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세계 경제의 파이가 줄어든다. 누가 더 부담을 질 것인가?"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세계 경제의 파이가 줄어든다. 누가 더 부담을 질 것인가?"

[월러스틴의 '논평'] 내일은 또 어느 곳에서 시위가 시작될까

세계 계급투쟁: 시위의 진원지
The World Class Struggle: The Geography of Protest


시절이 좋을 때, 즉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이라는 측면에서 세계경제가 팽창하고 있을 때는 계급투쟁이 잠잠해진다. 물론 계급투쟁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실업률이 비교적 낮고, 그 액수가 아무리 미미하다 하더라도 하류계층의 실질임금이 상승하고 있다면, 사회적 타협이 시대의 대세가 된다.

그러나 세계경제가 침체하고 실질실업률이 상당히 높아진다면, 이는 전체적인 파이가 줄어듦을 의미한다. 이럴 때는 그 축소의 부담을 누가 - 한 국가 내에서든, 국가 간에서든 - 질 것인가가 문제가 된다. 계급투쟁은 격렬해지고 조만간 거리에서의 공개적인 투쟁으로 발전한다. 1970년대 이후의 세계체제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들이 바로 이것이며 이 현상은 2007년 이후 더욱 극적으로 치닫고 있다. 아직까지 최상층부(1%)는 자기 몫을 지키고 있다. 아니 실제로는 더 늘려가고 있다. 다시 말해 나머지 99%의 몫은 줄어들고 있다는 얘기다.

배분을 둘러싼 투쟁은 크게 전 지구적 예산의 다음 2가지 사항을 놓고 벌어진다. 세금(얼마만큼을 누가 낼 것인가)과 대다수 인구를 위한 사회안전망(교육, 보건, 생애소득 보장을 위한 비용)이 그것이다. 지구상에서 이러한 투쟁이 벌어지지 않는 나라는 없다. 그러나 어떤 나라에서는 다른 나라들보다 투쟁양상이 더 격렬하다. 이는 세계경제상의 그 나라의 위치, 그 나라의 인구 구성, 그리고 정치적 역사에 따라 달라진다.

격렬한 계급투쟁이 벌어지면 이를 정치적으로 어떻게 다룰 것인가가 문제가 된다. 권력을 가진 그룹들은 대중들의 소요를 잔인하게 탄압할 수 있으며 실제로 많은 나라에서 그렇게 하고 있다. 또는 국가의 억압장치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소요가 강력하다면 권력자들은 시위대들에게 동조하는 척하면서 이들을 매수해(co-opt) 실질적인 변화를 제한한다. 또는 이 2가지 모두를 활용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억압했다가 이 방법이 안 먹히면 매수하는 식으로.

시위대 역시 나름의 딜레마에 부딪힌다. 언제나 시위는 소수의 용기 있는 사람들에 의해 시작된다. 이들이 권력그룹을 압박하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사람들(그리고 정치적으로 훨씬 유약한 그룹들)을 설득해야만 한다. 이는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2011년 이집트 타흐리르 광장에서, 미국과 캐나다의 점령(Occupy)운동에서 그같은 일이 벌어졌다. 그리스의 최근 총선에서, 칠레의 학생시위에서도 벌어졌다. 그리고 지금 캐나다 퀘벡에서 대단한 장관으로 일어나고 있다.

▲ 지난 5월 이집트 수도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의 시위대. ⓒAP=연합뉴스

하지만 이런 일이 벌어지면, 그 다음은 무엇인가? 시위대 중 일부는 애초의 작은 요구를 뛰어넘어 사회질서의 재구축을 위한 보다 보편적이고 근본적인 요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반면 다른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은 항상 있기 마련인데, 권력자들과 마주 앉아 모종의 타협을 이루기를 원한다.

권력을 가진 그룹들이 시위대들을 억압하려 할 경우, 오히려 시위를 더욱 격화시킬 때가 많다. 물론 억압으로 시위를 잠재울 수도 있다. 억압으로 시위가 사그라들지 않을 경우 권력을 가진 그룹들은 타협과 매수에 나서며, 이를 통해 시위를 끝장내는 경우도 있다. 이집트의 상황이 바로 여기에 해당되는 것으로 보여진다. 최근의 선거에서 2명의 후보가 2차 결선투표에 진출하게 됐는데, 이 두 사람 중 누구도 타흐리르 광장의 혁명을 지지하지 않았던 것이다. 한 사람은 (시위대에 의해) 축출된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 밑에서 총리를 지낸 인물이고, 다른 한 사람은 무슬림형제단의 지도자 중 한 명인데, 무슬림형제단은 타흐리르광장에 모였던 사람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데는 관심이 없고 이슬람율법(sharia)을 이집트법에 넣는 데만 관심이 있다. 이러한 결과는 1차 투표에게 이 두 명 중 누구에게도 투표하기 않았던 약 50% 이집트 유권자들에게는 정말 잔인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불행한 상황이 벌어진 이유는 타흐리르광장의 혁명을 지지했던 유권자들의 표가 성향이 다른 2명의 후보들에게 갈라진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아마도 시위의 진원지(geography of protest)가 대단히 빠른 속도로, 그리고 끊임없이 옮겨가고 있는 듯하다. 어디선가 시위가 발행하면 억압되거나 매수당하거나, 또는 저절로 사그라든다. 그리고 나선 또 다른 곳에서 시위가 시작되고, 이는 다시 억압되거나 매수당하거나 스스로 잦아든다. 그리고 또 이번엔 제3의 장소에서 시위가 발생한다. 이런 식으로 (양극화에 항의하는 99%의) 시위는 세계적 차원에서는 결코 억누를 수 없다.

사실 단 한 가지, 단순한 이유 때문에라도 이 시위는 결코 잠재울 수 없다. 세계적 차원의 소득 감소가 실제로 일어나고 있으며,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전문가와 정치인들은 새로운 번영의 시기가 곧 다가올 것이라고 떠들어대고 있지만,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구조적 위기 앞에 이제까지 사용됐던 경제적 하락에 대한 모든 표준적 해법들은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세계적 혼돈 속에 살고 있다. 모든 것에서의 변동은 거대하고 급속하다. 사회적 저항도 마찬가지다. 시위의 중심(geography of protest)이 끊임없이 옮겨가고 있는 것에서 그것을 알 수 있다. 어제는 카이로 타흐리르광장에서, 오늘은 몬트리올의 냄비와 프라이팬을 든 불법 대규모 행진에서, 그리고 내일은 또 다른 어떤(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놀랄 만한) 곳에서.

* <월러스틴의 '논평'>은 세계체제론의 석학 이매뉴얼 월러스틴 예일대 석좌교수가 매달 1일과 15일 발표하는 국제문제 칼럼을 전문번역한 것입니다. <프레시안>은 세계적인 학자들의 글을 배급하는 <에이전스글로벌>과 협약을 맺고 월러스틴 교수의 칼럼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6월 1일 논평 원문보기)

* 저작권 관련 알림: 이 글의 저작권은 이매뉴얼 월러스틴에게 있으며, 배포권은 <에이전스 글로벌>에 있습니다. 번역과 비영리사이트 게재 등에 필요한 권리와 승인을 받으려면 rights@agenceglobal.com으로 연락하십시오. 승인을 받으면 다운로드하거나 전자 문서로 전달하거나 이메일로 보낼 수 있습니다. 단 글을 수정해서는 안 되며 저작권 표시를 해야 합니다. 저자의 연락처는 immanuel.wallerstein@yale.edu입니다. 월러스틴은 매월 2회 발행되는 논평을 통해 당대의 국제 문제를 단기적인 시각이 아닌 장기적인 관점에서 조망하고자 합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