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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9호선을 시민기업으로

[창비주간논평] 9호선, 공공서비스 운영 자격 상실했다

서울지하철 9호선을 둘러싸고 갈등이 깊어가고 있다. 서울시는 9호선 측의 일방적 요금 인상 시도를 용납할 수 없다 하고, 9호선 측은 민간투자사업 협약서에 따라 요금 인상을 공지했다고 주장하며, 이를 지켜보는 시민들은 세금 먹는 하마격인 9호선을 서울시가 인수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향후 요금 협의가 결렬되어 인수 협상으로 나아갈 경우 관건은 이번 사태의 귀책사유가 누구에게 있느냐다.

우선 경영 부실에 대한 책임소재가 논점이다. 9호선은 최소운영수입보장제(MRG)가 명시된 민간투자사업이다. 서울시가 예상운임수입의 90%를 보장해준다. 실제 서울시는 9호선의 적자를 메워주기 위해 2009년 142억, 2010년 323억, 2011년 250억 원 등 지금까지 총 715억 원을 지급했다.

▲ 1일 서울 중구 소공동 맥쿼리인프라 사무소 앞에서 열린 '서민 주머니 털기 선수 맥쿼리 특혜의혹 규명 촉구' 기자회견에서 통합진보당 서울시당 등 시민단체 참가자들이 지하철 9호선 2대 주주인 맥쿼리한국인프라의 전국 14개 민자사업에 투자한 특혜의혹에 대해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9호선 사태의 몇가지 논점들

그런데 작년 9호선의 자본결손금이 1889억 원으로 자기자본 1671억 원을 넘었다. 보조금을 받았음에도 왜 9호선은 자본 잠식에 이르게 되었는가? 9호선주식회사 내부에서 원인을 찾을 수밖에 없다. 9호선 주주들은 자신에게서 7~15%의 고금리 대출을 받아 이자를 지급하는, 채무자가 동시에 채권자인 내부거래를 하고 있다. 그 결과 2011년 당기순손실이 467억 원인데 이자 비용으로만 461억 원이 지출되었다. 고금리 자금조달 구조를 개선하는 것이 급선무로 보이는데, 9호선 측은 서울시가 지급보증을 통해 4~5%의 낮은 금리로 대출금을 전환하자고 제안해도 이를 거부했다. 9호선 경영진으로서는 배임행위이다.

또 하나의 논점은 9호선 측의 일방적 요금 인상 공지의 적법성 여부다. 현행 도시철도법은 시도지사가 정한 범위 내에서 요금을 정하라고 명하고 있지만, 이와 별도로 협약서에는 9호선 측의 일방적 요금 인상 권리가 명시되어 있다. 이번 500원 인상 금액도 협약 부록에 정한 범위 안에 있다. 9호선 측이 자신의 행위가 정당하다고 내세우는 근거이다.

하지만 2009년 개통 이후 9호선과 서울시와의 요금 협상 과정에서 상황이 바뀌었다. 당시 9호선과 서울시는 요금 재산정 과정을 담은 내용이 협약서에 우선한다는 공문을 주고받았다. 서울시가 협약서에 있는 민간사업자의 요금 결정권이 효력을 다했으며 이제는 도시철도법에 따라 서울시가 정한 범위에서 요금 협의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근거이다. 결국 개통 즈음 주고받은 공문의 효력을 얼마나 인정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만약 귀책사유가 9호선 측에 있다고 판정되면 9호선주식회사는 도시철도법을 위반할 뿐만 아니라 주무관청의 시정 조치를 따르도록 명시한 민간투자법까지 어기는 꼴이 된다. 서울시의 사장 해임 요청에도 자유롭지 못할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9호선을 이용하는 시민들의 인식이다. 귀책사유가 어떻게 결정되든, 이미 9호선주식회사는 공공서비스를 운영할 자격을 상실했다고 여겨진다. 9호선의 실체가 드러난 이상 시민들이 여기에 보조금이 지급되는 것을 수긍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참여형 시민기업 모델로 나아가기를

앞으로 인수 논의가 불가피해 보인다. 서울시에 따르면, 인수대금은 9호선 측의 책임으로 판정날 경우 약 6000억 원이 필요하다. 어떤 방식으로 인수할까? 나는 서울시가 이번 기회에 9호선을 또 하나의 산하 공기업이 아니라 참여형 시민기업 모델로 만들어보기를 제안한다. 시민기업은 공공서비스의 생산, 운영, 이용에서 시민이 주인이 되는 기업을 말한다. 9호선은 서울시가 펼치고 있는 정책인 무상급식, 반값등록금 등에 이어 공공서비스 혁신모델을 만드는 귀중한 계기가 될 수 있다.

9호선 인수 재정 마련에 시민들도 참여하자. 인수비용이 6000억 원일 경우 절반은 서울시가 일반 지방채로 조달하고, 나머지 절반은 '시민채권' 방식으로 모으면 된다. 현행 4%대 금리가 적용되면 경영상태도 크게 호전될 것이다. 서울시 의회는 '서울지하철 9호선 시민기업 설립 및 운영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 시민들의 노력에 호응해야 한다. 핵심은 시민참여형 '공공이사회'를 구성하는 일이다. 이는 정부뿐만 아니라 공공서비스 이용자, 생산자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구조로서 유럽 공기업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모델이다. 이래야만 공공기관에 대한 사회적 정당성이 구축되고 공공기관 운영과 서비스 관리도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다.

또한 서울시에 '민간투자사업 시민혁신위원회'를 설립해 기존의 모든 민간투자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고 대안을 모색하자. 현재 서울외곽순환도로, 우면산터널 등 다른 민간투자사업 역시 9호선주식회사와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다. 9호선 모델을 따라 기존 민간투자사업의 시민 인수를 검토하자.

민간투자사업의 폐해는 서울시를 넘어 전국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현재 전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민간투자사업의 총투자비 규모가 무려 49조2000억 원이다. 시민펀드로 모두 조달할 수 없다면, 350조 원에 이르는 국민연금기금도 활용할 필요가 있다. 국민연금기금에 국공채 금리만 보장하면 민간사업자에게 공공서비스 운영을 맡기지 않고서도 필요한 재정을 마련할 수 있다. 국민연금기금이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에 의해 동원된다는 의혹을 사전에 없애기 위해 '국민연금기금의 민간투자사업 참여 특별법' 제정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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