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선거 후보의 인사말이 아니다. 누구의 주거환경이 더 열악한지 경쟁하는 이벤트인 '주거스타 K'에 참가한 20대 대학생의 말이다.
대학교 2학년인 기호 4번 최효석(가명·21) 씨는 이른바 '개밥하숙'을 한다. 밥값이라도 아껴보려고 무보증에 월세 50만 원짜리 반지하 하숙집에 들어간 최 씨는 "밥이 후져서" 하숙밥을 자주 못 먹고 밖에서 밥을 사먹는다고 했다.
반지하 하숙살이에 대한 무용담도 이어졌다. 그는 "방에는 햇빛이 전혀 안 들어서 낮과 밤을 구별할 수 없고, 밖에 널 곳이 없어 방 안에 널 수밖에 없는 빨래는 습기 때문에 잘 마르지 않는다"고 했다. 한 평(3.3㎡) 남짓한 화장실도 '열악 그 자체'였다.
최 씨의 한 달 생활비는 하숙비 50만 원을 포함해 총 100만 원. 1년이면 1200만 원, 대학 등록금까지 합치면 2000만 원이 든다. 최 씨는 "아르바이트도 안 하고 100% 용돈을 받고 있어서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뿐"이라고 말했다.
지난 4일 저녁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창천문화공원에서 열린 '등록금과 주거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표를 품은 청년 페스티발'에 최 씨가 참가한 이유다. 그는 이 행사의 일환인 '주거스타 K'에 참여해 자신의 하숙집 사진을 공개했다.
"등록금, 주거문제 공약 내는 정당과 후보 찍을 것"
최 씨의 '주거스타 K' 출마는 4.11 총선을 앞둔 일종의 퍼포먼스다. 최 씨를 비롯해 신촌 지역에 사는 대학생들을 주축으로 만들어진 모임인 '표를 품은 청년'은 이날 행사를 통해 "등록금과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정당과 후보"에게 투표하자는 유권자 운동을 벌였다.
표를 품은 청년 기획단은 "대학생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투표권을 행사함으로써 정치인과 정당이 우리의 문제인 주거권과 등록금 문제를 확실히 해결하는 정책을 만드는지 똑바로 지켜보겠다는 취지로 행사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
주거문제와 관련해 이들은 "신촌에 상권이 발달했다는 점은 대학생들의 주거권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며 "하숙과 자취를 운영하는 집주인들이 집세를 부당하게 올려도 학생들은 이를 수용하거나 쫓겨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신촌지역 대학 기숙사 평균 수용률은 10.8%에 불과한데다, 학교가 공공자본 대신 민간자본 기숙사를 지어 월 40만원이 넘는 큰 부담을 학생들에게 전가하고 있다"는 현실을 지적하며 "각 학교별로 학교기금과 공공자본으로 건립한 '기숙사 의무 비율'을 제정하자고 정치권에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그밖에도 △민자 기숙사 건립 제한 법안 △하숙 간 담합 규제 법안 및 하숙 보증금제도 제한 △세입자 우선 계약 연장권 부여 △전월세 인상률 상한제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등록금 문제에 대해서는 △반값 등록금 실현 △대학의 적립금 사용내역 공개 △등록금 책정 기준 마련 △무분별한 펀드 투자 규제 등을 요구했다.
"등록금 인하, 떼쓰기 아니다"
참가자 200여 명이 모인 자리에는 인디밴드인 '구체적인 밴드'의 공연, 투표 독려 다트게임, 다큐멘터리 '친절한 미분양' 상영 등이 이어졌다. 무대 한편에서는 학생들이 '자취나 하숙을 하는 젊은이'를 상징하는 '민달팽이빵'을 팔기도 했다.
세종대학교에 다니는 김수연(21) 씨는 "학교가 등록금을 엄청 조금 인하해놓고, 기존에 강의를 맡던 시간강사들을 내보내 전체 수업수를 절반 가까이 줄였다"며 "반값 등록금을 시행한 것도 아니고 등록금을 조금 인하했다고 해서 학생들의 선택권을 줄이는 데 문제의식을 느껴서 행사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김 씨는 "총선에서 수업질은 그대로 유지하되, 등록금을 인하할 수 있는 후보를 찍을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표를 품은 청년 기획단을 준비했다는 박해린(21) 씨는 "처음에는 '반값 등록금'이 떼쓰기 같았는데, 알고 보니 사립학교 중에는 등록금 예산 집행률이 60%밖에 안 되는 곳도 있었다"며 "재단에서 당연히 부담해야 할 법정부담전입금도 등록금에서 빼서 쓰는 등, 학교가 등록금을 낮출 수 있는 여지가 많다"고 말했다. (☞관련 기사 : 대학 등록금, 왜 비싼가 했더니…)
박 씨는 "청년 주거 문제도 대한민국 전체의 부동산 정책과 무관하지 않다"며 "1인 가구는 갈수록 늘어났지만, 정부는 지금까지 투기를 장려하고 대형 아파트만 늘리는 잘못된 정책 방향을 유지했다"고 강조했다.
박 씨는 "20대 투표율이 높아지면서 정치권이 20대에 주목하는 게 나에게는 흥분되는 일"이라며 "사학재단과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바로잡자는 얘기를 청년들이 직접 청년문제와 연결지어 말하니 더 힘이 있다고 느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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