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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따른 언론파업, '찌라시' 자괴감보다 무서운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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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따른 언론파업, '찌라시' 자괴감보다 무서운 건…

[전태일 통신] 언론노동의 사회성 회복을 위하여

이 글을 쓰기로 한 시점에서 김재철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MBC의 파업이 드디어 최장기록을 경신했다. 종전의 최고 기록인 1992년의 52일간의 파업을 훌쩍 지나서 아직 그 끝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진행되고 있다. 국가기간통신사인 <연합뉴스> 또한 23년 만에 파업을 시작했고, 이제 질세라 <KBS>와 보도 전문 채널 <YTN>도 동반 파업에 돌입했다. <부산일보>와 <국민일보>와 같은 신문매체도 경영진 퇴진과 공정보도라는 요구조건을 내세우며 경영진과 투쟁 중이다.

이명박 정권의 집권 후 4년이 지나는 동안 수많은 보도사항에 대하여 침묵하고 숨죽이던 언론 노동자들의 소리들이, 일단 저항의 기치를 올리며 광장으로 진출했다는 것은 분명히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언론노동자들의 파업 이전에 보여주었던 침묵의 기간이 길었던 만큼, 그 동안 잘 먹고 잘 살다가 왜 정권이 끝나갈 무렵인 지금에 와서야 소리를 높이고 있느냐는 부정적인 목소리도 존재한다. 중요한 것은 긍정적이거나, 또는 부정적인 양측의 평가에 상관없이 언론파업이 단순한 노사갈등과 근무조건, 근로형태의 개선에 관한 것만은 아니라는 점에 있다.

경영진과 편집진, 그리고 일선 기자들 사이의 갈등은 어느 시대, 어느 공간을 막론하고 존재한다. 언론탄압의 정도가 우리보다 적을 것 같은 프랑스와 같은 선진국에서도 <르몽드>의 파업 결의에서와 같이 개별 언론사 측면에서 발생한 갈등으로 인한 파업은 언제든지 가능하다. 다시 말하자면, 지금 여기 한국에서 발생한 사상 유래를 찾기 힘들 정도의 대규모 언론파업이 시사하는 바는 단순히 보도의 불간섭과 같은 편집권 독립이라는 오래된 화두에서만은 아니며, 언론 노동자들이 밖으로 뛰쳐나오게 만든 본질적인 다른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본질적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언론노동자들이 광장으로 나오게 된 실체를 파악해야 한다.

'찌라시'에 담긴 은유

<연합뉴스>의 한 노조원은, 자신들의 파업에 대해 노보에 실은 글에서 "제가 쓴 기사에 '연합찌라시' 기자라는 댓글이 달렸습니다. 나는 연합찌라시가 아니라 연합뉴스에 다닙니다"라는 글을 실었다. 일본어 '散らす(치라스:뿌리다)'라는 단어에서 유래된 '찌라시'라는 표현은, 길거리에서 어떤 사안에 대한 홍보를 목적으로 배포하는 낱장으로 된 전단지를 속되게 부르는 표현이다. 이러한 전단지는 거리를 지나다니는 행인의 손에 건네진 후 내용이 읽히지 않고 대부분 버려진다. 전단지 제작자와 배포자의 노동의 가치를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전단지를 제작하는 목적 자체가 특정 상품의 홍보에 달려 있으며, 그 홍보에 관심이 있는 특정집단의 시선을 모으기 위한 목적의 차이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자가 사용한 '찌라시'라는 표현은 자신의 노동이 시민들에게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는 자괴감을 드러내는 자조적인 표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자괴감에는 자신의 존엄에 대해 신뢰하지 못하는 불안이 내재되어 있다.

▲ 박정찬 연합뉴스 사장의 연임을 반대하며 출근저지투쟁을 벌이는 연합뉴스 노조. ⓒ뉴시스

그러나 <연합뉴스>의 노조원이 사용한 '찌라시'라는 표현에는 아직 간과된 부분이 있다. '찌라시'는 그 내용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받는 즉시 손 안에서 구겨지고 버려지는 것으로서 자신의 소명을 다하며, 사회에 어떤 해악을 끼치지 않는다. 아주 가끔 지정되지 않은 장소에 버려져 종종 소소한 환경오염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하지만 왜곡된 언론의 해악은 그런 '찌라시'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리고 그것은 쉽사리 잘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서서히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곤 한다. 아름다운 강과 하천을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파괴하는 4대강 사업에 비판을 포기하고, 환경친화사업이라 포장하여 국토를 몸살에 걸리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경제적 약자들의 안전핀이 되는 각종 복지제도의 감축과 같은 신자유주의 확산에 대하여, 고도성장을 위한 불가피한 희생정도로 사안의 핵심을 은폐하거나 축소하여 우리의 사회를 만성적인 질환에 시달리게 만드는 점이 그렇다. 그 외에 정치적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집단 사이의 불균형한 보도 태도가 야기하는 사회전체의 공정성 하락과, 자본에 충실한 홍보기관이 되어 재물에 의해 사람이 소외되는 사회풍조를 조성하기도 한다.

이런 막대한 해악 앞에서 언론종사자들이 진정으로 깨달아야 할 것은 단순히 자신의 노동이 '찌라시'에 비유되어 제대로 평가받고 있지 못하다는 '자괴감'이 아니라, 자신의 노동이 타인의 삶과, 우리의 환경을 파괴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즉 언론노동의 특수성과 사회성에 대한 자각이 그것이다.

언론노동의 사회성

언론노동은 노동계약의 특수한 한 형태로서, 형식적인 고용계약은 언론사주와 언론 노동자 사이에 체결되지만,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 차원에서 언론은 그 종사자들과 그들의 보도를 받아보는 시민들 사이의 사회계약이 결합된 형태 즉 사적계약과 공적계약이 혼합된 것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이는 언론이 사회구조가 발생시키는 다양한 문화사회적 기호에 대하여, 그 이면에 내재된 역학관계 및 수반되는 용도와 그 맥락을 이해시키는 기능을 수행함으로써 삶의 질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그러한 과정에서 노동자의 생계를 유지하게 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언론노동의 본질은 고용주의 이익을 고려하는 것과, 노동자 자신의 생계를 위한 노동만이 아닌, 사회전체의 이익을 고려하는 형태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번 정권이 자행한 언론장악 시도로 인하여 사회현상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공적인 성격의 언론노동의 형태는 사라지고, 오히려 현상의 숨겨진 맥락들을 은폐하는 지극히 사적인 노동의 형태만이 남게 되었다. 언론노동자는 자신이 수행하여야 할 공적인 노동을 수행하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노동을 통하여 고용주와 그를 뒤에서 조종하는 권력의 사적인 이익에 봉사함에 그쳤다. 아니 그뿐 아니라, 사회구조에서 언론이 담당해야할 역할을 포기함으로써 우리와 우리의 후세가 함께 살아가야할 생태계를 파괴하는 것에 일조하거나, 사회안전망을 파괴하는 행위들을 옹호함으로써 사회에 함께 거주하는 다른 노동자들의 평온한 삶을 해치는 공해(公害)로 까지 확산되었다.

이러한 과정이 중첩되는 동안 언론노동자들의 정신은 피폐해졌다. 즉 기사작성이라는 사적인 노동의 수행으로 인하여 노동의 목적의 한 축인 신체적 생존권은 보장되었지만, 올바른 정보전달이라는 공적인 노동수행의 불능으로 인하여 자신의 노동이 타인의 삶을 파괴할지도 모른다는 정신적 불안에 노출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언론노동자들이 스스로의 일을 '찌라시'라고 느끼는 순간 그들이 수행하던 노동에 대한 자부심은 사라지고 자신의 노동에 대한 회의와 열패감에 물들었을 뿐 아니라,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행위가 타인의 삶을 파괴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의 일면을 슬쩍 엿보게 됐다. 따라서 노동의 수행행위가 타인의 삶을 파괴하며, 그로 인하여 자신의 삶마저도 파괴하게 되는 불안감. 그것이 바로 현 대규모 언론파업의 실체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번 대규모 언론 파업의 해법으로 현 언론사 경영진과 그들을 임명한 정권의 퇴진에만 집중하는 것은 어리석인 일이다. 그런 단순한 이분법은 마치 새로운 경영진과 정권이 들어온다면 현 언론파업이 내포하고 있는 문제들이 모두 해결될 수 있을 것만 같은 왜곡된 상상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언론노동 자체에 내재되어 있는 것. 즉 언론노동자들과 시민들이 언론노동의 사회성에 대해 명확히 인식하고, 그를 통해 타인의 삶을 훼손하지 않아야 한다는 연대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인식의 전환이 지금 여기와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또 다른 언론 파업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방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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