용불량자들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은 들어 있지도 않은 상태이다. 이렇게 중요한 내용이 빠져 있거나, 특히 예산이 많이 소요되는 법안들은 빠져 있고, 그래서 자당의 중요 총선 공약조차 반영되어 있지 않은 이러한 법안들로는 국민적 공감대를 얻기 어려울 것이다.
새누리당의 '희망사다리 12대 법안'의 진일보한 측면과 구조적 한계
민주통합당에 이어 새누리당도 '희망사다리 12대 법안'이라는 이름으로 지난 총선에서 나왔던 '진실을 품은 약속'이라는 이름의 공약을 실천할 법안들을 제출하였다. 새누리당의 사립학교법 개정안에는 교비를 등록금 회계와 비등록금 회계로 구분하여 등록금의 사용을 제한하는 조항과 교비 회계에서 등록금 심의위원회의 심의를 의무화하는 방안이나 공인회계감사제도를 도입하는 것 등으로 사립학교 재단의 운영을 투명하게 하는 방안들이 들어 있는 것은 매우 구체적이고 평가할만하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대학생들의 등록금 부담을 경감시킬 방안이나 획기적으로 지원하는 방안은 들어 있지 않고, 사립학교 재단의 차입금 상환에는 등록금이 사용될 수 있도록 조항을 만드는 등 대학 등록금 부담 완화와 동시에 대학교육의 질적 개선을 바라는 국민들의 기대와 요구에는 여전히 미흡한 실정이다.
청년고용촉진특별법 개정안에는 공공기관의 청년고용 의무를 현행 3%에서 5%로 늘리거나 청년고용을 의무화하는 방안이 들어 있는 등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민간의 청년 고용기업에 대해서는 지원금을 지급하고 미 이행 기업에 대해서는 청년고용 부담금을 부과하는 것 외에는 강제할 수단이 없는 등 그 동안 실효성이 없었던 기존 법안의 내용을 조금 더 강화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복지국가로의 전환을 통한 적극적 고용창출이나 청년고용 문제의 근본적 해결과는 여전히 거리가 먼 상태이다.
민주당이 대중소기업상생협력촉진법 개정이나 유통산업법 개정을 통해 중소기업 적합업종의 대기업 진입 규제와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 등의 법적 근거를 만들고 있다면, 새누리당은 중소기업진흥법과 기술신용보증법 개정을 통해 연대보증인의 채무 부담을 경감한다거나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을 통해 전통문화 및 자연보존 도시의 경우 전통시장 상인들이 참여하는 '유통 상생발전 협의회'의 의결로 대규모 점포의 설치 및 등록을 금지할 수 있도록 한 것은 많은 한계성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의 기존 입장에서 벗어난 상당히 진전된 법안으로 생각할 수 있다.
특히, 새누리당의 '발달장애인 지원법 제정안'은 개별 장애 유형별로 따로 법을 만들어야 하는지와 타 장애인들과의 형평성 문제, 그리고 기존 장애인복지법과의 관계 등의 법리적 논쟁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사각지대에 존재하던 발달장애인들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 방안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겠다. 더구나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은 무상보육에 대한 국가와 지자체의 책임을 법으로 규정하고 표준보육비용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과거 한나라당과는 차별화된 입장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새누리당이 '민생법안 1호'라고 발의한 일련의 비정규직 관련 법안들은 여전히 많은 한계를 남기고 있다. '사내하도급 근로자 보호법' 제정을 통해 지금까지 법적 근거가 없었던 사내하도급을 법률의 범위 내로 가지고 와서 '기간제 및 단기간 근로자 보호법' 등의 테두리 내에서 비정규직들이 보호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근본 취지는 좋고, 또 일부 실효성도 있겠지만 사내 하도급을 합법화하는 부작용에 대한 우려를 자아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새누리당의 '기간제 및 단기간 근로자 보호법' 개정안이나 '파견근로자 보호법' 개정안이 지금까지 불명확하던 기간제 근로자들의 근로조건을 임금, 상여금, 성과급, 복리후생 등으로 세분화하여 명기함으로서 징벌적 금전보상명령이나 확정된 시정명령의 적용 확대가 가능하도록 하는 등 진일보한 성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비정규직의 발생이나 축소에 대한 처방이 없다는 점에서는 여전히 미흡한 상태로 남아있는 것이다.
불법파견 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위해서는 파견 근로자의 사용 사유를 꼭 필요한 경우에만 하도록 제한하는 '사용 사유 제한' 규정이나, 불법파견을 한 경우에는 이미 정식으로 고용된 것으로 간주하는 '고용 의제' 개념의 도입, 그리고 무엇보다도 파견노동자의 경우, 지배력이 작용하는 경우 '원청의 사용자성' 개념을 인정하는 조항들이 들어가는 정도는 되어 있어야 새누리당의 비정규직 축소에 대한 진정성이 설득력을 가질 것이다.
국민이 바라는 제19대 국회의 모습
국회의원은 소속 정당과 무관하게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분들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그리고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국회의원들이 갖는 본연의 사명은 유력 대선주자들의 캠프를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법안 제정과 예산 심의라는 국회의원 본래의 업무를 충실히 하는 데 있을 것이다. 민주통합당이 국민들에게 다시 표를 달라고 하기 위해서는 '잘못된 정책들'을 바로 잡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선, 18대 국회에서 민주당이 타협해서 통과시켜 준 법인세법과 소득세법, 종합부동산세법, 그리고 상속세 및 증여세법 등의 감세 법안들에 대해 일련의 '부자감세 철회를 위한 법안들'을 제출하고, 새누리당과 정책에 대한 논쟁을 시작하여야 한다.
4대강 개발의 근거가 된 '친수구역 활용에 관한 특별법'의 개정안을 제출하면서 환경의 파괴를 막고, 현 정부가 저질러 놓은 4대강 난개발의 방지를 위한 싸움을 시작하여야 한다. 반값 등록금을 시작하기 전에 대학의 투명한 경영을 보장하고, 국가의 지원에 상응하는 공공성을 확보할 수 있는 조항을 반영한 고등교육법 개정 등 사학 관련 법안을 제출하여야 국민들은 민주당의 집권 능력과 진정성을 믿어 줄 것이다.
재벌 총수 일가의 과도한 전횡을 막을 수 있도록 '독점규제와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의 개정, 금융지주회사법과 은행법 그리고 상속세 및 증여세법의 개정 등 일련의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들을 국회에서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당장 내년 1월부터 라도 태어나는 모든 아이들에게 월 10만 원의 아동수당을 지급하기 위해서는 관련 법안의 심의와 더불어 예산을 배정하기 위한 협상에 들어가야 한다. 당장 7월 임시 국회를 통해서라도 기초노령연금의 인상이나 아동수당 등에 대해서는 관련법의 개정과 예산의 확보를 위해 여야 정당이 협력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새누리당의 '민생법안 1호'가 비정규직 관련 법안이었던 것은 시도 그 자체만으로도 칭찬받을 만한 일이다. 그러나 이 법안은 많은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 그래서 새누리당이 다수당인 제19대 국회에서 우리 국민들이 다시 실망과 좌절을 맛보게 되는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된다.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은 지난해 초 생애주기별 복지를 자신의 비전으로 공포한 바 있다. 이제 그 생애주기별 복지의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인지 국민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이번에 제출된 12개의 개혁 법안들에는 박근혜 의원의 이름이 여러 곳에 들어 있다. 그러나 이 정도의 법안들이 박근혜 식 복지국가의 내용이라면, 이는 매우 실망스러운 것이다.
대통령 중심제에서 대통령 선거는 단순히 한 명의 새 대통령을 뽑는 것만이 아니라, 제 정당들이 우리나라의 새로운 모습을 제시하고 국민투표를 통해 선택하는 과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박근혜 후보가 만들어갈 복지국가의 구체적인 모습이 민주통합당의 그것과 어떻게 다른지, 구체적인 정책과 예산을 담은 법률로 국민들에게 평가받아야 한다. 새누리당이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다시 한 번 국민의 지지를 얻고 싶다면 차기 정부가 만들어갈 대한민국의 미래 비전을 당 소속 의원들이 제출하는 구체적인 법안을 통해 국민들에게 보여주고 인정을 받아야 할 것이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제19대 국회의 과제로 제출한 '민생 법안'을 두고 서로 경쟁한다는 것은 우리 국민들에게는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양당의 법안들 모두 국민의 기대 수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고, 대통령 선거를 앞둔 정략적인 색채가 강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대통령 선거와 새로운 국회의 출범이 같은 시기에 있다는 것은 국회가 대통령 선거에 휩쓸려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역으로 지금까지의 국회와는 달리 6개월 뒤의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 하므로 오히려 더 열심히 일을 하게 될 수도 있다. 나는 후자의 상황이 전개되길 희망한다.
모쪼록 이번 제19대 국회에서는 불필요한 이념논쟁이나 탁상공론보다는 국민의 실생활과 관련된 법안들을 중심으로 여야 정당들이 서로 경쟁하고, 이에 대해 대선 주자들이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과정을 통해 오는 12월 대선에서 국민들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 새로 출범한 제19대 국회에서는 여야 정당과 정치인들이 국민의 마음을 얻기 위해 제대로 된 민생 법안들을 내놓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이를 통해 주요 민생 이슈들이 정치사회적으로 공론화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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