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가 보편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지난 서울시장 선거 결과로 드러난 시대정신이다. 특히 선택적 복지란 프레임이 복지정책에 대한 반대의 무기로 사용되면서 양극화를 기정사실화하고 저소득층에 대한 시혜의 장치로 기능하는 복지정책은 인권의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제 보편적 복지는 이 사회가 평등한 기회를 제공하고 실패를 딛고 일어 설 수 있는 든든한 받침대가 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함의를 포함하고 있다.
복지의 스펙트럼을 보면 의료, 교육, 보육 등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분야뿐만 아니라 미처 접근하지 못했던 환경과 교통 분야 까지 넓힐 수 있다. 특히 현대인의 생활에 가장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는 것 중의 하나인 이동권의 문제는 더 이상 정부 일각의 정책담당 부서에 맡겨놓아서는 안 된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보편적 복지의 개념으로 발전하고 있는 이동권에 대해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때이다. 헌법에 보장된 사상의 자유처럼 모든 시민이 사회적 지위나 재산정도에 관계없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것을 사회가 보장해야 하는 때가 도래한 것이다. '이동권'이란 말이 생소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여기서 잠시 프랑스의 교통기본법을 살펴보자. 프랑스는 시민이 교통할 자유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법의 출발점을 삼고 있다. 교통기본법 상의 교통권(Le droit au transport)에 따르면 모든 이용자의 이동할 권리, 교통수단을 선택할 자유, 적정한 접근성, 서비스의 질, 운임의 적절성, 정부의 비용부담을 분명히 담고 있다. 이동제약자에 대한 특별한 조치는 기본적으로 보장된다.
그러나 이런 선진국들에서 조차도 열차가 정차하는 역과 그렇지 않은 곳의 삶의 질이 판이하다. 지난 2월 28일 경향신문 기고를 통해 파리에 사는 작가 목수정씨는 시민건강과 도시개발의 관계를 연구하는 에마뉘엘 비느롱 교수의 연구결과를 소개했다. 에마뉘엘 비느롱 교수는 '도시철도를 따라가며 살펴보는 파리와 방리유(파리외곽)에서의 도시, 삶, 죽음'이란 제목의 지도를 제작해 철도 노선이 관통하는 동네에 따라 어떻게 이들의 삶의 조건이 달라지는지를 계량적으로 보여준다고 밝혔다. 놀라운 것은 정차 역에 따라 평균수명이 2배까지 달라진다는 것인데 시간으로는 불과 15분 정도 전철을 타고 이동하면 오래 사는 동네에서 단명 하는 동네로 이동한다고 한다. 이 원인으로는 스트레스, 환경오염, 주거조건, 의료, 교육문화시설의 수 등 여러 가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인구 1만명당 20.3명의 일반의와 68.5명의 전문의가 있는 파리 뤽상브루 지역에 비해 5.9명의 일반의와 1.6명의 전문의가 있는 수도권의 오베르빌리 지역간의 차이는 이 두 지역사이의 삶의 질이 어떻게 다른지 보여주는 지표라고 비느롱 교수는 지적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는 어떠한가? 우리나라는 교통이 사회적 약자는 물론이고 서민들에게 더 큰 제약을 주는 방식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지난 4일 매일경제 신문에서는 대한민국 출근 보고서라는 기사를 실었다. 기자가 직접 출근하는 직장인을 따라나섰다. 노원구 중계동에 사는 직장인과 서울시내 대표적 부촌 중 하나인 강남구 도곡2동에 사는 직장인의 출근길 비교체험이었다. 노원구 중계동에서 출발한 직장인은 배차간격이 큰 버스를 힘겹게 타고 콩나물시루 같은 지하철에서 짐짝 취급을 받으며 1시간 15분을 걸려 을지로에 있는 직장에 도착했다.
반면 강남구 도곡동에서 출발한 직장인은 40분 만에 한결 여유롭게 역시 을지로에 있는 직장에 출근했다. 직선거리로는 12.7KM와 10.6KM로 약 2키로 미터의 차이가 나지만 소요된 시간은 거의 배가 차이가 난다. 여기에 서울 외곽 수도권지역에서 출퇴근이나 통학을 하는 수백만 명의 시민들은 그 만큼 더 커다란 비용과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실정이다. 이미 교통수단 이용에 있어서도 눈에 보이게 양극화가 심화되었다.
한국공간정보(주)에서 서울시의 도시철도역 접근성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지하철역을 중심으로 500M 반경을 조사한 결과 도시철도 소외지역 면적 비율이 강북구(80.94%), 금천구(79,67%)를 상위권으로 관악구, 도봉구, 성북구, 은평구 등 주로 강북지역의 저소득 층 밀집지역이 차지하고 있다. 이들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마을버스는 시에서 제공하는 기본 교통인프라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소득수준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마을버스요금을 추가 지출해야한다. 더구나 마을버스는 매연저감장치 의무부착대상도 아니어서 이 지역의 시민들은 버스에서 배출하는 매연에 그대로 노출 되어있다. 쾌적한 환경에서 살 권리조차 박탈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하철2호선과 4호선 일부구간의 극심한 혼잡을 겪어야 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기본적인 교통인프라의 소외지역 사람들이다. 서울의 전세 값 폭등으로 더 먼 외곽지역으로 나가야만 하는 사람들에게도 교통비는 또 다른 압박으로 다가온다. 한국공간정보(주)의 반경 500M, 1000M의 도시철도역 이용 상관관계 버퍼분석지도를 보면 지난 몇 번의 선거에서 새누리당(과거 한나라당)과 야당이 득표를 했던 결과표를 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정도다. 새누리당이 압도적 득표를 기록했던 강남3구의 도시철도와 도로 폭 등 제반 교통여건은 다른 어느 지역보다 뛰어나다. 반경 500여 미터 안에 두 세 곳의 지하철역과 넓은 도로가 이 지역의 생활을 쾌적하게 만들고 있다.
▲ 서울 도시철도역 버퍼분석 지도 : 서울 중심부와 강남지역의 도시철도역 접근성이 좋은 반면 강북구, 은평구, 서대문구, 금천구, 관악구, 양천구, 도봉구, 구로구 등 서민 주거지역은 도시철도 인프라망에 소외되어 있다. ⓒ한국공간정보(주)자료 인용 |
서울 도시철도 노선 중에서 최고의 특별 혼잡지역으로 분석되는 2호선의 신도림에서 교대 구간 특히 최고 피크를 기록하는 오전 08:20-08:50분까지의 서울대입구-교대구간과 4호선 08:00-08:30분까지의 미아삼거리-동대문 구간은 모두 넓은 도시철도소외지역을 배후에 두고 있다. 출근시간 뿐만이 아니라 퇴근 시간에도 도시철도소외지역으로 이동하는 사람들에게는 끔찍한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어떤 정치인도 퇴근시간 4호선 동대문 역사문화공원역에서 폭발할 듯 터져 나오는 사람들의 비명소리에 귀 기울이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하루하루를 출퇴근의 고통속에 시달리는 시민들이 분명히 깨달아야 할게 있다. 고통의 원인은 대통령이나 서울시장, 국회의원 선거에서 부자정당에 표를 몰아준 결과 때문이라는 것이다. 강남3구의 압도적 부자정당 지지는 그들의 이해관계를 정확히 반영하는 투표행위이기 때문에 무엇이라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 지독한 경제위기 속에서 재산 축적은커녕 자식교육과 건강과 노후를 걱정하는 서민들이 왜 부자정당에 표를 몰아주어 고통스런 생활을 지속시키는 것인가? 이제라도 내 삶과 생활의 변화를 모색하려면 그 동안 입으로만 서민과 민생을 말했던 세력이 누구인지, 오늘 날 일상에서 겪는 고통의 원인이 무엇으로부터 비롯되는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특히 일부 토건족들과 이해를 같이하는 정부부처와 정치인들은 폭발직전인 낙후된 지역의 교통이동권 불만을 자신들의 이윤추구 창구로 전환시키려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이들은 서민들을 위해 교통인프라 개선을 시도하겠다며 민간투자사업이란 반서민적 정책을 전면에 내세우려 하고 있다. 지하철9선과 신분당선에서 보여 주듯이 민간투자사업이 결국은 시민들의 세금은 세금대로 가져가고 높은 요금과 불편한 이용을 감수하는 대신 투자자들은 짭짤한 재미를 보는 반서민적 정책으로 귀결되는 현실이다. 정부의 SOC 재정부담을 줄여주고 민간투자를 활성화하겠다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걸고는 토건족과 이들을 대변하는 정치인과 정부관료들이 일체가 되어 이권과 사익을 챙기는 사업으로 변질되어 천문학적 액수의 시민 혈세를 뽑아간게 그 동안의 민자사업이었다. 특히 대통령 임기말 얼렁뚱땅 밀어붙이고 있는 정부의 KTX민영화는 재벌에게 특혜의 종합선물을 받치기 위해 발버둥치는 사익집단의 모습을 노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런 사정에도 일부 수도권 민주 통합당의원들이 민간투자사업으로 재정을 충당하는 경인선 전철의 지하화안을 공동 공약으로 내건 것은 이들의 정책능력이 얼마나 설익은 것인지 보여주고 있다. 진정으로 기업이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고 정부의 재정부담을 완화시켜주고자하는 취지의 민자사업법으로 전면 개정하는 일부터 진행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민간투자란 빌미로 시민들의 호주머니를 터는 거대 잔치를 재벌기업들에 열어주게 된다는 사실을 정치인들은 명심해야만 한다.
대한민국은 서울 공화국이라고 부르고 서울은 다시 강남 공화국으로 불린다. 모든 사회적 인프라가 서울을 그리고 강남을 중심으로 압축되기 때문이다. 서울을 벗어나는 순간 교통의 혜택도, 문화적 환경도 교육도 의료서비스도 천지차이를 보이게 된다. 결국 서울은 대한민국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렇게 서울로 대한민국의 모든 것이 집중되는 것은 그리고 강남으로 또 빨려 들어가는 것은 한국사회의 건강한 발전을 가로막는 치명적인 걸림돌이다. 서울과 수도권의 균형과 수도권과 지방간의 균형 발전은 한국이 지속가능한 발전 전망을 갖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이를 위해서 교육, 문화, 행정, 의료, 철도 등 사회적 인프라의 지방 분산은 꼭 필요한 정책이다. 그러함에도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은 참여정부시절 행정수도 이전 안을 나라를 망치는 일이라며 한 몸이 되어 결사반대에 나섰다. 이들은 서울에 의한 서울을 위한 서울의 대한민국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고 그것은 결국 서울의 부자들을 위해 모든 것을 받치겠다는 정치적 선언이었다.
이런 뼛속까지 서울의 부자 중심인 정당에 전국 지방의 소외된 서민들과 수도권에서 더 많은 돈을 들여 서울로 출퇴근 하는 주민들과 서울 강북 등 소외지역의 고통스런 교통인프라를 감수하는 시민들이 또 다시 표를 몰아주는 것은 자기 스스로를 배반하는 행위이다.
대한민국의 99% 서민들이여! 언제까지 묻지 마 투표로 부자정당을 밀어주어 고통의 삶을 감수할 것인가? 우리가 마을버스와 지하철에서 힘겨운 출퇴근 전쟁을 치르는 이유만으로도 부자정당을 외면해야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 출근길 지하철. ⓒ박점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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