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가 의사 회원들에게 지난 8일부터 시행된 의료분쟁조정제도 참여 거부를 독려하자 환자단체가 의사협회를 비판하고 나섰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16일 논평을 내고 "의사에게 불리한 조항이 있다는 이유로 환자를 위한 제도를 무력화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며 "신속하고 공정한 의료분쟁조정제도가 정착될 수 있도록 대한의사협회의 협조를 바란다"고 촉구했다.
의료분쟁조정제도는 의료사고가 났을 때 환자가 의료진의 과실을 입증하기 어렵고 소송 시 1심에만 평균 2년 2개월이 걸리는 등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마련된 제도다. (☞관련 기사 : "<하얀 거탑> 속 의료사고 피해자, 기댈 곳 생겼다", 주사 한번 맞고 죽은 9살 종현이…"의료사고가 남 일?")
환자가 의료사고 조정을 신청하면 의료인 2명, 검사 1명, 변호사 1명, 소비자권익위원 1명으로 구성된 '의료사고감정단'이 의료 과실 유무를 판단한다. 의사나 환자 양측이 중재에 불복하면 언제든지 소송 절차로 넘어갈 수 있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환자에게는 최대 120일 이내에 신속하게 중재 절차를 밟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의사에게는 양측 간의 합의가 이뤄졌을 때 형사 처벌을 면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하지만 의사협회는 지난 10일 "현행 의료분쟁조정법은 의사들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독소조항들이 포함돼 있다"며 "회원들은 의료분쟁조정 신청에 의하지 말라"는 서신을 회원들에게 보냈다.
의사들이 자료제출 및 조사 거부하면 과태료 부과, 과한가?
환자단체연합회는 의협이 주장하는 '독소조항'에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먼저 의협은 "의사가 출석, 자료제출, 소명 요구에 정당한 이유 없이 거부하는 경우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과 감정위원 또는 조사관의 조사, 열람, 복사를 정당한 이유 없이 거부하는 경우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부과하는 점"에 반대했다.
그러나 환자단체연합회는 "객관적인 감정을 위해서는 출석, 자료제출, 소명 요구와 조사, 열람, 복사는 필수적"이라며 "의료기관에서 이를 정당한 이유도 없이 거부한다면 의료사고를 은폐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에 거부 시 과태료나 벌금을 부과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맞섰다.
이 단체는 또한 "의료분쟁조정법은 (환자에서 의사로) 입증 책임을 전환한다는 규정이 빠졌고, 의료인에 대한 형사처벌특례까지 부여한 채 통과돼서 지금도 대부분의 시민사회단체가 반대하고 있다"며 "조사협조거부 시 처벌규정은 입증책임 전환규정의 대안으로 대폭 후퇴해 도입된 안인데, 이마저 의협이 거부한다면 넌센스"라고 덧붙였다.
환자들의 조정 거부, 의사에게 불리한가?
또한 의협은 "환자는 언제든지 조정을 거부하고 소송으로 전환할 수 있어서 의사가 제출한 각종 서류가 환자 측 소송을 위한 증거자료로 활용될 수 있어서 의료인에게 불리하다"고 주장했다.
환자단체연합회는 "환자뿐만 아니라 의사도 언제든지 조정을 거부할 수 있어서 불리할 것이 없다"면서 "만일 조정절차 중 환자가 조정을 거부하고 그동안 확보한 증거자료를 가지고 민사소송을 제기한다 하더라도 환자로서는 오랜 소송기간과 고액의 변호사비용을 고려하면 손해배상액이 조정에 비해서 유리하다고 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산부인과 분만사고 보상, 제도 도입 후 개선해야
의협은 또한 "불가항력에 의한 산부인과 분만사고로 산모가 사망하거나 신생아가 뇌성마비 또는 사망한 경우 3000만 원 한도로 보상하는 재원을 의사가 일부 부담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환자단체연합회는 "해당 규정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입증책임 전환규정을 삭제한 '의료분쟁조정법'을 통과시키는 것에 대한 비난 여론을 의식해 막판에 졸속으로 끼워 넣은 규정"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시민사회단체 또한 진실발견을 위한 노력보다는 손쉬운 보상을 선택하는 분위기를 조장할 수 있어 이 제도의 도입을 반대했었다"고 전했다.
이 단체는 "이 제도는 정부와 분만 실적이 있는 의료기관이 각각 7:3의 비율로 분담토록 해서 의료기관 실부담액이 분만 건당 2862원"이라며 "이 정도의 금액이라면 출산장려 차원에서 무과실보상의 대원칙대로 정부가 부담하는 것이 옳지만, 의협은 우선 의료분쟁조정제도가 정착되도록 협조하고 정부와 협의해 개선점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손해배상금대불제, 의사에게 불리한가?
마지막으로 의협은 "조정중재원이 언제라도 국민건강보험공단을 통해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다"며 손해배상금대불제도에 반대했다.
환자단체연합회는 "의료사고 시 신속한 손해배상을 담보하기 위해 시민사회환자단체는 의료인의 책임보험 의무가입을 주장했지만, 정부는 의료계의 과도한 부담을 고려해 '손해배상금대불제도'를 고안했다"며 "이 제도는 외국에서도 벤치마킹할 정도로 의료사고 손해배상 담보제도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데 의료계에서 왜 반대하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 단체는 "의료분쟁조정제도는 환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의사들의 안정적인 진료환경을 위한 제도이기도 하다"며 "의료인에게 불리한 몇 가지 조항이 있다는 이유로 의료분쟁조정제도 자체를 거부한다면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환자들은 의사들이 제도시행 후에 반대하기보다는 우선 시행에 협조하고 문제점이 있다면 이후 개선을 요구하는 성숙한 모습을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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