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콘서트>를 제작하는 서수민 PD와 <1박2일>의 최재형 PD, <불후의 명곡>의 고민구 PD, <승승장구>의 박지영 PD(이상 예능국)를 비롯해 <소비자고발>의 권혁만 선임 PD, <추적60분>의 김영선 PD(이상 다큐멘터리국), <내일은 푸른하늘>의 박천기 PD, <데니의 뮤직쇼>의 강요한 PD(이상 라디오국)는 4일 KBS 새노조 사무실에서 기자들을 만나 파업이 필요한 이유를 시청자와 청취자들에게 차분히 설명했다.
▲파업 30일째를 맞고 있는 KBS 새노조(언론노조 KBS 본부 위원장 김현석)가 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S 연구동에서 PD중심 파업투쟁 장기화에 의한 성명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소비자고발 권형만 PD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
"조합원으로서 할 일 한다"
예능국 PD 중에서는 파업초기인 지난달 초 일찌감치 파업 대열에 합류한 서수민 PD는 "웃음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제가 연출을 맡지 못하다 보니, 먼저 시청자들에게 사과드린다"면서도 "조금만 참아주시고 '저 사람들이 무슨 말 하는지' 조금만 귀 기울여 주시면 이 싸움이 빨리 끝날 것"이라고 당부했다.
서 PD는 "제가 조합원으로서 해야 할 바를 위해 파업하는 것처럼, 개그맨들은 계속 웃음을 보여드리는 게 그들의 할 바"라며 "이번 파업이 '개콘'에 나쁜 영향을 미칠까봐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프로그램은 프로그램이고 저는 조합원의 한 명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기자와 PD 대부분이 노동조합원인 MBC와 달리, KBS는 새노조 조합원이 전체 5000여 명 직원 중 약 1000여 명 정도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기술직 노동자와 제작진 일부는 KBS노동조합 소속(약 3000여 명)이다. 이 때문에 결방사태가 속출하는 MBC와 달리 KBS 예능 프로그램은 결방을 피하는 경우가 많다.
박지영 PD가 파업으로 프로그램 제작에 불참한 <승승장구>는 김진홍 부장이 대신 연출을 맡았고, <안녕하세요> 역시 이예지 PD 대신 박중민 예능부국장(EP)이 제작에 참여했다. 서 PD가 불참한 <개그콘서트>도 예전 이 프로그램을 연출했던 김영식 CP가 연출을 맡아 차질 없이 방송 중이며 <불후의 명곡>도 부장급 PD들이 제작일선에 참여했다.
다만 KBS의 간판 예능프로그램 <1박2일>은 제작진 다수가 파업에 참여했으며, 이에 따라 6일과 7일로 예정된 녹화가 취소됐다. 지난 1일 <1박 2일>은 스페셜 편으로 대체됐다. 파업으로 인한 결방은 없다는 게 KBS의 공식 입장이다.
최재형 PD는 이에 대해 "지난 주 방송은 우리 팀에서 함께 일하는 프리랜서 PD 두 명이 제작해 어렵게 방송됐다"며 "일단 남은 분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최 PD는 "조합원임에도 불구하고, '국민예능' 프로그램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파업에 늦게 참여했다"며 "기대 이상으로 사랑해주신 시청자들에게 일단 죄송하다. (파업에서 승리하면) 다시 돌아가 전보다 더 열심히 방송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자신이 연출하던 프로그램이 의도와 달리 제작되는 걸 지켜보는 데 대한 안타까움도 드러냈다.
강요한 PD는 "제3자가 제작한 프로그램을 듣게 되니 마음이 불편하다"면서도 "한편으로는 제 생각보다 프로그램에 큰 차질이 없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박지영 PD도 "새끼처럼 사랑하는 프로그램에서 분리돼 있어 마음이 아프다"며 "지금의 상황이 정상 방송이냐 파행이냐는 설명하기 어렵지만, 제가 생각하는 방송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우리 사례 더 알려졌으면…"
▲파업 30일째를 맞고 있는 KBS 새노조(언론노조 KBS 본부 위원장 김현석)가 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S 연구동에서 PD중심 파업투쟁 장기화에 의한 성명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1박2일 최재형 PD가 생각에 잠겨 있다. ⓒ뉴시스 |
강요한 PD는 "어떻게든 저희 파업을 더 많이 알리고 싶다"며 "우리 목적이 달성되는 날까지 동료들과 함께 있다가, 목적을 달성한 후 금의환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특히 시사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두 PD는 파업의 정당성을 힘줘 말해 눈길을 끌었다.
김영선 PD는 "<추적60분>은 파업을 시작한 후 세 차례 결방됐는데 이 사실이 많이 알려지지 않아 가슴이 아프다"며 "지난해 한진중공업 사태를 취재할 때 (그곳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싸움이 보도되지 않아 힘들어 하셨는데, 이제 저희가 그런 입장이 됐다. 저희가 왜 싸우는 지 더 많이 알려주셨으면 좋겠다"고 기자들에게 당부했다.
김 PD는 "우리의 파업은 기본을 바로잡기 위한, 상식을 되찾기 위한 싸움"이라며 "다음 주가 총선인데 취재를 하지 못해 저희들도 마음이 편하지 않지만, 보다 신명나게 취재할 수 있는 날을 위해 싸운다"고 강조했다.
이날 참여한 PD 중에서는 가장 고참급 PD인 권혁만 PD(공채 17기, 1990년 입사)는 "1990년 2월 입사한 후 곧바로 파업이 터졌는데, 딱 23년 만에 다시 파업에 참여하게 됐다"며 "저희는 노조원 신분으로서 노조가 지향하고 노조가 결정하는 것에 따르는 게 아주 기본적인 행동"이라고 파업 참여 이유를 밝혔다.
권 PD는 "'공정방송 쟁취'라는 새노조의 파업 목적은 너무나 당연하다"며 "비상식과 상식의 싸움, 참과 거짓의 싸움, 정의와 비정의의 싸움이다. 내용으로나 형식으로나, 우리가 이 싸움에서 이길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천기 PD도 "저는 파업에 참여하면서 후배들에게 '낙화가 될지언정 사쿠라는 되지 않겠다'고 말했다"며 "부끄럽지 않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로 지난 2010년 7월의 최장기 파업 기록(29일)을 깨고 파업 30일째를 맞은 KBS 새노조는 같은 날 오후 본관 앞에서 집회를 갖고 파업 각오를 다졌다. 전남 해안, 부산에서 출발한 '리셋원정대'도 KBS에 도착해 조합원들의 환호를 받았다.
홍기호 KBS 새노조 부위원장은 "여러모로 저희에게 매우 뜻 깊은 날"이라고 장기화되는 파업의 의미를 다졌다. KBS 새노조와 마찬가지로 MBC 노조도 일찌감치 최장기 파업기록을 경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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