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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훌라 학살'을 곧 잊을 것이다"

[해외 시각] 로버트 피스크 "1990년대 알제리를 보라"

지난 25일 시리아 훌라에서 친정부 민병대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민간인 대량학살 사건이 터지면서 국제사회의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유엔(UN)이 집계한 사망자 108명 중 절반에 가까운 49명이 아동이었고 여성도 34명이 포함되는 등 '21세기판 인종청소'라는 충격을 안겨줬다.

국제사회는 자국 주재 시리아 대사를 추방하는 등 분노를 표출하고 있지만 사실상 내전 상태인 시리아 문제를 해결할 구체적인 해법에 대해서는 무능함을 보이고 있다.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은 코피 아난 유엔 특사의 중재로 맺은 휴전 협상을 무시했고 유혈사태를 종식하라는 요구에도 책임을 정체불명의 테러집단에게 미루는 상태다.

일각에서는 시리아에 군사적 개입이 필요하다는 주장까지 나오지만 러시아 등 시리아의 우방국들이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고 '비난'에 압장서는 다른 국가들도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의 중동특파원 로버트 피스크가 29일(현지시간) 쓴 칼럼에 냉소가 가득한 이유다. 피스크는 과거 알제리에서 20만 명이 살해당하는 끔직한 내전 이후에도 주모자들이 책임을 회피해갔던 사실을 상기시키며 알아사드 정권이 이번에는 퇴로가 없을 것이라는 전망을 반박했다.

그는 과거 사례를 보면 서방국들은 중동에서 테러리스트 세력이 정권을 잡지 않게 만드는 것이 우선이었다고 설명했다. 독재자를 국외로 피신시켜 신변을 보장하고, 남아있는 이들에게 권력을 물려주는 방식의 '타협책'이 등장하는 배경이다. 학살 사건은 끔직하지만, 사람들은 또 다른 대량학살 사건이 터지면 훌라를 잊을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다음은 이 칼럼의 주요 내용이다.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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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일(현지시간) 시리아 훌라에서 친정부 민병대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대량학살극에 희생된 주민들. ⓒAP=연합뉴스

서방은 현재 아동 학살에 몸서리치지만, 곧 잊을 것이다

바샤르 알아사드는 빠져나갈 것이다. 그는 데라(에서의 민간인 학살 사건)를 잘 피해갔다. 홈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는 훌라에서도 잘 빠져나갈 것이다. 시리아 반군과 알카에다, 그리고 시리아의 비극에 합류한 다른 단체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맞다. 이 상황은 참상의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 (시리아 여당) 바스당의 붕괴가 '가능'한 게 아니라 '필연'이 되는 순간인 것 같다. 그리고 친애하는 헤이그 씨(국제사법재판소)는 끔직해하는 게 틀림없는 것 같다. 유엔(UN)도 마찬가지다. 우리 모두가 그렇다.

그러나 중동에는 훌라와 같은 사례가 100개는 널려 있다. (사망) 통계 속에는 총 뿐 아니라 도검과 밧줄 같은 살인도구에 의해 죽임을 당한 아동이 산적해 있다. 시리아 정부군이 (알아사드가 소속된 시아파 분파) 알라위파 민병대에게 그런 잔혹한 일을 하게 만든 것이라면 앞으로 어떻게 될까? 알제리 민족해방전선(FLN) 정권은 1990년대에 반대파를 살해하기 위해 '의용병'을 쓰지 않았나? 지난해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에게 친위대가 없었나? (이집트의) 호스니 무바라크는 반대파를 공격하기 위해 감옥을 들락날락거리던 약물중독자 전직 경찰관들, '깡패'(baltagi)라 불리는 이들을 두지 않았나? 이스라엘은 레바논 안의 이스라엘 반대 세력을 겁주고, 살해하기 위해 (레바논의 우파 기독교 민병대) '팔랑헤'와 연계하지 않았나? 이 또한 '살인을 내세운 통치'(rule by murder) 아닌가?

그러고 보니 1982년 시리아 하마에서 대량학살을 일으킨 것도 알아사드의 삼촌 리파트의 특수부대 아니었던가? 리파트 알아사드는 현재 프랑스 파리와 영국 런던 사이를 오가며 살고 있으니 너무 이 사실을 크게 떠들지 말라. 누가 바샤르가 훌라 사건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겠나?

알제리에서 벌어진 유사한 학살은 무서운 사건이었다. FLN의 부패한 지도부는 심지어 선거까지 치르면서 '민주주의'를 원했다. 그러나 야당이었던 이슬람구국전선(ISF)의 승리가 명확해지자 정부는 알제리를 파괴하려는 '테러리스트'를 향한 전쟁을 선포한다. 반대파들이 블리다 인근에서 아기의 목을 자르고 여성을 강간하는 등 수천 명의 시민을 학살하기 전까지 테러와 싸운다는 명분으로 마을은 포위됐고, 도시는 폭격 당했다. 알제리 군 역시 대량학살에 개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는 모두가 잊은 벤탈라 학살 사건처럼 훌라 또한 잊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서방 사람들은 헐떡거리면서 알제리의 양 세력에 '자제'를 촉구했지만 (사실은) 옛 프랑스 식민지의 안정을 원했고(시리아도 과거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사실을 잊지 말자) 알카에다식 반란군이 알제리를 접수할까 우려했다. 결국 미국은 현재 러시아가 시리아군을 지원하는 것과 똑같이 알제리군을 지원했다. 그리고 FLN은 20만 명이 죽은 뒤에도 그 책임을 모면했다. 시리아 내전에서는 지금까지 단 1만 명이 죽었다.

1990년대 내란 사태 당시 알제리인들이 다른 국가들로부터 조언을 얻기 위해 애썼다는 점은 기억할 가치가 있다. 그들은 (바샤르의 부친) 하페즈 알아사드의 시리아를 선택했고 1982년 알아사드 정권이 하마를 어떻게 파괴했는지를 배우려 다마스쿠스에 군 사절단을 보냈다. 6개월 전 바샤르 알아사드가 '데드맨 워킹'(Dead man walking)의 배역을 맡았다고 했던 미국은 현재 시리아 내전에 대해 예멘식 결말(지도층이 해외로 도피하고 권력이 이양되는 방식)이 나길 원한다. 마치 예멘에서는 충분히 피가 튀지 않았다는 것처럼. 그러나 알아사드와 주변의 '깡패'들을 유사한 인물로 대체하는 예멘식 해법은 시리아인들이 만족할 수 있는 답이 아니다.

맞다, 이건 내전이다. 그리고 훌라 학살이 전환점이 될 것 같다는 점도 맞다. 그리고 이제 유엔이 (학살극의) 목격자라는 점도 맞다. 그러나 바스당은 피보다 더 진한 뿌리를 갖고 있다(레바논인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라). 그리고 서방에 있는 우리들은 모니터에 시리아 혹은 예멘, 아니면 다음 번 혁명이 일어날 곳에서 또 다른 학살 동영상이 올라오면 훌라를 곧 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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