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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찾사 새 공연, 8090 추억의 콘서트는 아니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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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찾사 새 공연, 8090 추억의 콘서트는 아니랍니다"

'새로운 노찾사' 준비하는 우리 시대 평범한 이웃들

"빨간꽃 노란꽃 꽃밭 가득 피어도
하얀 나비 꽃 나비 담장위에 날아도~"


8일 오후 5시 30분, 서울 마포구 대흥동 썬악기 스튜디오에서 귀에 익은 <사계>의 첫 구절이 힘차게 울렸다. 어느새 40, 50대가 된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연습이 한창이었다.

기타 두 대와 베이스기타, 드럼, 키보드로 구성된 풀 밴드 체제의 연습은 이날이 두 번째다. <사계>, <그날이 오면>, <동지를 위하여> 등 합창부분은 쉽게 넘어갔으나 솔로 파트에서는 아직 연주와 보컬이 제대로 어울리지 않는다. 기타리스트 한상원 씨와 부부의 연을 맺은 신지아 동덕여대 실용음악과 강사가 연신 악기와 보컬의 차이에 조화를 주기 위해 연습을 멈춘다.

한국 민중가요의 대중화 문을 연 기념비적인 그룹 '노래를 찾는 사람들(노찾사)'이 오는 27일과 28일, 마포아트센터 아트홀 맥에서 단독공연을 연다. 지난해 4월의 소규모 공연 이후 1년 만에, 풀 밴드 공연으로는 지난 2008년 이후 처음 갖는 공연이다. 올해는 한국 대중가요사에 가장 중요한 장면 중 하나였던 지난 1987년 한국교회 100주년 기념관에서 이들이 가졌던 첫 공연의 25주년이다.

이날 연습에는 멤버 8명 중 7명이 참석했다. 각자가 일정이 있다 보니 연습일을 잡기도 쉽지 않다. 당초 이번 공연은 지난해 말로 예정했었다. 그러나 입시생 자녀를 둔 멤버의 사정 때문에 올해로 미뤄졌다. 혹시나 싶어 "중요 선거가 있어서 올해로 공연을 잡은 건 아닌가요"라고 물어봤지만 한동헌 노찾사 대표는 단호히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다.

이제 대학생 자녀를 둔 주부, 중장비 업체 사장, 교직원, 대학 교수, 전업 작곡가, 뮤지션 등으로 각자의 생업 무대는 달라졌지만, 절묘한 화음과 가슴을 벅차게 만드는 메시지는 예전 그대로다.

▲노찾사는 이번 공연을 위해 지난 3월부터 연습을 시작했다. 그러나 멤버들이 모이기 쉽지 않아 풀 밴드 구성과 함께 한 연습은 이번이 두 번째다. ⓒ프레시안(최형락)

멤버들 개인 얘기 더 담는 공연

이번 공연의 콘셉트는 예전과 조금 다르다. 합창 무대와 별개로 멤버 각자가 두어 곡의 솔로를 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멤버 각자가 오늘의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평범한 구성원으로서의 불안함, 고민 등을 관객에게 얘기하고 자신이 직접 선곡한 노래를 부른다. 노찾사의 무대에서 들을 거라 예상하지 못했던 곡도 상당수 될 것이라고 한 대표가 귀띔했다.

노찾사의 첫 번째 공연은 이들의 인생을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돌려놓았다. 원년 멤버로는 유일하게 이번 공연에 참석하는 송숙환 씨는 대학 졸업 후 미술학원을 운영하다 고 김광석 씨의 소개로 노찾사에 합류하게 됐다. 대학생인 그의 자녀 역시 음악을 하려 한다. 멤버 자녀 중에는 단순히 '취미' 이상의 음악활동을 갖는 이도 있다.

신지아 씨는 대학에서 가정관리학을 전공했으나, 이제 솔로음반까지 낸 가수이자 후배들을 가르치는 음악 전문가가 됐다. 노찾사 활동 중 눈이 맞아 결혼에 성공한 커플도 많다. 1987년 이후 노찾사를 거쳐간 멤버만 150여 명에 달한다. 이러한 삶의 이야기들이 이번 공연 무대에 오르는 셈이다.

송숙환 씨는 "우리도 이 세상을 사는 구성원 중 하나고, 관객 역시 마찬가지"라며 "내 노래를 통해 관객들이 자기 삶을 돌아보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신지아 씨가 밴드와 곡의 연주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밴드 역시 노찾사 공연과 오래 함께 한 이들이 많다. ⓒ프레시안(최형락)

노찾사의 내일

노찾사 멤버들은 내일을 고민하고 있다. <임을 위한 행진곡>,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등은 지금도 유효하지만, 어느새 젊은이들의 노래와는 거리가 생겨버렸다. 시대가 그렇게 변했다. 노찾사가 이번 공연에 임하며 "8090세대의 낭만과 서정을 위무하는 추억 콘서트가 되는 것을 거부"하는 이유다.

이들은 그 때문에 대표곡 <사계>, <광야에서> 등을 새 편곡으로 이번 공연에 선보인다. 그 외에도 새로운 노래들을 많이 선보일 계획이다.

더 큰 문제는 새로운 창작곡 작업이 잘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창작기반을 세우기 위해서는 전업 멤버가 필요하지만, 현재 사정상 쉽지 않은 일이다. 한 대표는 "현장에서의 수요는 아직 분명히 있지만, 다들 바쁜 생활인이다보니 어려운 부분이 많다"고 했다. 멤버들 역시 새 창작곡을 무대에 올리고 싶다는 바람을 숨기지 않았다.

그렇지만 노찾사가 선보인 중창 그룹의 개념을 배반하진 않는다. 누구나 아는 이들의 노래 방식은, 지금의 한국 음악계에선 분명 독창적인 성격이 됐으니까. 한 대표는 "우리 나름대로, 우리가 행동하는 방식으로 우리 세계를 선보일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프레시안(최형락)

노찾사는?

'한국 민중음악의 대중화를 이끈 첫 그룹' 노찾사는 지난 1984년 데뷔음반을 냈다. 이들의 [1집]은 민중음악 그룹이 낸 첫 정규앨범이다.

노찾사는 서울대 노래패 '메아리'와 이화여대 노래패 '한소리' 멤버들의 연합서클로 출발했다. 이들을 눈여겨 본 한국 포크음악의 대부 김민기 씨가 창작과 대중화 작업에 도움을 주면서 기존 대중음악과 완전히 다른, 우리 삶에 천착하는 노래들이 대중음악계에 나왔다.

노찾사가 대학가를 넘어 한국 사회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계기는 1987년 10월 13일, 한국교회 100주년 기념관에서의 첫 공연이다. 6월 항쟁 이후 민주화 바람을 타고 그간 독재정부에 의해 거리에서 부를 수 없었던 이들의 노래가 정식 공연무대에 올랐다.


이 해 나온 노찾사 [2집]은 당시 무려 100만 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리며 한국 대중음악사에 한 획을 그었다. 이 앨범에 수록된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광야에서>, <사계>, <그날이 오면> 등은 수많은 가수들이 다시 부르기도 했다. <경향신문>과 가슴네트워크가 지난 2008년 공동으로 기획한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서 노찾사의 <1집>과 <2집>은 각각 44위, 53위를 기록했다. 고 김광석, 안치환, 권진원 등이 노찾사 출신이고 [1집] 수록곡 <내 눈길 닿는 곳 어디나>를 작사한 김창남 성공회대 교수는 '한국대중음악상' 심사위원장으로 여전히 한국 대중음악계와 인연을 맺고 있다.

민중음악의 대중화에 성공한 노찾사는 동아리 형태를 벗어나 오디션 체제를 확립, 본격적인 민중음악 노래패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노찾사의 후배 민중음악 노래패 대부분이 이 길을 따랐다. 노찾사의 뿌리 중 하나인 서울대 노래패 '메아리'의 후배들은 장기하와 얼굴들로 유명한 '붕가붕가레코드' 설립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노찾사는 YB, 정태춘·박은옥, 김제동, 김C 등으로 유명한 다음기획의 모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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