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공교롭게도 2년 전 5월 5일에 뇌종양으로 시한부 1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6살, 4살이었던 아이들은 어린이날을 맞아 아빠와 놀이터에 갔다. (☞관련 기사 : "맨손으로 만진 반도체, 그리고 어린이날 시한부 선고" , '시한부 1년', 80년생 윤정씨에게 삼성반도체란…)
2년 뒤 인천시 부평구 인천산재병원에 차려진 빈소에는 이제 8살, 6살이 된 자녀들은 보이지 않았다. 입관식을 마친 이 씨의 남편 정희수 씨는 "아이들이 충격을 받을까봐 입관식도 보여주지 않았다"며 "아이들은 하늘나라가 뭔지도 모르고 '엄마 하늘나라 갔다'고 한다"고 말했다.
퇴사한 지 9년이 지나서인지 빈소에는 직장 동료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고등학교 3학년 때 같이 삼성전자에 입사했다던 친구 두 명만이 영정 앞에서 한참을 말없이 울다 갔다. 남은 자리는 지난 2007년 백혈병으로 23살 딸 황유미 씨를 먼저 보낸 아버지 황상기 씨와 2005년 백혈병으로 남편 황민웅 씨를 보낸 정애정 씨가 지켰다.
정 씨는 "올해 사망한 피해자만 벌써 3명"이라며 "젊은 사람 장례식에 많이 올 것 같은 우려가 현실이 됐다"고 침울해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
"삼성이 미운데, 아내는 용서하라고 하더군요"
이윤정 씨는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1997년 삼성전자 온양공장에 입사해 6년 동안 일했다. 반도체 칩을 보드판에 꽂고 고온챔버에 구워 불량품을 골라내는 일을 맡았다. 타버린 불량품에서는 검은 연기와 분진, 역한 냄새가 났다고 했다. 한번에 30여개 설비를 담당하다가 동시에 여러 쪽이 타면 연달아 연기를 들이마시기도 했다. 2003년 퇴사 후 두 아이를 낳았던 그는 2010년 뇌종양 판정을 받았다.
▲ 건강했을 당시 이윤정 씨. ⓒ반올림 |
지난 2년간 아내를 간병해온 정 씨는 "병간호하느라 아이들은 다른 데 맡겨서 이산가족이 됐다"며 담담한 표정으로 "힘들었다"고 말했다.
"아내는 잘 안 울었어요. 퉁퉁 부은 몸으로 담담히 항암치료를 받았어요. 장애 4급 판정을 받았을 때도 절뚝거리며 걸어 다니려고 애를 썼어요. 오히려 내가 더 울었죠. 사진 보고 울고…. 더 이상 아픈 사람은 없었으면 좋겠어요. 가족이 얼마나 피눈물 나는지는 당사자만 알거든요. 이산가족을 만들어 놓고 잘난 척 하는 게 삼성이에요. 저는 삼성이 미운데 아내가 용서하라고 하더군요."
137번째 제보, 55번째 죽음…
정 씨는 "재판부는 변론을 한 번만 열고 8개월 동안 재판을 방치했다"며 "질질 끌다가 사람이 죽고 나서야 (재판하러) 나오라는 식이니 더 화가 난다"고 말했다. 사후약방문격인 산재 제도에 대한 불만도 이어졌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부잣집 딸들이 아니거든요. 19살 나이에 악착같이 벌어서 다니는데, 그런 가정에 일하다 아픈 사람이 생기면 돈 없는 가정은 환자를 버려야 합니다. 그런 일이 생기지 말라고 산재 제도가 있는 것 아닙니까?"
고인의 작업환경에 대해 정 씨는 "밀폐된 소주병에 담배연기를 붓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삼성은 현대화된 지금의 작업환경이 노후라인이 있었던 1990년대 작업환경과 비슷하다고 주장하지만, 모든 게 자동화돼서 깨끗한 시스템과 수동으로 뜨거운 문을 여닫고 연기를 들이마시는 시스템이 같느냐"고 반문했다.
"삼성은 얼굴에 잡티 하나 용납 못하는 미스코리아 같아요. 산재를 인정하기보다는 잡티처럼 짜버리려고만 하니까요. 아마 제가 시기를 잘못 탔겠죠. (삼성 직업병 문제가 알려진) 지금 산재를 신청했으면 일말의 희망이라도 있잖아요. 70~80년대에 사람들이 죽었기에 오늘날 민주화가 이뤄졌다고 말하면 뭐합니까. 이미 사람이 죽고 없는데…."
그는 "아내의 산재가 불승인되자 시위하고 근로복지공단에 자료를 요구했고, 이제야 조금씩 진실이 밝혀졌다"며 "다른 피해자들을 위해서라도 앞으로도 (반도체 직업병의) 위험성을 더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정희수 씨. ⓒ삼성일반노조 |
이 씨가 투병생활 중에 산재 소송을 하고, 정 씨가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동안 근로복지공단에도 변화가 생겼다. 이 씨와 비슷한 시기에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 온양공장에서 5년여간 일하다가 재생불량성빈혈 판정을 받은 김지숙 씨는 지난달 처음으로 산재를 승인받았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의 이종란 노무사는 "삼성전자에서 일한 피해자만 137명인데 벌써 이번이 55번째 죽음"이라며 "노동자의 죽음 앞에 삼성이 최소한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일반노조 |
ⓒ프레시안(김윤나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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