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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축은행 '선제 땜빵'…경제위기 시한폭탄 초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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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축은행 '선제 땜빵'…경제위기 시한폭탄 초읽기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저축은행과 노동의 정치

솔로몬·미래·한주·한국 4개 저축은행 영업정지-한국 경제의 수많은 시한폭탄 중 하나가 먼저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물론 폭탄은 아직 터지지 않았다. 째깍째깍 소리가 조금 커지기 시작했을 뿐이다.

이명박 정권 들어서 3번째로 저축은행 영업정지 처분이 이뤄졌는데, 그때마다 어김없이 대주주들의 비자금·해외도피·부정축재 등의 문제들이 터져나왔다. 마찬가지로 그들이 갖고 있던 광범위한 정·관계 인맥들이 드러나며 비리의 연쇄사슬이 폭로되기도 했다. 한마디로 구린내가 가득 풍기는 영역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저축은행 사태에서 드러나는 비리의 커넥션은 결과물일 뿐이다. 이 결과를 낳게 만든 사태의 본질과 핵심은 다른 곳에 있다. 우리는 두 눈 부릅뜨고 저축은행 사태의 핵심을 파헤쳐야 한다. 왜냐하면 한국 경제의 시한폭탄들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어느 하나가 터지면 연쇄적으로 터지며 거대한 폭발을 일으킬 것이기 때문이다.

신용금고가 저축은행이 되기까지

'서민금융'이라는 이름으로 마을마다 일수를 걷던 상호신용금고는 IMF 공황을 겪은 후인 2002년 김대중 정부로부터 이름을 '상호저축은행'으로 바꿀 기회를 각계의 반대를 물리치고 부여받았다. 자그마한 신용금고들도 경제공황을 겪으며 크고 작은 구조조정을 거쳐 몸집을 불려오던 차에, '은행'이라는 이름으로 전국적인 금융기관의 반열에 오르게 된 것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한국 경제가 순항하는 것처럼 보였던 이유에는, 정부가 앞장서서 부동산 거품을 늘렸기 때문이다. "집값은 내려가지 않는다"는 믿음 속에 중산층이 너도 나도 부동산 투기에 나섰고, 실제로 부동산 시장이 과열되며 졸부들이 늘어나고 소비도 성장했다. 그 과정에 노무현 정부는 상호저축은행이 이른바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을 내주는 것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해 주었다.

이명박 정부는 더 나아가 이름에 거추장스럽게 붙어있던 '상호'자를 뗄 수 있도록 허용해 주었다. 여기저기에서 ○○저축은행이라는 이름의 금융기관들이 수십 개씩 탄생했다. 그러다가 2008년 9월, 미국판 부동산 거품 붕괴 사건인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와 금융위기가 터져나오자, 한국에서도 부동산 거품 위기가 증폭되기 시작한다. 집값이 내려가기 시작하고 미분양 아파트들도 늘어났으며, 결국 수많은 PF 대출이 부실 대출과 악성 채권으로 변했다. 이 과정에 PF 대출로 성행했던 저축은행들이 무더기로 부실해지고 만 것이다.

▲ 저축은행 비리 합동수사단이 영업정지 조치를 받은 솔로몬저축은행을 압수수색한 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솔로몬저축은행 대치본점. 압수품들이 트럭을 가득 채웠다. ⓒ뉴시스
사실 경제정책만으로 보자면 김대중·노무현 정권이나 이명박 정권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물론 특정 시점에 캐나다산 쇠고기를 수입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점에서는 차이를 보였을지 몰라도, 종국에는 시장을 개방하고 세계 각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해가야 한다는 방향에서는 한 치의 차이도 발견할 수 없다.

3차례의 저축은행 영업정지 사태가 벌어질 때마다 여·야가 서로 책임 공방을 벌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수많은 저축은행들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고 성행하게 된 배경은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만들었다. 이명박 정권은 그러한 정책을 이어받아 규제완화에 박차를 가한 것일 뿐이다.

저축은행 대주주들은 모든 정권을 상대로 로비를 벌였다. 당연히 영업정지에 따른 대주주에 대한 수사가 개시되면, 현 정권의 관료만이 아니라 이전 정권 관료들도 낚이고 여·야 정치인들 다수가 연루되는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 문제에 관한 한,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권 모두가 공범이라는 것이다.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일반 대출과 달리 PF 대출은 금융기관이 '프로젝트'의 수익성을 보고 돈을 빌려준다. 그런 프로젝트의 대부분은 부동산 (재)개발, 재건축 또는 대형 선박 건조 사업 등 건설업·조선업에서 발생한다.

물론 무담보 대출은 아니다. 하지만 노무현·이명박 정권의 규제완화 덕(?)에 저축은행들은 제공된 담보의 80~90%에 해당하는 자금을 빌려준다. 게다가 그 담보라고 하는 것도 현존하는 부동산이 아니라 앞으로 재건축이나 재개발될 부동산으로 잡는 경우가 많아, 프로젝트 자체가 무산되거나 이익실현이 어려워질 때에는 거대한 부실대출이 된다. 제1금융권이라 할 시중은행들이 보통 현존하는 담보의 40% 수준에서 대출금을 결정하는 것과 대비된다.

조선업을 예로 들어 설명해보자. 시장이 괜찮을 때에는 1000억 원에 선박 수주를 맡긴 해운사는 배를 인수받아 2000억 원에 팔아넘길 수 있었다. 금융권은 이 사업의 수익성을 보면서 수주액 1000억 원 중 900억 원을 빌려준다. 해운사는 자기자본 100억 원만 갖고도 은행에서 900억 원을 빌려다 배를 지은 후 2000억 원에 팔면 앉아서 1000억 원을 벌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금융권 역시 900억 원 대출에 대한 엄청난 이자를 챙길 수 있기 때문에 마구마구 돈을 빌려주었다. 심지어 일부 조선소들은 배를 만들 도크조차 없는 상태에서 이 돈을 끌어다가 도크와 배를 동시에 짓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금융권은 선박 수주와 건조를 부추겨가며 돈을 빌려주기에 이른다.

조선업에서 금융권과 해운사가 맺는 관계가 건설업에서는 저축은행과 부동산 개발업자 사이에서 나타나게 된다. "집값은 내려가지 않는다"는 믿음이 실제로 현실일 때, 다시말해 부동산 거품이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을 때, PF 대출은 돈을 빌리는 사람이나 빌려주는 사람이나 모두에게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던 것이다.

그래서 PF 대출은 수익도 높은 반면 이자율도 매우 높다. 거품이 자라날 때에는 고이율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고수익이 보장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품이 꺼지기 시작하자 고이율·고수익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고위험'이 눈앞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거품과 시장이 쪼그라든 후

앞에서 살핀 것처럼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고 거품이 터지려 하자, 노무현·이명박 정부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동산 거품을 유지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다행히 미국과 같은 붕괴는 막을 수 있었지만 부실대출 전체를 막아낼 수는 없었다. 결국 가장 많은 PF 부실대출을 안고 있었던 저축은행들이 순차적으로 망해가는 수순을 밟고 있다.

그럼 왜 저축은행들이 먼저일까? 앞서 언급한 대로, 제1금융권인 시중은행들은 엄격한 담보 관리를 통해 대출을 통제해왔다. 물론 10년 전에는 볼 수 없었던 풍경들, 이를테면 시중은행들이 주식투자를 대행하고 보험도 파는 등 많은 규제가 완화되었음에는 틀림없지만, 그래도 대출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관치금융 시절 못지않게 관리와 통제를 엄격하게 적용해왔다.

그런데 이렇게 대출을 통제해 버리면 자본주의 체제를 운영하는 이들 입장에서는 시중에 돈이 돌지 않아 경기하락의 위험을 느끼게 된다. 중소기업이나 평범한 가정들에게 대출이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바로 이 자리를 대체한 것이 수많은 사채업체·대부업체를 비롯한 사금융, 그리고 사실상 사금융이지만 '은행'이라는 명칭을 얻게 된 저축은행들이었다.

정권을 바꿔가며 규제라는 고삐를 계속 풀어준 결과, 시장 사정이 괜찮았던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기에 저축은행들은 무럭무럭 성장했다. 저축은행 대주주들이 보이고 있는 '도덕적 해이'들의 근거에는, 바로 이러한 미친 듯한 '규제 완화'가 놓여 있다. 무슨 담보로 어떤 근거로 수천억 원을 대출해 줬는지 누구도 묻지 않는다. 지급증만 써 주면 자기 금고처럼 수십억 원씩 빼다 써도 문제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세계경제위기와 함께 등장한 이명박 정권 시기에 고삐 풀린 대출은 시한폭탄이 되기 시작한다. 이대로 두면 언제 뇌관이 터질지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명박 정권은 이들 저축은행이 부실을 키워 부도사태를 맞기 이전에 '선제적으로' 영업정지 처분을 내리기 시작했다.

이명박 정권 경제위기 관리의 비결 : 위기의 전가와 노동정치의 몰락

바로 이 '선제적으로'라는 말이 중요하다. 놀랍게도 이명박 정권은 거품이 터지기 일보직전에 위기관리 방책을 먼저 내놓고 있다. 부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 시장 원리에 맞게 부도가 날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먼저 영업정지 처분 등의 방책을 선제적으로 구사하며 거품까지 관리한다. 거품이 어느 수준까지 올라왔는가를 감지하는 '감각' 하나만큼은 이명박 정권이 타고났다고 볼 수 있다.

이명박 정권을 칭찬해 주려고 쓰는 말이 아니다. 작금의 세계 경제위기는 집권세력의 '감각' 하나만으로 헤쳐나갈 수 있는 성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폭탄이 터져나오지 않았을 뿐 위기는 지속되고 있기 때문에, 누군가는 폭탄이 터져나오지 않도록 대가를 치러야 한다. 이를테면 저축은행 부실에 따른 영업정지 처분이 내려졌는데, 이 처분에 따른 피해를 누군가 떠안아야 한다.

그런데 피해를 누가 떠안고 있는가? 5000만 원 한도 내의 예금은 예금보험공사가 보장하고, 그 이상의 예금은 고스란히 예금자의 피해로 돌아간다. 예금보험공사가 부담하는 자금 역시 실제로는 국민 세금으로 충당되는 돈이다. 지난해 두 차례 있었던 저축은행 영업정지와 구조조정에 예금보험공사가 쏟아부은 돈만 15조 원이 넘는다. 수백억, 수천억 원을 유용한 책임자들은 감옥살이 조금 하면 그만일 뿐이다.

▲ 미래저축은행이 금융당국으로부터 영업정지 처분을 받은 가운데 7일 오전 제주시 이도2동 제주본점에서 열린 예금보험공사의 설명회에서 예금자들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이명박 정권이 기가 막히게 위기를 관리하고 있는 비결은, 이 정권이 "성공적으로" 위기의 대가를 밑바닥 노동자·서민에게 전가한 데 있다. "성공적으로"라는 말이 뜻하는 것은, 그만큼 밑바닥 노동자·서민들이 진짜 범죄자들 대신 대가를 지불하면서도 잘 참아주고 있다는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참지 않으면 안 되도록 잘 통제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 정도의 대가를 치르도록 강요한다면 아무리 힘없는 민중이라 하더라도 집단적인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 정상이다. 광우병 위협만으로도 수십만 수백만의 촛불을 밝히던 민중들 아니던가? 그러나 촛불을 성공적으로 제압한 이명박 정권에게 더 이상의 위협은 존재하지 않았다.

"정리해고 없는 세상"을 꿈꾸며 희망버스 운동이 한때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기도 했지만, 결론적으로 이러한 대안을 제대로 밀어붙여야 할 노동정치가 몰락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앞에서 본 것처럼 저축은행 사태로 눈앞에 드러난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권의 잘못된 경제정책에 민중들이 신음하고 있다. 그런데 민주노동당으로 대표되었던 노동의 정치는 이전 정권의 일부(국민참여당)와 합당까지 하더니 심지어 이전 정권 핵심세력과 '묻지마 야권연대'로 나아가기까지 했다.

밑바닥 노동자·서민들은 지방선거와 무상급식 주민투표, 서울시장 보궐선거 등 잠시 동안 투표를 통해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지만, 이내 집권세력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 야권연대에 더 이상의 지지를 보내지 않게 되었다. 이명박 정권이 위기의 대가를 대신 지불하라고 하는데, 노동정치의 몰락 속에 '그저 참고 있는 것' 이외의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거품은 어디로?

아슬아슬하게 위기를 관리하고 있다지만 결국은 임시변통, 즉 '땜빵식 처방'일 뿐이다. 작년부터 금융당국은 3차례에 걸쳐 10여개 저축은행 영업정지 처분을 내렸지만 아직 끝이 아니다. 저축은행의 부실대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시 고삐를 죄어버린다면, 즉 없어졌던 규제를 다시 살린다면, 마찬가지로 시중에 돈이 돌지 않게 되어 경기하락의 위험 앞에 직면한다.

이명박 정권 앞에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다. 저축은행에 대한 민중들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서는 잠시나마 규제를 되살릴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다른 방식으로 경기부양책을 써야만 한다. 시중에 돈을 풀기 위해 어떤 수단이 남았을까?

위험천만한 수단일지 모르지만 아직까지 고삐를 죄고 있는 시중은행의 대출 규제를 완화하는 길이다. 또 다른 길은 (똑같은 방법이 될 수도 있겠지만) 시중은행과 저축은행 사이에 새로운 금융기관을 도입하는 길도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 성행했던 이른바 '투자은행(IB)'이 그것이다. 시중은행에 비해서는 대출 규제를 완화하되, 저축은행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재정건전성을 갖춘 제1.5금융권을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길들은 그나마 저축은행에 비해 견실함을 유지하고 있는 시중은행 일부의 부실을 불러올 수도 있다. 그리고 이들 모두 거품이 터지는 것을 관리하는 것일 뿐, 종국적으로 거품의 크기를 키워서 나중에 터질 경우 걷잡을 수 없는 위기를 낳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바로 이러한 과정이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의 전개추이와 본질적으로 같은 길 아니던가.

그러나 다른 퇴로가 없기에, 자본주의를 그만둘 생각이 아니라면 정부는 이런 길들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위기의 대가를 호락호락 치르지 않겠다는 집단적 의지, 밑바닥 노동자·서민들이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집단적인 행동이 나오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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