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은 사측만 곤혹스럽게 하는 게 아니다. MBC 조합원들은 석 달째 월급을 받지 못하고, 무수한 징계를 받으며 회사와 싸우고 있다. 이근행 전 위원장은 해고된 지 700일이 넘도록 여전히 복직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고, 정영하, 이용마, 강지웅 등 집행부 간부들도 해고된 지 최소 한 달 이상이 됐다.
그리고, 김재철 사장은 그 사이 조직개편을 단행하며 친정체제를 확고히 했다. 김 사장의 임기는 여전히 2년 반 이상이 남았다. 4.11 총선이 여당의 승리로 돌아가자 일각에서는 파업에 나선 언론사 노조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탈출구가 보이지 않게 됐다는 우려 때문.
정영하 노조위원장은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공영방송사에 들어왔지, 청와대에 들어온 게 아니"라며 파업을 끝낼 생각이 없다고 했다. 우려와 달리 그는 "노조의 길이라는 게 원래 일어서야 길이고, 걸어가야 열린다. 우리는 열리는 길로 가고 있다"며 승리를 자신했다.
승리의 이유로 그는 국민들의 불만이 들끓고 있고, 특히 "대선 국면"이 다가오면서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결국 언론사 파업 문제 해결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강조했다.
긴 시간이 지났음에도 정 위원장은 여전히 조합원들 사이에 파업에 대한 회의나 두려움, 후회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김 사장의 개인 비리가 줄줄이 드러나고 있고, 특히 회사가 강경한 대응책으로 일관하면서 조합원들의 단결도 더 강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집행부가 조합원들의 업무 복귀를 막고 있다'는 회사 측 주장에 대해서는 강하게 반발하며, 임원진을 고발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경영진이 이렇게 나오는 이유로 정 위원장은 "이런 식의 흔들기라도 안 하면 체제 유지가 안 된다는 위기감"을 경영진이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파업 100일을 맞아 MBC 노조는 이번 주 중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본부장 김현석)와 함께 여의도 광장에 '희망텐트'를 치는 등 대국민 홍보전을 강화한다. 지난 3일 저녁 8시 30분, 다양한 파업 프로그램을 준비하느라 분주했던 MBC 노조 사무실에서 정영하 위원장을 만났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 일답. <편집자>
▲정영하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장. ⓒ프레시안(최형락) |
"아직 안 지쳤다. 승리 외에 돌아갈 길 없다"
프레시안 : 8일로 파업 100일이다. 지치지 않았나?
정영하 : 조합원들이 제일 생생하다. 취재하는 기자들이 지친다고 하더라. 하하. 여기(MBC)는 100일이고, 저기(KBS)도 두 달이 넘어가는데, 계속 엄청난 얘기들이 나온다. 여기는 법인카드 사용에, J씨에, 저기는 사찰 터지고…. 지칠 수가 없다.
프레시안 : 로비에서 조합원들과 간담회를 하더라. 매일 저녁 이런 일정 반복되나?
정영하 : 우리가 지난주부터 노숙농성에 들어갔다. 매일 저녁 5시부터 한 시간 반 동안 퇴근하는 간부들 상대로 퇴근투쟁을 한다. 그리고 저기(로비)에서 자고, 다음 날 아침 7시 출근투쟁을 하고 귀가한다. 나는 투쟁 후 간담회에 참석한다. 위원장이 조합원들과 스킨십을 강화해야지.
프레시안 : 위원장이 되고나서 처음 맞은 파업인데, 공교롭게 MBC 역사상 최장기 파업이다.
정영하 : 그렇게 됐다. 집행부 들어와서 파업은 이미 경험해봤다. 우리가 이명박 정권에서만 다섯 번 파업했다. 이전에 미디어법 파업을 세 번 했는데, 그 중 두 번을 사무처장으로 경험했다. 당시 벌금형도 받았네.
프레시안 : 당시와 분위기 달라진 게 있나?
정영하 : 같은 정권이지만 그래도 다른 게 있다. 당시는 정권 초기였잖나. MBC가 이렇게 망가지진 않았었다. 당시만 해도 보도부문이 살아있었다.
프레시안 : 그러고 보니 미디어법 파업 당시만 해도, 아나운서 조합원들이 파업에 나서기 전 마지막 방송에서 시청자들에게 '파업에 참가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참여했다. 이런 의사 표시가 허용됐던 셈이다.
정영하 : 그렇다. 당시만 해도 간부들이 우리가 파업에 들어간다고 하니 '우리 회사 문제를 떠나서 이건 보도해야 한다'는 정도의 개념은 있었다. 이번 파업은 그런 여유도 없는 상황에서 일어났다. 대놓고 편파방송을 하잖나. 마지막 에너지를 끌어낸 것이다.
프레시안 : 총선이 지나면서 분위기 더 어려워진 것 같은데 '안 지쳤다'고 하니 못 믿겠다. 새누리당이 승리하고, 곧바로 이어진 MBC 조직개편을 통해 김재철 사장 친정체제가 완료됐다.
정영하 : 당연히 외부에서 그런 걱정을 한다. 그런데 우리 입장에서 보면 이제 돌아갈 곳이 없지 않나. 그래서 더 명쾌하다. 승리 외에는 답이 없다.
약간의 기대감이라도 있을 때가 더 힘들다. 사람은 애매한 상황에서 고민한다. 우리가 파업 시작한 지 한 달 정도 된 시점에 보도국장 인사가 있었다. 만일 그 때 뉴스가치를 아는 사람이 신임으로 들어왔다면 구성원들이 흔들렸을 거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구성원들은 더 단호해질 수밖에 없다. 이 상태로 어떻게 복귀하나. 이대로 복귀한 다음, 설사 정권이 바뀌었다 치자. 또 그 정권 따라갈 것 아닌가. 그러면 우리 정체성은 어디로 가나.
프레시안 : 결과적으로 파업 목표로 내건 김재철 사장 퇴진은 지난 100일간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 시간에 아쉬움은 없나?
정영하 : 아쉬움 없다. 다시 싸워도 이렇게 못 싸운다. 지난 100일간 우리 구성원들이 너무나 잘 싸웠다.
100일의 싸움은 지도부의 영도력으로 가능한 게 아니다. 조합원들이 국면마다 화제를 만들어냈다. 노제, 프리 허그, 으랏차차, 법인카드 문제, J씨 문제…. 한 조합원이 농담 삼아 지난 파업 기간이 '미드 보는 것 같았다'고 하더라. 시리즈가 끝나나 싶은데 또 새로운 이야기가 나온다고. (웃음) 다들 후련하게 싸웠다고 한다.
▲지난 3일 저녁 MBC 로비. 정영하 노조위원장이 퇴근투쟁을 마친 조합원들과 간담회를 했다. 조합원들은 순번을 짜 매일 저녁부터 아침까지 농성을 이어간다. ⓒ프레시안(최형락) |
프레시안 : 4.11 총선 당시 '미디어 진영이 무너져서 야당이 졌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그런 비판은 어떻게 생각하나? 잠시라도 파업 풀고 올라가서 보도투쟁했다면 더 나아졌을까?
정영하 : 조합원 일부가 총선일 개표방송 때문에 (파업을 잠시 풀고) 올라갔다. 개표방송은 시청자의 알권리를 위해서 필요했으니까.
그런 점에서 반쪽 소임은 했다고 본다. 다만 총선 전에 파업에서 승리하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은 있다. 미디어 지형에 대한 비판은 우리가 백퍼센트 소임(총선 전 승리)을 못한 데 대한 지적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 설사 우리가 올라가서 총선 보도를 했다고 한들, 지금 체제에서 편파방송 말고 뭘 할 수 있었겠나.
프레시안 :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간 것 아닌가?
정영하 : 맞다. 국회가 나서야 한다. 한국의 공영언론사들이 일제히 파업하고 있다. 군사정권 때도 이러진 않았다. 국회가 제 할 일을 안 했다.
현재 한국에서 표현의 자유, 언론 자유 문제는 집권자의 의지에 달렸다. 특히 현 정권은 집권자가 이상한 의지를 가지면 언론이 어떻게 무너지는가를 잘 보여줬다. 또 이런 정권이 나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반드시 법의 테두리에서 보완해야 한다. 법 개정만으로 문제가 끝나는 것도 아니다. 문제가 있으니 법을 보완하는 거잖나. 그러면 국회가 그 문제(낙하산 사장)도 심판해야지.
이제 대선 국면이니 달라질 것이라고 본다. 여야 상관없이 목소리를 낼 것이다.
프레시안 : 민주당의 경우 언론사 파업 문제에 신경을 덜 쓴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이제 대선체제 돌입하느라 정신없는 상황인데, 앞으로도 신경 안 쓰면 어떡하나?
정영하 : 19대 국회의원들이 언론사 파업 문제를 일순위로 얘기하도록 만들 것이다. 김현석 위원장(KBS 새노조 위원장)과 19대 국회 전체에 여든 야든, 언론사에 간섭하지 마라고 요구하기로 했다. 여든 야든, 이게 맞다고 볼 것이다.
프레시안 :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도 그렇게 생각할까? 박 비대위원장은 아직까지 언론사 파업 문제에 노코멘트로 일관하고 있다.
정영하 : 타이밍 문제 때문에 침묵하는 것 같다. 다만 우리가 300명 당선자 전체를 상대로 설문조사도 돌리고 했으니 우리 상황이 전달은 됐으리라 본다. 얘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으로 만들어야지.
프레시안 : 어떻게 압박할 건가?
정영하 : 여론을 움직이는 수밖에 없다. 국민들이 들끓으면, 유력한 대권 주자라면 결국 자기 입장을 내놔야 한다. 박 비대위원장이 총선 전 사회 전반에 '쇄신'이란 단어를 갖다 붙였는데 언론 쇄신 얘기만 쏙 빼더라. 그러나 대선 국면에서도 침묵한다면 결국 현 정부와 궤를 같이 하는 것 아닌가.
좀 노골적으로 말해서 이게 현 정권의 언론 장악 결과지, 새누리당의 언론장악은 아니잖나. (웃음)
프레시안 : 박 비대위원장이 법안 교체에는 동의한다손 쳐도 '사장 임기는 채워야 한다'고 특유의 '원칙론'을 들이밀면 어쩌나? 박 비대위원장이 두 카드를 모두 받을 것 같진 않은데?
정영하 : 그러면 법은 왜 바꾸나. 법을 바꾼다는 건 현 정권의 언론장악에 문제가 있었다는 걸 인정하는 것 아닌가. 자연히 그 문제의 핵심(사장)도 바꿔야지. 반대 상황 역시 마찬가지다. 김재철 사장을 치울 정도면 이런 상황이 안 일어나도록 법의 문제를 개정하는 게 맞다. 하나 주고 하나 받는 식의 해결책으론 이 문제 해결 못한다. 물론 정치인이다 보니 자기에게 유리한 게 있어야 움직이겠지.
프레시안 : 박 비대위원장이 압박감을 느끼게 하기 위해 국민 여론이 들끓어야 한다고 했는데, 어떻게 대국민 홍보를 유지할 건가? 새로운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나?
정영하 : 다음 주(인터뷰는 지난 주에 이뤄졌다. 편집자.) 중 MBC, KBS 파업 조합원들이 여의도광장에 '희망캠프' 텐트를 친다. '으랏차차' 규모의 콘서트는 못 하더라도 매일 저녁 현 정권 언론장악에 대해 국민이 가진 감정을 듣는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다.
일단 사람이 모이는 장이 서야 한다. 민심을 제대로 담기만 하면 봇물 터지듯 열기가 쏟아져 나올 것이다. 5월의 파업 국면은 나쁘지 않다고 본다.
프레시안 : 경찰 조사를 받았다. 일각에선 구속 우려도 나온다.
정영하 : 정권이 집행부 구인 카드를 만지작거리다가, 광우병 사태가 다시 터지는 바람에 눈치보고 있다는 소문이 돌더라. 우리를 구인하면 호재다. 날이 다시 따뜻해졌다(집회하기 좋아졌다). 하하.
이근행 전 위원장이 말한 대로 '적설의 상황은 길지만 해빙은 순간'이다. 우리도 모르게 해빙이 올 것이다.
"흔들리는 경영진이 파업 도와"
▲MBC 노조사무실에는 '질기고 독하고 당당하게'라는 글귀가 걸려 있다. 이번 파업에서 MBC 노조는 이 글귀를 파업 정신으로 새겼다. ⓒ프레시안(최형락) |
정영하 : 경영진의 불안함이 느껴지더라. 지난 주(현재 시점으로는 2주 전) 김재철이 속리산에서 신임 사장단 회의를, 본사에서 임원 회의를 연달아 가졌다. 이 자리에서 나온 얘기를 들어보라.
사장단 회의에서 '정영하 위원장이 사람은 참 괜찮다. 그런데 정치파업에 발을 잘못 들였다. 내가 정영하한테 총선 전에 복귀하면 해고자(이근행 전 위원장) 문제 해결하겠다고 얘기했다. 그리고 8월 방문진 법 바뀌면 나간다고 얘기했다. 그런데 집행부가 이걸 안 받아서 조합이 흔들린다'고 했다.
임원 회의에서는 '노사 물밑협상이 진행 중이다', '징계문제는 협상할 수 있다. 그런데 국장추천제니 하는 공정방송 관련 조항은 일고의 협상 가치도 없다'고 했다.
이런 식으로 답답해하는 임원진을 다잡고, 조합을 상대로 흔들기를 시도한 것이다. 이제 이런 식의 흔들기라도 안 하면 체제 유지가 안 된다는 위기감을 느끼는 것 같다.
파업하면 사측에서 우리 대화를 다 녹음해 정보 보고한다. 특보가 나온 후 노조 총회에서 내가 사장을 겨냥해 이렇게 말했다. '나 몰래 물밑협상 한 사람이 누구냐, 누가 조합을 붙잡느냐. 당신(김재철 사장) 그렇게 자신이 없냐'고 했다.
노조가 다음 주(이번 주) 중 임원진을 고발할 것이다. 노조 파업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임원진이 특보를 통해) 허위사실을 유포했다. 폭행한 자가 누군지, 누가 조합을 이렇게 세게 막은 건지 임원진이 말해라.
프레시안 : 임원진 주장이 거짓이라면 왜 그런 주장을 폈을까?
정영하 : 조중동 받아가라고 특보를 낸 거지. 그런데 안 받아가더라. 종편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여기(공중파 방송사) 파업이 오래 가면 자기들에게 유리하리라 판단했겠지.
이 집단이 조용해 준 것도 어쩌면 호재다. 이 집단이 매도하고 나섰으면 결국 언론 파업이 진보-보수 프레임에 갇혀버리잖나.
프레시안 : 그러고 보니, 파업 초기 '경영진이 노조파괴 전문 노무법인과 계약했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정영하 : 사측 J 변호사라는 사람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이 분이 그간 노조 몇 곳을 문 닫게 한 변호사다. 그런데 이 분이 이전 일반 제조업체에 적용했던 모델을 MBC에도 그대로 적용한 모양이다. '징계 때리고 겁주면 노조가 흔들린다'는 식이었던 것 같다. 오히려 이런 전략 덕분에 김재철이 우리 파업의 일등 공신이 됐다.
프레시안 : 사측의 강경한 태도가 노조 단결을 도왔다?
정영하 : 맞다. 언론사 노조라는 게 직업 특성이 있어서 자존심이 좀 세다. 소위 말하는 '~쟁이'들이 많잖나. 자기 세계관이 뚜렷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보니, 옳고 그름에 대한 가치가 분명하다. 특히 이 정권은 애매하게 안 하고 확실하게 장악했잖나. 누가 봐도 쪽팔리는 상황에서 들고 일어난 것이다. 끝을 볼 때까지 갈 수 있는 힘이 충분하다.
프레시안 : 재일동포 무용가 J씨 문제는 노조가 지금도 취재 중인가?
정영하 : 그렇다. 왜 이전에는 이 문제가 안 터졌나 했더니, 이 양반(김재철)이 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이 자기 사람 심기였다. 그 작업이 지난해 단협 해지되는 과정에서 완료됐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이때부터 (마음 놓고) 여러 가지 사업을 벌렸다. 자기 사람을 사업부문에 앉혀놨으니 문제가 안 새어 나간 거지.
이런 부문에 전문가가 아니라 워낙 이상한 사람들이 가다보니, 노조가 이 부분을 뒤졌다. 이 과정에서 이상한 건이 여러 건 나왔고, 특히 J씨 건이 가장 많았다.
'공정방송' 요구하며 노조 이끄는 음향 엔지니어
프레시안 : 파업 이탈자 없나?
정영하 : 서울 조합원 1000여 명 중 750~770명 정도를 계속 유지한다. 처음 550명 수준에서 시작한 이 대오가 김재철의 법인카드 사용 내역이 공개된 후 불어났다. 구성원들이 '으랏차차 콘서트'에서 자신감을 얻었고, 법인카드 내역을 보고 '말도 안 된다'는 공감대를 가졌다. 그 후 6주간 이 대오(750명 규모)가 유지되고 있다.
프레시안 : 석 달째 월급이 안 나온다. 생활 어렵지 않나?
정영하 : 두 달째가 고비더라. 한 달이야 그냥 버티는데, 월급쟁이들이다보니 두 달째 위기가 온다. 그런데 그 국면에 징계가 속출하고, 법인카드 문제, J씨 문제가 터졌다. 아까 말했듯 김재철이 우릴 도와줬다. 하하.
석 달째 되니 이제 대출받아야 살 수 있더라. 그래서 조합원들이 대출을 받기 시작했다. 워낙 많이들 몰리니 은행에서 조합을 상대로 특판을 만들더라.
프레시안 : 가족들은 어떤 반응 보이나?
정영하 : 집사람이 많이 마음 아파했다. 집사람도 내가 위원장 되는 것 보고 파업하면 해고되겠거니 생각은 했는데, 막상 잘리는 것 보니 내가 좋아하는 일을 못하게 돼 보기 안 좋았나 보더라. 내가 93년 음향 엔지니어로 입사하고 2년 뒤 결혼했다. 당시 회사를 좋아하던 내 모습이 보기 좋았다고 하더라(이 대목에서 정 위원장의 목소리가 떨리고, 눈에 눈물이 맺혔다. 인터뷰 내내 단호한 모습을 유지하던 그가 처음으로 고개를 돌렸다. 편집자.).
프레시안 : 전자공학을 전공했는데 음향 엔지니어가 된 이유가 있나?
정영하 : 음악을 정말 좋아한다. 4살 때부터 피아노를 쳤는데, 어릴 때는 더 치기 싫어해서 공부로 방향을 틀었다. 대학에 간 뒤 음악에 푹 빠졌다. 팝송은 예전부터 워낙 많이 들었고. 마침 취업할 때가 됐는데 전공자들이 많이들 가는 대기업은 가기 싫더라. 넥타이 매는 것도 싫고 9시에 출근하는 것도 싫고. 마침 방송사가 눈에 띄더라. 그래서 MBC 왔다.
▲"MBC에 다닌다는 자부심 강하다." ⓒ프레시안(최형락) |
정영하 : 노조위원장이니 당연히 나서야지. 회사 내에서 내가 어떤 일을 하느냐와 노조 활동은 별개 문제다. MBC 노조의 특징이라면 특징인데, 노조원으로서 해야 할 역할이 있다는 생각은 직종을 가리지 않고 공감한다. MBC 노조 조합원이라는 자부심이 있다. 노동조합이 부르면 시키는 일을 해야 한다. 이런 생각을 가진 선배들 덕분에 MBC가 더 좋은 방송이 됐고, 이런 선배들을 통해 조합원으로서의 의무감을 배웠다.
프레시안 : 그래서 일각에서 'MBC는 노조가 장악한 회사'라고도 한다.
정영하 : 김재철이 장악한 것 아닌가? (웃음) 우리도 보통의 노조와 같다. 인사권도 없고 회사를 경영하지도 않는다. 다만 조합원들이 'MBC에 다닌다'는 자부심은 강하다. 우리가 젊은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는 건 그만큼 제작자율성이 살아있기 때문이고, 이는 노조의 힘이었다. 이런 문화가 내리물림 됐기 때문에 부문 간 돌아가면서 노조위원장하는 전통도 만들어졌다. 그런 걸 두고 '노조가 장악했다'고 해버리면, 할 말 없지, 하하.
"노조의 길은 일어서야 생겨"
프레시안 : 지난 인터뷰에서 김 사장이 안 물러가면 '대선까지도 간다(파업을 안 푼다)'고 했다. 그 생각은 변함없나?
정영하 : 당연하지. 대선 끝나고 (야당이 승리한 후) 그 힘으로 우리 문제를 해결한다는 게 아니라, 바뀌는 게 없다면 그때까지 간다는 것이다. 지금 올라가버리면(파업을 끝내면) 여태껏 쌓아놓은 진정성마저 다 잃어버리게 된다. 김재철이 나가고 안 나가고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공정방송을 만들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 극단적인 표현이지만 우리는 이렇게 방송 할 거면 '회사 문 닫아라'고 한다. 우리는 공영방송사에 들어왔지, 청와대에 입사하지 않았다.
프레시안 : 앞으로도 다른 언론사 노조와 파업 연대를 계속 이어가나?
정영하 : 그럼. 특히 총선 이후부터 김현석(KBS 새노조 위원장) 위원장과 더 자주 연락하고 있다. 같이 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에 맞춰야 할 의견이 많다. 지금 파업에 나선 언론사 대부분이 똑같은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에 바꿔야 할 문제도 같다. KBS만 해도 8월이면 우리와 마찬가지로 이사가 바뀐다.
밖에서 보시기엔 출구 없는 길을 가는 것 같다는 생각 하실 수 있지만, 노조의 길이라는 게 원래 일어서야 길이고, 걸어가야 열린다. 우리는 열리는 길로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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