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 삼성전자 사내게시판에 노동조합을 만들자는 글을 올린 뒤 23일 만에 해고된 박종태 씨를 지난 18일 서울 고등법원에서 만났다. 그가 삼성전자를 상대로 낸 해고 무효 소송의 최종 변론을 마친 뒤였다. 변호사 수는 1 대 3. 그는 "재판을 할 때마다 우리가 초라해진다"고 탄식했다.
소송을 하는 동안에도 수원 삼성전자 중앙문에 설치한 텐트는 몇 번이고 철거됐다. 형사들은 그에게 "삼성하고 싸워서 이긴 전례가 없다"며 "계란에 바위치기니까 포기하라"고 말하곤 했다. 또 다른 형사는 "내가 아는 삼성 관리자가 있다. 돈 많이 받아줄 테니까 1인 시위는 그만하라"고 설득했다.
그가 늘 힘들기만 한 것은 아니다. 최근에는 독일의 시사주간지 <슈피겔>에 자신의 해고 기사가 실린 것이 박 씨에게 자신감을 줬다. <슈피겔> 기자는 박 씨가 삼성전자에 재직할 당시 '왕따 근무'하는 사진을 보고 "믿을 수 없다"면서도 "국제적으로도 삼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고 격려했다고 한다.
박 씨는 "나는 부당해고를 당했고 이 싸움이 옳기에 포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다만 아이들이 "남들은 다 학원 다니는데, 나는 돈이 없어서 학원에 못 간다"고 했을 때, 아내가 생계를 위해 수세미를 만들 때 안쓰럽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이건희 회장이 유산 다툼에서만 죄송하다고 하지 말고 백혈병 문제와 해고자 문제에서도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편집자>
▲ 삼성전자 해고자 박종태 씨. ⓒ프레시안(김윤나영) |
"아빠가 복직해서 다시는 투쟁 같은 건 안 했으면"
프레시안 : 해고된 지 1년 6개월이 지났다. 요즘 어떻게 지내나?
박종태 : 일주일에 세 번 수원 삼성전자 중앙문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주말에는 수원 인근 광교산에서 부당해고 철회 서명을 받는다. 처음에는 광교산에서 1인 시위만 했는데, 지나가던 등산객이 기왕 하는 김에 서명도 받으라고 제안했다. 2주 전부터 서명을 받기 시작해서 벌써 540명이 서명에 응했다. 주말에 100~150명씩은 꾸준히 서명한다. 수원 시민들이 힘내라고 응원해줬다.
프레시안 : 생계는 어떻게 유지하고 있나.
박종태 : 아내는 세 달 전부터 전자제품 케이블 커넥터를 뽑는 일을 하고 있다. 한 개당 10~50원을 받고 하루에 200~300개를 만든다. 오전 6시부터 밤 11시까지 일해서 한 달에 50만 원 정도 번다. 가끔씩 주변에서 수세미를 만들어달라고 하면 하나에 2000원에 판다. 얼마 전에도 삼성전자에 다니는 동료가 아내가 만든 수세미가 좋다고 50개만 달라고 해서 가져다줬다. 아내는 디스크를 앓고 있어서 취직하기 어렵다. 최근에는 역류성 위염 판정까지 받아서 계속 죽만 먹고 있다. 나는 생계를 유지하려고 보험회사에 다니고 있다. 한 달에 140~160만 원 정도 번다.
프레시안 : 자녀들은 아버지의 복직 투쟁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하나.
박종태 : 아이들이 고등학교 2학년, 중학교 1학년이다. 처음 투쟁을 시작했을 때가 3년 전이니까 그때는 중학교 3학년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격세지감이다. 아이들은 아빠가 엄마 힘들게 안 하는 게 도와주는 일이라고 한다. 아빠가 보험일 하지 말고 복직해서 다시는 투쟁 같은 건 안 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요즘 작은 애가 중학교 가고 나서 학교 수업을 따라가기 힘들어한다. "남들은 학원 다닌다. 나도 학원 가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못 간다"고 하더라. 그 말을 듣고 마음이 아팠다.
"유산하는 여사원들을 대변해서 찍혔다"
프레시안 : 1심에서 졌다. 2심 최종 변론을 마친 심경을 듣고 싶다.
박종태 : 사실 이긴다고 기대하지 않는다. 물론 소신 있는 법조인이라면 승리할 수도 있겠지만, 재판이 회사 쪽으로 기운 것 같다. 지더라도 대법원이나 헌법소원까지 갈 것이다. 그동안 응원해준 시민들을 봐서라도 그렇고, 무엇보다 더 이상 나 같은 사례가 없어야 하지 않겠나.
프레시안 : 해고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얘기해보자. 2007년 삼성전자의 노사협의체인 '한가족협의회'에서 활동했고, 2010년 7월 회사에서 '왕따 근무'를 당했다고 주장해왔다. 같은 해 11월 3일 사내게시판에 노동조합을 만들자는 글을 올렸다가 바로 삭제됐고, 그로부터 23일 뒤 징계 해고됐다. 그러나 회사 측의 주된 해고 사유는 해외출장과 인사이동 거부에 따른 '업무지시 불이행'이다.
박종태 : 내가 해고된 이유는 '한가족협의회' 협의위원으로 활동할 당시 내가 사원들, 특히 여사원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했기 때문이다. 당시 여사원이 과로로 유산하는 경우가 있었고, 출산휴가를 다녀온 여사원에게 관리자들이 조용히 사직을 권고하는 경우가 많았다. 배가 불러온 임신부가 하루 종일 서서 나사를 조이는 일을 하기도 했다.
협의회 활동을 하면서 나는 "임신부는 유산하는 일이 없도록 서브로 빼달라, 정리해고는 없도록 해달라"고 말해왔다. 어느 직원이 나를 찾아와 "아직 아이들이 어린데 수원에서 탕정으로 인사 이동될 위기에 처했다"고 호소하자, 인사담당자를 만나서 그러지 말아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사원들은 고마워했지만 회사에서는 나 같은 협의위원은 처음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결국 한마디로 찍혀서 해고됐다.
해고되기 전에 한가족협의회는 내가 "회사의 일정과 경영정책에 적극 협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나에게 정직 2개월과 면직을 처분했다. 그 '회사의 일정'이란 향응 성격의 해외여행이었다. 나는 당시에 "사원들의 문제가 산적했는데 비행기값만 100만 원인 향응에 응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다른 협의위원들은 사원들이 선출해준 나를 면직시켰고, 내가 면직 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하자 피고 쪽 법무법인은 소송이 끝난 지 1년 후인 지난해 11월 초에 소송비용 660만 원을 청구했다. 결국 '뒤끝' 소송비용 청구는 기각됐다.
해고 사유였던 '업무지시 불이행'에 대해 얘기하자면, 2010년 7월 부서장이 나에게 갑자기 러시아 출장을 명령했고, 같은 달 나는 '왕따 근무'를 당했다. 초반에는 내 이름이 빠진 출장안이 결재됐다. 뒤늦게 부서장이 그 어떤 상의도 없이 내가 출장에 가도록 조치했다. 다시 공식 결재를 받은 것도 아니고, 출장자 명단에 내 이름을 추가해 내게 이메일로 보냈을 뿐이다. 당시 나는 건강이 나빴었다. 도저히 못 가겠다고 했더니 회사는 이를 두고 업무지시 불이행이라고 했다.
▲ 컴퓨터 없는 빈 책상에서 '왕따 근무'를 당한 근거로 박종태 씨가 제기한 사진. |
"업무지시 불이행, 모든 사원에게 똑같이 적용하나?"
프레시안 : 건강상의 이유라고 할지라도 '업무지시 불이행'은 해고 사유가 될 수 있지 않나?
박종태 : 무턱대고 출장에 못 간다고 한 것은 아니다. 러시아 출장에 갈 수 없는 건강 상태임을 증명하기 위해 회사에 병원 진단서를 6개나 제출했다. 그러자 회사는 임상 진단이 아닌 확정 진단을 받아오라고 했다. 확정 진단을 받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뒤늦게 확정 진단을 받았으나, 그때는 이미 회사가 '업무지시 불이행'이라고 통보한 뒤였다.
정말 업무지시 불이행이 문제라면 회사는 모든 사원에게 똑같은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2008년 해외 출장을 가라고 명령했는데 구두로 허리가 아프다고 말해서 안 간 사람이 있었다. 그 사원은 '업무지시 불이행'으로 그 어떤 징계도 받지 않고 지금까지도 일하고 있다. 당시 회사는 그 사원에게 확정 진단은커녕 임상 진단서조차 요구하지 않았다. 2006~2007년경에도 소위 말하는 '업무지시를 거부'한 사람이 있었다. 그 친구는 나와 같은 2차 병원에 가서 우울증 진단을 받았는데 회사에서 부서를 이동시켜줬다. 반면에 나는 해고됐다.
다른 목 디스크 환자도 출장 업무에서 제외된 것을 봤다. 나도 목 디스크를 앓고 있으니 출장 가지 않는 부서로 보내달라고 요구하자, 관리자가 "박스포장 일이 합당하다"며 2010년 10월에 나를 제조과로 보냈다. 나는 이전까지 다른 업무를 해오다가 갑자기 하루에 1.5m짜리 박스를 1000개씩 포장하는 일을 맡았다. 당연히 디스크는 더 심해졌다. 하루 종일 일하고 집에 와서 아파서 울었다. 10월 중순경 "박스 포장은 도저히 못 하겠다"고 호소하자, 관리자는 한 술 더 떠 무게가 10kg 정도 되는 46인치 패널을 드는 곳으로 나를 보내려고 했다. 디스크 때문에 패널을 못 든다고 호소한 것이 또 다른 업무지시 불이행이 됐다.
"돈 많이 받아줄 테니 1인시위 그만하라는 형사"
프레시안 : 해고 이후에 회사 쪽에서 따로 접촉을 시도한 적이 있나?
박종태 : 회사 관리자들이 간접적으로 동료들을 통해서 만나자고 한 적은 있다. 최근에도 어느 관리자가 나를 만나려고 했는데 다른 관리자가 "똘아이 같은 놈 왜 만나려 하느냐"고 말렸다더라.
정보과 형사들은 "해고된 지 1년이 넘었고 계란에 바위치기니까 포기하라. 삼성하고 싸워서 이긴 전례가 없다"며 나보고 1인 시위를 그만 두라고 말했다. 어떤 형사는 "내가 아는 삼성 관리자가 있다. 돈 많이 받아줄 테니까 1인 시위는 그만하라"고 했다. 나는 그 형사에게 "상무는 결정 권한이 없으니, 기왕 관리자를 소개해줄 거면 상무급 말고 전무급을 소개해달라. 그리고 협의 내용은 원직 복직 원안이어야 한다"고 받아쳤다.
회사가 법원에 한 대응을 덧붙이자면, 회사는 내가 해고된 이후에 수원 삼성전자 중앙문 앞에서 1인 시위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 수십 페이지를 복사해서 법원에 제출했다. 왜 회사가 해고 사유와 직접적으로 관계없는 페이퍼를 제출하는지 모르겠다. 해고 후에도 내가 회사의 이미지를 실추하고 있다고 호소하려는 것 같다.
"잡초 같은 사원 상대로 대형로펌이라니…"
프레시안 : 해고 무효 소송 2심에서 법무법인 광장의 정상태, 송평근, 송현석 변호사가 삼성전자 측을 대리하고 있다. 특히 송평근, 송현석 변호사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했다가 뇌종양에 걸린 한혜경 씨의 산재 소송에서 삼성전자 측을 대리하고 있기도 하다. 감회가 새로울 것 같다. (☞관련 기사 : 열아홉에 삼성 입사한 그녀의 절규 "삼성은 마약이에요")
박종태 : 처음 법무법인 광장이라고 들었을 때 나는 잡초 같은 사원 한 사람인데 왜 거대한 로펌을 고용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기가 확 죽더라. 사원 한 사람의 소송에 굳이 대형로펌까지 고용해서 대응한다면, 회사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려는 것이다. 1심에서 지고 2심 왔는데 또 광장이었다. 너무 힘들었다.
1심 때 어느 변론에서 회사 측 변호사와 직원을 합쳐서 8명이 왔다. 우리는 항상 변호사랑 나랑 둘뿐인데, 삼성전자 쪽은 기본이 4~5명이다. 오늘도 변호사 2명에 인사과에서 2명이 왔다. 쪽수로도 우리가 진다. 저쪽 사람이 많으니 주눅 든다. 우리는 단 둘인데 얼마나 초라한지 모른다.
프레시안 : 복직 싸움이 길어지면서 가장 힘들었을 때는 언제인가?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는 없었나?
박종태 : 아이들이 다른 집안과 비교할 때, "누구는 400만 원 벌고 500만 원 벌고, 누구는 집이 몇 평이다. 친구네 집에 가니까 엄청 넓더라"라고 말할 때, 집사람이 수세미 만들 때 안쓰럽다. 삼성전자 중앙문 맞은편에서 1인 시위를 하자 공원 경비원이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을 할 때, 경찰이 중앙문 앞에 쳐놓은 텐트를 철거할 때도 있었다. 합법적인 집회용품으로 신고했는데도 텐트를 철거했다. 너무 힘들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그만 싸우고 싶은 적은 없었다. 나 때문에 고생한 가족을 위해서라도 끝까지 갈 것이다.
"<슈피겔> 기자가 내 '왕따 사진' 보고…"
▲ 박종태 씨 관련 기사. ⓒ슈피겔 화면 캡쳐 |
박종태 : <슈피겔> 쪽에서 2~3월경에 먼저 인터뷰를 요청해왔고 2시간 동안 인터뷰했다. 인터뷰할 때는 발행이 될지 안 될지 몰랐는데 나중에 보니 4월 12일자에 발행됐다.
독일 기자는 내가 왕따 근무하는 사진을 보고 "오 마이 갓"이라고 "믿을 수 없다"고 하더라. 인터뷰가 끝나자 그는 나에게 고생 많다고 힘내라고, 국제적으로도 삼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유럽의 공신력 있는 매체가 인터뷰해준 게 고마워서 그 기자에게 수세미를 가져다줬다.
<슈피겔>을 보고 더 자신감을 얻었다. 법원 판결은 판결대로 하되 대법원이든 그 이후든 끝까지 싸울 것이다. 이 상황에서 그만두는 것도 이상하다. 옳은 싸움이다. 지든 이기든 나는 삼성의 부당해고 문제를 짚고 넘어갈 것이다.
"이건희 회장, 국민께만 죄송하지 말고 백혈병 노동자에게도 사과해야"
프레시안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박종태 : 비록 삼성은 대형 회사이고 거대 공룡이지만 나는 끝까지 갈 것이다. 그리고 삼성이 말로만 상생, 상생하지 말고, 반도체 공장에서 일했다가 백혈병 등 희귀병에 걸린 노동자들에게도 사죄해야 한다.
이건희 회장이 엊그제 형제들의 유산 다툼에 대해서 "개인적인 감정을 드러내서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유산 다툼뿐만 아니라 백혈병 문제, 해고자 문제 등에 대해서도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 삼성이 돈으로만 초일류기업이라고 하지 말고 인간 중심적인 초일류기업이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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