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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과 금융의 결합, 한국판 서브프라임 서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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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과 금융의 결합, 한국판 서브프라임 서막인가?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빗장 풀기의 1막 1장 : 강남 투기지역 해제

"집값은 내려가지 않는다"는 신화가 사실로 받아들여지던 시절, 주택담보대출(모기지론)은 자본주의의 최첨단 금융기법 신기원을 열어준 것처럼 보였다. 이자가 쌓이는 속도보다 빠르게 집값이 올라갈 때는, 너도 나도 대출을 내서 집을 사고 되파는 것만으로도 꽤 쓸 만한 돈벌이가 되었다.

주택담보대출이 성행하자 세계금융의 핵심이라 할 미국에서 돈벌이의 새로운 수단을 고안해냈다. 서민들이 대출을 받으면 은행과 채권·채무 관계가 성립하는데, 담보대출 수익률이 높아지자 이제 채권을 거래하기 시작한 것이다. 집값이 계속 올라가면 서민들은 집을 되팔아 빚을 갚는데 어려움이 없었기에, 담보대출 채권의 수익률도 안정적으로 보장되었다.

그런데 미국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주택담보대출 채권과 다른 금융상품을 섞어 다양한 파생금융상품을 만들어냈다. 어떤 금융상품들을 얼마의 비율로 섞고 여기에 이자율(채권의 경우 수익률)을 얼마 적용해서 판매하면 절대로 손해 보지 않는다는 수학 공식까지 탄생했다.

미국 자본주의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얻은 것처럼 보였다. 아무리 많은 상품이 미국으로 수입되어도, 부동산에서 얻어지는 수익을 바탕으로 탄탄한 소비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성장 동력의 70%가 탄탄한 소비에 근거해 있었다.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계속 하락하는데, 오히려 부동산을 통한 수익은 늘어났기에 가능한 시스템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공식은 "집값은 내려가지 않는다"는 전제 위에서만 작동 가능한 것이었다.

▲ 미국 로스엔젤레스에 있는 한 주택이 매물로 나와 있다. ⓒ로이터=뉴시스

썩은 사과 하나가 과일바구니 전체를 삼키다

서브프라임(Subprime)은 쉽게 말하면 개인의 신용등급을 뜻한다. "모자란다"는 뜻의 '서브(Sub-)'라는 접두사가 붙은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프라임(Prime)보다는 낮은 신용등급을 의미한다. 미국에는 넓게 보면 3가지 신용등급이 존재하는데, 프라임, 알트에이(Alt-A), 서브프라임이 그것이다. 다시말해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은 신용의 낮은 등급, 즉 서민들의 주택담보대출을 말하는 것이다.

주택담보대출이 서브프라임 등급에서까지 성행했다는 말은, 그만큼 광범위한 서민들이 이런 대출에 의존해 먹고 살았다는 것이다. 이제 그의 연봉이 얼마냐가 아니라 그가 은행에서 얼마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사람들의 부를 측정하는 기준이 되었다.

그러나 신화가 깨져버렸다. 집값이 오르지 않거나 심지어 내려가기 시작한 것이다. 집값의 70~80%까지 대출을 받아도 수익이 나던 시절과 달리, 이제 집값이 대출금보다 밑으로 떨어지는 일이 벌어지게 된다. 대출상환 능력이 가장 떨어지는 서브프라임 등급에서 문제가 터지기 시작했다. 집을 팔아도 대출금을 갚을 수 없는 서민들이 곳곳에서 생겨났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서브프라임모기지론 채권으로 만들어진 다양한 파생상품 시장에도 비상벨이 울렸다. 다른 금융상품이 아무리 수익률이 높더라도 파생상품에 끼워 판 담보대출 채권 부실이 심각해지자, 파생금융상품 전반의 수익률이 떨어졌다.

서민들이 파산하고 부실대출이 늘어나자, 금융기관들이 하나둘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서브프라임모기지론 업체 몇 개 파산할 때는 그러려니 했는데, 베어스턴스와 리먼브라더스 등 굴지의 투자은행까지 무너져 내렸다. 이게 바로 2008년 미국 금융위기를 몰고 온 서브프라임모기지론 사태의 전개과정이다.

ⓒAP=연합뉴스

부동산과 금융의 합작

이명박 정부가 내놓은 '5.10 부동산 대책'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마지막 남은 투기지역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의 빗장을 풀어버린 것을 두고 'MB의 변치 않는 강남 사랑'을 지적하기도 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누누이 지적해 왔지만, 'MB 중심 프레임'에 갇혀서는 문제의 본질에 접근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문제를 정반대의 각도에서 접근하는 보수적인 경제전문가들의 목소리를 들여다보자. 그들은 한목소리로 이렇게 얘기한다. "강남을 투기지역에서 해제한다고 해서 곧바로 주택거래가 활성화되지는 않는다. 부동산시장을 제대로 살리기 위해서는 DTI 규제를 완화하거나 폐지하는 것이 핵심이다."

DTI(Debt to Income)란 무엇인가? 총소득에서 대출상환금액이 차지하는 비율을 뜻한다. 예를 들어 내 소득이 연간 4000만 원인데 대출 원리금을 갚아나가는데 1년에 2000만 원이 소요된다면 DTI는 50%가 된다. DTI 규제는 일정 비율 이상으로 DTI가 초과되지 않도록 대출 규모를 제한하는 제도이다. 예를 들어 DTI 규제를 40%로 적용한다고 하면, 나는 대출 원리금을 갚아나가는데 연간 1600만 원(연소득 4000만 원의 40%) 이상이 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만 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이상하지 않은가? 내용으로만 보면 DTI 규제는 부동산 정책이 아니라 금융 정책에 가깝다. 그런데 정부의 부동산 대책 핵심이 DTI 규제 완화가 되어야 한다니? 바로 여기에 부동산과 금융이 긴밀히 결합되는 첨단 자본주의 비밀이 놓여 있다. 사실 '주택담보대출'이라는 말 속에 이미 부동산과 금융이 한 덩어리로 묶여 있지 않은가!

가계 부채 1000조 원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는 지금, 주택담보대출만 390조 원이 넘어 전체 가계 부채의 40%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다. 가계 부채 중 대출만 따로 떼어놓으면 약 640조 원 규모이니, 이 중에서 주택담보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이미 절반을 넘는 수준이다. 가계 대출에 대한 정책은 이제 부동산 정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어버린 것이다.

빗장 풀기는 시작에 불과

정부는 5.10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면서 DTI 규제 완화 논의는 없을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하지만 기억을 되살려보면, 강남 3구를 투기지역에서 해제하는 문제 역시 작년까지만 해도 이 정부에서 논의가 금기시되던 사안이었다. 기존 입장을 전격적으로 뒤집으며 부동산 대책을 발표한 것은, 정부가 적신호를 느꼈기 때문이다. 투기지역 해제와 함께 강남지역에 그동안 적용되던 DTI 비율을 40%에서 50%로 완화해 주었다.

그런데 'MB의 강남 사랑'을 비난하는 이들과 정반대의 이유에서 보수적인 경제 전문가들은 이번 대책이 너무 미흡하다고 비난하고 있다. DTI 규제라는 빗장까지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이야 정부가 DTI 규제 완화에 반대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지만, 언제 어떻게 입장이 바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정부가 규제 완화를 반대하는 표면적인 이유는 "가계 부채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빗장을 풀어야 한다는 쪽에서는 "금융기관이 충분히 개인의 신용등급을 조사하여 부실 대출 가능성을 줄이고 있으니 DTI 규제를 완화·폐지해도 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 바로 여기에서 서브프라임 사태 전개에서 봤던 '개인신용등급'이라는 익숙한 단어가 튀어나왔다. 사실 DTI 규제라는 것은 연소득이라는 기준으로 개인의 신용등급을 매기는 제도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이 규제를 폐지한다? 그것은 간단히 말해 대출 규모와 승인 모두 금융기관의 자율에, 즉 그냥 시장에 맡기는 것이 최선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강남 투기지역 빗장 풀기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경제 상황이 점점 악화되는 것이 피부에 느껴지기 시작하면, 언제든 정부는 입장을 바꾸게 될 것이다. 새누리당 대표 경선에 출마한 9명의 후보들 중 이혜훈 의원을 제외한 8명 모두 DTI 규제 완화에 찬성 의견을 제시했던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 15일 제1차 전당대회에서 개표 후 손 흔드는 새누리당 황우여 새 대표와 전당대회 후보들. ⓒ연합뉴스

점점 안개 속에 빠져든다 : 불투명한 미래

<인사이드 경제>는 파국만을 예고하는 '닥터 둠(Dr. Doom)'을 자처할 의사가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어떠한 조치가 취해진다 하더라도 우리의 미래는 점점 예측 불가능한 안개 속으로 빠져든다는 사실이다.

강남 투기지역 해제와 DTI 규제 완화가 부동산 거래량을 늘리게 될까? 예측할 수 없다. 집값이 올라갈 것이라고 예측하는 수요자들이 많아지면 거래량은 늘어날 수도 있다. 하지만 집값 상승 기대감이 없을 경우, 부동산 거래는 안 되면서 DTI 규제완화로 가계 대출만 늘어날 수도 있다. (강남지역 DTI 규제가 40%에서 50%로 완화되면서, 가구별로 집을 담보로 하여 수천만 원 규모 추가 대출의 길이 열린 상태이다.)

DTI 규제를 완화·폐지하면 가계 부채 문제가 더 심각해질 것인가? 알 수 없다.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규제가 완화된다 하더라도 은행들이 부실을 우려해 서민에게 대출을 늘리지 않을 수도 있다. 반대로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며 신용등급이 낮은 이들에게 과감하게 대출을 늘릴 수도 있다. 오직 확실(?)한 사실은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것뿐이다.

일각에서는 최근 주택담보대출 증가율이 높지 않다는 점을 들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미국 금융위기와 함께 집값이 떨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벌어진 현상일 뿐이다. 여전히 가계 부채에서 주택담보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압도적이다.

ⓒ뉴시스
게다가 집값이 올라가던 시절에 급증한 주택담보대출의 상환 만기가 점차 도래하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현재 390조 원에 달하는 주택담보대출 중 올해에 만기가 도래할 것으로 추정되는 액수만 무려 50조 원에 달한다. 집값이 오를 것을 잔뜩 기대하고 대출을 받았던 서민들이, 집값 하락으로 상환능력이 떨어지고 있는 상태여서 더욱 문제가 될 것이다.

게다가 한국은행에 따르면 전체 가계대출 중 50세 이상 고연령층의 가계부채 비중은 2003년 33.2%에서 2011년 46.4%로 무려 13.2% 포인트나 상승했다. 은퇴를 앞둔 이들이 노후설계를 위해 거액의 대출을 안고 집을 장만하는 사례가 많았다는 것이다. 특히 집값이 빠르게 상승하던 2005~2007년 노무현 정부 시절에 고연령층 주택담보대출이 급증했다. 이미 상당수가 은퇴했을 것으로 예상되는 이들의 상환능력에는 문제가 없을까?

올해 초 은행들이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경영계획서에 따르면, 올해 25조 원의 가계 대출을 늘릴 예정이며 특히 주택담보대출보다 신용대출에 주력할 것으로 알려졌다. 주택담보대출의 위험성이 늘고 있음을 은행들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무슨 방법으로 신용대출을 늘린단 말인가? 주택 외에 특별한 담보가 없는 낮은 신용등급의 서민들에게 말이다.

결국 신용대출을 늘리기 위해서는 은행이 대출 규제를 완화할 수밖에 없는데, 이 경우에도 부실 대출 위험성이 늘기 때문에 대출 이자율이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이미 지난해 은행권 가계대출은 5.7% 증가에 머문 반면 비은행권 대출은 11.6%의 높은 증가세를 보였다. 서민들이 높은 이자율을 물더라도 대출 문턱이 낮은 비은행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말이다. 은행이 대출 규제를 완화한다? 이건 DTI 규제 완화론자들이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부정했던 얘기 아닌가?

진퇴양난(進退兩難) : 그러나 길이 본래부터 두 갈래는 아니다

정부 입장에서는 규제를 풀자니 무분별한 대출 증가로 한국판 서브프라임이 우려되고, 규제를 묶자니 시중에 돈이 돌지 않게 되어 경기침체(디플레이션)가 우려된다. 하지만 어느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이명박 정부는 둘 중 어느 한 가지를 반드시 선택할 수밖에 없다. 자본의 입장에 충실한 정권의 성격상, 현재로서는 규제 완화의 길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렇다면 규제를 묶는 길이 좀 더 서민적인 방식일까? 수차례 강조하지만 'MB 중심 프레임'에 빠져서는 제대로 된 시야를 확보할 수 없다. 규제를 묶는 경우 실제로 투자·대출·소비가 위축되어 경기침체에 빠질 가능성도 높기 때문이다. 민주통합당이나 야권연대가 정권을 잡는다 한들, 경기침체 위험 앞에 규제완화의 유혹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을까?

군말을 덧붙이자면 김대중·노무현 정권도 규제완화에서는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이들이다. 어떤 이는 DTI 규제를 노무현 정부가 만들었는데 이명박 정부가 이 규제를 풀려 한다는 식의 'MB 중심 프레임'을 설파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이미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저축은행을 활성화하고 PF 대출의 각종 규제를 풀어헤치면서 중요한 빗장들을 다 풀어버렸다.

그 결과 부동산시장이 너무 과열되어 집값상승률이 물가인상률의 몇 배에 달하게 되자, "이러다간 큰일 나겠다"는 판단으로 아주 소폭의 규제에 해당하는 DTI 규제를 고안해낸 것이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부동산 거품을 키우기 위해 필요한 주요 규제완화 정책을 확실히 밀어붙였던 세력이다.

하지만 애초부터 길이 두 갈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니다. 시중에 돌아야 할 돈이 어디에 몰려 있는지를 찾아보면 된다.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1000대 기업 등기임원의 지난해 평균 연봉은 3억7670만 원으로 전년보다 무려 23.8% 올랐다고 한다. 지난 4년간 법정최저임금은 고작 평균 5%가 올랐는데 말이다.

등기임원 평균 연봉이 가장 높은 곳은 삼성전자로 1인당 무려 109억 원에 달했다. 로또 당첨금보다 많은 돈을 한해에 벌어들이고 있다. 직업병인 암으로 숨져가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희생 속에 높은 어르신들은 돈방석에 앉아 있다. 왜 노동자들 임금은 23.8%씩 올려주지 않는 것인가?

ⓒ연합뉴스

돈이 없다고? 한국의 10대 그룹 사내유보율이 이미 1200%를 넘어섰다. 쉽게 말해 자기 자본의 12배에 달하는 돈을 곳간에 쌓아두고 있다는 것이다. 노동자들 등골이 휘어지도록 일 시켜서 정부 한해 예산보다 많은 수백 조 원이 모여 있는 것이다. 이 돈만 노동자와 서민들의 수중에 풀려도 가계 부채나 경기침체 걱정은 덜게 될 것이다.

"어허! 자네 지금 무슨 소릴 하나? 기업하는 사람들 돈을 몰수해서 노동자·서민에게 분배하자구? 그런 위험한 사상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용납되질 않아!" 벌써 이런 말이 귓전을 때리는 듯하다. 그렇다. 이놈의 시스템은 두 갈래 길 외에 다른 길을 상상하는 것 자체를 용인하지 않는다.

그게 바로 통진당 사태를 뒷배경으로 깔아놓고 눈을 가린 후, 국가보안법이란 사슬로 이런 사상을 퍼뜨리는 이들을 잡아가두는 공안몰이가 시작된 이유 아닐까? 어허! 다른 사람 걱정할 때가 아니라 당장 <인사이드 경제>도 몸을 사려야 될 때가 온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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