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반도체공장 노동자였던 고(故) 이윤정(33) 씨가 '산재 소송' 결과를 보지 못하고 지난달 7일 뇌종양으로 사망한 지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삼성전자 사망자'가 나왔다.
삼성전자 LCD 천안공장에서 일하던 중 재생불량성빈혈에 걸려 퇴사한 윤모(32) 씨가 발병 13년 만인 지난 2일 오후 10시경 끝내 숨을 거뒀다. 윤 씨는 올해 들어서만 4번째로 발생한 '삼성전자 희귀병 사망자'다. 산재 신청을 애초에 포기하거나 산재 판정을 기다리다 지친 환자들이 시간이 흘러 이제는 하나둘씩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고(故) 윤 모 씨는 군산여자상업고등학교 3학년 때인 1999년 6월 삼성전자 LCD 천안공장에 입사했다. 입사 당시 고인은 회사가 실시한 건강검진에서 '정상' 판정을 받았으며, 집안에 혈액관련 질병 이력도 없는 상태였다.
그러나 화학물질이 묻은 LCD 패널을 손으로 자르는 일을 시작한 지 6개월 만인 1999년 11월 말, 윤 씨는 공장에서 일하던 도중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갔고 희귀병인 재생불량성빈혈 진단을 받아 같은 해 12월 퇴사했다. 이후 그는 한 달에 한 번씩 13년째 수혈에 의존해 살아왔다. 발병 당시 윤 씨의 나이는 만 18세였다.
지난달부터 급격히 상태가 나빠진 윤 씨는 응급실에 입원했고 심한 통증으로 모르핀주사에 의존했다. 숨지기 직전에는 양쪽 대퇴부 고관절이 70% 괴사했고, 온몸에 검붉은 반점과 멍이 들었으며 하혈이 멈추지 않았다. 방광은 물론이고 폐에까지 피가 들어찼던 그는 결국 지난 2일 사망했다.
윤 씨는 입사 후 검은색 유리재질의 LCD 패널을 자르는 일을 맡았다. 생전에 그는 "바로 앞 공정에서 독한 냄새가 진동하는 화학물질을 LCD 패널에 발라서 넘겼고, 3조 3교대로 일하면서 화학물질이 묻은 패널을 면장갑만 끼고 손으로 조각 내서 잘랐다"고 증언했다. 고인은 또한 유리패널을 자르는 과정에서 미세한 유리가루에 노출됐고, 설비가 고장 나면 직접 화학약품이 묻은 기계부품을 교체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은 "LCD도 반도체처럼 감광제 및 유기용제와 여러 화학물질을 사용해 유리기판을 가공하는데, LCD는 반도체보다 크기가 크기 때문에 제품 한 개당 화학물질 사용량이 더 많다"며 "윤 씨가 LCD 패널에 묻은 희귀병(혈액질환)을 유발하는 화학물질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윤 씨가 19살에 희귀병에 걸려 삼성전자를 퇴사한 이후로 윤 씨 모녀는 기초생활수급권자로 전락했다. 정부에서 월 40만 원을 받으며 근근이 생활한 윤 씨는 골수이식을 해야 했지만, 경제 형편이 어렵고 맞는 골수도 없어서 연명치료를 이어왔었다.
고인의 빈소는 고향인 전북 군산의 월명장례식장에 차려졌다. 한편, 윤 씨가 일하던 삼성전자 LCD 사업부는 지난 4월 삼성디스플레이로 분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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