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는 재건마을 부지에 장기전세주택 234호와 국민임대주택 82호를 공급하되, 현 거주민 82가구 170여 명 모두를 임대주택에 재정착시키겠다는 계획을 지난달 23일 밝혔다. 거주민 주거대책으로 서울시는 공사기간인 2013년 2월부터 2016년까지 3년간 주민들에게 SH공사가 보유한 잔여 임대아파트를 제공하겠다는 입장이다.
"토지변상금 25억 원 철회 먼저해야 순리"
그러나 주민들은 "서울시에 허위로 주민 동의를 받았다고 보고한 강남구청을 믿을 수 없다"며 "개발을 하고 싶으면 먼저 주민과 협의하고 집집마다 몇 천만 원씩 물린 토지변상금부터 해소하는 게 순리"라고 주장했다.
▲ 서울 강남구의 무허가 판자촌 포이동 전경. 뒤로 타워팰리스가 보인다. ⓒ프레시안(김윤나영) |
재건마을에서 30년을 살아왔다는 이정순(가명·70) 씨는 "몇 년 전 한 주민이 마을을 떠나 임대주택에 들어갔지만 토지변상금 때문에 보증금이 압류돼서 다시 돌아온 적이 있다"면서 "재건마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군사정권이 마을주민들을 강제 이주해서 불법점유자로 만들었다는 억울함을 먼저 풀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강남구청은 "주민들이 강제 이주됐다는 행정적인 근거가 없다"며 "현행법상 시 소유지를 무단으로 점거했으므로 토지변상금을 부과해야 한다"고 맞섰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시의회나 구의회에 관련 권한이 있다면 토지변상금을 제할 방법을 다각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면서도 "다만 의회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면 (변상금 부과는) 법률상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강남구청과 서울시의 말이 다르다"
주민들은 또 "명문화된 문서도 없는 상태에서 서울시와 강남구청의 설명이 다르다"며 양측을 불신했다. 시는 82가구 170여 명을 공공임대주택으로 수용하겠다고 지난달 23일 밝혔지만, 지난달 30일 강남구청 직원들이 내놓은 '재건마을 개발안'에는 그 대상이 76가구 166명으로 줄어 있었다.
박정재 민중주거생활권 쟁취를 위한 철거민연합 연대사업국장은 "폐지 수거로 근근이 살아가는 주민들이 주변시가의 80%에 달하는 장기전세주택에 입주하지는 못한다"며 "시와 구청의 말이 하루하루 달라지는 상황에서 주민들이 무작정 3년 동안 뿔뿔이 흩어질 수는 없다"고 말했다.
박 국장은 "주민들은 임대료 등 세부 계획에 대해 설명을 들은 바도 없을 뿐더러, 설사 전원이 임대주택으로 들어간다고 할지라도 월세조차 낼 형편이 못되는 가구도 있다"며 "2년마다 보증금이 5%씩 올라갈 수 있는데다가 기초생활수급자에서 탈락하는 주민의 주거환경은 불안정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서울시도 이러한 주민들의 사정에 공감한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임대주택과 관계자는 <프레시안>과의 전화 통화에서 "장기전세주택은 주변 전세시가의 80%라 포이동 주민들이 못 들어간다"며 "국민임대주택을 공급해서 기초생활수급자 12가구는 영구임대주택을, 나머지 차상위계층 전원에게 공공임대주택을 제공하겠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영구임대주택의 보증금은 140~230만 원이고 월세는 3만5000원~5만5000원이다. 공공임대주택의 경우 보증금은 600~1230만 원에 월세는 9만~17만5000원이다. 계약을 2년마다 갱신해서 가격이 오를 수도 있지만 주민이 원하면 계속 살 수 있다는 단서도 달았다. 다만 공공임대주택이 지어지기까지 주민들은 따로 떨어져 살 가능성이 높다.
"포이동이야말로 '마을 만들기' 사업 적임지"
박정재 국장은 "박원순 서울시장이 요즘 '마을 만들기' 사업을 밀고 있다"면서 "포이동이야말로 '마을 만들기' 사업의 적임지"라고 주장했다. 일방적인 재개발·뉴타운 사업의 대안으로 서울시가 내세운 '마을 만들기' 사업의 뼈대는 주민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가운데 기존 주택의 리모델링을 통해 마을 공동체를 짓는 것이다.
재건마을에서는 지난 2005년부터 대학생 교사를 모집해 자체적으로 '어린이·청소년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다. 노인인구가 30%에 달하는 마을 특성상 마을 주민들과 '국경 없는 의사회'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돌아가면서 '노인돌봄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90%가 재활용 수거로 생계를 꾸리는 하는 주민들은 자체적으로 '재활용 사회적 기업'을 만들 구상도 하고 있던 터였다.
이 때문에 주민들은 다른 지역에 이주하는 기간 동안 생계수단을 잃고 마을 공동체가 해체될 것을 우려했다. 3대째 이 마을에서 살고 있다는 김미선(43) 씨는 "여기는 시골동네 같은 분위기라서 30년 동안 주민들이 친척처럼 지내면서 재활용도 같이 수거하고 김장도 담그고 살아왔다"며 "임대아파트를 짓는다고 또 뿔뿔이 흩어지라고 하면 혼자 사는 노인들은 그동안 취직을 하기도 어려울 텐데 3년 동안 직업도 없이 어떻게 견디겠느냐"고 반문했다.
박 국장은 "지난해 포이동에 화재가 났을 때 혼자 사는 어르신이 강남구청에 떠밀려 임대주택으로 이사 간 적이 있다"면서 "결국 어르신은 생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술만 마시다가 몇 달 뒤에 숨졌다"고 말했다. 그는 "마을에 있을 때는 주민들이 밥도 챙겨주고 술도 못 마시게 제어했지만 다른 동네에 가니 아무도 챙겨주지 않아서 홀로 쓸쓸히 돌아가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 국장은 "임대아파트에 주민들을 몰아넣으면 술 마시고 싸우느라 이 지역이 우범 지역화되거나 사각지대가 될 수 있다"면서 "반면에 재건마을을 '테마가 있는 마을'로 꾸민다면 서울시의 치적이 될 수 있고 '성북구 삼선동 장수마을'의 사례처럼 관광지가 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재건마을은 주민들의 친밀도와 주민자치 참여도가 높은 지역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시는 이주비에 더해 임대아파트까지 덤으로 제공하는 만큼 여기서 더 양보하기는 어렵다"면서도 "마을 주민들과 의견수렴 절차를 진행하지는 않았지만 앞으로는 SH공사가 주민들을 만나보고 이주를 유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마을에 꾸려진 공부방. 대학생 교사들이 마을 아이들을 가르쳐주고 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
ⓒ프레시안(김윤나영) |
▲ 지난해 발생한 화재 이후 시민들의 모금으로 지은 가건물. ⓒ프레시안(김윤나영) |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