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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존중' 없으면 민주주의도 위태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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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개인 존중' 없으면 민주주의도 위태롭다

[정치경영연구소의 '自由人']<1> 이근식 서울시립대 교수

정치경영연구소가 하는 일 중의 하나는 '진보적 자유주의'의 한국적 함의를 정치 및 정책적 맥락에서 찾아내는 일입니다. 과연 자유는 진보적인 걸까요? 그렇다면 그 구체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진보적 의미의 자유를 스스로 누리고 있거나 타인을 위하여 퍼트리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나의 자유와 타인의 자유,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자유, 그리고 자유와 평등은 상호 어떠한 관계에 있어야 하는 걸까요?

정치경영연구소의 청년 연구원들이 자유와 관련된 이 많은 문제들을 현실에서 해결 또는 극복해가고 있는 분들을 직접 찾아 나서기로 작정했습니다.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자유 이론가 혹은 실천가 분들께 (자신과 타인을 위한) 자유를 실천하는 방식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여쭤보겠다는 겁니다. 아마도 그분들은 젊은 저희들에게 자신들의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들려줄 겁니다. 앞으로 모든 인터뷰 내용은 잘 정리하여 여기 이 자리에 항상 올려놓겠습니다. 여러분들도 저희와 함께 이 자유의 향연을 즐겨주시길 바랍니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이승복 어린이의 일화를 들으며 자랐던 탓일까. 자유 하면 왠지 반공이 떠오른다. 나는 자유로운 사람이고 싶다는 말이 나는 곧 반공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텐데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 연결된 것일까? 자유로운 개인, 자유로운 사회란 어떤 사회를 말하는 것일까? 그 답을 찾기 위해 '자유인' 인터뷰를 시작했다. 그 첫 주자로 이근식 서울시립대 교수를 만났다. 이유는? 자유주의에 대한 논의가 매우 척박한 한국 사회에서 오랫동안 고집스레 자유주의에 대해서 이야기해왔기 때문이다. 그가 말하는 자유주의는 어떤 것일까? 이런 궁금증을 안고 그의 연구실 문을 두드렸다.

"한국에서는 자유주의가 보수주의나 반공주의로 이해되고 있다. 그 이유는 정치적 자유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가 구분되지 않고 쓰이기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 자유주의는 진보적이다. 왜냐면 만인평등과 민주주의를 주장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경제적 자유주의는 보수적이다. 왜냐면 이들은 정부의 적극적인 소득재분배정책과 독점규제정책, 환경보호정책을 반대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자유주의자들 중에는 경제적 자유주의자들이 많은 것 같고, 그래서 한국의 진보주의자들이 자유주의를 싫어하는 것 같다.

그러나 자유주의에는 우리가 배워야할 좋은 것들이 여럿 있다. 하나가 개인주의다. 파시즘이나 공산주의처럼 개인보다 집단을 내세우는 전체주의나 집단주의는 큰 잘못을 저질러 왔다. 집단을 내세우며 개인을 도구로 삼고 희생시켰기 때문이다. 개인주의가 먼저 확립되고 이를 바탕으로 인권과 자유라는 개념이 확립된 다음에야 민주주의도, 사회주의도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개인주의에 입각한 자유주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한국에서 진보에게서는 버림받고, 보수에 의해서는 잘못 오용되고 있는 자유주의에 대한 그의 안타까움이 묻어난 일성이었다. 더불어 그는 한 개인 한 개인을 소중히 여기는 자유주의는 진보적이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왜냐하면 진보란 인간사회에서 불평등과 빈곤을 추방하여 인간의 고통을 줄여나가는 것이며, 이는 곧 인간을 자유롭게 해주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바로 그 이유에서 그는 상생적 자유주의, 또 다른 표현으론 진보적 자유주의를 이야기한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의 권리와 가치를 나의 것과 동등하게 존중하면서 더불어 살아가자고 하는 상생적 자유주의가 개인보다 전체가, 인권이나 평등보다 발전과 성장이 강조되던 한국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대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천민자본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서의 협동조합 강조, 법의 집행 못지않게 법의 공정함이 이뤄져야 하는 이유, 언론이 살아있어야 하는 이유, 한국 사회를 이끌어갈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자질 등 상생적 자유주의가 꽃피는 한국 사회를 위한 그의 제언들은 매우 구체적이다. 이는 경실련 대표로 한국의 법치 확충과 시민사회 성장을 위해 오랫동안 활동해온 그의 실천적 삶과 맞닿아 있기에 더욱 설득력이 있다.

마지막으로 청년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sms 질문에 "이런 천민자본주의 세상에서 학생들에게 대의를 위해 살라고 하는 것은 무리인 것 같아. 이런 세상을 물려준 우리 탓인걸. 행복하게 살고, 가능한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죄를 덜 짓고 살라는 것. 그 정도가 내가 해줄 수 있는 이야기인 것 같아."라는 대답에 살짝 눈물이 나올 뻔 했다. 그가 말하는 자유가 너무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는 진정 사람과 사회를 사랑하는, 그것도 아주 많이 사랑하는 자유인이었다.

▲ 이근식 교수
진보적 자유주의에 대해서 말씀해 주신다면?

진보적 자유주의라는 말은 어감이 좋고 친숙한 느낌을 주는 말이지만 나는 상생적 자유주의라는 말을 더 좋아한다. 왜냐면 진보의 의미가 애매하여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반면에 상생이라는 말은 다른 사람의 권리와 가치를 나의 것과 동등하게 존중하면서 서로 도와가면서 살아간다는 의미이므로 상생적 자유주의라는 말을 더 좋아한다. 요즘 공동체 자유주의라는 말도 많이 쓰는데, 공동체주의는 자유주의에 대한 유익한 비판이다. 그래서 공동체주의의 장점과 자유주의를 종합하여 공동체자유주의란 말을 쓰는 것 같다. 그러나 자유주의는 개인을 우선시하는 개인주의인데 여기에 공동체란 말을 붙이면 공동체와 자유주의란 두 말간에 충돌이 발생한다. 그래서 공동체 자유주의보다 상생적 자유주의가 더 좋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공동체자유주의와 상생적 자유주의는 서로 기본적으로 내용이 같은 것 같다.

자유주의에 대한 생각은 언제부터?

나는 원래 자유주의가 무엇인지도 몰랐고 자유주의자도 아니었다. 그런데 우연히 나이 40이 넘어서 스미스(Adam Smith)의 『도덕 감정론』을 읽고 세상을 새로 보게 되었다. 그리고 나서 그의 『국부론』을 읽었더니 역시 매우 재미 있었다. 1980년경부터 신자유주의가 세계를 휩쓸면서 스미스로 돌아가자고 하면서 스미스가 마치 시장만능론자인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시장만능론은 세상도 시장도 모르는 사람들이나 하는 어리석은 소리이고 스미스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정말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도덕 감정론』을 읽어 보면 사람과 세상에 대한 깊은 통찰을 느낄 수 있다. 그 책을 읽고나서 종전의 나의 생각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종전에 나는 정부가 제도변경을 통해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 토지, 부패, 불황과 실업 등 문제들을 제도를 바꿔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스미스를 읽고 나니 그게 아니더라. 왜냐면 사람은 기본적으로 자기중심적이고 또 다른 사람에 대한 연민도 있고 부와 명예를 추구하는 본성도 있는데 정부가 제도만 바꾼다고 될 일이 아닌 것 같다. 사람들이 납득하지 못하는 정부의 일방적 정책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모두 머리를 써서 도망갈 길을 찾기 때문이다.

스미스를 읽고 고전적 자유주의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고전적 자유주의의 핵심은 국가의 횡포, 특히 중상주의 국가의 횡포에 대한 저항으로 볼 수 있다. 중상주의는 정부가 주도하는 정경유착의 경제인데 한국의 관치경제와 비슷한 것이다. 스미스가 이야기한 자유주의는 이런 중상주의에 대한 비판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더 잘 살려고 하는 본능적 욕구가 있으므로 정부는 경제를 좌지우지 하지 말고 법질서를 확립하고 쓸 데 없는 정부규제들을 없에서 개인들이 자발적으로 열심히 일하고 저축하고 투자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어라. 그리하면 경제가 저절로 발전할 것이라는 것이 스미스의 고전적 자유주의의 핵심이다. 스미스가 말한 환경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공정한 법질서의 확립인데, 이는 개인 서로간은 물론이고 국가권력자가 개인의 재산을 마음대로 뺏아가지 못하게 하는 법질서를 말한다.

스미스를 읽은 다음에 읽은 밀(John Stuart Mill)은 또 달랐다. 밀은 스미스가 못 보았던 것을 보았다. 스미스는, 공정한 법질서의 확립과 더불어 서민을 위한 초등교육 제공, 도로나 항만과 같은 사회기반시설의 건설, 예금자 보호를 위한 은행 감독 정도만 정부가 담당하고 나머지 경제는 모두 민간의 자유로운 활동에 맡기면 누구나 더 잘 살려고 하는 인간의 본성 덕분에 경제가 저절로 발전하여 빈곤이 모두 사라질 것으로 예상하였다. 스미스는 노동자들도 잘 살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달성되어 자본주의경제가 본격적으로 발전해도 그 혜택은 자본가들에게만 돌아가고 노동자들은 대부분 비참한 빈곤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이것을 보고 밀은 노동조합을 보호하고 사유재산권을 제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사유재산권은 스미스를 포함하여 고전적 자유주의자들이 절대적으로 신성시하던 것이었는데, 밀이 이것을 건드린 것이다. 그는 상속과 토지에 대한 사유재산권을 제한하고 과세하여 노동자들의 빈곤을 추방하자고 제안했다. 사유재산권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상속과 토지에 관한 것인데 밀은 이를 제한하자고 한 것이다. 밀은 스미스보다 약 80년 후에 태어났기 때문에 스미스가 보지 못하였던 노동자의 빈곤이라는 자본주의의 병폐를 볼 수 있었다.

밀의 여러 저작들을 관통하는 것이 진보의 개념인 것 같다. 그에게 진보란 인간사회에서 불평등과 빈곤을 추방하여 인간의 고통을 줄여나가는 것이다. 밀이 본 것처럼 사회적 불평등(차별)과 빈곤을 점점 축소해가는 것이 아마 진보의 핵심일 것이다. 고전적 자유주의는 스미스가 바탕이지만 나는 밀을 더 좋아한다. 밀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는 공감 가는 말을 참 많이 했는데, 그 중에서도 노동자, 여성, 아동 등 약자를 배려해야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동물들을 학대하는 것도 매우 큰 잘못이라고 심하게 비판하였다. 이러한 밀의 시각은 참으로 진보적이라 할 만하다.

자유주의라는 시대와 사회에 따라 계속 변해왔다. 스미스 시대에 정부는 중상주의 정부였는데 그건 특권층을 위한 정부였으며 국민을 괴롭히는 정부였다. 그러나 밀 시대의 정부는 달랐다. 밀의 시대인 19세기 말 영국에서는 보통선거가 이루어져서 노동자들에게도 선거권이 주어졌다. 이러한 민주주의의 발전 덕분에 정부는 국민을 억압하던 정부에서 국민을 위해 일하는 좋은 정부로 변하였다. 그래서 밀은 정부를 통해 가난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은 19세기 말에 영국의 사회적 자유주의라는 생각으로 발전되었다. 사회적 자유주의자들은 자유의 적(敵)은 이제 정부가 아니고 빈곤이고 정부는 재분배정책을 통해 이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는 밀의 관점을 계승한 것이라 생각된다. 20세기 복지국가도 밀과 사회적 자유주의자들의 생각을 계승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현대의 복지국가를 철학적으로 뒷받침한 것이 롤즈(John Rawls)와 드워킨(Ronald Dworkin)으로 대표되는 현대의 평등주의적 자유주의(egalitarian liberalism)이다. 복지국가라는 것이 결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소득재분배정책을 실시하는 국가인데, 왜 이 정책이 정당한 것인지를 설명한 것이 이들의 이론이다.

롤즈 책 읽고 재미있었던 것은 당연한 얘기를 참 무지무지 어렵게 한다는 것이었다.(웃음) 드워킨은 더 하다.(웃음) 롤즈 이야기는 우리는 모두 누구나 불행해질 수 있으니 거기에 대비해서 불행한 사람을 돕는 사회 제도를 마련하여야 한다는 것인데 이 이야기를 그렇게 어렵게 썼다. 드워킨의 주장은, 돈 못 벌 줄 알면서도 자기가 좋아서 선택한 직업 때문에 가난하게 된 경우처럼 스스로의 선택 결과로 인한 불평등은 보상해 주지 말고, 출생이나 재능이나 사고처럼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것으로 인한 불평등은 사회가 공공복지제도를 통해 보상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원래 이 점은 롤즈가 지적하였던 것인데 드워킨이 이를 더욱 철저하게 논리적으로 발전시켰다.

정치경영연구소 홈페이지 자유란 코너(http://ipm.hallym.ac.kr/liberalcomment)에 자유란 "사물의 인과관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효율적 수단을 찾는 영리한 머리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존재)도 나와 동일하게 소중한 존재임을 인정하는 보편적 윤리의식을 갖고 이를 실천할 때 자유로운 인간이 되는 것 같다"라고 하셨습니다. 이를 좀더 쉽게 설명해 주신다면?

진정한 인간이 될 때 자유를 얻는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진정한 인간이란 이성을 가진 인간을 말한다. 이성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사물의 인과관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효율적 수단을 찾는 영리한 머리, 바꿔 말하면 사실판단을 정확히 할 수 있는 인식능력을 말한다. 또 하나는 올바른 윤리의식을 갖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올바른 윤리의식이란 다른 사람도 나와 똑 같이 소중한 존재임을 인정하고 서로 상생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이 두 가지를 모두 갖출 때 진정한 사람, 곧 자유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최근에 프레시안에 상생적 자유주의 특강 연재를 시작하시게 된 계기는?

정치경영연구소 최태욱 교수의 제안이 직접적 계기였지만 개인적으로도 한국에 자유주의를 더 알리고 싶은 평소의 욕심이 있었다.

한국에서의 자유주의 논의에 대해서는?

영미에서 현재 자유주의를 뜻하는 liberalism이란 말은 자유주의란 의미보다 주로 진보주의라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반대로 한국에서는 자유주의가 보수주의나 반공주의로 이해되고 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자유주의의 의미가 시대와 사회에 따라서 계속 변화하여 온 탓도 있지만, 또 하나 이유는 정치적 자유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가 구분되지 않고 쓰이고 있는 점이다. 정치적 자유주의는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것을 말하고 경제적 자유주의는 자유방임의 자본주의 경제를 지지하는 주장을 말한다. 원래 스미스와 같은 고전적 자유주의자들은 이 두 가지를 모두 주장하였다. 그러다가 앞서 밀에서 본 것처럼 자본주의에 빈부격차와 같은 병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20세기 들어와서는 이것만이 아니라 불황과 실업, 독점화, 환경파괴 등 소위 말하는 시장의 실패가 자유방임의 자본주의 경제에 예외 없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런 시장의 실패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경제에 개입해야 된다는 개입주의자들이 2차대전이후 현대 경제학의 주류가 되었다. 케인즈(John M. Keynes)와 사무엘슨(Paul Samuelson)이 대표이다. 이들을 개입주의자 혹은 케인지안이라고 하며 수정자본주의자라고도 부른다. 반면에 이런 경제적 개입주의에 반대하는 자유방임주의자들이 한 편에 여전히 존재한다. 이들은 시장이 완전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정부보다는 시장에 맡기는 것이 더 좋다고 본다. 왜냐면 정부에 맡기면 정치인과 공무원들의 부패, 무능과 낭비라는 정부의 실패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현대 자유주의자들은 경제문제에 관한 한 자유방임주의를 지지하는 경제적 자유주의자(자유방임주의자)와 정부의 적극적 경제개입을 주장하는 개입주의자의 두 그룹으로 나누인다. 이 둘 모두 정치적 자유주의를 지지하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이렇게 진보적이며 보편타당성을 갖는 정치적 자유주의와 보수적인 경제적 자유주의를 구분하면 혼동을 피할 수 있다.

정치적 자유주의는 진보적이다. 왜냐면 만인평등과 민주주의를 주장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경제적 자유주의는 보수적이다. 왜냐면 이들은 정부의 적극적인 소득재분배정책과 독점규제정책, 환경보호정책을 반대하기 때문이다.

2차대전 이후 구미에서 경제적 자유주의자(자유방임주의자)는 소수였고, 케인즈 같은 수정자본주의자들이 주류였었는데 신자유주의가 세계적으로 유행하면서 경제적 자유주의자들이 주류가 되었다가 신자유주의 하에서 빈부격차가 확대되어 중산층이 몰락하면서 요즘 다시 개입주의가 주류로 복귀하고 있는 추세인 것 같다. 한국의 자유주의자들 중에는 경제적 자유주의자들이 많은 것 같고, 그래서 한국의 진보주의자들이 자유주의를 싫어하는 것 같다.

한국만이 아니라 진보주의자들은 대개 평등주의자라고 생각된다. 자유주의가 원래 부르주아지들의 사상이었던 점을 생각하면 막시스트들이 자유주의를 싫어하는게 당연하다. 서양에서도 그러한 경향이 있다.

그러나 자유주의에는 우리가 배워야 할 좋은 점들이 여럿 있다. 하나가 개인주의이다. 개인주의는 자유주의의 핵심 요소의 하나인데, 구체적 사람은 어디까지나 개인이고 추상적 집단이 아니므로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하다. 파시즘이나 공산주의처럼 개인보다 집단을 내세우는 전체주의나 집단주의는 큰 잘못을 저질러 왔다. 집단을 내세우며 개인을 도구로 삼고 희생시켰기 때문이다.

개인주의에서 인권이라는 개념이 나오는 것이지 집단에서는 인권이라는 개념이 나올 수가 없다. 개인주의가 먼저 확립되고 이를 바탕으로 인권과 자유라는 개념이 확립된 다음에야 민주주의도, 사회주의도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것이다. 자유주의 단계가 없으면 개인에 대한 존중이 없기 때문에 전체주의로 빠질 위험이 크다. 역사적으로 독일, 이태리와 일본의 파시즘 그리고 쏘련과 중국, 캄보디아의 공산주의 등이 다 그러 하였다. 국가, 민족, 인민, 계급과 같은 집단을 개인보다 앞세우니까 개인은 희생되고 수단에 불과하게 되었다. 이런 것은 아주 위험하다. 그런 면에서 개인주의에 입각한 자유주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또 개인의 인권을 무시하는 집단주의는 휴머니즘과도 충돌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한국의 정치문화에 대해 말씀해 주신다면?

옛날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 제일 부족한 것이 관용의 풍토인데 이는 분단과 6.25라는 민족의 비극를 겪었다는 우리의 특수한 사정 때문에 극복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는 관용의 정신이 부족하기 때문에 자꾸 흑백논리가 횡행하는 것 같다. 분단 상태에서 관용이 자리 잡기 힘들지만 이제는 관용의 풍토를 만들기 위해 모두 노력해야 될 때가 된 것 같다. 가방 끈 긴 사람들이 앞장 서야 될 터인데 오히려 이들이 방해가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자유주의에 대한 생각을 계속해서 하게 된 이유는?

자유주의라는 원래 인간의 본성에 딱 들어맞는 생각이다. 누구나 다 국가나 민족보다는 자기 자신을 우선시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인데 자유주의는 이런 인간의 본성에 부합한다. 누구나 억압을 싫어하고 자유를 좋아하지 않는가? 묶여 있던 강아지들도 풀어주면 환호작약한다. 자본주의가 되어 개인주의가 더 강화되긴 하였지만 과거에도 사실 따지고 보면 사람들은 대개 자기와 자기 가족 중심으로 살아 왔다. 스미스 말처럼 개체보존과 종족보존이 항상 우선이다. 국가와 민족을 앞세우는 분들도 간혹 있지만 일반 보통사람들이야 언제나 자신과 가족 중심이었다. 이것은 인간의 자연스런 모습이다.

진보적 자유주의를 한국에 적용시켜나가는 방안은?

분야별 구체적 실천 방안들을 한 사람이 다 알기란 불가능하고 결국 각 분야별로 현실과 이론을 잘 아는 전문가들이 구체적 실천방안을 찾아가야 할 것이다. 크게 두 가지만 말한다면, 한 가지는 국가가 합리적인 공공복지제도를 적정한 규모로 확충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주어진 예산을 낭비하지 않고 효율적으로 사용하면 훨씬 더 큰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복지예산은 90조원 가량으로 정부 예산 중에서 가장 큰 규모인데 낭비가 적지 않은 것 같다.

또 하나는 우리들의 일상생활에서 천민자본주의를 벗어날 수 있는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협동조합이 한 방법인데 아직 한국에서 미미하긴 하지만 그래도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협동조합들이 꽤 있는 것 같다. 협동조합이 자본주의 사회랑 잘 안 맞는 점이 분명히 있긴 하지만 생산협동조합, 소비자협동조합, 신용협동조합, 상인협동조합 등 여러 가지 형태로 경쟁력 있는 협동조합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 같다. 비단 협동조합만이 아니라 실생활에서 국민들이 먹고사는 과정에서 좋은 방법들을 찾으면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국가에만 맡겨서는 안 될 것이다. 국가에 맡긴다는 것은 부패하고 무능하고 집단이기주의에 빠진 정치인과 공무원들에게 맡긴다는 것이다. 반면에 시장에 맡기자는 것은 재벌에게 맡기자는 것인데 이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문제를 더 악화시킬 것이다. 중소기업문제도 이익공유제처럼 재벌들의 시혜를 바라는 것은 해답이 아닌 것 같다. 이보다는 중소 협력기업에 대한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행위를 막는 제도를 마련하여 중소기업들이 정당한 이익을 벌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미국과 비교하여 보아도 우리나라 중소기업 보호제도는 훨씬 더 열악하다. 미국에는 대기업의 불공정거래로 인해 피해를 본 중소기업은 직접 검찰에 고발할 수 있고, 법원에서 승소판결이 나면 동일한 경우를 당한 모든 중소기업들이 동일한 피해보상을 자동적으로 받는 제도가 법으로 마련되어 있다. 그런데 한국은 이러한 제도가 전연 없다. 한국에서는 공정거래위원회만 검찰에 불공정거래를 고발할 수 있기 때문에 중소기업이 대기업으로부터 억울한 피해를 당해도 직접 검찰에 고발할 수 없고 반드시 공정거래위원회를 통해서 고발하게 되어 있는데, 우리나라 공정거래위원회는 1년에 수천 개 접수되는 신고 중에서 기소하는 것은 불과 열 개가 안되니 누구를 위한 공정거래위원회인지 알 수가 없다. 또한 중소기업이 재판에서 승소판결을 받더라도 해당기업만 보상을 받을 뿐 동일한 피해를 받은 다른 중소기업들은 아무 보상을 받지 못한다. 우리나라 중소기업들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미국처럼 피해 받은 중소기업들이 검찰에 직접 고발할 수 있도록 하고 법원의 판결이 나면 동일한 피해를 입은 모든 중소기업들이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그런대도 법개정과 제도개선이 전연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공정거래위원회도 국회도 모두 재벌들의 영향력 아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 우리나라의 법이 문제라고 보시는지?

우리나라에서는 법치주의를 모든 사람에게 법을 똑 같이 집행한다는 의미로 주로 쓰이고 있는데, 이런 법의 공정한 집행도 중요하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법의 내용이 누구를 편들지 않고 공정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자유주의에서 말하는 법치주의는 법의 공정한 내용과 집행 두 가지 모두를 포함한다. 우리의 경우 방금 본 공정거래위원회의 고발독점권처럼 과거 군사독재시절에 제정되어 내용이 공정하지 못한 법들이 많은데 이런 것들을 하루 빨리 고쳐야 한다.

사회가 발전하려면 법조계만이 아니라 언론도 살아있어야 한다. 현 정부가 제일 잘못한 것이 그간 나름대로 독립성을 갖고 공정보도를 하여 오던 방송국들의 경영권을 빼앗아 언론을 죽인 것이다. 언론을 권력의 시녀로 만든 것이 장기적으로 제일 잘 못한 것 같다. 언론이 정권을 제대로 비판하지 못하면 정권도 잘못을 막아주는 사람이 없게 되어 불행해 진다. 다음으로 잘못한 것이 4대강 사업인 것 같다. 자연은 한 번 파괴되면 복구하기가 무척 힘들고 불가능한 경우도 많다.

한국의 지도자상을 어떻게 보시는지?

올바른 비젼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어느 나라 정치에서나 표가 중요하긴 하지만 표만을 뒤쫓는 정치인들은 지도자로 곤란하다. 표만 생각하는 정치인들을 포퓰리스트라고 하는데 현재 차기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정치인들은 거의 다 이런 것 같다. 이런 리더는 곤란하다. 대통령은 국가의 장기 비전을 제시하고 거기에 맞추어 정책을 세워 집행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아직 합당한 사람이 안 보인다. 가장 유력하다는 박근혜의원도 똑 같다.

소비자의 목표는 효용극대화이고 정치인의 목표는 표 극대화라는 말이 있는데, 민주주의의 한계를 잘 드러내는 말 같다. 정치인들의 수준은 국민들의 수준과 일치하므로 결국 국민들의 의식과 생각이 커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언론과 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인터넷이 하나의 희망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인터넷은 그야말로 게릴라다. 다양한 의견과 정보가 아무데서나 튀어 나온다. 반면에 인터넷이라는 정보의 바다에 빠져서 허우적대는 경우도 많다. 그래도 인터넷 덕분에 조중동의 힘은 많이 빠진 것 같다.


청년 이근식의 가슴을 뛰게 한 것과 대학생활은?

예쁜 아가씨를 보면 가슴이 뛰었다.(웃음) 우리가 대학 다닐 때에는 대부분 동아리에 들어갔는데, 그 당시 동아리들은 대개 이념적 성향이 강했다. 내가 다니던 서울 상대는 6.25전에 좌익의 소굴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다른 대학의 우익 학생들이 습격하여 상대생들을 마구 구타한 적도 있다고 한다. 서울상대 경제과는 전통적으로 정부정책에 비판적이었다. 박정희 정책에 대해 비판적이었고, 매판자본을 비난했고, 자립경제를 주장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런 비판적 분위기가 생겼던 이유는 두 가지였던 것 같다. 하나는 군사쿠테타로 민주정부를 전복하고 무력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에 대한 반감이 컸다는 것이다. 이는 지식인들로서 당연하였다고 생각된다.

또 하나 이유는 당시 서울 상대를 비롯하여 한국 대학들에 계승되어 오던 민족주의적 전통이라고 생각된다. 일제시대 때 독립운동의 최전방에서 제국주의 침략자에 대해 저항하였던 사람들은 대개 민족주의자이었고 이들은 대개 사회주의자였다. 전세계가 다 그랬다. 왜냐면 제국주의자는 구미의 자본주의 열강들이었고 자유주의는 그들의 사상이었으니, 거기에 저항한 후진국 식민지는 저절로 민족주의와 마르크시즘으로 가게 되었다. 이처럼 제국주의시대 식민지에선 대개 막시즘과 민족주의의 두 세력이 겹쳤는데 한국도 마찬가지였다고 생각된다. 일본도 식민지는 아니였지만 마찬가지여서 동경대학의 경제학과는 막시스트가 다 잡고 있었고 그 전통이 1960년대까지도 지속된 것 같다.

민족주의 전통이 서울 상대 경제과에도 있었다. 그런데 그것만 가지고는 문제해결이 안된다는 생각이 점점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스미스와 밀을 읽고 나서였다. 이념적인 사고는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였는데, 왜냐면 이념적인 사고는 교조적이고 경직적일 뿐만 아니라 인간의 본성을 안 보기 때문이다. 인간을 보고 인간의 본성에 맞게 사회를 바꾸는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밀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사회주의에 대한 밀의 생각이었다. 밀은 사회주의 국가가 설사 세워지더라도 망할 것이라 보았다. 밀은 사유재산제도가 없어지면 재산을 목표로 하는 투쟁은 없어지지만 권력을 목표로 하는 새로운 투쟁과 국가권력층이라는 새로운 지배계급이 발생할 것이라고 보았다. 또한 노동생산성도 하락하고 무엇보다도 개인의 자유가 박탈될 것이라고 정확하게 예상하였다. 생산을 국가가 관리하는 것이 사회주의인데 생산을 관리하려면 노동력을 관리해야하고. 노동력을 관리하려면 인간을 관리해야 하고 이는 개인자유의 박탈을 초래할 것이라고 밀은 정확하게 예측하였다. 밀이 이런 얘기를 한 것이 1870년경인데 밀은 쏘련의 붕괴를 120년전에 내다본 것이다.

밀과 달리 막스(Karl Marx)는 인간을 너무 순진하게 본 것 같다. 막스는 인간은 원래 선량한데 사유재산제도가 인간을 악하게 만들었다고 보았다. 그래서 막스는 사유재산이 없는 공산주의사회가 건설되면 계급도 인간소외도 없어지고 지상천국이 실현될 것이라고 낙관적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는 틀렸고 밀의 예언이 맞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밀은 사회주의사회가 이상적이긴 하나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먼저 인간의 윤리의식이 높아져야하고 이는 매우 요원한 일이라고 보았는데 이런 밀의 생각이 옳은 것 같다.

지상에 천국을 만들 수 있다는 막스와 헤겔의 생각은 모두 망상이다. 지상에 천국을 어떻게 만드는가? 자신을 위해서 다른 사람과 동물들을 마구 죽이는 인간들이, 자기들끼리도 전쟁과 수탈을 그치지 않는 인간들이 어떻게 이 세상에 천국을 만들 수 있는가? 옆으로 벗어난 얘기지만 인간은 죄를 너무 많이 짓는다. 에덴동산에서 사과를 따먹은 것이 원죄가 아니라 수많은 동물을 마구 죽이는 것이 인간의 원죄이다. 전번 구제역 때 수백만 마리의 돼지와 닭을 산채로 생매장하는 것을 보고 이것이 더욱 실감되었다. 다른 동물들은 마구 죽이면서 인간들만 잘사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것은 염치없는 생각인 것 같다. 이 지구는 인간들만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유학생활 또는 유학에 관련해 말씀해 주신다면

나이가 서른 둘이 되어 뒤늦게 미국에 유학을 갔는데, 영어가 들릴 때쯤 되니 대학원 코스웍이 끝났다.(웃음) 유학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공부하고 싶으면 유학가는 걸 적극 권한다. 한국에서는 공부가 잘 안 된다. 나도 한국에서 대학원을 2년 동안 다녔는데 그 때 기본적으로 파트 타임 학생밖에 될 수 없었다. 유학가야 풀 타임 학생이 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장학제도가 부족한 것도 문제지만 인간관계에 얽혀 사회생활에 시간을 너무 많이 뺏긴다. 유학 가는 것은 귀양 가는 것과 같다. 귀양 가면 유배지에서 공부에만 매진할 수 있다. 유학 가서 장학금 받으면 시간을 할애해야 하긴 하지만 조금만 할애하면 되고 대부분 시간은 공부에 매진할 수 있다. 특히 사회과학 공부하고 싶으면 유학을 가서 견문을 넓히는 것이 좋다. 견문을 넓혀야 세상을 넓게 제대로 볼 수 있다.

현재 꿈이 있다면?

지금 특별히 꿈이라고 할 것이 없다. 젊었을 때도 꿈은 별로 없고 욕심은 있었다. 그게 뭐냐면 우리나라를 어릴 때 미국영화에서 본 미국처럼 잘사는 나라로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었다. 그래서 대학에서 경제학과를 택했다. 지금 생각하면 이건 순진한 생각이었고 이제는 우리나라가 잘 살게 되는 데에 내가 작은 보탬이라도 되면 좋겠다는 정도로 생각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글을 쓰고, 말하는 것이니 이를 통해 우리나라가 좀 더 잘 살게 되는 데에 작은 보탬이라도 되었으면 한다. 난 내가 팔자가 좋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먹고 살 걱정을 안 하고 자유롭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웃음) 대학교수란 직업이 그래서 좋은 것 같다. 먹고 살 걱정도 안하고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특히 나와 같이 공립대학교수가 좋은 것 같다. 사립대학에서는 교수들이 재단 눈치를 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요즘 장삿군이 대학을 사서 마치 개인 회사 경영하듯, 교수를 직원 부리듯 하는 사립대학이 있다. 옛날에는 사농공상(士農工商)이었는데 요즘 천민자본주의 시대에는 상공사농인 것 같다. 나는 운이 좋게 서울시립대 교수가 되어서 아주 만족한다. 누구 눈치 안 보고 자유롭게 쓰고 말할 수 있어서 좋다. 내 책이 많이 읽혀서 내 생각이 널리 전파되면 좋겠지만 내 책이 재미 없어서 워낙 안 팔린다. 그래서 이제 그런 기대도 접었다.(웃음)

마지막으로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이런 천민자본주의 세상에서 학생들에게 정의를 위해서 살라고 말하는 것은 무리라고 본다. 이런 세상을 물려준 우리 탓인걸. 열심히 일하고, 돈 벌고 결혼해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행복하게 살고. 그리고 가능한 한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죄를 덜 짓고 살라는 것. 그 정도가 해 줄 수 있는 얘기인 것 같다.

(정리: 김남수·김경미·양태성 정치경영연구소 연구원)

* 이 연재는 한림국제대학원대 정치경영연구소의 기획·취재·집필에 의해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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