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텔레비전 방송에 '스타 킹'이라는 인기프로가 있다. 어린애로부터 노인까지 다양한 출연자들이 기상천외의 갖가지 재능을 연출하여 사람들을 열광시킨다. 시청자들은 "천재다, 개천에서 용 났다, 인간승리다" 하며 그들의 묘기에 경탄하고 감복하여 눈물까지 흘린다. 그들 중에서도 음대에 입학한 지 한 학기 만에 모친의 병환으로 학업을 포기하고 야식배달부로 생계를 이어온 김승일 씨, 수족관에서 일하며 성악가의 꿈을 불살은 한 청년, 고기잡이배를 타고 아버지를 도우며 가수의 꿈을 포기하지 않은 15세 소년이 기억에 생생하다.
가난 때문에 타고난 재질을 키우지 못한 채 묻혀 지내다가 천재일우의 기회를 만나 공개방송에서 뛰어난 소질과 능력을 내 보이니 유명한 교수들이 멘토가 되겠다고 자진해 나선다. 외국의 음악전문가도 그들의 풍부한 가창력에 감탄하며 기꺼이 돕겠다고 나선다. 야식배달부가 부르는 이탈리아 가곡 열창 실력이 어느 정도인가는 음대를 졸업하고 유학까지 마친 입학 동기생들이 "그 많은 등록금, 유학비를 들여 힘들게 공부한 우리는 무엇이냐"고 토로한 한탄 섞인 부러움에서도 잘 드러난다.
우연한 기회에 그들의 재능이 발굴되어 대가로 성장한다면, 이는 개인의 성공이자 국가의 명예를 드높이는 일이 된다. 그러나 시청자들은 눈앞의 묘기에만 환호하고 찬탄할 뿐, 그들이 지금까지 걸어온 처절한 삶의 현장은 생각해보지 않는다. 그런 인식과 자세로 우리들은 너나없이 여태까지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아 갈 것이다. 한밤중에 오토바이에 몸을 싣고 소음과 배기가스 가득 찬 도심의 차량행렬을 피해가며 목이 터져라 노래 부르며 달려갔을 뒷모습을 상상해보라. 세찬 비바람 속에서 그물을 끌어당기면서도 노래에 대한 열정을 포기할 수 없었던 한 소년의 애절한 삶을 상상이나 해보았겠는가.
이들 행운아는 빙산의 일각일 뿐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인재들이 부모의 가난 때문에 천부의 재능을 그냥 묻어버리는 사례가 너무나 많으니, 이는 개인 차원의 불행을 넘어 국가 자산의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반대로 아무 소질도 의지도 없이 부모의 재력을 업고 해외로 나가 공부는 고사하고 돈만 낭비한 채 못 된 짓만 배워오는 한심한 청소년들의 행태도 종종 보도된다. 돈 때문에 마음껏 뜻을 펴지 못하는 것은 공부뿐만 아니라 스포츠 예능분야도 마찬가지다. '억 소리 나는 귀족스포츠, 개천서 연아 못 난다'는 최근의 기사처럼 아무리 뛰어난 잠재적 재능이 있어도 돈이 없으면 무용지물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험난한 고생 없이 각자 타고난 소질과 개성을 한껏 계발하여 국가의 유능한 인재로 키울 수 있는 제도와 방법은 없을까?
잠재적 인적 자원을 최대한 발굴하는 나라
시야를 돌려 지구 반대편 북유럽, 스웨덴으로 가보자. 그 나라의 청소년들은 이미 반세기 전부터 국가의 사회정책과 제도로서 굳건히 자리 잡은 보편주의 복지제도 덕분에 부모의 신분 재력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타고난 재질과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보장받고 있다. 그 결과로 인구 930만 밖에 안 되는 작은 나라에서 윔블던 4연패로 유명한 테니스 황제 비외른 보르이, 스키 왕 잉마르 스텐마르크, 아직도 우리 귀를 즐겁게 해주는 팝그룹 아바(ABBA) 같은 세계적 인재들을 이미 1970년대에 배출하였고, 2000년대에는 골프여제 아니카 쇠뢴스탐(Annika Sörenstam)도 등장했다.
1970년대 초, 내가 유학시절 웁살라대학에서 만났던 의학도 한스 오그렌(Hans Ågren)은 아버지의 직업이 중소도시 택시 기사라서 무상교육이 아니라면 자기는 의학공부를 할 엄두도 못 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넷을 검색 해보니, 그는 현재 신경정신과 교수 겸 예테보리대학 병원장으로 근무 중이다. 또, 1998년 스톡홀름대학에서 근무할 때 여름 학회에서 만난 부 랄프(Bo Ralph) 교수의 이야기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점심식탁에서 우연히 하는 말이 스웨덴에 다시 경제위기가 닥쳐와 교수직에서 떨려나도 자기는 밥걱정 안 해도 된다며 아버지의 어깨너머로 익혀둔 미장일을 하면 먹고 살 수는 있다고 했다.
그의 전공은 스칸디나비아어학으로 그 분야에서 유능한 교수로 인정받아 최고 지성인의 전당인 스웨덴 학술원의 회원이 되었다. 모두 18명으로 구성된 회원의 임기는 평생이며, 해마다 노벨상을 심사하고 발표하는 권위 있는 기관이다. 그들 부모의 경제력만으로는 고등학교도 제대로 마치기 어려웠을 텐데 국가의 무상교육제도 덕택에 특대생이나 장학생 선발시험 같은 복잡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타고난 능력을 개발해서 나라의 유용한 인재로 활약하고 있으니 얼마나 부러운 일인가.
늙어서도 평등한 사람들
스웨덴 국민들은 국가의 적극적 노동시장정책 덕택에 젊어서는 누구나 자기 직업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며 응분의 세금을 기꺼이 낸다. 그 대가로 일상생활의 안정을 보장받는 것은 물론 의료와 노후까지 국가가 책임져 준다. 나는 1970년대 중반 여름방학 때 웁살라 시내 노인병원(Ulleråkers sjukhus)에서 한 달간 일한 적이 있는데, 거기는 노년기를 자기 주택에서 보내다가 더 이상 자력으로 생활해나갈 기력이 없는 80, 90대 노인들을 수용하여 여생을 마감하게 하는 곳이다. 간호보조원으로 처음 일주일간 교육을 받고 시작한 내 임무는 아침 7시에 취침에서 깨어난 노인의 기저귀와 홑이불 갈아주기, 얼굴 씻어주기, 밥 먹여주기, 오전 오후에 처방약 챙겨 먹이기 같은 일이었다. 그런데 그들에게 제공되는 의료서비스와 대우가 너무 풍족하고 고급스러워 이곳에는 출세한 자식을 둔 부자 노인들만 오는 특별요양원인줄 알았다.
대다수 노인들이 침상에서 누운 채로 지내는데, 한 남성 노인이 살살 복도를 걸어 다니다가 옆의 의자에 앉아 쉬곤 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하루는 가까이 다가가서 "할아버지는 젊어서 무슨 일을 하시다가 이곳에 오셨어요?" 라고 물어보니 자기 직업은 창고지기였다고 태연스럽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 노인의 간단명료한 대답이 나에게는 두 가지 충격으로 와 닿았다. 하나는 창고지기라는 일이 직업으로 인정되고, 그 일로 정년퇴직까지 할 수 있는 안정된 사회라는 점과 또 하나는 신분의 고하나 재력에 상관없이 모든 노인들을 동등하게 대우해주는 평등한 사회가 이 세상에 있구나 하는 놀라움이었다.
이러한 평등사회의 가치는 스웨덴에서 오늘날까지도 비교적 잘 유지되어 종합병원의 특실은 돈 많은 기업총수나 고관대작의 전유물이 아니고 환자의 질병상태와 중증도가 유일한 방 배정의 기준이 되어 있다는 사실은 일화처럼 알려진 지 오래다. 진정한 인도주의 정신에 입각한 공정한 사회란 바로 이런 곳이구나 하며 나는 새 세상에 눈을 뜨게 되었다.
기부문화는 최고의 미덕인가?
요즘 우리나라는 양극화가 날로 더해가고 비정규직을 포함한 저소득층의 생활이 너무 어려워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정부는 각종 대책 마련에 부심하면서 한편으로 기부문화의 확산을 강조하고 권장한다. 기부문화란 가진 자가 자기의 일부를 가난한 자에게 나눠주는 적선문화로 자의적인 선심행위에 속한다. 이는 인간의 원초적 심성의 하나로서 연민의 정에 호소하는 방식이다. 지나가던 부자가 기분이 내키면 거지에게 한 푼 던져주고 내키지 않으면 그냥 지나쳐도 그만이다. 그래서 적선을 한 사람은 마치 천당 갈 일이라도 수행한 듯 마음 뿌듯해하고 받은 사람은 코가 땅에 닿게 감사 감사를 연발한다.
정부와 보수언론은 기부 천사로 미국의 억만장자 아무개를 보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는데, 이는 자본주의 사회의 새로운 문화 형태도 아니고 최상의 미덕을 추구하는 방식도 아니다. 적선의 미덕은 조선시대 뜻있는 부자에게도 있었고, 60년 전 한국전쟁 당시 먹던 찬밥 한술도 거지에게 나눠 준 동냥문화라는 풍습에도 있었다. 요 근래 우리나라 재벌들이 어쩌다 거액의 기부금을 사회에 내놓기도 하는데, 엄청난 비리 부정 끝에 나온 면피성 기부라서 진정성을 의심받아 오히려 비웃음을 사게 된다.
하지만 이런 부차적인 문제에 앞서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점은 수혜자의 인권과 자존심에 대한 상처이다. 연말이면 텔레비전에 자주 비치는 독고노인들은 지하 단칸방에서 기초노령수당 9만원으로 겨우 살아가는데, 이 정도의 지원으로는 인간다운 삶은 고사하고 연명조차도 힘들다. 게다가 부모 부양의 책임을 오래 전에 외면한 아들이 있다하여 그 적은 혜택마저 끊긴 노인의 생계는 막막하다. 그러니 쌀 한 자루, 연탄 몇 장, 김치 한통에도 감복하는 불쌍한 노인들은 가난이란 이유 하나로 인간으로서의 자존심과 존귀함을 내버린 지 오래다.
그들에게 도대체 국가란 무엇인가. 그렇지만, 나라 덕에 연명이라도 하고 있지 않느냐고 강변한다면 그들도 할 말은 있다. "우리는 남들처럼 많이 배우지 못했고 알아주는 자리에 오르진 못했어도 젊은 시절 국토방위와 새마을운동에 몸 바쳐 일해 왔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내 가족과 조국을 위해 평생 일해 왔다고." 온갖 몰염치와 위선으로 치장한 일부 정치인이나 사회지도자들과 달리 불평불만 없이 평생을 소처럼 일만 해온 이들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진정한 애국자들이다. 이들도 자존과 권리를 당당하게 누리며 사회의 일원으로 대접받고 살다가 생을 마치도록 체계적인 노인복지대책을 강화해야 한다.
준법정신 해이는 모든 악의 근원이다
4월 총선과 12월 대선을 앞두고 여야 정당들은 큼직한 공약들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그들의 공약대로 경제민주화, 복지사회구현, 공정한 시장경쟁이 실현된다면 대한민국의 패러다임이 바뀌어 국민 전체의 삶의 방식과 질이 크게 개선되어 보다 공정한 사회, 정의로운 사회로 가는 길이 열리게 될 것이다. 아니면 여태까지 그래왔듯이 일시적 선거용 선심공약으로 용두사미로 끝날지도 모를 일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현재와 같은 부패 비리구조를 방치한 채 아무리 획기적인 개혁정책을 실시한다 한들 사상누각이요 국민에게 실망만 안겨주는 결과로 귀착될 것이다.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성수대교(1994)와 삼풍백화점(1995)의 붕괴는 우리의 건축기술 부족이 낳은 대형 사고가 아니라 규정을 무시하고 업자들과 결탁한 공무원 비리가 주원인이 되어 500명의 무고한 시민의 생명과 국가재산을 앗아간 사건이었다.
뉴스의 단골메뉴로 나오는 크고 작은 사고, 화재, 살인, 폭력, 관공서 비리, 기업 비리, 사기, 횡령 사건들은 하나 같이 법과 규정을 무시한 데서 나온 필연적 결과이다. 게다가 국민의 머슴이라는 대통령부터 말단 공무원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일상적으로 저지르는 부정직한 행태들은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렵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지 나라꼴이 말이 아니다. 어른들의 이런 추태를 보고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어린 아이들이 과연 무엇을 배울 것인지 부끄럽고 창피하다.
이제 걸음마 단계에 들어선 국가의 복지시책들이 담당공무원의 횡령과 착복으로 비틀거리니 아무리 파격적 예산이 투입된다 한들 밑 빠진 독에 물붓기라서 건전한 복지의 안착은 요원하다. 그렇다고 한탄만하고 있기에는 우리 사회의 당면한 문제가 너무도 심각하다. 방법은 오직 하나 안철수 교수처럼 거짓말 하지 않고 말한 대로 행동하는 지도자들로 물갈이를 해야 한다. 그런 양심적인 지도자들이 정계와 관계, 재계의 주류를 이룰 때 우리 사회를 정화시키는 도도한 물결이 흐르기 시작한다.
스웨덴 사회의 큰 강점이자 복지국가를 지탱하는 기둥은 국민들의 철저한 준법 실천이다. 구성원 상호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탄탄한 연결고리는 공감과 협력의 힘을 키운다. 정부와 국민 간, 기업주와 노동자 간에 맺어진 강한 믿음과 사회적 합의 문화는 성장과 복지와 개혁의 견인차가 된다. 한 가지 예만 들어보자. 스웨덴에는 병가수당이라는 제도가 있는데, 아파서 출근을 못하게 되면 고용주에게 전화로 발병신고를 하고 7일간 집에서 쉴 수 있다. 그 후 결근으로 인한 소득 손실을 보상하는 6일간의 병가수당을 고용주로부터 현금으로 받는다. 이 때 발병여부를 확인하는 아무런 절차가 없다. 꾀병 신고를 하면 어떻게 하느냐는 외국인들의 질문에 스웨덴 관리들은 우리는 정부와 국민 사이의 신뢰를 바탕으로 이런 제도를 운영해오고 있다고 담담하게 대답한다.
이제 우리도 국가가 국민 개개인의 보육, 교육, 건강, 노후를 보장해주는 보편주의 복지국가로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만 경제적 불평등이 완화되고 계층 간의 갈등이 해소되어 조화로운 공동체를 건설할 수 있다. 그 길만이 또한 인간의 탐욕을 줄이고 사람들을 돈의 노예로부터 해방시키는 출구가 될 것이다. 머지않은 장래에 남북이 통일되고 복지가 충만하여 모두가 잘 살게 되는 그날이 바로 우리민족 전체에 행복이 오는 날이다. 내가 직장을 은퇴한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보편주의 역동적 복지국가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복지국가소사이어티를 통해 줄기차게 제기하는 이유이다.
▲ ⓒSB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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